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칼라 프리워커
5화

서은지 ; 꿈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법

서은지는 건설 현장 정리팀에서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다 중퇴 후 백화점 영업 사원으로 취직했다. 이후 회사 경리, 콜센터 영업, 식당 서빙 등 다양한 일을 거치며 크고 작은 월급을 받았다. 지인의 추천으로 건설 현장에 처음 발을 디뎌 정리팀 일을 시작했다. 건축이나 공사가 끝난 현장의 부자재를 해체하고, 바닥을 정돈하는 등 현장의 최종 상태를 깨끗이 만드는 일을 한다. 목돈을 모아 내 집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기술보단 숙련도

ⓒ사진: 닷페이스
무슨 일을 하는가?

건설 현장 정리팀에서 일한다. 한 건물을 짓는 과정은 철근 작업 후 형틀에 시멘트를 붓고, 시멘트가 굳으면 부자재를 제거하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정리팀은 그 이후 말 그대로 ‘현장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일’을 맡는다. 부자재를 해체하는 작업 후 폼과 핀, 볼트 등을 정리한다.

원래 현장 일에 몸을 담아 왔나.

전혀 아니다. 대학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다 돈을 빨리 벌고 싶어서 학업을 그만두고 백화점에 취직했다. 이후 회사 경리로도 일하고, 콜센터 들어가서 콜도 받고, 편의점이나 식당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일을 했다. 그러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지인의 제안으로 정리팀 일을 시작하게 됐다.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기존에 하셨던 일과는 완전히 다르지 않나.

우선 아버지는 달가워하진 않으셨다. 예전에 먼지가 많이 나는 건설 현장에 물차를 이용해 물을 끼얹는 일을 하셨던 분이다. 현장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되는 환경인지 아는 만큼, 안전에 대한 우려가 있으셨던 것 같다. 주위에서 의아해하는 시선들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일은 그냥 하는 성격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현장 일은 처음 시작하고서 금방 그만두는 경우도 많던데, 잘 적응하신 것 같다.

똑같은 공정을 하더라도 게임을 플레이하듯 일하는 내 성향과 잘 맞는 일이었다. 일하는 내내 ‘주어진 시간 안에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게임에서 레벨 업 하는 것처럼 욕심도 생기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 경쟁심도 생겨서 빠르게 하게 된다. 1년 전 처음 시작할 땐 콘판넬 못을 한 시간에 20개를 뽑았다면 이젠 60개도 뽑는다.

말씀을 들어 보면 기술보단 숙련도가 중요한 일 같다.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진 않는 것이 정리팀의 장점이다. 부자재 이름, 사이즈, 분류법 등을 배우고 익숙해지면 된다. 정리팀은 새로운 인력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려주는 편이다. 팀원 한 명 한 명이 잘해야 빨리 끝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물어보는 내 성격도 한몫했다.
ⓒ사진: 닷페이스
그렇다면 정리팀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재의 명칭과 종류를 숙지하고 타 공정의 자재 사용 용도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콘판넬은 콘판넬끼리, 파이프는 파이프끼리 구분하며 같은 자재여도 사이즈에 따라 다르게 분류된다. 또 정리팀은 개개인의 작업보다 팀원 간의 협동이 중요하다. 어떤 자재가 먼저 사용될지, 반출 여부는 어떤지 등 현장의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팀원과 빠르게 호흡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자신이 맡은 한 가지 일만 특화하는 분업의 방식은 아니겠다.

정리팀 내에서도 각자 조금씩 더 잘하는 작업이 있고 전체적인 작업의 순서도 정해져 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상황에 따라 작업 방식이 다르다 보니 한 명이 하나의 역할만 붙들고 일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현장 마무리 단계에서 청소를 할 때는 팀 전체가 함께 쓰레기를 줍는 식으로 유동적으로 일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평균 연령대가 궁금하다.

여성 나이대는 보통 50, 60대다. 현재는 34살인 내가 여자 중에서 제일 어리다.

젊은 사람들은 잘 없나.

건설 현장에선 30대, 40대 초반까지는 젊은 층으로 본다. 요즘엔 더 젊은 분들도 많이 오시는데, 특히 남성의 경우 20대가 굉장히 많다. 우리 팀에서 가장 젊은 남자 팀원은 29살이다. 작년, 재작년 코로나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들었다. 돈벌이가 이만한 곳은 배달 아니면 건설이라고 한다. 자영업을 하던 사람들이 가게를 정리하고 현장 일을 시작한 경우가 흔하다. 남성분들은 자신이 일하던 현장에 친구들을 데려와 함께 작업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보수만 보고 뛰어들었다가 빨리 그만두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젊은 분들도 오래 일하는지 궁금하다.

20대분들 중 하루 일하고 힘들어서 나가는 사람이 매우 많다. 사실 정리팀은 젊은 층의 입장에선 비전이 크지 않다.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뭔가를 새로 배우고 싶은, 가능성이 열려 있는 20대는 다른 팀에 가서 일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좀 더 뚝심 있게 일해 보지 않는 것이다. 일주일, 한 달 정도 버티면 적응을 하게 되는데 말이다. 나도 원래 새벽형 인간이 아니고 아침잠이 많아 처음엔 힘들었는데, 일하다 보니 이젠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오히려 편하다.

 

많이 벌고 적게 쓴다는 것


이 일의 장점은 무엇인가?

돈을 많이 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얼마 정도 버는가?

건설 현장의 다른 작업들에 비하면 많이 받는 편은 아니다. 보통 건설 현장 작업부들은 숙련도에 따라 양성공-조공-준기공-기공으로 나뉜다. 양성공은 아예 일을 처음 시작해서 배우는 사람, 기공은 기술을 완전히 섭렵해 능숙한 사람이다. 그런데 정리팀은 이런 구조가 없다.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임금도 다른 분들에 비해 대체적으로 낮은 편이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정리팀으로 일했는데 그때는 세후 300만 원 중반대를 받았다. 조합원이 된 이후엔 임금단체협약 덕분에 현재 세후 400만 원 중반대를 받는다. 작년보다 단가가 일당 1만 원 오른 셈이다.

요즘 주식을 많이들 하는데,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나.

나도 주식을 한다. (웃음) 다만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직접 번 돈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큰돈을 걸진 못 하겠더라. 주식도 코카콜라, 구글 같은 장기 주식을 산다. 없어도 되는 돈 정도만 한다. 앉아서 공부하고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다면, 부럽지 않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각자 잘하는 분야가 다르겠거니 생각한다. 나는 학생 때부터 수학에 밝지 않고 경제를 잘 몰랐다. 나 자신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큰 리스크를 부담하진 않는다. 2~3년 전 코인을 하면서 망해도 봤지만 그래 봐야 5~10만 원 잃었다. (웃음)

장점을 물었을 때 바로 ‘돈’, 이라 대답하는 것이 굉장히 현실적이다. 그런데 그렇게 돈을 벌어도 쓸 시간이 없지 않나.

오히려 좋다. 더 빨리 모이기 때문이다. 나는 옷도 신발도 화장품도 사지 않는다. 가끔 언니들과 소고기 먹으러 가는 정도다. 석 달만 해도 1000만 원이 모인다. 200만 원 후반, 300만 원 초반의 월급은 어딜 가든 열심히 일하면 벌 수 있는 금액이다. 하지만 현재 내가 일하는 조건은 쉽게 찾지 못한다. 주로 가정이 있는 분, 급전이 필요한 분이 많이 오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남자보다 여자 팀원분들이 더 잘 버티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에 사는 30, 40대 여성이 어디 가서 그 돈 받고 일하기 어렵다. 처음 해보는 현장 일이 나와 맞지 않다고 판단해서 이 일을 금방 그만두는 20대분들이 많은데, 중간에 찾아오는 슬럼프만 잠깐 극복하면 된다.

옷이나 헤어스타일에 쓰는 돈, 흔히 말하는 ‘품위 유지비’도 거의 나갈 일이 없겠다.

우선 작업복부터 가장 저렴한 것으로 입고 다닌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출근하면 되는데 펑퍼짐하거나 딱 달라붙는 것만 아니면 된다. 현장에서 제공해 주는 각반과 안전모를 하고 안전화를 신는다. 처음엔 일상복을 입고 출근하고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요새는 출근할 때부터 작업복을 입고 출근한다. 출근이 편한 것도 큰 장점이다. 예전에 사무직에서 일할 땐 일어나서 씻고, 머리 말리고 고데기 하는 과정이 부산스러웠는데 이제는 그 시간이 단축돼서 좋다. 말씀하신 것처럼 돈도 굳고 말이다.

한 번쯤은 꾸미고 다니고 싶지 않나.

굳이 좋은 옷을 입을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하고, 꾸미는 법도 까먹었다. 오늘 신고 온 운동화도 몇 년 전에 산 것이고 청바지도 너무 오랜만에 입는다. 화장은 8개월 만에 한 것이다. 유행이 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원래 패션 아이템은 하나 사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그 톤에 어울리는 다른 아이템들도 사야 하지 않나. 사무직으로 일할 때는 정장 하나 사면 그 스타일에 맞춰서 가방도 사고, 신발도 샀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된다. 꾸미는 것은 관심에서 멀어진 지 좀 오래 같다. 같이 일하는 언니들과 가끔 소고기나 장어 먹으러 가면 그뿐이다.

쓸 시간도 없고 사고 싶은 물건도 없다면, 이렇게 돈을 벌어 뭘 하고 싶나?

집을 사고 싶다. 현재 거주하는 경기도 성남에 집 두 채 사는 것이 목표다. 왜 서울로 이사 오지 않냐고 많이들 물어보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서울에 사는 것’이 아니다. 어디든 내가 살 공간만 마련하는 것이 내 목표다.

 

춥고 더워도 마음 편한 일


보통 ‘건설 현장’에서 일한다고 하면 몸이 힘들 것을 제일 먼저 걱정한다. 갑자기 시작한 육체노동이 힘들진 않은지.

정말 신기한 게, 몸이 적응을 하더라. 힘을 줘서 핀을 뽑거나 자루를 묶는 등 반복적인 동작을 하면 욱신욱신하지만 진통제를 먹으면서 일하는 것이 이젠 일상이다.

단순 불편의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 여러 구조물이 산재한 현장이 무섭진 않은가?

언제 어떻게 다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큰 단점이긴 하다. 현장에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나도 크게는 아니지만 몇 차례 다쳤다. 비 오는 날 일하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넘어지는 경우도 많다. 같이 일하는 언니들 모두 다리에 상처가 많고, 반장님은 다른 친구가 쌓다가 놓친 판넬이 떨어져 손을 봉합해야 했다. 하지만 현장에 처음 와서 서툴던 때의 공포에 비하면 이젠 내가 조심하면 안 다칠 수 있다는 나름의 확신이 생겼다. 4대 보험도 들었고 말이다. (웃음)

야외에서 하는 일인 만큼 날씨 영향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맞다. 여름과 겨울이 괴롭다. 여름엔 야외에서 직사광선을 그대로 맞으며 일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반팔 토시, 긴바지를 입고 안전모를 착용한다. 팬티가 젖을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린다. 비가 오면 장화를 신고 걸어 다녀야 한다. 선크림도 바르지 못한다. 화장품을 바르면 모공 사이사이로 모래가 끼고, 땀이 나면 함께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반면 겨울엔 추위가 엄청나다. 네 겹, 다섯 겹씩 옷을 껴입고 발바닥과 몸에 핫팩을 붙이고 작업한다. 쉬는 시간에는 현장 가운데 액체 연료를 피워 놓고 둘러앉아 몸을 녹인다.
ⓒ사진: 닷페이스

계속 몸을 움직이다가 잠깐 앉아서 쉬는 그 시간이 무척 달게 느껴질 듯하다.

그렇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다른 공정들과 달리, 정리팀은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계속 몸을 움직이고 힘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50분 일하고 10분 쉰다. 참을 먹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 한 번씩 빵이나 우유 같은 간식이 나온다. 그때 다들 배도 채우고 담배도 피우며 한숨 돌린다.

몸은 많이 힘든 대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덜할 것 같다.

그게 장점이다. 거칠게 말하는 어르신들이야 있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은 그냥 내가 피하면 된다. 꼭 필요한 소통만 하면 돼서 좋다.

 

여성, 건설, 노동자


현장을 선택할 때 고려하는 조건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현장의 자체의 규모나 조건보단 일이 끊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한 현장을 마친 뒤 다음 현장으로 들어갈 때 시기적으로 잘 맞아서 공백기가 거의 없어야 좋다. 공백기가 길어지면 쿠팡 물류 배송이나 현장 일용직도 한다. 건설사 일은 어떨 땐 인력이 넘치다가도 어떨 땐 인력이 너무 없어서, 인력소로 부족해 알바몬까지도 구인 공고를 올린다. 그만큼 불안정하다. 현장 일이 고수입인 것은 맞지만 이런 공백기를 고려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고용이 불안정한 시장일수록 여성이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일을 분담할 때 여성으로서의 차별은 없는가.

일이 없어서 쉬는 걸 ‘대마’라고 하는데, 대마인 사람들은 다른 건설사 팀에 요청해 단기 지원을 나간다. 그럴 때 보통 남성 노동자가 우선적으로 선발된다. 나는 한때 대마가 하도 길어지니 쿠팡 물류 센터를 갈까도 생각했었다. (웃음) ‘여자가 건설 현장에 가서 무슨 일을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현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막상 현장에 가보면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바르는 등 여자들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작업들이 많다.

다른 여성들에게도 현장 일을 추천하고 싶은가.

나는 너무 추천하고 싶다. 그런데 여성 노동자의 자리가 많이 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신체 구조나 물리력의 차이 때문에 여성이 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성들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들도 많다. 보통 덤프트럭 옆에서 형광봉을 흔드는 신호수, 지게차가 물건을 실을 때 운전자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게차 유도원 등을 여자들이 많이 맡는다. 또 건물 내부 공간의 길이를 측정하고 이곳에 무엇을 설치하라고 바닥에 표시를 남기는 것을 ‘먹’이라 하는데, 이 작업도 여성들이 많이 한다. 첨언하자면, 남자라고 다 일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체력이 약하거나 작업 속도가 느린 등 누구나 개인차가 있다는 걸 고려하면, 건설 현장 속 여성 노동자의 자리가 지금보단 많이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재미없는 일은 없다


이 일은 얼마나 오래 할 수 있을까.

아까 말한 것처럼 집 두 채를 살 때까지 계속할 것이다. 아직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든다. 우선 사람 스트레스가 적다. 내가 이전에 다닌 직장들에선 대부분 사람 때문에 제일 힘들었다. 게다가 급여도 높지 않았다. 여덟 시부터 다섯 시까지 꼬박 일해도 이 돈을 언제 아끼고 모아서 집을 살 수 있을지 막막했다. 평범하게 월세 내고, 계절 따라 옷 사 입고, 가끔 친구를 만나 술 한잔만 해도 200만 원대의 월급으로는 돈을 모으기 힘든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여길 나가서 이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있을까?’란 생각은 요즘도 한다. 통장에 찍히는 금액 때문에라도 그만두기 어려운 직업이다.

하지만 급여와는 별개로 건강에 무리가 가진 않나.

신기하게도 현장 일을 시작하며 오히려 건강해졌다. 여기 오기 직전 식당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한두 달간 했다. 철판 식당이라 무거운 것을 나르며 어깨가 많이 안 좋아졌다. 그런데 현장에선 워낙 체력과 신체 관리가 중요하다 보니, 아침 점심마다 고정적으로 체조를 한다. 다들 몸 쓰는 사람들이니 운동도 꾸준히 한다. 속이 얹히는 일도 잘 없다. 예전에 사무직으로 일할 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니 소화도 잘 안 되고 살이 쉽게 쪘다. 그런데 현장에선 하루에도 1만 보, 2만 보씩 걸으니 함바집에서 아무리 든든하게 식사를 챙겨 먹어도 오히려 살이 빠지더라. 같이 일하는 한 언니도 지병으로 고혈압을 앓았는데 현장 일을 시작하며 많이 나았다.

‘잘할 수 있는 일’과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단순 반복 작업이 많은 편인데, 질리진 않는가.

단순 반복이기 때문에 일부러 재미를 찾으려 한다. 예컨대 목재엔 ‘투바이’, ‘오비끼’ 등 사이즈 규격이 있다. 규격에 맞게 3단, 4단으로 쌓아야 하는데 나는 이 각도를 정확하게 맞추려는 강박이 있다. 가지런하게 단을 쌓은 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볼 때 희열을 느낀다. 또 현장을 청소할 때는 플라스틱 삽으로 바닥을 쓸어서 핀과 재료를 줍고 종류별로 분류해야 한다. 핀을 골라내어 종류마다 다른 자루에 넣고, 반생이(철근 등을 결속하기 위한 굵은 철사)도 따로 구분한다. 바닥 위 지저분하던 것들을 모두 쓸어 담고 깨끗한 현장을 마주했을 때의 쾌감이 있다. 어질러진 거실을 오랜만에 대청소한 느낌이랄까.

이 일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분 같다. 즐겁게 일하는 것도 재능일 텐데.

현장에서 “이거 해봐!”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재밌겠다” 하며 시작하고 본다. 또 같은 일도 어떻게 하면 편리하고 빠르게 할까를 고민한다. 남자들이 20~30킬로그램짜리 물건을 옮길 때도 웬만하면 함께 든다. 그런 적극성을 업계에서도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사진: 닷페이스

모든 생애 주기 단계에서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며 살아갈 것 같다.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은 없는지.

도전해 보고 싶은 건 많지만 사무직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 같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회사 다니며 200~300만 원대의 월급을 받을 바엔 그보다 보수가 높은 현장 일을 계속하거나 아예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 예를 들면 카페 창업이다. 예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에 쿠키를 만들어 온라인 판매를 했었다. 체력이 부쳐 그만뒀지만, 답례품 주문도 많이 들어오고 부수입으로는 꽤 쏠쏠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새로운 일에 뛰어들더라도 손발을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일을 또 하게 될 사람 같다.

현장 일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언한다면?

일단 뛰어들고, 버텨 보라고 하고 싶다. 특히 20대분들 중에서 현장 일을 짧게 하다 그만두는 사람이 많지만 조금만 뚝심을 갖고 일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연봉 인상이 이뤄진다. 팀장급은 한 달에 800~1000만 원까지도 번다. 또 건설업은 생각보다 비전 있는 분야다. 대학에서 어떤 학문을 전공해 한 길만 쭉 걸어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을 거다. 현장에는 이 일도 하고, 저 일도 하다가 실패해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꼭 건설이 아니라도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너무 좋아하는 일, 이루고 싶은 꿈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면 현장 일을 하며 원하는 만큼의 수입을 얻는 삶이 나를 위해 가장 진솔한 행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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