밈주주의의 시대
완결

민주주의 이후의 밈주주의

소셜 미디어가 미국의 정치 문화 전파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아르투르 도 발(Arthur do Val)은 그저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현직 지역 의원이며,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서 자랑하는 바에 의하면 사상 두 번째로 많은 득표수를 기록했다는 도 발은 좌파들을 야유하는 가두시위를 통해서 유명세를 얻었다. 그는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작품들을 보면서 이러한 전략을 배웠다고 설명한다.

이후 도 발은 이런 작업에 재능을 보이면서 인터넷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다량으로 만드는 제작자가 되었다. 그의 제작팀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일주일에 수백 개의 이미지와 동영상을 내보낸다. 사람들은 재미를 원하기 때문에, 정치 역시 재미있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정치적 주장은 재미있는 밈(meme)과 웃기는 동영상을 통해서 전달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도 발의 경우를 보면 그는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인 생각을 퍼트리고 좌파를 공격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는 록스타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소방관이나 운동선수가 되려고도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예전의 저는 그저 사업에 실패해서 좌절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유튜브에서 저의 분노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보았습니다.” 그의 설명이다. “저는 그냥 눈에 띄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던 것이 우연히 저를 정치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무명인에서 불과 32세의 나이에 주의회 의원으로 부상한 도 발의 사례는 상당히 예외적이면서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그는 밈과 동영상, 슬로건으로 소통하는 정치적 사업가(political entrepreneur)라는 새로운 초국적 계층의 모습이 체화된 인물이다. 그들은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참고해서 현지의 조건에 맞게 변형하고, 그것을 다시 저 높은 하늘로 날려 보낸다. 그들 중 상당수가 활동가이거나 평범한 사람들이다. 소셜 미디어는 자신의 팔로워는 물론이고 그들이 서로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로 인해서 신흥 계층의 비주류 정치인들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가 미국에서 만들어진) 정치적인 아이디어들이 세계화되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영화, 텔레비전 프로그램, 음악은 세계 어디서든 사랑받는다. 미국의 소비자 브랜드들은 세계를 장악하고 있다. 미국의 소셜 미디어 스타들은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 거대한 문화적 전파력을 가진 세계 최대의 강국으로서, 미국은 정치적인 트렌드와 움직임에 있어서 언제나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하버드대학교의 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1990년에 “소프트 파워(soft power)”라는 개념을 소개했는데, 그는 이것을 “강압이나 매수가 아닌 매력과 설득을 통해서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할리우드, 팝 음악, 맥도날드, 리바이스 청바지 등이 모두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대변하는 것이다.

미국에 살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함께 공유하는 것이었다. 1996년에 뭄바이에서 인도 최초의 맥도날드가 문을 열었을 때, (종교적인 이유로 쇠고기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유명한 맥도날드 햄버거의 맛을 보기 위해서 수천 명의 인도인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이것은 이미 그보다 앞선 6년 전에 모스크바에서도 보았던 장면이었다(그리고 10년 전에 뭄바이에서 스타벅스가 문을 열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인 뭄바이의 영화 산업은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할리우드의 이름을 따서 “발리우드(Bollywood)”라고 부른다. 그리고 나이지리아에는 “날리우드(Nollywood)”가, 파키스탄에는 “랄리우드(Lollywood)”가 있다.

맥도날드가 비만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할리우드가 경찰의 과학 수사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키우는 데 기여한다고 하더라도, 정책 입안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나이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다른 이들에게 매력을 행사함으로써 가끔씩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미국산 브랜드에 대한 호감은 미국 정부에 대한 우호적인 견해와 양의 상관관계(positive correlation)에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미국이 수출하는 문화가 정치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국 문화의 영향력을 전파하는 주요한 수단은 이제 맥도날드가 아니라 소셜 미디어의 밈이 되었다.

브라질을 예로 들어 보자. 브라질의 정치계는 유튜버 및 페이스북의 인플루언서들로 가득하다. 여기에는 자이르 보르소나루(Jair Bolsonaro)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부에 비판적인 펠리페 네토(Felipe Neto)와 같은 이들도 있는데, 네토는 젊은 사람들을 겨냥한 동영상을 만들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수많은 정치 콘텐츠 제작자들로 구성된 방대한 시장이 존재한다. 도 발은 마스크 착용이나 인종과 관련한 논쟁을 예로 들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미국의) 담론은 설령 무의식적이라고 하더라도 엄청난 영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면, 그로 인한 영향이 이곳까지 옵니다.” 이는 단순히 미국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복사해서 붙여넣기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오히려 미국은 어디에서나 누구든 활용할 수 있는 템플릿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주에 있는 시러큐스대학교(Syracuse University)의 미디어 연구자인 휘트니 필립스(Whitney Phillips)는 정치적 논쟁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미국의 역할이 단지 그것을 촉진하는 규범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는 전 세계의 정보 흐름을 연구하여 최근에 발간한 저서 《당신은 여기에 있다(You Are Here)》에서, 정치적 논쟁에 기여하는 미국의 역할이 “문화 생산에 의해서도 창출되는데, 그것은 바로 미디어와 밈에서 소개되는 실제 담론”이라고 쓰고 있다. 그녀는 미국의 영향력이 현재 더욱 커진 이유의 한 가지는 “소셜 미디어가 글로벌”하기 때문이며,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수는 미국 안보다 미국의 외부에 훨씬 더 많다”고 말한다.

 

나이지리아를 휩쓴 ‘흑인들의 생명도 중요하다’ 운동


2020년 미국에서 발생한 ‘흑인들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BLM)’ 시위를 생각해 보자. 당시 이 운동은 아프리카계 후손들이 거의 없는 한국은 물론이고, 흑인이 아닌 사람은 거의 없는 나이지리아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수많은 곳에서 일어난 비슷한 시위에 영향을 주었다. 영국에서는 경찰이 총기를 휴대하는 일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벌어진 시위처럼) ‘경찰의 무장을 해제하라’라는 팻말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도 있었다. 헝가리는 아프리카계 사람이 전체 인구의 0.1퍼센트도 되지 않는데, 지역 의회 한 곳이 BLM 운동을 지지하는 의미로 예술 작품을 설치하려 했다가 총리실로부터 질타만 받고 말았다. 지난해 헝가리 정부는 “모든 생명은 중요하다(All lives matter)”라고 선언하는 동영상을 만들어서 공개했다.

큐어넌(QAnon)은 소아성애자 식인귀(paedophile cannibal)들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인데, 이러한 내용은 2017년의 어느 때인가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 밖에서도 수많은 지지자들이 생겨났다. 지난해 런던에서 있었던 소규모의 큐어넌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소아성애자 보호를 중단하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노란 조끼 시위대들 틈에서도 이런 주장이 적힌 문구를 볼 수 있었다. 어느 추정치에 따르면, 독일에는 큐어넌 추종자들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고 한다. 이 음모론은 심지어 정치 문화가 전혀 다른 일본으로까지 번졌다.

문화적 영향은 일방통행이 아니다. 영국의 정치적 인플루언서들도 거대한 청중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에는 미국인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가끔은 여기에 캐나다 사람들이 동참하기도 한다. 도 발은 “혼란스러워 하는 여성”이라는 밈이 처음에는 브라질에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해외에서도 널리 퍼지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지적한다. 그러나 이것이 브라질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브라질은 물론이고 다른 어느 나라에서 어떤 운동이 벌어졌다고 해서, 전 세계에 비슷한 문화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그것이 비록 간접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나라가 가진 문화적 무게와 비례한다(아래 표 참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의 영향력, 상위 100개 계정 / 2020년 12월 2일 기준 / (화살표의 두께) 콘텐츠의 비중(%)* / 색깔이 있는 화살표는 그 수치가 5퍼센트 이상임을 의미 / 프랑스 사람들이 구독과 “팔로우”하는 콘텐츠의 9%는 미국 계정 / (버건디) 미국 계정, (민트) 그 외 계정 / 출처: 하이프오디터(HypeAuditor), 《이코노미스트》 / * 화살표의 목적지 국가에서 화살표의 출발지 국가의 계정을 팔로우/구독하는 비율, 평균 소득과 팔로워/구독자 수의 측면에서 주요국들 대상
이 중 상당수는 소셜 미디어가 하는 일이다. 소셜 미디어는 새로운 목소리를 증폭시키고, 어떤 생각들이 퍼져 나가는 속도를 빠르게 하며, 사람은 물론이고 어떤 생각이 영향력을 얻을 수 있는 범위를 더욱 확대시킨다. 그러나 기성 신문과 텔레비전 방송사들 역시 온라인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CNN은 영어 뉴스 웹사이트 가운데에서는 BBC에 이어서 세계에서 방문자가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 세 번째는 뉴욕타임스이다. 지난해 11월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파리 인근에서 발생한 테러리스트의 공격에 대해서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내용을 두고 불만을 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 이처럼 일일이 대응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 이외의 장소에서도 지구의 거의 모든 나라에 걸쳐서 약 5000만 명의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뉴욕타임스를 읽는다. 그중 520만 명은 디지털 구독자들인데, 이들 중 5분의 1은 미국 외부에 존재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언론 매체들은 미국의 언론사들이 보도하는 내용을 참고한다. 킹스칼리지런던(KCL)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의 언론에서 “문화 전쟁(culture wars)”[1]에 대해서 언급하는 현상이 4년마다 반복되는데, 이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 주기와 맞물려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표현의 사용량이 급증했다. “영국이 문화 전쟁이라는 용어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것입니다.” KCL 정책연구소의 소장인 바비 더피(Bobby Duffy)의 말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왜 큐어넌이라는 이름이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고,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회의론이라는 표현이 미국식 어휘의 한 자리를 차지했으며, BLM 시위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 사람들이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들은 또한 미국의 신문을 읽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소셜 미디어를 팔로우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다른 나라에서 가능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을 예로 들어 보자. 홍콩에서의 시위는 공감과 연대를 이끌어 냈지만,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시위를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중국이 아닌 지역에서 화웨이의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알리바바에서 쇼핑하는 것에 흥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성공을 거둔 인터넷 서비스인 틱톡(TikTok)은 정작 중국 내에서는 더우인(Douyin)이라는 별도의 버전이 사용되고 있다. 중국의 만리방벽(great firewall)은 세계의 다른 국가들이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막아 주지만, 중국의 아이디어가 외부로 뻗어 나가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또한, 버지니아에 있는 미국 해병대대학교(Marine Corps University)의 전략 연구 교수인 크레이그 헤이든(Craig Hayden)은 미국 정치가 가진 개방성으로 인해서, 미국식 상징과 표상을 (다른 지역에서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미국의 거리에서 발생한 시위를 보여 주는 동영상은 미국이 가진 전 세계적인 위상에 흠집을 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워싱턴이나 미니애폴리스에서 일어난 소요를 지켜보면서, “미국도 우리와 비슷한 이런 종류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미국의 역동적인 특징이 그들의 움직임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다. 헤이든 교수는 이렇게 덧붙인다. “인종 갈등에 대해서라면 다른 어떤 나라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리트윗(retweet)하지는 않습니다.”



엉클 샘(US)의 디지털 확성기


소셜 미디어 시대에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강력한 전파력을 갖게 되면서, 이제는 머나먼 이국에도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미니애폴리스나 시애틀의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은 상파울루에 있는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 북동부의) “뉴”잉글랜드에 있는 대학 교정에서 시작된 논쟁은 (영국의) 올드(old) 잉글랜드의 거실까지 옮겨갈 수 있다. 인터넷은 원래 전 세계에 정보를 흐르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와 그 알고리즘은 단지 미국의 목소리만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1]
일반적인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영어권 언론에서 이 개념을 다룰 때는 주로 미국 내 보수주의 세력과 진보주의 세력 사이에 벌어지는 가치관의 충돌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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