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경제학
완결

짝퉁 경제학

짝퉁의 생태계를 유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진퉁의 브랜드 전략이다. 유형의 비용을 줄이고 무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명품 마케팅이 지속되는 한 짝퉁은 언제까지나 무적의 비즈니스이다.
중국 선전에 있는 가짜 롤렉스(Rolex) 매장 ©Photograph: Marginon/Alamy

나는 호화로운 파리 16구에 위치한, 인상적인 주택 앞에 서 있었다. 건물의 고전적인 실루엣과 대리석 계단, 그리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철제 난간들이 오히려 그곳 내부의 용도와는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의 명칭은 위조품박물관(Musée de la Contrefaçon)이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위조품을 전문으로 하는 특이한 박물관이다. 나는 명품 브랜드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싸워온 문제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곳을 찾았다. 그 문제는 바로 대량으로 유통되는 저가의 복제품들과 노골적인 짝퉁 상품들에 관한 것이었다.

일부의 추정에 의하면, 가짜 상품의 거래 규모는 연간 6000억 달러에 이른다. 브랜드가 표시된 채로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상품의 10퍼센트 정도가 짝퉁일 수도 있다. 고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리 중 80퍼센트는 가짜나 짝퉁 상품을 만져본 적이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수십 년 동안 고급 사치품의 판매량이 급증했지만, 가짜 상품들은 훨씬 더 빠르게 증가했다. 지난 20년 동안 짝퉁의 규모가 1만 퍼센트 급증했다는 추정도 있다.

정신을 아찔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전반적인 수치만이 아니다. 프랑스 세관이 실시한 한 단속에서는 테니스 코트 54개를 뒤덮을 수 있는 규모의 가짜 루이비통(Louis Vuitton) 원단이 압수되었다. 중국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타오바오(淘宝网)의 판매자 한 곳을 단속한 결과, 가방, 앞치마, 신발 등 모두 1만 8500점의 짝퉁 상품들을 적발했다. 마드리드에서 실시한 단속에서는 블랙 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 시즌에 판매할 목적으로 준비된 8만 5000점의 짝퉁을 압수했다. 2020년 이스탄불에서는 거의 70만 개의 짝퉁 모발 관리 제품들이 압수되었다.

일반적으로 진짜보다 가짜가 훨씬 더 많은 상황이 되면, 그것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정이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열에 의해 활성화되는 위조 방지 스티커, 보증 번호, 무선주파수인식(RFID) 칩, 색 변환 잉크, 홀로그램 등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수많은 조치로 무장한 인증 산업의 끊임없는 성장에도 불구하고 시정 작용은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다. 유명 디자이너들과 거대 브랜드들은 왜 짝퉁을 막아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것을 줄이지도 못할까?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진짜와 가짜의 차이점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전형적인 프랑스식 답변을, 위조품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유리 케이스 안에 진품과 짝퉁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각각에는 친절하게도 진짜(vrai)와 가짜(faux)라는 라벨이 붙어 있었다. 나는 샤넬(Chanel)의 유명한 2.55 퀼트 핸드백처럼 보이는 제품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투어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그건 터키에서 만든 가짜였다. 샤넬의 진품이 가지런하며 견고한 박음질을 자랑하는 반면, 가짜는 접착제로 재료들을 붙여놓은 것이었다. 샤넬의 시그니처인 특유의 퀼트는 골판지와 탈지면으로 만들었다. 한국에서 만든 가방은 얼핏 보면 그냥 루이비통의 진품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살펴보니 루이비통 특유의 나뭇잎 무늬가 동그라미와 막대기 모양으로 바뀌어 있었고, LV라는 글자 로고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한글로 대체되어 있었다. 가짜에 있는 디자인적인 요소들 가운데 개별적으로 진품과 일치하는 것은 없었지만, 그러나 전체적으로 모아놓으면 그것은 분명히 ‘루이비통’처럼 보였다. 가이드는 이것이 바로 똑같이 모방한 위조품과 “진짜처럼 행세하는” 위조품 사이의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캐비닛에는 오늘날의 프랑스인 갈리아(Gallia) 지방에서 만든 2000년 된 고대 로마의 가짜 암포라(amphora, 목이 좁은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마개 위에 있어야 하는 로마식 이름은 무의미한 기호로 대체되어 있었다. 나는 박물관의 직원들이 그곳에 전시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가짜 물품이 프랑스 영토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상당히 자랑스러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날 나는 조금 볼품없게도 슈퍼마켓에서 주는 비닐봉지에 노트와 지갑, 열쇠를 넣어서 들고 다녔다.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서기 직전에 나의 숄더백이 가짜 롱샴(Longchamp)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박물관에서 가이드가 나에게 진품을 보여주었다. 내 숄더백의 지퍼에 달린 조그만 장식은 평범한 금색 고리였는데, 알고 보니 거기에는 롱샴 특유의 달리는 말과 기수가 있었어야 했다. 내 가방의 내부는 진짜 롱샴이 가진 감미롭게 두툼하고 고무처럼 흐물거리며 착 달라붙는 점착성이 없었다. 진품과 비교해보니 내 가방의 가죽은 이상한 스펀지 같고 허전했으며 박음질도 엉성했다.

나는 가이드에게 그 건물에 관하여 물어봤다. 이 건물이 17세기 초 마레(Marais) 지구에 있었던 건물의 복제품이라는 이야기가 사실인가요? 박물관 자체가 위조품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게 흥미로운 역설 아닌가요? 가이드의 두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나는 거기에서 냉랭함을 감지했다. “여긴 복제품이지 위조품은 아닙니다. 지적재산권(IP)이 통용되지 않는 곳에서는 위조품이라는 표현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1. 짝퉁을 검거하라

위조품박물관은 주로 명품 분야에 전문화되어 있지만, 지난 20년 동안에 벌어진 위조품들의 폭발적인 증가는 주로 중간급 시장에서 이루어졌다. 예전에는 시장의 좌판에서 판매되던 짝퉁 브랜드들이 지금은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만 하면 구입할 수 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제품은 마케터들 사이에서 ‘매스티지(masstige)’라는 전문용어로 불리는 상품들이다. 매스티지는 ‘매스 마켓(mass market, 대중 시장)’과 ‘프레스티지(prestige, 고급)’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어이며, 매스티지 상품이란 고급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저렴한 제품을 의미한다. 매스티지와 명품을 가르는 명확한 구분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명품들이 장인정신과 전통, 뛰어난 품질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는 반면에, 매스티지 상품들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쳤다는 점을 강조하고 고급품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며 유명인들과 제휴하고 트렌드에 기대어 판매하는 전략을 취한다. 어느 비평가의 말처럼, 매스티지는 주로 사람들의 욕망에 초점을 맞춘다. “명품 브랜드들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대변하는 세계와 소비자들이 실제로 구매할 수 있는 제품들 사이에 존재하는 암묵적인 공백”을 공략하는 것이다.

위조품박물관을 방문하기 며칠 전, 나는 암스테르담에서 짝퉁 방지 단체인 리액트(React)의 현지 책임자인 비욘 그루츠바거스(Bjorn Grootswagers)를 만났다. 리액트는 지난 30년 동안 짝퉁 시장에 맞서 싸워왔다. 그들은 1년에 약 2만 건의 사례를 처리하고 있으며, 전 세계 107개국의 세관 및 사법기관들과 협력하고 있다. 그들에게 사건을 의뢰하는 300여 곳의 클라이언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지적재산권을 가진 소유주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다음과 같은 대표적인 매스티지 브랜드들이다. 아디다스(Adidas), 아베크롬비앤드피치(Abercrombie & Fitch), 컨버스(Converse), 나이키(Nike), 푸마(Puma), 리바이스(Levi’s), 타미힐피거(Tommy Hilfiger), 피파(FIFA), 두카티(Ducati), 잭다니엘(Jack Daniel’s), 재규어(Jaguar), 로레알(L’Oréal), 프록터앤드갬블(Procter & Gamble, P&G), 유니레버(Unilever), 워너브라더스(Warner Bros), 야마하(Yamaha),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헬로키티(Hello Kitty), 플레이보이(Playboy) 등이다.

기차역에서 나를 태운 택시가 암스텔벤세베그(Amstelveenseweg) 대로를 따라 달리자 주변의 풍경이 업무용 고층 건물들에서 플랫(flat, 서구식 아파트) 지구로 변했고, 이후에는 좀 더 작은 테라스하우스(terraced house, 서구식 연립주택)들이 나왔다.

택시 기사가 나에게 이곳에 온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나의 대답을 들은 그는 그다지 납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짝퉁과의 싸움을 왜 암스테르담에서 벌이나요? 짝퉁은 여기에서 만드는 게 아닙니다. 저는 터키 출신인데, 짝퉁은 우리 터키 사람들이 많이 만든답니다!” 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는 높고 가파른 지붕으로 덮인 2층짜리 주택 앞에 멈추었다. 회의실 용도로 사용되는 앞쪽의 거실에서 나는 그루츠바거스와 그의 동료인 매리-앤 카우터스(Mary-Ann Kouters)로부터 아주 맛있는 커피를 대접받았다. 나의 오른쪽에 있는 선반에는 런던 옥스퍼드스트리트의 가판대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싸구려 복제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폴리 보드로 제작한 수납함에는 샤넬의 로고인 이중 C 형태 안에 모조 다이아몬드가 박힌 귀걸이 약 50개가 보관되어 있었고, 폴 프랭크 줄리어스(Paul Frank Julius)의 원숭이를 허접하게 복제한 제품도 있었으며, 다채로운 색상의 루이비통 로고가 박힌 플라스틱 지갑들도 있었다. 가짜 아리엘(Ariel) 가루 세제 상자들 옆에는 아직 개봉하지 않은 4개짜리 브라운(Braun)의 오랄비(Oral-B) 전동칫솔모가 놓여 있었는데, 그건 그날 아침에 내가 열어서 사용했던 제품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25년 전 리액트를 설립했을 당시에 대해서 그루츠바거스는 이렇게 말했다. “한 달에 5000개의 짝퉁을 잡아내면 우리는 일을 아주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년에 10만 개를 적발하면, 우리는 서로 등을 두드리며 칭찬해 줄 정도였습니다.” 그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져서, 지금은 1년에 2500만 개의 짝퉁을 막아내고 있습니다.”

예전에 리액트는 가짜가 판매되는 시장과 가게들을 조사하곤 했었다. 현재의 그들은 유럽연합(EU)으로 위조품들이 대거 반입되는 지점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로테르담, 앤트워프, 브레멘과 같은 컨테이너 항구들이다. 화물용 컨테이너 하나에는 밀수업자의 여행 가방 하나에 넣을 수 있는 것보다 천 배나 많은 물품을 실을 수 있다. 정확한 항구를 선택하여 정확한 선박을 포착하고 정확한 컨테이너를 고르기만 한다면, 단 한 차례의 단속에서도 수 만 개에서 때로는 수십만 개의 가짜를 적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1억 8000만 개의 화물용 컨테이너들이 분주하게 이동하고 있고, 그 중에서 로테르담을 통과하는 것만 해도 1500만 개나 된다. 그루츠바거스와 그의 동료들은 동일한 규격의 컨테이너들 가운데 어느 곳에 짝퉁이 보관되어 있는지를 가늠한 다음, 세관 공무원들에게 배에서 그 거대한 컨테이너를 내려서 조사를 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그루츠바거스는 가짜가 들어있을 수도 있는 컨테이너를 가려내기 위해서 사용하는 단서나 기법에 대해서는 내게 자세히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다만, 그는 어떤 컨테이너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인지보다는 무언가 빠져있지 않은지에 관해서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선박의 화물 목록에 단지 ‘신발’이라고 적혀 있다면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나이키 신발이라면 나이키라고 적을 것이고, 아디다스라면 아디다스라고 적혀 있을 겁니다. 짝퉁 상품들은 대부분 아시아에서, 그중에서도 중국에서 들어옵니다. 당연히 우리는 블랙리스트로 작성하여 관리하는 공장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공장들이 아니라 해운업체들을 살펴보기도 하는데, 공장들은 수시로 이름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런 곳들은 유닛1234같은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것마저도 모두 한자로 적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거기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가 있습니다. 가령 공장의 주소가 3층으로 되어 있을 수도 있는데, 3층에서는 화물을 실을 수 없지 않겠어요?”. 
 
“진짜 같은 가짜”, 터키의 페티예(Fethiye)에 있는 매장 ©Photograph: Stephen Barnes/Turkey/Alamy

2. 짝퉁을 구매하는 심리

21세기의 브랜드 제품들은 제조 비용이 가장 저렴하다면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지구촌 어느 곳에서라도 만들어진다. 그들은 디자이너, 제조업체, 공급업체, 운송업체, 제작공방, 착취공장, 세관, 국경감시대들로 이루어진 광활하고 복잡한 생태계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제품을 처음 구상하거나 제조했던 곳에서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판매될 수도 있다. 어떤 제품들은 다양한 국가에 분포한 십여 개의 계약업체들로부터 공급받은 100개나 되는 부품들로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리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제조업체라 하더라도 자사의 공급망으로 무엇이 흘러들어오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든 업체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의 제조업체들이 몇 개의 밀집한 산업지대 안에 집중되면서, 그들의 기술이나 기법을 모방하거나 도용하는 것이 더욱 쉬워졌다. 수공예 기술마저도 모방당할 수 있다. 이에 관하여 산업디자인 분야의 작가인 레인 노우(Rain Noe)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나이키와 계약한 사람이 어떤 특정한 패턴으로 바느질을 한다고 가정하면, 나이키와 계약하지 않은 사람도 얼마든지 그렇게 바느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브랜드들에 의해서 공개적으로 논의된 적이 거의 없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많은 사람이 가짜를 구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짜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실수로 그랬을 거라는 추정은 순진한 생각이다. 그러나 만약 중국이 어떤 상품을 품질은 동일하지만 훨씬 더 저렴한 가격에 만들 수 있다면, 굳이 정식 제품은 아니더라도 더 싼 버전을 구입하는 게 합리적인 쇼핑이 아닐까?

내가 그루츠바거스와 카우터스에게 이 질문을 던지자, 카우터스의 얼굴에 강렬한 표정이 나타났다. “사실 짝퉁은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지만, 설령 그걸 동일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브랜드 제조사의 권리를 도용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해당 제조업체는 광고, 스폰서 계약, 브랜드 구축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말이다.

그루츠바거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구입할 때는, 그것이 가진 꿈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애플이 인수한 비츠(Beats) 아시죠? 비츠는 좋은 헤드폰을 만들지만, 아주 놀라운 제품을 만드는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비츠 헤드폰을 사는 이유는 쿨해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품의 품질이 좋아서 그것을 구입할 때에도, 우리는 동시에 어떤 그룹의 일원이 되는 자격을 구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디자이너들의 목표는 멋진 꿈이 깃든 멋진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제품을 구입하면 우리의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비록 두 개의 아이템이 거의 똑같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저렴한 가짜가 아니라 더욱 값비싼 진품을 구입하는 이유는 우리가 단지 그 제품의 유형적인 특성만이 아니라 무형적인 특징들까지 함께 구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브랜드가 가진 명성과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만족감을 구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기업들이 화려한 광고와 PR을 통해서 브랜드를 중심으로 만들어내는 이미지를 구입한다. 우리는 그들이 브랜드에 걸맞은 파티를 후원하고, 브랜드의 간판으로 걸맞은 배우나 래퍼를 내세우고, 브랜드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제품을 마시거나 착용하거나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만들어내는 쿨함을 구입한다. 어떤 브랜드의 무형적인 특성이 가진 힘은 그것이 우리가 그 제품에 관해 가지는 느낌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느낌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브랜드의 무형적인 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다양한 단어들이 사용된다. 일부에서는 ‘의미’에 대해서 말을 한다. 그루츠바거스는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카우터스는 ‘호감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광고주들은 ‘이미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고, 마케팅 전문가들은 ‘브랜드 자산’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위조업자의 관점에서는 설명하기가 좀 더 쉽다. 그들에게 있어서 무형적인 특성이란 어떤 상품에서 그들이 굳이 복제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무형적인 것과 유형적인 것을 구분하고, 제조 비용이 가장 저렴한 지역에 생산시설을 조성하며, 브랜드의 메시지를 방출하는데 더욱 큰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브랜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하는 일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브랜드 전략이 오히려 위조업체들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사실 역시 점점 명확해지고 있다. 위조업체들이 해야 할 일은 유형적인 제품을 가능한 최저의 비용으로 복제하는 것뿐이다. 그러면 실제 제조사들이 광고나 스폰서 계약 등을 비롯하여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하여 벌이는 모든 활동에 무임승차 할 수 있다. 이렇게 무임승차를 하면 성공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하기 위하여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리스크를 감당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시장에서 실패한 제품은 그 누구도 복제하려 하지 않는다. 물론 위조품이 불법이긴 하지만, 그에 대한 처벌은 마약밀수를 비롯한 다른 조직범죄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편이다. 이미 경주가 끝난 다음에 우승한 경주마에게 내기를 거는 것이다. 명품 브랜드들이 프로모션에 더욱 많이 투자할수록, 그리고 그에 비례하여 실제 제품이 더욱 희귀해질수록, 위조업체들에는 더욱 커다란 기회의 창이 열리는 것이다. 
 
2017년 중국의 하얼빈에서 시장 단속반원들이 짝퉁 제품들을 파괴하고 있는 모습 ©Photograph: VCG/Getty Images

3. 브랜드의 가치가 짝퉁을 키운다

그런데 무형적인 특성은 왜 중요할까? 명품 브랜드들은 애초에 그러한 무형적인 특성들을 도대체 왜 신경 쓰는 것일까? 일단 어떤 제품이 제조된 지역을 벗어나서 더욱 커다란 시장으로 진출하면, 해당 제조업체는 그곳에서 성공적으로 경쟁하기 위하여 잠재적인 고객들에게 자신들의 제품에 대하여 좀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이러한 활동은 비하인드 스토리의 형태로 이루어질 때 가장 효과가 좋다. 16세기의 초호화 상품이었던 브뤼셀 레이스(Brussels lace)가 최고급이었던 이유는 거친 영국의 아마(flax)보다 더욱 섬세하며 아름다운 린넨사(linen thread)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깔려있다. 브뤼셀의 레이스 장인들은 수분을 함유한 실이 말라버리지 않도록 눅눅하고 어두운 방에 앉아서 오직 한 줄기의 빛에 의지하여 힘들게 작업했는데, 건조하고 바스러지기 쉬운 것보다는 실에 수분이 남아 있을 때 더욱 정교하고 세밀한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고, 덕분에 브뤼셀 레이스는 고객들의 마음속에서 언제나 가장 앞서 나설 수 있었다.

단순한 제품으로부터 브랜드를 중시하게 되는 이러한 움직임은 새로운 제품들이 철도를 이용하여 낯선 시장으로 운송되기 시작한 19세기에 더욱 속도를 얻게 되었다. 귀리를 한 번 생각해보라. 전통적으로 귀리는 말이나 병든 사람들에게만 먹이던 곡물이었다. 그때 어떤 제분소 주인이 귀리를 아침 식사 용도로 판매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 귀리를 판매하려면, 그걸 운송할 수 있는 포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제품을 담는 포장이 아니라, 새로운 고객들에게 이 제품을 언제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고르고 제품의 신뢰성과 정직함을 전달할 수 있는 이미지를 보여주며, 아침에 귀리를 먹을 때의 장점까지 내세운다면 훨씬 더 잘 팔릴 것이다. 이는 모두 1877년에 미국 최초의 아침 식사용 시리얼 상표를 등록한 퀘이커오츠컴퍼니(Quaker Oats Company)가 했던 일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자, 현대적인 브랜드의 고전적인 요소인 4P, 즉 제품(product), 유통 경로(place of sale), 포장(packaging), 프로모션(promotion)이 모두 갖춰졌다. 이후에는 무역과 통신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약속(promise), 개성(personality), 의도(purpose)라는 3개의 P가 추가되었는데, 이후 이러한 요소들이 더욱 중요해졌다.

‘약속’이라는 항목부터 살펴보자. 1931년에 P&G는 설문조사 결과를 카메이(Camay) 비누의 광고에 활용했다. 이 설문조사에서는 우선 50명의 준수한 미혼 남성들에게 결혼할 여성에게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48명의 응답자가 ‘자연스러움이 매력인 여성’이라는 항목을 선택했다. 혹시라도 중요한 사실을 놓치지 않기 위하여, 그들은 73명의 피부과 의사들에서도 조언을 구했다. 피부과 의사들은 모두 피부가 민감한 사람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카메이 비누를 추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를 이용하여 그들은 유형적인 제품, 즉 비누 안에 슬그머니 무형적인 약속, 즉 결혼에 대한 가능성을 포함시킬 수 있었다. 1개의 가격이 10센트에 불과한 카메이 비누에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원대한 꿈을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의 새로운 P인 ‘개성’은 전후의 풍요를 누렸던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1950년대가 되자 거의 전 분야에 걸쳐서 품질이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에, 이제 품질만으로는 더 이상 제품을 차별화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브랜드 관리 책임자들의 임무는 자사의 제품에 다른 경쟁자들로부터 확실히 구분되며 점점 더 혼잡해지는 슈퍼마켓의 진열대에서도 두드러질 수 있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되었다. 한 가지 방법은 제품이 최대한 눈길을 끌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또 다른 방법은 ‘개성’을 추가하는 것이었다. 제품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했다. 타이드(Tide)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활용했다. 주황색과 노란색 동그라미로 만든 타이드의 가루 세제 디자인은 금세 눈에 띄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성실한 주부가 마치 오래전에 잃어버린 친구를 만난 것처럼 제품을 끌어안고 “여자들이 원하는 건 바로 타이드야!”라고 말하는 광고는 매우 중요한 정서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주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P는 ‘의도’이다. 제품을 선전하는 선동가라는 비판에 대응하여 브랜드들은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자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사회적인 신뢰를 더욱 갈고 닦으면서 다른 이들도 똑같이 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나이키는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국가가 연주될 때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던 NFL의 쿼터백 콜린 캐퍼닉(Colin Kaepernick)이 등장하는 ‘드림 크레이지(Dream Crazy)’라는 광고를 선보였다. 광고의 슬로건은 이렇다. “뭔가를 믿어라. 설령 그것이 크나큰 희생을 의미하더라도 말이다. 그냥 그것을 해라.” 듀럭스(Dulux)는 그들이 판매하는 것은 페인트가 아니라 ‘낙관주의가 담긴 통’이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50만 리터의 페인트를 직원들과 자원인력들로 구성된 팀들에게 기부하여 그들이 도시 근교의 낙후된 동네를 새롭게 꾸밀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소비자들이 질레트(Gillette)가 아니라 해리스(Harry’s)의 면도기를 구입하는 이유는 해리스가 남성들의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자선단체에 수익의 1퍼센트를 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각의 브랜드가 내포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과 그들이 대변하고 있는 가치 때문에 소비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지난 세기를 거치며 수많은 브랜드가 보여 온 궤적은 사람들에게 더욱 많은 감정을 판매하는 것이었다.

4. 보이지 않는 가치의 역설

무형의 감정을 판매한다는 것은 그 어떤 브랜드도 그만둘 수 없는, 매우 훌륭한 전략이다. 저렴하게 제조한 다음, 이야기와 이미지를 통해서 그 제품에 더욱더 많은 가치를 추가하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 아주 좋은 레시피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이들보다 무형의 가치에 더욱 크게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된다.

현대의 마케팅 스토리는 고삐 풀린 군비경쟁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구축, 브랜드 치장, 소셜미디어에서의 떠들썩함, 창의적 광고, 유명인들의 홍보 등 소비자로 하여금 어떤 브랜드를 훈훈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이런 활동들은 모두 브랜드 관리 책임자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이다. 그러나 무형의 특징을 판매한다는 것은 거기에 무임승차 하는 위조업체들에는 일종의 선물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러한 종류의 브랜드 구축에 더욱 많이 돈을 쓸수록 가짜 제품의 증가세에는 더욱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 그리고 이는 잠재적으로 모든 브랜드들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여러 브랜드가 함께 합심하여 이런 경쟁에 제동을 걸고 무형의 특성에 대한 지출을 동시에 줄인다는데 동의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들이 가진 경쟁력의 우위를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자사의 노동자들과 자사의 제품에 더욱 많은 돈을 쓸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이다. 우선 첫째로, 각종 브랜드 사이에 그러한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가 공개적으로 시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다른 모든 브랜드가 그러한 약속을 제대로 지킬 것이며 무형의 자산에 대한 지출을 줄이지 않고 오히려 몰래 더 증가시키는 속임수를 쓰지 않으리라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셋째, 자신들의 브랜드가 가진 가치나 다른 부분의 장점을 더욱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금 당장으로서는 위조업체들과 맞서 싸우고 싶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위조품이 만들어지는 근원을 없애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지난 5월 12일 하퍼콜린스(HarperCollins)에서 출간된 앨리스 셔우드의 《진정성: 위조문화 속에서 현실을 되찾기(Authenticity: Reclaiming Reality in a Counterfeit Culture)》에서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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