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칼라 프리워커
1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일한 만큼 벌고 벌 만큼 일한다

직장의 의미는 옅어졌다. 사회 속의 내가 아닌 사회로부터 독립적인 자아와 욕구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금의 청년 세대가 그렇다. 의미 없이 소진되는 일에는 거리를 두고, 원하는 것이 있다면 직장의 경계를 초월해 힘있게 좇는다. 각자의 가치관은 달라도 기성 사회에서 직장이 주는 의미는 안정과 자유였다. 그러나 이 믿음은 와해했다.

한국리서치가 2022년 7월 발표한 〈청년층 퇴사에 대한 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퇴사를 경험한 전국 20~30대 청년들의 퇴사 결심은 입사 이후 평균 10개월이 지나는 시점에 이뤄졌다. 이들의 주된 퇴사 이유는 “보수가 적어서”, “난이도나 업무량, 적성 등 업무에 만족하지 못해서”, “개인의 발전 가능성이 낮아서”, “근무 환경이 열악해서”의 순서로 나타났다. 평균 퇴사 경험 횟수 2.4회.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도 안정된 삶과 자유를 얻기란 쉽지 않다. 요컨대 우리 모두에게는 재발견이 필요하다.

저마다의 동기로 사무실 밖으로 나온 청년들은 사회가 주목하지 않던 분야로 뛰어들고 있다. 학벌과 스펙이 전혀 통용되지 않는 육체노동이 그렇다. 높은 집값과 자산 불평등으로 노동 소득의 무용함을 한탄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N포 세대는 왜 ‘블루칼라’ 일자리에 뛰어들까? 기성 사회의 문법으로는 기현상이다. 육체노동은 몸이 힘들고 전망이 어두우며 오래 일하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들을 조명한 기사나 콘텐츠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는다. 청년에 대한 평평한 이해도 여전하다. 직접 만나 본 블루칼라 직종의 청년들은 ‘기술을 배워 억대 연봉을 버는 유쾌한 MZ 세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유형의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진지하게 집중하는 사람, 꿈 없이도 확실한 급여에 만족하는 사람,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단순한 일을 선택한 사람. 우리는 이들을 ‘프리워커’로 정의했다.

이들을 인터뷰하며 느낀 공통의 정서는 ‘자유’였다. ‘갓생’이 아니다. 모두가 그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지만, 사회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초인간적 스펙을 갖추기 위함은 아니다. 누군가에겐 유별나게 비치는 직업이지만 각자에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많은 이가 선망하는 화이트칼라가 아니더라도 이들의 재발견 속에는 안정과 자유가 있다. 같은 블루칼라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으며, 재단할 수 없는 각자의 템포와 리듬은 사무실에서 흘러나오는 노동요보다 선명하고 굵직하다. 이들의 몸짓은 멋진 춤사위다.

이 책은 육체노동에 대한 포장도 각자에 대한 헌사도 아니다. ‘노가다’, ‘일용직’, ‘잡부’와 같은 사회의 부정적 뉘앙스를 지우고 마주한 여섯 명의 이야기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내장 목수, 환경 공무관, 건설 시행사의 직원, 건설 현장 정리팀, 청년 농부라는 우리가 흔히 마주할 수 없는 사람들과의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일잘러’가 되는 방법은 없지만 ‘일머리’의 중요성을 논하고, 경제적 자유를 얻는 방법은 없지만 인생의 주도권을 쥐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블루칼라는 미국 육체노동 시장의 드레스 코드인 청바지와 청색 셔츠에서 유래했다. 이제 이 색깔은 더 이상 위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현장의 청년들에게 ‘블루’는 저임금 노동이나 우울의 색이 아니다. 젊음의 색이다. 일한 만큼만 벌어야 한다는 공정 담론을 뒤집어 이들은 유동적인 업무 환경 속에서 벌만큼 일할 것을 제시한다.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속에 ‘번아웃’되지 않고 땀 흘려 인생을 마주한다. 다양한 크기의 숱한 화면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현구·이다혜·정원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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