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칼라 프리워커
6화

정우진 ; 무언가를 짓고 만드는 일

정우진은 건설 시행사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옷을 만들며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식당에서 조리사로 일하기도 했지만 시행사 대표로 가정을 책임지는 어머니를 도와드리고자 건설 현장에 투신했다. 현장의 건설 노동자로, 인부들의 관리자로, 시행사의 임직원으로 건설 현장을 다양하게 겪어 온 그는 건설 업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 다양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전한다. 한편 그는 무언가 만들어 내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사람이다. 의식주를 넘어 효능감이 오래 남는 모든 창작물에 관심이 있다.


건물을 지으려면


하는 일을 소개해 달라.

건설 시행이라고 보면 된다. 건설은 시공과 시행으로 나뉜다. 시공은 우리가 흔히 아는 건축사나 건설 업체와 같은 곳으로 건물을 실제 지어 올리는 회사다. 시행은 토지에 건물을 올리고 분양하는 것까지 일체의 과정을 총괄하는 일이다. 개발 사업 전반을 맡는 것과 같다. 나는 직원이 몇 명 없는 작은 시행사의 임직원이다.

시행사는 대기업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했다.

흔히 시행사라고 하면 대기업을 떠올리지만 작은 규모가 대부분이다.

육체노동보다는 사무직에 가까운 일이겠다.

직무에 따라 다르다. 개발 사업을 시작하면 대부분의 직원이 실제 도맡는 일은 거의 사무적인 것에 가깝다. 하지만 나는 처음부터 현장에서 그야말로 막노동을 하며 시작했다. 시행사는 건설 현장을 잘 알아야 한다. 사람이 급히 필요하면 가서 일해야 할 때도 있고 현장을 지휘해야 할 때도 있다. 현장은 각종 변수가 난무하는데 이때 일머리가 없으면 골치 아프다.

시행사에도 현장 인력이 있나?

그렇다. 현장 소장을 따로 둔다. 이 말은 시행사가 면허만 있으면 자체 건축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지금도 현장에서 진행되는 일의 대부분을 알고 있고 경험해 봤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당연히 땅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다닐 일이 많다. 어디에 짓고 개발 사업을 시작하면 좋을지 부지를 선정해야 한다. 어느 곳은 지반이 약해 높은 건물을 올릴 수 없고 어떤 지역은 조례나 규칙에 의한 건축 형태의 제한이 있다. 고르는 땅에 따라 건물의 조건이 변하기 때문에 애초에 땅을 굉장히 잘 골라야 하고 여기엔 입지 조건도 포함된다. 같은 경기도라고 해도 지역에 따른 가격 차이가 심하고 구매자의 특성, 수요도 다르다. 분양 수요를 잘 파악하지 못하면 건물을 짓고도 손해를 보는 일이 발생한다.

설계 사무실 내지 건설 업체와는 어느 단계에서 협업이 이뤄지나?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과 함께 설명해야 할 것 같다. 시행사가 부지를 보고 땅을 사고 나면 그때 설계 사무실을 통해 건물을 디자인한다. 이미 시중에 나온 땅을 설계 사무실에서 디자인해 놓은 경우도 있다. 설계가 끝나면 지질 조사를 시행하고 최종적으로 구청에서 허가를 받는다. 제일 살 떨리는 순간이다. 그 후 건설 업체와 협업해 지반을 다지는 작업을 시작한다. 이걸 ‘매트 작업’이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건물에 신발을 신기는 작업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흔히 알다시피 철근 콘크리트 등으로 건물을 지어 올리게 된다. 시행사의 사무 업무와 별개로 건축 현장에서는 건설사와 시행사의 소장님이 현장을 함께 관리 감독한다. 나 역시 사무실과 현장을 오가며 일한다. 건물이 다 올려지고 난 상태를 완공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서류 절차까지 완료하면 준공 상태가 된다. 이렇게 준공 승인이 나면 건설 업체와의 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것이다.

현장 업무 외 시행사 본연의 역할은 무엇인가?

현장 소장님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사실 회계 업무다. 건물을 짓는 데 투입된 돈을 관리한다. 다만 그 돈을 단순하게 굴리는 것이 아니다. 건축이 액자를 만드는 것이라면 시행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시행사는 말 그대로 건물이 지어지도록 돈을 낸 주체이므로 건물이 계획한 대로 잘 지어지는지, 외부와 내부를 어떻게 가꿀지 끊임없이 감독하고 논의한다. 건물이 준공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행사는 분양과 입주의 영역까지 모두 포괄하기 때문이다. 사후에 하자 보수도 해야 하는데 이때는 해당 건물을 지어 올린 건설사와 시행사가 함께 맡는다.

고려해야 할 것이 정말 많다. 시행사에 근무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인가?

부동산 흐름을 잘 알아야 한다. 이 안목은 하루 이틀 내 길러지지 않는다.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하고 계속 부동산 동향을 팔로업 해야 한다. 게다가 부지의 건폐율, 용적률 등을 거의 외울 정도로 알아야 한다. 건물을 지었을 때 분양이 잘 될지 예측할 수 있으려면 시장 조사도 필요하다. 건설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이뤄지는지도 경험해 보면 좋다. 가장 중요한 건 돈 계산이다. 회계나 세무에 대해 지식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보통 건설 관련 일이라 할 때 시행사로 이력서를 넣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특정 형태로 공인된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현장 감각이 요구되므로 사실 핏(fit)한 인재를 찾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작은 업체들은 가족 경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공채가 없거나 불공정한 세습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큰돈이 오가고, 개발 사업 하나하나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철저히 실력 있는 사람을 키워 쓴다는 기조다. 이런 주니어들은 체감상 30대가 많다.

지금 일하는 곳은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지금 일하는 시행사의 대표가 어머니다. 나 역시 앞서 말한 주니어에 해당한다. 말했다시피 이 직종은 부동산에 대한 안목이나 현장 경험 등이 많아야 하기 때문에 애초에 어머니가 ‘양성’하는 다른 분들이 있었다. 난 애초에 다른 일을 하고 있기도 했고 그쪽 일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어쩌다 보니 합류하게 됐다.

현실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나.

어머니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하되 어느 정도 나이가 차면 어머니 일을 도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원래 어머니는 분양 일을 하셨다. 가세가 크게 기울다 보니 시행사로 이직하셔서 일을 배우셨고 결국 독립하여 회사를 차리신 것이다. 그런 상황을 보고 자란 터라 어머니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전혀 다른 일을 하다가 갑자기 어머니를 도와드리려니, 입사하기 전에 현장 일부터 충분히 익혀야 했다.

 

재봉틀과 도마, 콘크리트


원래 하던 일은 무엇이었나.

적을 두지 않고 문어발로 이것저것 많이 했다. 어릴 때는 재봉질을 많이 했는데 당시 10대 남자애들 사이에선 좀 유별난 것이라 왠지 당당하게 드러내며 하진 못했다. 이뿐만 아니라 대체로 예술적이거나 가정적인 일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주방 일이나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다. 이 취미들을 쭉 가지고 가다 보니 어느샌가 의류 브랜딩도 해보게 됐고 식당에서 조리사로 일하기도 했다.

다양한 일을 해본 것 같다. 배우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옷 만들기든 요리든 정석적인 코스를 밟아 본 적이 없다. 나는 바닥부터 시작했다.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왜 어깨 봉제선이 이렇게 가는지, 왜 이 음식은 이런 맛이나 식감이 나는지 내가 경험해 보는 게 중요했다. 어딘가에서 배우는 것만큼 직접 만들면서 배우는 것도 크다고 생각한다.

모두 무언갈 만드는 일이다. 가장 처음 뭔가를 만들어 본 기억은 무엇인가.

열여섯 살 때 처음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가방이라고 하지만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원래 쭉 리폼을 해오다가 직접 무언갈 만들어 보고 싶어져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동대문에서 원단을 사 와서 만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 제작하고 그게 직접 손으로 만져진다는 것이 생경하고 뿌듯했다. 생애 처음 갖게 된 재봉틀로 처음 만들어 낸 물건이었다.

옷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좋아하던 펑크 문화의 영향 때문 아닐까 싶다. DIY는 펑크의 주요한 정신 중 하나인데, 당시 펑크를 하던 분들의 자유분방함이 부러웠다. 원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 입는 등 이 정신은 펑크의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걸쳐 있다. 치기 어린 마음에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얼마 안 있어 어머니의 제안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는데 그때 내가 조건으로 내건 것이 재봉틀이었다. 내 재봉틀을 갖고 나서부터는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의류 브랜딩으로 이어질 정도로 열성적이었는데 왜 요리로 방향을 수정했나?

의류를 만들며 내 브랜드를 론칭해 보니 사업 전반을 스스로 운영하는 것의 어려움을 알게 됐다. 그때 건강도 안 좋아지고 뜻하지 않게 부정맥을 발견하기도 했다. 제품을 만드는 것은 즐겁지만 사업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일 년여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보냈다. 편하게 남 밑에서 무언갈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식당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원래 학생 때 요리를 즐겨 하기도 했고 식당에서 조리 아르바이트도 해봐서 일을 시작했다.

요리와 옷을 만드는 경험은 어떻게 연결돼 있나?

내 손으로 직접 만들고 그것을 즐기는 누군가가 있다는 점이 둘의 교집합 같다. 요리도 옷도 일단 시각적인 만족을 주는 게 첫째다. 내가 백내장이 있어서인지 몰라도 나는 남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이 마음은 건물을 지어 올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일단은 외관이 멋진 건물을 짓고 싶다. 다만 외관만큼 내부도 중요하다. 사용자의 경험이 내부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만드는 대상이 커질수록 사용자의 오감을 만족시키고 경험을 개선하는 것으로 욕구가 확장됐다.

옷과 음식, 건물을 한 선상 위에 놓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재봉틀이든 도마든 콘크리트든 그 위에서 만들어 내는 것들은 나에게 같은 의미를 지닌다. 나에게 만듦이란 그걸 써주는 사람과 이어지는 행위다. 건물이라고 다르지 않다.

건설 현장은 분업 아닌가. 혼자 오롯이 만들어 내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텐데.

혼자서 전 과정을 도맡을 순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것도, 부지를 고르거나 회계 업무를 보는 것도 최종 결과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자 수고로움이다. 정성과 열의를 담는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현장은 언제나 위험하다


건설 현장에서의 시작은 어땠나?

처음 투입된 현장은 빌라 건축 현장이었다. 처음엔 기초 안전 교육만 이수한 상태라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그야말로 잡부 일을 했는데 위험한 것투성이였다. 현장에서 안전사고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발에 무언가가 걸려서다. 그래서 현장에서 작업할 때 청소가 매우 중요한데 이것부터 시작했다. 자재 운반을 하면서는 도면 읽는 법을 배웠다. 이 두 개가 연관이 있는 이유는 자재를 동선이나 작업에 문제 되지 않는 곳에 안전히 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지긋하신 소장님들에게 엄청 혼나면서 배웠다.

건강도 좋지 않았는데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몸이 힘든 것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어떤 이유로든 관두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나. 현장에서 사람들이 관두는 것을 보다 보면 아무래도 영향을 받게 된다. 기술을 배우는 것도 어느 순간 재미없어지는 때가 오는데 그렇다고 그만둘 수는 없었다. 어차피 하기로 한 것이면 내가 만족할 때까지는 이 악물고 끝까지 해야 하는 편이다. 소장님들이 뭐라 그러시는 것도 마냥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내 실수가 타인의 안전에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화내시는 경우는 기분이 나쁘긴 하다.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들과 일할 때는 진짜 그만두고 싶었다.

다칠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

정말 많았다. 한 번은 기둥 자리에 발이 빠져서 정강이의 정맥이 터진 적이 있었다. 현장의 변수는 비단 구조물에만 한하지 않는다. 기상이나 계절에 따라 위험도가 올라가기도 한다. 비가 오거나 너무 덥거나 하면 그게 바로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장에 ‘아시바’라고 불리는 파이프를 고정하는 장치가 있다. 클램프라고도 하는데 한 번은 더위 먹은 상태에서 이걸 수작업으로 고정하다가 고정시킨 손을 떼는 바람에 클램프가 아래층으로 떨어졌다. 밑에 사람이 있다면 크게 다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몸이 안 좋으면 쉬어야 한다. 사소한 부주의가 정말 큰 사고로 이어진다.

건설 현장에서 안전하게 일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공사 기한 등 제한 사항이 많은가?

FM대로 하면 이론적으론 다칠 일이 없다. 위험한 걸 뻔히 알면서 굳이 더 편하거나 빠른 방법을 시도하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형국이 된다. 자기 안전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 사측에서 책임을 져주기도 하지만 결국 다치는 것은 본인이다. 그런데 FM대로만 하기가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업체는 하청 업체고 일을 더 빨리하려고 하지 안전하게 천천히 하려고 하지 않는다. 같은 기간에 하나 이상의 현장을 맡는 업체도 있다. 빨리하는 게 다소 강제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면 안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아무래도 커진다.

단기 노동자도 많으니 더 변수가 크겠다.

그렇다. 숙련도와 일머리 역시 안전에 있어 중요하다. 하지만 반대로 그걸 믿고 자기 과신을 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생긴다.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나이브한 생각이 사고를 부른다. 물론 현장에서는 FM을 다 지키면서 일하면 일정이 굉장히 빠듯하다. 현장의 모두가 엄청난 숙련자여야 가능하다. 단순히 인원을 많이 동원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것을 관리하는 것 역시 리소스다.

현장의 젊은 노동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일하고 있나?

배우러 온 사람, 단기 노동자, 겉멋 들어 온 사람 등 다양하다. 배우러 온 사람은 1인분은 하려고 한다. 단기 노동자의 경우 실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이 많다. 이 일 말고는 대안이 없는 경우다. 이들은 확실히 나이 드신 분들에 비하면 안전하게 일하는 편이다. 자기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고, 스스로 약게, 안전한 방향으로 일하려고 한다.

현장에 젊은 노동자가 많은 추세인가.

몇 년 전에 비해 비율 자체는 늘어났다. 현장에서 배울 수 있는 기술은 다양한데 가급적 덜 힘들이고 더 빠르게 배울 수 있는 기술에는 젊은 분들이 몰린다. 그래도 현장 전체로 보면 아직 한참 적다. 마냥 힘들고 단순 작업인 곳은 젊은 인부 비율이 더 낮다.

청년들은 대부분 단기로 많이 뛰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노가다 후기’라든지 단기 업무 경험을 공유하는 분들이 많지만 젊은 분들은 요새 자격증 따서 기능공으로 오는 분이 생각보다 많다. 외국으로 진출도 쉽기 때문이다. 기능공은 급여도 높고 자격증 개수에 따라서 급여가 오르니까 돈을 모아 자기 사업체를 직접 꾸리기에도 유리하다. 기술은 평생 가니까.

 

산업의 틈바귀에서


시행사이다 보니 원하청 관계, 도급사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하청이 이어지는 수직적 구조는 이 건설 업계의 구조적인 문제다. 보통 인력 사무소에서 일을 구한 속칭 ‘잡부’ 노동자의 경우 원청에서 낸 돈이 여러 중간 단계를 거치며 급여가 결정된다. 이렇게 되면 관리자 입장에선 이 과정을 100퍼센트 파악하기가 어렵다. 꼬리 물기식 하청을 할 경우 막상 현장에 온 인부들이 어디 소속인지도 파악이 어렵고 자금 불투명성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임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단 말인가.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임금은 인력 사무소에서 결정하지 시행사에서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져야 하는 것은 이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시행사다. 시행사는 원청이니 당연히 하청을 맡길 때 가격 경쟁력이 고려 대상인데 가급적 투명하게 관리되는 곳에 맡기고픈 마음이 크다.

노동자와 관리자의 관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건설 현장에의 적용에만 한정해서 얘기하는 게 좋겠다. 다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꼭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현장 변수를 생각하면 미봉책이란 생각도 든다. 사실 이미 안 다칠 방법은 있다. 편하게, 많이 하려다 보니 FM을 따르지 못하는 것일 뿐. 게다가 변수는 날씨부터 시작해 야간 방범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이른바 ‘노가다 갤러리’ 같은 곳을 보면 현실적인 문제가 이미 산적해 있다. 법 시행 이후에도 사람들은 계속 죽어 나가고 있는데, 처벌에 초점을 맞춘 법도 좋지만 현장에 초점을 맞춘 법도 동시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구조적 문제는 왜 발생하나.

근원적으로는 돈이다.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들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그 정도의 돈을 확보하고 시작하지 못하니 인부 각자에게 업무가 과중하게 지워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충분한 돈이 있어도 사람이 부족하다. 특히 젊은 사람이 많이 부족하다. 비계공같이 상대적으로 편한 기술직은 선호해도 철근 같은 분야는 정말 젊은 사람이 없다. 건설 수요는 계속 있는데 인력이 부족하니 결국 외국인분들을 모셔 오게 되는 것이다.

현장에 외국인 비율은 어떻게 되나?

딱 숫자로 말하긴 어렵다. 다만 지금도 현장의 많은 분들이 외국인이다. 분야마다 차이는 있지만 외국인분들 비율이 전반적으로 높은 편이다. 조선족 동포분들로 100퍼센트 채워진 팀을 본 적도 있다. 러시아나 서아시아분들도 계시고 고려인분들도 계신다.

서로 말이 안 통할 텐데 현장에서 소통의 문제는 없나.

말이 안 통하니 어려운 지점이 당연히 있다. 현장에서 쓰이는 용어 몇 개만 겨우 알고 계신 경우가 많다. 그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있어서 통역하는 사람이 팀에 한두 명씩은 있다. 안전하지 않게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 종종 곤혹스러운데, 현장 관리자 입장에서는 말이 안 통하니 업무 지시가 쉽지 않다. 시행사 입장에서는 이분들의 체류 비자나 신원이 확실하지 않을 수 있어 책임 주체로서 당연히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근데 같은 노동자 입장에서는 사실 꽤 좋은 동료들이다. 일 자체는 되게 잘하신다. 일머리가 좋고 기술적인 부분이 뛰어나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시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람이 온종일 할 일을 반나절 만에 끝내기도 하신다. 현장은 한시가 급한데 이분들 덕에 급할 때 당연히 도움이 된다.

건설 현장 일을 고려 중인 분이 있다면 어떤 점을 유의하는 게 좋겠나.

하청 구조가 복잡한 곳에서 일하는 것을 만류하고 싶다. 다만 노동자가 이를 쉽게 알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해가 되지 않는 업장을 고르는 것이다. 어떤 업장에서는 사람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업무가 효율적이지 않아 일이 늘어지는 곳도 있을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몇 번 나가 보면서 내가 일할 수 있는 상태인지, 배울 만한 것이 있고 생산성을 갖출 수 있는 현장인지 따져보기를 권한다.

자격증을 미리 따두는 것도 도움이 될까?

물론이다. 나처럼 기초 산업 안전 교육만 받고 가면 아무래도 고생스럽다. 어차피 현장에 젊은 사람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가급적 내가 조금이라도 더 대우받으며 일할 수 있는 현장이면 더 좋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 국비 지원이 가능한 자격증 관련 교육을 미리 좀 받고 가는 것이 좋다. 단기가 아니라 1~2년가량 이 일을 하며 목돈을 만들 생각이 있다면 그게 유리하다. 그러지 않을 거라면 적어도 평균 임금은 꼭 상세히 찾아보고 가길 권한다. 노가다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현장만의 최저 시급이 있고 어떤 일인지에 따라서도 차이가 난다. 몸이 힘들면 더 버는 게 당연지사다. 자신의 역량을 고려해서 결정했으면 한다.

 

효능감의 길이


얘기를 듣고 나니 건물 하나를 지어 올리는 과정이 참 지난하다.

겉으로 보기엔 돈이 오가고 업체가 뚝딱뚝딱 지어 올리고, 분양되고 하는 것만 보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역동이 있다. 과정이 힘든 만큼 다 짓고 나면 뿌듯함이 있다.

이제껏 다양한 것을 만들어 왔는데 건축물이 주는 보람은 무엇인가?

일단 건물은 내 노동력이 들어간 것 중 가장 거대한 것이다. 그 부피에서 오는 압도감이 있다. 지나가다 내 회사가 지은 건물이 있다면 저 건물을 짓는 데 보탬이 되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또 하자 보수를 할 일이 있을 때 거기에 살게 된 사람들과 만나게 되는데 그때의 보람도 있다. 중소기업 시행사는 주로 오피스텔을 만들고 거주자층이 아주 잘 사는 사람들은 아니다. 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편안한 공간을 만들고자 한 노력을 사람들이 알아줄 때 기분이 좋다. 전반적으로 효능감의 길이가 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만드는 일도 비슷한 것 같다. 효능감이 길다.

요새 직장인 친구들을 만나면 “업무를 쳐낸다”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렇게 쳐낸 일이 주는 보람의 유통 기한은 짧지 않을까. 같은 노력을 들일 거라면 만들고 나서 보람이 오래 남는 일을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보람이 큰 만큼 책임감도 막중한 일이다. 체력적으로 지나치게 소진되고 있진 않은지.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현장에서 노동자이기도, 관리자이기도, 시행사 임직원이기도 하다. 나의 일에 누군가의 생존권, 주거권, 임직원들의 노동권이 달려 있다는 감각은 특별하다. 책임감이 막중한 만큼 앞뒤 재지 않고 노력하게 된다. 물론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것은 맞다. 허리에 디스크가 있었는데 만성 염좌가 심해지기도 했고 갖은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정신적 부담은 없나?

오히려 몸을 쓰고 땀 흘려 일하면 정신 건강은 좋아진다. 사실 오랫동안 불면증이 있었는데 건설 현장에서 육체노동을 시작한 이후로 잠이 더 잘 오는 것 같다. 그렇게 소진된다고만 생각할 건 아니다. 그보단 뭔가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의식주를 다 만들 줄 아는 것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무인도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생존 본능으로 하게 되는 것들이다. 이것을 내가 다 할 수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요새 젊은 세대는 전구도 잘 못 갈지 않나. 그런 점에서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다.

다른 만드는 것에는 관심 없나?

의식주는 다 해봤고, 요즘은 문화적인 걸 만들어보고 싶다. 짧은 영상이나 독립 영화 같은 것 말이다. 하고 싶은 얘기를 담을 것이 필요한데, 거기에 제일 적합한 형태라서 그렇다. 요새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은 곧 누군가에게 이해 받고 싶다는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여건이 되면 한번 도전해 보려고 한다.

관련 경험이 있나?

옷이든 요리든 건물이든 제대로 배우고 시작한 것이 아니다. 막연히 해보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데에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우선하고 내가 만든 것이 가닿을 사람들을 만족하게 하고픈 마음밖에 없다.

창작에 제한이 없다면 해보고 싶은 것은?

돈이 많으면 더 큰 걸 짓고 싶어질 것 같다. 그것이 꼭 건물이 아니더라도 어떤 문화나 특정 분야에 큰 것을 남겨보고 싶다. 만들어 내는 것이 커질수록 짜릿하다.

경제적 자유를 얻어도 직업이 주는 가치가 필요한가?
 
그렇다. 삶은 계속 무언갈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직업이 주는 그 일정함이 삶을 건강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요새 투자로 큰돈을 벌어 경제적 자유를 얻으려는 파이어족 이야기를 많이 보곤 한다. 물론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했기에 불로소득으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돈을 얻는다고 해도 펑펑 쓰며 노는 것은 나와 맞지 않는다. 시행사는 큰 현금을 굴리지만 바로 땅을 사고 비즈니스를 해야 해서 사실 추가적인 레버리지를 감수하는 것은 무섭기도 하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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