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의 원인을 묻는다
완결

참사의 원인을 묻는다

72명이 사망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변명에 분주하다.

2022년 6월 13일 동틀 무렵의 그렌펠 타워. ⓒPhotograph: Dan Kitwood/Getty Images
범죄가 발생했다. 2017년 6월 14일 새벽, 런던 서부의 그렌펠 타워(Grenfell Tower)가 불탔다. 사망자 수가 급증했고, 당연한 문제가 제기됐다. 이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어떻게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구에 있는 공공임대주택이, 그것도 불과 1년 전에 재단장한 곳이, 30분도 안 돼서 4층에서 24층까지 전부 불타오른 걸까? 사망한 72명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2017년 6월 15일, 테레사 메이(Theresa May) 당시 총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건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그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녀는 정부가 충격적인 스캔들이나 참사, 혹은 전쟁이 일어난 뒤에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애용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공개 조사였다.

공개 조사의 목적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밝히는 것이며, 그것이 무슨 일이었든지 간에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다. 1997년 이후로 영국에서는 언제든 최소한 3개 이상의 공개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1] 이런 조사의 위원장은 주로 은퇴했으며 신뢰할 수 있는 백인 남성 판사가 맡아 왔다. 1990년부터 2017년 사이에는 이름이 윌리엄(William)이나 앤터니(Anthony)인 조사위원장이 여자 조사위원장보다 많았다. 이후 코로나19 조사위원장을 맡은 헤더 할렛(Heather Hallett) 여남작(baroness)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테레사 메이는 그렌펠 타워 사건의 조사위원장으로 마틴을 선택했다.

마틴 무어-빅 경(Sir Martin Moore-Bick)은 은퇴한 항소 법원 판사로, 전문 분야는 계약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석 자문 위원으로 법관 의원(Law Lord)[2]의 아들[3]인 리처드 밀레트(Richard Millett) 왕실 고문(QC)[4]을 낙점했다. 밀레트의 업무는 증인을 반대 심문하고, 39명의 법정 변호사(barrister)와 10명의 사무 변호사(solicitor)로 구성된 법무팀을 꾸려서 32만 건의 문서를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었다. 무어-빅은 그에 대한 모든 걸 이해해야만 했다.

생존자들과 유가족들 모두 참사 5주기를 맞이하면서, 조사도 마침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 5년은 누구에게 왜 책임이 있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으며, 지금까지 집계된 것만 해도 1억 4900만 파운드(약 2400억 원) 이상이라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다. 공개 조사가 민사 또는 형사상의 책임을 판결하진 않겠지만, 스코틀랜드 야드(Scotland Yard, 런던 경시청)의 형사들이 기소 여부를 고려할 때는 공개 조사의 증거에 무게를 둘 것이다.

그렌펠 사고에 27개의 기업들과 여덟 개의 공공조직이 뒤엉켜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조사 첫날부터 관련 사안을 보도하던 나는 가끔씩 이 조사가 명확한 답안을 끌어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21세기의 경제는 아웃소싱이라는 리스크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연달아 나오는 증인들은 모두 핵심적인 결정들이 “다른 누군가의 책임”이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건축가와 시공사부터 소방대와 준공 검사원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관계자들이 잘못을 저질렀다.

그러나 유족들은 시스템의 실패를 지적하며 모두를 탓하는 결론으로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과연 그렌펠 타워에서 일했던 그 누구도 자신의 결정이 일으킬 결과에 대해서 알지 못했을까? 1000만 파운드(약 163억 원)가 드는 공공임대주택 단지의 외장 마감 전문가들이 재료 테스트와 안전 기준 준수라는 복잡한 현실에 압도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은 어쩐지 불만족스러웠다.

더욱 불안했던 것은 상당수의 증거가 우리의 직장 생활에서 너무나도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들이었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을 증거로 마주한 증인들이 매우 중요한 지시 사항이나 정보가 포함된 “첨부 파일을 열어보지 않았다”고 시인했을 때에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이것이 21세기 비즈니스의 현실이었다.

2023년에 공개될 조사위원회의 최종 보고서에는 그렌펠 타워의 화재가 평소의 작업 방식 때문에 일어난 결과라고 적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읽지 않은 이메일이 넘쳐나고, 감당 능력을 넘어서는 일들이 끝없이 이어지며,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에서 배제되고, 전체적인 시스템을 거의 파악하지 못한다. 어느 한 사람이나 기업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보다도 이런 결론이 더 오싹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의 경제 전반에 대한 고발이 될 것이다.

 

1. LEVEL 1; 그날 밤


2018년 5월 21일 오전 11시, 런던 서부의 밀레니엄 호텔(Millennium Hotel) 연회장에서 8일간의 사망자 추모와 함께 조사가 개시되었다. 밀레트는 그 자리에 모인 생존자 및 유족들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면서 화재의 진행 경위를 간략하게 전달했다. 화재는 오전 12시 54분 직전에 발생했다. 오전 1시 29분이 되자, 화염은 그렌펠 타워 동쪽 벽면의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 오전 8시 7분, 살아 있었던 마지막 거주자가 탈출했다. 밀레트는 이 조사를 통해 불길의 진행과 소방관들의 대응을 점검할 것이며, 또한 건물의 외벽을 인화성 재질로 마감한 결정에 대해서도 조사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밀레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렌펠 조사는 변호사의 주장이나 과학자의 실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렌펠은 집이었습니다. (중략)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장소였으며 (중략) 함께 일하고, 어울려 놀고, 기도하고,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공동체였습니다. (중략) 그 공동체의 많은 이들이 함께 사망했습니다.”

이후의 여드레 동안은 극도로 고통스러우면서도 감동스러웠다. 시 낭송과 추도사가 있었고, 관련 영상들도 선보였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태생의 운전기사로 1999년부터 맨 위층에서 살아왔으며 ‘세이버(Saber, 검)’라는 별명이 있었던 모하메드 네다(Mohamed Neda)의 가족들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음성 메시지를 틀었다. 그는 다리(Dari)어로 이렇게 말했다. “안녕,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납니다. 안녕. 제가 그간 여러분을 실망시키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모두들 안녕.”

메리 멘디(Mary Mendy)는 사진작가이자 딸인 카디자 사예(Khadija Saye)와 함께 사망했다. 그녀의 여동생 베티 멘디(Betty Mendy)는 사촌이 보낸 편지가 낭독되자 눈물을 흘렸다. “저는 밤 시간을 싫어합니다. 밤은 침묵을 가져오고, 침묵은 슬픔의 눈물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밤은 그 화재의 불길이 기억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날, 추카이르(Choucair) 가족 여섯 명의 사망에 관한 동영상에서 불길에 싸인 그렌펠 타워와 창문 뒤에 갇힌 거주자들의 이미지가 나타나자 20여 명의 생존자가 실내를 떠났다. 한 청중은 동영상을 보던 와중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2018년 6월 4일, 새로운 장소로 옮긴 후 조사가 계속되었다. 조사실은 런던의 법률 지구인 홀번(Holborn)에 있는 빅토리아 시대의 신고딕 양식 건물에 마련됐다. 생존자들에게는 지원을 위해 전문 상담가들이 배정되었다. 하지만 조사받는 기업과 단체가 선임한 변호사의 수가 상담가의 수보다 훨씬 더 많았다. 밀레트는 모두 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핵심 참여자들이 책임 전가의 회전목마에 올라타려는 유혹을 이겨내길 바랍니다.”

조사는 두 단계로 진행됐다. 첫 번째 단계는 16개월이 소요됐는데, 화재가 불길로 번지고 구조 활동이 이루어지던 불과 일곱 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들에 주로 집중되어 있었다. 이 단계에서 생존자들은 짙은 검은색 연기가 “마치 호스로 내뿜는 것처럼” 그들의 아파트를 가득 메웠다고 진술했다. 조사 대상에는 999[5]로 신고 전화를 걸었던 사람들의 가슴 아픈 마지막 메시지도 있었다. 메시지에선 그들 가운데 한 명인 메리엄 엘그워리(Mariem Elgwahry, 27세)가 맨 위층의 아파트 한 곳에서 다른 여섯 명과 함께 대피하던 상황이 고스란히 묘사되었다. 그녀는 녹취에서 불길이 어떻게 위로 올라오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아파트 창문을 어떻게 당장 부수고 들어올 것 같았는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녀는 신고 전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피할 곳이 없어요. 꼼짝없이 갇혀 있다고요.” 그들은 모두 사망했다.

무어-빅의 보고서 초안은 800페이지에 달했으며, 2019년 10월에 공개됐다. 보고서는 런던소방대(LFB)의 대응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방대는 화재가 걷잡을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아차려야 했으며, “그대로 있으세요”라는 최초의 지시를 뒤집고 대피를 명령해야 했다. 그들이 그런 지시를 내렸던 이유는 화재가 건물 전체로 번지지 않을 거라고 추정했기 때문이다.

1단계 보고서가 공개되자, 런던소방대의 대니 코튼(Dany Cotton) 청장이 사임했다. 그녀[6]는 조사에서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그날 밤 했던 일의 무엇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유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많은 생존자는 사고의 책임을 소방대 측으로 돌리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많은 소방관이 용맹함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휘발유처럼 불타는 클래딩(외벽 마감재)으로 건물을 뒤덮은 것이 더욱 중대한 범죄가 아니었을까?
그렌펠 타워 추모 현장, 2021년. ⓒPhotograph: Graeme Robertson/The Guardian

 

2. LEVEL 2; 양두구육


2020년 1월에 2단계 조사가 시작됐고, 유족들은 지자체로부터, 건설업체들로부터, 인화성 클래딩 패널을 제조하고 판매한 기업들로부터, 그리고 그 건물을 허가해 줬던 화재 안전 ‘전문가들’로부터 원하는 답변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했다.

밀레트에게는 시작부터 나쁜 소식이 전해졌다.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조사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서면 진술은 전부 ‘그곳에서 벌어진 일이 어째서 다른 누군가의 잘못인지’를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었다. 그렌펠 타워의 생존자들에게는 익숙한 변명이었다. 조사를 받은 조직들은 이 화재가 있기 전부터 그들의 문제를 다른 누군가의 책임으로 치부해 왔다. ‘책임 전가의 회전목마’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조직들의 컴퓨터 서버에서 발굴한 수많은 이메일, 스프레드시트, 보고서는 다른 그림을 보여 줬다. 조사에서는 단열재 제조사인 킹스팬(Kingspan)의 직원 두 명이 2016년에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에 대한 증언이 나왔다. 그렌펠 타워가 자사 재료의 화재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시공되었다는 농담이 담긴 내용이었다. 그중에는 이런 문자 메시지도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냥 여기에 누워있는 거야.”

2020년 말, 코로나19로 네 달 동안 지연됐던 공개 조사가 재개되었다. 그들은 화재의 결정적인 이유였던 그렌펠 타워의 클래딩 시스템에 사용된 재료를 공급한 업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청문회는 날이 갈수록 유족들을 점점 더 화나게 했다. 출석하는 증인들이 저마다 모두 기억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다른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너선 로퍼(Jonathan Roper)는 예외였다. 그는 2016년 클래딩 재시공 작업에서 사용된 인화성 발포 단열재의 대부분을 제조한 셀로텍스(Celotex)에서 일했던 직원이었다. 그는 회사가 수익성이라는 명분하에 채택한 전략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한 전략 때문에 고층 건물들에서 위험한 재료가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2012년 5월, 당시 22살이었던 로퍼는 이스트앵글리아대학교(University of East Anglia)의 경영학과를 졸업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셀로텍스에서 첫 번째 일자리를 구했다. 그는 건축 규제에 대하여 아무런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였고 단열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 직후에 셀로텍스는 프랑스의 다국적 기업인 생고뱅(Saint-Gobain)에 인수됐다. 그들은 수익을 늘릴 것, 그리고 그중에서 15퍼센트는 신제품을 통한 수익일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단순하게 이미 만들어 놓은 경질 발포 단열재 패널을 리브랜딩해서 연간 1000만 파운드 규모에 달하는 고층 주택 시장을 공략하기로 계획했다. 셀로텍스는 그렌펠 타워를 일종의 ‘사례 연구’로 삼기를 원했다. 지은 지 40년 된 24층 높이의 그렌펠 타워는 단열 성능과 외관의 개선을 위해 클래딩 시스템으로 뒤덮일 예정이었다.

신축 및 재개발 단지에서 널리 사용되는 클래딩 기법이란, 원래의 콘크리트 벽면에 10센티미터 두께의 경질 발포 단열 보드를 부착하고, 그 위에 미리 제작해 놓은 레인스크린(rainscreen) 시트를 덮는 작업이다. 레인스크린 시트는 폴리에틸렌이라는 플라스틱으로 만든 심재료(core material)를 샌드위치 형태로 끼워 넣은 알루미늄 패널이며, ACM PE(폴리에틸렌 포함 알루미늄 복합재)라고도 알려져 있다.

로퍼의 업무 중에는 RS5000이라는 셀로텍스의 제품을 이런 방식으로 사용해도 안전하다고 시장을 안심시키는 것이 있었으며, 그의 연간 보너스 규모도 여기에 달려 있었다. 문제는 건설업체들이 저렴하고 얇은 불연성 미네랄울(mineral wool, 광물면)에 비해 시공이 수월한 플라스틱 폼 보드를 선호한다는 것이었다. 플라스틱 폼 보드 역시 연소되면 일산화탄소(CO)보다도 유독한 기체인 시안화수소(HCN)를 방출한다. 셀로텍스로서는 자사의 제품을 사용하더라도 안전 규제를 위반하지 않는 것이라고 건설업체들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었다.

로퍼는 셀로텍스의 주요 경쟁사인 킹스팬의 단열재가 어떤 방식으로 고층 건물용 인증을 받았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조사위원회는 그렌펠 타워에 사용된 단열재의 5퍼센트를 공급한 킹스팬이 건축 자재에 대한 잉글랜드의 복잡 미묘한 규제 시스템을 완전히 통달함으로써 발포 단열재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증언을 들었다. (영국 정부의) 공식 지침은 오랫동안 고층 건물에서 가연성 단열재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안전 최우선의 접근방식이었다. 높은 층에서는 탈출하기가 힘들고, 소방서에도 일반적으로는 높은 층에 접근할 수 있는 장비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좋은 단열재로 탄소 배출량을 낮추려는 노력과 제조업체들의 로비로, 2006년에 영국 정부는 특정 유형의 건축에서 제한적 가연성을 가진 재료의 사용을 승인했다. 다만 그 재료는 실제 환경과 동일한 테스트에서 안전성이 입증돼야 했다. 이 테스트는 왓퍼드에 있는 건축연구원(BRE)의 실험실에서 벽면의 한 부분을 일정한 비율로 축소한 모형을 만들고 거기에 불을 지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이 테스트 시스템은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 우선 실제 환경과 동일한 테스트를 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복잡하다. 그 결과가 잘못 해석될 수도 있다. 인증서가 제3의 기관에서 발행됐으며, 그 내용이 모호한 방식으로 작성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들을 모두 고려하면, 위험한 재료의 제조와 마케팅과 판매가 가능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서류상으로는 완전히 안전해 보였다.

2006년에 킹스팬은 자사의 주력 단열재인 쿨테크(Kooltech) K15의 화학 성분을 변경했지만, 예전의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판매를 계속했다. 내부 보고서에 의하면, 2007년에 진행된 새로운 버전에 대한 실제 환경 테스트는 ‘불타오르는 지옥’이 되었다고 한다. 관련 조사에서 킹스팬 측의 변호사는 이러한 문제 제기를 일축하며, 당시 테스트의 참관인은 ‘어마어마한’ 불길이 일어났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했고, 해당 제품의 내화 성능(耐火性能)이 이전의 버전에 비해 열악하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킹스팬은 영국 내의 고층 주거 단지 수백여 곳에서 이 제품의 새 버전을 계속해서 판매했고, 이 제품을 다른 재료들과 함께 특정한 비율로 조합해서 사용한다면 고층 건물에서도 안전할 수 있다는 인증서를 취득했다. 킹스팬 측은 신규 테스트를 (사전에) 수행해야 했지만 “기술적인 변화가 (이 제품의) 내화 성능에서 어떠한 실질적인 차이도 만들어 내지 않을 것이라는 정직한 믿음”으로 실시하지 않았으며, 그렌펠 타워의 화재 이후 수행된 테스트를 통해서 그러한 사실이 뒷받침된다고 밝혔다.

조사에서는 킹스팬이 2015년 가을 무렵까지 영국 내 최소한 230곳의 고층 단지에 K15를 판매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곳이 바로 셀로텍스가 추격하던 시장이었다.

청문회에서 로퍼는 상사들에게 자사의 제품이 “화재가 발생하면 불타버릴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클래딩 작업 뒤쪽에 사용하기에는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경고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그들이 “이에 개의치 않고 고층 주거 시장에 진입하고 싶어 했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 사실이 그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다.

2014년 2월, 로퍼는 건축연구원(BRE)의 ‘번홀(burn hall, 화재실험장)’ 관리자인 필 클라크(Phil Clark)의 곁에 서 있었다. 실제 환경과 동일한 벽면에서 셀로텍스의 단열재를 처음으로 테스트하는 현장이었다. 장치 앞에는 커다란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었다. 만약 불길이 30분 내에 맨 위까지 도달한다면 나쁜 소식이었다. 결과는 26분이었다. 실험은 실패했다.

셀로텍스는 재시도를 위해 충격적인 일을 벌였다. 모형 벽면을 통한 화염의 확산을 늦추기 위해 발화지연 산화마그네슘 보드로 고의적인 간격을 만든 제품을 포함시킨 것이다. 이 재료는 외장 클래딩의 뒤쪽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이나 사진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로퍼는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 장치들이 지나치게 조작되었다”고 말했다. 그 제품은 결국 테스트를 통과했다.

조사위원회는 셀로텍스가 어떻게 BRE에게 들키지 않고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다. 그 결과 셀로텍스가 BRE 측에 재료를 배송하도록 조정했으며, 자사의 계약자가 테스트 구조물을 설치하게 했음이 밝혀졌다. 놀랍게도 이런 방식은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그러고 나면 BRE의 기술진이 테스트를 참관했다.

조사 71일차에 로퍼는 번홀 관리자였던 클라크가 (당시 현장에서) 테스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거라는 사실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없다”고 밀레트에게 말했다. 세 달 뒤에 관련 질문을 받은 클라크는 셀로텍스의 술책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조사에서 “우리의 역할은 그들이 그곳에서 수행하는 모든 일을 빠짐없이 감시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산화마그네슘이 배송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으며, 배달 인수증은 “아마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그는 테스트에 어떤 재료들이 사용되는지 알고 있지만, “만약 누군가 속임수를 쓰려고 한다면 불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조사에서는 실제 환경의 화재 테스트를 1회 수행할 때마다 제조사로부터 2만 5000파운드(약 4000만 원)의 비용을 받는 BRE가 진정으로 독립적인 기관인지를 여러 차례 점검했다. BRE의 화재 테스트 책임자인 스티븐 하워드(Stephen Howard)는 밀레트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수많은 클라이언트가 있고, 그들은 BRE에 많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들을 낙담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BRE는 조사에서 그들의 테스트가 영국의 기준을 준수하며, 계약에 의하면 기업들이 테스트 재료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BRE가 킹스팬과 셀로텍스에게 속았다고 주장하며, 킹스팬이나 셀로텍스 제품의 ‘오해될 만한 프로모션’에 그들이 ‘연루되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전부 부인했다.

그러나 유족 측의 변호사들은 이를 다르게 봤고, BRE가 “제품의 대변자로서 이런 끔찍한 재료들을 판매할 관문을 열어 줬다는” 혐의로 그들을 고발했다. 유족 측은 이렇게 말했다. “전체적인 인증 절차가 위험천만했습니다. 그들은 허울뿐인 신뢰성을 만들었으며, 어떤 경우에는 부정한 테스트로 얻은 테스트 결과를 은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셀로텍스는 다수의 직원이 ‘용납할 수 없는 행위’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시인했지만, 현재의 경영진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렌펠 타워 사고의 이후였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 이후로 테스트 절차와 문화를 바꿨다고 말했다. 셀로텍스는 또한 그렌펠 타워의 클래딩 작업에 참여한 전문가들이 ‘관련된 어떠한 측면에서도’ 자사의 제품 설명서를 잘못 이해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BRE가 발화지연 보드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셀로텍스의 마케팅 브로셔에는 그들이 처음에 실시한 테스트 방식이 설명되어 있었는데, 그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해당 단열재의 테스트를 다시 진행했을 때에도, 최소한 당시의 건축 규제를 따르기만 한다면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2014년에서 2015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그렌펠 타워의 클래딩 재작업을 위한 준비가 한창일 때, 재단장 작업팀은 해당 패널 660장을 50퍼센트 가까이 할인된 가격에 구입하기로 합의했다. 조사에서는 해당 발포 단열재가 “수직 방향으로 확산되는 화염의 속도와 범위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렌펠 타워의 설계자들 가운데 한 명인 사이먼 크로퍼드(Simon Crawford)는 이후에 그것을 “양두구육(羊頭狗肉)”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단열재 업체인 셀로텍스의 전직 보조 제품관리자(PM)였던 조너선 로퍼가 2020년 11월의 그렌펠 타워 조사위원회에 참석하여 증언을 하고 있다. ⓒPhotograph: Grenfell Tower Inquiry/PA

 

3. 일급비밀


조사에 착수한 지 2년 9개월이 흐른 2021년 2월, 관심의 초점은 다국적 거대기업인 알코닉(Arconic)으로 옮겨 갔다. 알코닉은 에어버스(Airbus)와 보잉(Boeing)처럼 안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들에 알루미늄 판금을 판매하는 회사로, 그들의 프랑스 자회사인 알코닉 건축자재 간이합자회사(Arconic Architectural Products SAS[7])가 플라스틱이 채워진 패널을 제작해 그렌펠 타워에 공급했다. 무어-빅의 잠정 보고서에서는 그 제품이 “화염이 그토록 빠르게 확산됐던 주요한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쉽게 불이 붙는 자재를 알코닉은 어떻게 주거용으로 판매하게 됐을까?

알코닉의 핵심 경영진 다섯 명이 청문회에 소환됐다. 그러나 유족들에게는 실망스럽게도, 시대착오적인 프랑스 법령을 이유로 그중 세 명이 출석하지 않았다. 외국의 법정 소송에서 프랑스 국민이 기업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조항이었다. 이에 대해 조사위원회나 영국의 외무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심지어 프랑스 정부가 (그렌펠 타워 사고에 대해서) 해당 법률이 적용되기 어렵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알코닉의 경영진은 나타나지 않았다.

불출석한 이들 가운데 핵심은 회사의 기술영업지원 책임자인 클로드 베흘리(Claude Wehrle)였다. 공개된 이메일에 따르면, 2009년에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Bucharest)에서 그는 불타는 타워의 사진을 동료들에게 공유했다. 그 이유는 “PE(폴리에틸렌)을 건축 재료로 사용했을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동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2010년, 베흘리는 영업 부서의 동료에게 폴리에틸렌으로 카세트 패널(cassette panel)[8]을 만들면 인화성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렌펠 타워에도 같은 방식이 적용됐으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이것을) 극비사항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5년 뒤, 베흘리는 동료들에게 그렌펠 타워에 판매된 알코닉의 바로 그 패널이 “(건물의) 외벽에서는 위험하다”고 경고하며, “모든 제품이 최대한 빠르게 FR(내화성) 소재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유족 측의 변호인단은 알코닉이 영국처럼 관련 규제가 느슨한 나라들을 겨냥해서 폴리에틸렌 제품을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이윤의 측면에서도 인화성 제품을 계속해서 판매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이 내화성 제품보다 저렴하면서도 수익성이 더욱 좋았기 때문이다. 유족들과 생존자들을 변호했던 스테파니 바와이즈(Stephanie Barwise) 왕실고문(QC)은 이렇게 말했다. “알코닉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시했습니다.”

베흘리는 청문회 불출석을 선언한 뒤에 프랑스 알자스(Alsace)의 자택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과 마주쳤다. 그는 법률적 조언에 따라 관련 증거를 제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그 안타까운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나라에서 제가 할 일을 했고, 그게 전부입니다. 이 일로 인해 저는 진심으로 속상합니다. 매우, 매우 슬픕니다.”

밀레트를 비롯한 조사팀은 회사 내부의 이메일을 통해서 알코닉이 맡았던 역할의 상당 부분을 복원할 수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 중 하나는 알코닉의 마케팅 관리자가 동료들에게 2007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진행된 한 클래딩 전문가의 강연에 대해 말했던 기록이다. 해당 전문가는 ACM PE(폴리에틸렌 포함 알루미늄 복합재) 클래딩이 연관된 화재는 3분 안에 사람이 죽을 수 있는 거대하고 자욱한 독성 연기를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그렌펠 타워 사고가 있기 전에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에서 유사한 화재가 여러 건 있었다. 그 전문가는 심지어 ACM PE 패널을 연료 삼아 화재가 발생하면 60-70명이 사망하는 시나리오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ACM 공급업체의 책무는 무엇일까요?” 이에 충격받은 알코닉의 마케팅 관리자는 해당 비즈니스의 리스크가 너무 크며 이제는 오직 내화성 패널만 판매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사에서 알코닉은 그렌펠 타워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책임을 부인했다. 해당 패널의 공급은 적법했으며, 참사 전에 내화성 제품의 사용을 독려하기 위한 단계를 밟아 가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그렌펠 타워의 전문가팀이 폴리에틸렌 버전을 다른 인화성 재료와 함께 사용할 때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알코닉 측의 변호사들은 일단 제품에 조작이 이루어지고 나면 원래의 성능을 보장할 수 없으며, ACM과 함께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에 대해서는 선택권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것이 ‘쉽게 점화되고 인화성이 있음’을 건축업자들이 알고 있었어야 한다는 증언을 언급했다. (알코닉 측의 변호인단이었던) 스티븐 호크먼(Stephen Hockman) 왕실고문은 이렇게 주장했다. “그렌펠 타워의 비극적 결과는 ACM PE를 사용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된 방식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조사에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시도는 심각하게 불공정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입장은 유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킹스팬, 셀로텍스와 알코닉이 (이 사건에) 연료를 공급했다고 하더라도, 화재의 불꽃은 그렌펠 타워 인근의 정치적 결정 때문에 점화된 것이었다. 그곳은 켄싱턴 첼시 왕립구(RBKC)[9]의 부유한 남쪽 지구에 위치한 스마트 오피스의 내부였다.

 

4. 2등 시민


락 필딩-멜런(Rock Feilding-Mellen)은 히피 귀족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 아만다 필딩(Amanda Feilding)은 윔즈 및 접경지 백작부인(Countess of Wemyss and March[10])인데, 1970년에 의식의 변성(變性) 상태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두개골에 구멍을 뚫은 것으로 유명하다. 윈체스터와 옥스퍼드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웅장한 저택을 보유한 가족의 일원이었던 락 필딩-멜런의 세계는 그렌펠 타워의 주민들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는 27세의 나이에 구의원이 되었으며, 2013년 33세의 나이에는 영국에서도 가장 값비싼 토지들이 포함된 켄싱턴 첼시 왕립구에서 주거, 부동산, 도시재생을 관할하는 부의장이 되었다. 때문에 그에게는 그렌펠 타워 재단장 작업에 대한 관리 감독 권한이 주어졌다.

부동산 개발에 뛰어드는 구의회는 많다. 일부는 중앙정부의 예산 삭감이 남긴 재정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그리고 어떤 곳은 자유 시장에 대한 본능과 주택 보급을 늘리려는 열망에서 개발을 시작한다. 켄싱턴 첼시 왕립구에서 잠재적으로 주요한 재개발 구역은 그렌펠 타워와 1970년대에 조성된 그 주변의 부동산이었다. 이곳은 고풍스러운 자치구 내에서도 오랫동안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다. 1930년대에 노동당 소속의 하원의원(MP)이었던 스태퍼드 크립스 경(Sir Stafford Cripps)은 이렇게 한탄했다. “잉글랜드의 모든 슬럼가 중에서도, 북 켄싱턴 지역이 가장 비극적이다.”

구의회 내부에서 그렌펠 타워는 자치구 내 ‘최악의 부동산’이자 주변 지역을 ‘빛바래게’ 만드는 ‘가난한 사촌’으로 평가됐다. 구의회는 순수한 재정적 관점에서도 그렌펠 타워를 무가치하다고 여겼다. 자치구의 주거국장이었던 로라 존슨(Laura Johnson)은 그렌펠 타워에 투입되는 비용이 전부 돈 낭비가 될 것이라는 취지의 문건을 남겼다.

2009년에 구의회의 의뢰로 마련된 계획안에서는 그렌펠 타워를 해체하고, 그곳을 1000채 이상의 판매용 주택을 포함하며 공공 주택과 민간 주택이 혼합된 주거단지로 바꿔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래서 2012년에 그렌펠 타워의 재단장 계획이 제안되었을 때, 필딩-멜런은 그것이 ‘더욱 커다란 장기적인 잠재력’을 ‘방해하지는’ 않는지를 물었다. 다른 한 구의원은 600만 파운드(약 97억 원) 규모의 재보수가 ‘너무나도 멋진 일’이지만 자치구의 다른 지역에서 자금을 가져오는 건 잘못된 것이라고 언급했다. 2013년 당시 켄싱턴 첼시 왕립구의 현금 보유액은 2억 4100만 파운드(약 3900억 원)였다.

필딩-멜런은 구의회에서 주거를 담당하는 의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런던소방대(LFB)의 문건을 ‘훑어봤던 것’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화재로부터 부동산을 안전하게 지켜야 할 구의회의 법적 의무”를 설명하고 있는 문건이었다. 그럼에도 클래딩의 색상에 대해서는 강한 의견을 피력했다. “라임빛 녹색은 형광색이 덜해야 하며, 좀 더 파스텔 색조의 녹색/터키색 혹은 짙은/어두운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British racing green)[11]이 되어야 한다.” 그가 켄싱턴 및 첼시의 임차인 관리기구(KCTMO)에 보낸 내용이다.

조사에서는 구의회와 임차인 관리 기구, 그리고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심각한 적대감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2001년부터 16층에서 살아온 에드 다판(Ed Daffarn)도 그 주민 중 하나였다. 그는 건물의 재단장을 맡은 업체가 ‘반란 주민’이라고 낙인을 찍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다판의 불만 사항으로는 시공의 퀄리티, 클래딩과 창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그리고 낮은 예산 등이 있었다.

2016년 11월, 다판은 그렌펠 행동 그룹(Grenfell Action Group)이라는 블로그에서 “오직 심각한 인명의 손실을 초래하는 사고”만이 “기능하지 않는 이 기구의 썩어빠진 거버넌스”를 폭로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임차인 관리 기구는 직원들이 업무용 컴퓨터로 그 블로그에 접속하는 걸 차단했다.

다판은 혼자가 아니었다. 22층의 주민이자 그렌펠 타워 임차인 협의회의 총무였던 리 채프먼(Lee Chapman)은 참사가 발생하기 세 달 전에 임차인 관리 기구 측에 주민들이 화재의 위험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소위 ‘임대 주택 단지’의 주민인 우리는 2등 시민처럼 취급받았습니다.” 그가 조사에서 한 말이다.
켄싱턴 첼시 왕립구 구의회의 전직 부의장이었던 락 필딩-멜런. ⓒPhotograph: Richard Gardner/REX/Shutterstock

 

5. 하청 밑에 하청, 또 하청


화재 이후 며칠 만에, 임차인 관리 기구로부터 몇 건의 프로젝트 문건이 유출됐다. 그 문건에는 비용 절감을 위한 클래딩 패널 교체 관련 논의 내용이 있었다. 불연성 아연 패널을 ACM PE로 바꾸면 29만 3368파운드(약 4억 7000만 원)를 아낄 수 있다고 제시되어 있었다. 필딩-멜런은 2018년 10월에 진행된 1단계 조사에서 임차인 관리 기구가 클래딩을 교체해 비용 절약을 희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클래딩 제품들 사이의 기술적인 특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켄싱턴 첼시 왕립구는 그들이 당연히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충분히 잘 규제되고 있는 시장과 접촉하는 것”으로 여겼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이 발을 들인 곳은 “잠재적 올가미와 함정들로 가득한 세계”였다. 또한 납세자의 세금을 지출할 때는 “비용대비가치(value for money, VFM)”가 뛰어난 선택을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조사에서 필딩-멜런은 자신이 재단장을 지지했으며 “만약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구의회는 예산을 증액해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날 이른 아침의 기억을 남은 평생 동안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밀레트의 팀은 돈이 안전을 이긴 수많은 사례를 적발했다. 유족 측의 변호인단은 임차인 관리 기구가 시공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공공 조달에 관한 규정들을 왜곡했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해당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설계자와 하청업체를 선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렌펠 타워의 재단장 하청업체를 선정할 당시, 건축업체 세 군데가 입찰 서류를 제출했다. 그중 한 곳인 리든(Rydon)은 80만 파운드(약 13억 원)를 추가적으로 절감할 방안을 찾아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임차인 관리 기구의 재생 책임자였던 피터 매디슨(Peter Maddison)은 예전에 리든의 경영진 일부와 함께 일한 적이 있었으며, 임차인 관리 기구는 잠재적 절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하여 이 회사와 ‘오프라인’ 미팅을 가지기도 했다.

리든은 시공 계약을 따냈지만, 그들이 해당 작업을 위해 제안한 비용은 20만 파운드(약 3억2000만 원) 정도 저렴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 비용을 회수해야만 했다. 리든의 프로젝트매니저(PM)였던 사이먼 로렌스(Simon Lawrence)는 ACM PE가 값비싼 아연 패널에 비해 그리 열등한 제품이 아니라며 기획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는 동료들에게 이런 이메일을 보냈다. “바로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세일즈 피치(sales pitch)[12]를 할 것입니다. 에식스(Essex) 남자[13]의 속사포여 힘내라!”

해당 계약에 관해 제기되는 의구심은 무시됐다. 2014년 9월, 임차인 관리 기구의 프로젝트매니저였던 클레어 윌리엄스(Claire Williams)는 로렌스에게 이메일을 보내서 “새로운 클래딩의 발화 지연 성능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요청했다. 그러나 로렌스가 그녀의 이메일에 답장을 보냈다는 기록은 없다. 같은 해, 임차인 관리 기구의 법무 담당 부서는 리든이 제시한 920만 파운드(약 150억 원)의 입찰 금액이 “비정상적으로 저렴한 것”은 아닌지 문의했다. 밀레트가 이에 관해 추궁하자, (임차인 관리 기구의 재생 책임자였던) 피터 매디슨은 “그 프로젝트는 정해진 예산대로 진행되었고, 바로 그 점이 비용의 적정성 여부에 대한 최적격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밀레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런데 매디슨 씨, 우리 모두 그 건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 프로젝트가 정해진 예산대로 진행됐다는 사실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계약에 의하면 “설계의 모든 측면에서 전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리든이었지만, 그들은 인명 손실에 대한 압도적인 책임이 클래딩 제조사인 알코닉과 셀로텍스, 킹스팬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리든은 해당 제조사들이 “체계적인 속임수와 부정직함”으로 처신했다는 혐의를 제기했다.

리든은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하청 계약의 최상위에 있었는데, 한 임원의 말에 의하면 그러한 구조에서는 다른 업체에게 ‘책임 흘려보내기’를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그들은 외벽 업체인 할리 파사드(Harley Facades)와 하청 계약을 맺었는데, 할리 파사드는 현장에서 실제 작업을 진행할 또 다른 업체에게 다시 하청을 줬다. 전문 업체들이 일종의 보험을 위하여 다른 업체에게 거듭해서 의존하는 형태인 것이다. 리든은 새로 설치한 창문 주변을 불연성 미네랄울(mineral wool)로 보완하는 작업도 하청에 맡겼지만, 결국엔 인화성 발포재로 마감되었다. 리든의 현장 관리자였던 사이먼 오코너(Simon O’Connor)는 하청 업체들이 올바른 재료를 사용하여 작업하는지를 점검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제 업무였을 수는 있지만, 글쎄요, 저는 그런 일을 한 기억이 없습니다.”

이러한 증언은 그들이 부주의했으며 책임을 감수하려 하지 않았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급망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도 결여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들이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공급망이 지나치게 복잡했던 것이다. 관련 질문을 받은 다수의 사람들에 의하면, 업체들이 결국 관련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의지했던 사람은 자치구의 건축 규제 조사관이었다. 그렌펠 타워의 경우, 켄싱턴 첼시 왕립구의 관련 부서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사람은 존 호번(John Hoban)이었다. 그 부서는 긴축 재정으로 규모가 대폭 축소되어 있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노련한 건축 규제 조사관 10명이 그곳을 떠났지만, 충원된 인력은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 한 명뿐이었다. 한때 호번은 130개의 프로젝트를 관리 감독해야 했다.

조사에서 그는 그렌펠 타워의 설계자들과 소방 설비사들을 신뢰했지만, 도면이나 설계 명세서들을 적절하게 확인하지 않았으며, 재료가 인화성이었다는 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밀레트는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그렌펠 타워에는 노련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보다 덜 무자비하고 덜 엄격하게 대했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호번은 그들에게 ‘의존했다’는 의혹을 부인했지만, 이렇게 말했다. “밀레트 씨, 제가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양은 정해져 있고, 저의 업무에 우선순위를 매겨 결정해야 합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망한 “아이들, 형제와 자매들, 아들과 딸들, 아버지들, 어머니들, 할아버지들, 할머니들”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켄싱턴 첼시 왕립구의 건축 규제 선임조사관이었던 존 호번(John Hoban). ⓒPhotograph: Grenfell Tower Inquiry/PA

 

6. 규제 완화라는 독배


2022년 2월, 조사의 마지막 단계가 개시됐다. 237일이 지나 마침내 내각의 장관들과 화이트홀(Whitehall, 영국 정부)의 공무원들이 증인석에 들어설 차례였다. 지금까지 조사를 지켜봤던 많은 사람은 결국 고층 건물에서 ACM PE 패널 사용을 금지하지 않은 정부에게로 비난이 향할 것인지 궁금해했다.

조사에서는 수많은 경고를 놓쳤거나 묵살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1999년에 플랫(flat) 아홉 층을 파괴했던 스코틀랜드 가녹 코트(Garnock Court)의 클래딩 화재 이후, 영국 하원이 구성한 위원회는 클래딩 시스템이 완전한 불연성 소재이거나 실제 환경과 동일한 테스트를 통해서 검증돼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개정된 건축 규제 체계에는 허점이 있었고, 실질적인 차이를 거의 만들어 내지 못했다. 그 직후 수행된 고층 건물의 클래딩에 대한 정부 조사에서는 건설기업인 WS앳킨스(WS Atkins)로부터 (클래딩을 통해) 화염이 확산될 위험이 있다는 경고를 받았지만, 정부 내의 그 누구도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2009년에 런던 서더크(Southwark)의 라카날 하우스(Lakanal House)에서 발생하여 여섯 명의 사망자가 나왔던 화재에 대한 영국 정부의 대응이었다. 2013년에 해당 사건의 사인(死因) 검시관이었던 프란시스 커캠(Frances Kirkham) 판사는 건설업체들에게 화재 안전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건축 규제들이 “(현장에서) 활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려운 문건”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관련 규제는 어떤 재료들이 허용되며 어떤 부분을 점검해야 하는지와 같은 간단한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을 주지 못했다. 지역 발전 담당 장관이었던 에릭 피클스(Eric Pickles)는 2016-17년까지 개정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밀레트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의 정부는 ‘레드 테이프 챌린지(red tape challenge, 불필요한 규제 혁파)’에 착수한 상태였다. 이 정책은 여전히 2007-2008년의 금융 붕괴로부터 허우적거리던 경제의 회생을 위해 비즈니스 비용을 절감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2011년 4월, 캐머런 총리는 장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기업들과 사회에 터무니없는 부담을 지우고 있는 불필요한 모든 규제들은 일거에 영원히 사라져야 합니다.” 2012년 1월이 되자 그는 ‘보건과 안전을 최우선하는 문화를 영원히 사멸’시키고 싶어 했다.

피클스 부처에서 건축 안전 확보를 담당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앤터니 버드(Anthony Burd)는 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규제를 없앨 수 있는지를 살펴보느라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소모했습니다.” 건축 규제에 대한 공식 지침서를 담당하는 공무원이었던 브라이언 마틴(Brian Martin)은 이렇게 말했다. “장관들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피하기 위해 매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조사 261일차에 무어-빅과 밀레트 앞에 나타난 다섯 명의 장관 중 피클스는 가장 연장자였다. 그는 자신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굳이 환심을 사려 하지 않았고, 만약 청문회가 더 오래 진행된다면 “각국의 손님들이 자신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것을” 취소해야 할 수도 있다며 무어-빅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그리고 밀레트에게 “당신의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피클스는 라카날 사건 검시관의 권고 사항을 받아들였다고 주장했지만, 2013년 5월에 해당 검시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관련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요구를 반박하고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밝혔다. “우리 부서는 (규제의) 간소화 프로그램에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물에서의 화재 방지를 위한 설계는 복잡한 주제이며, 어느 정도는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2015년 5월에 피클스가 사임하자, 보수당의 동료인 제임스 워튼(James Wharton)이 건축 규제를 책임지는 차관으로 지명됐다. 그해 9월, 보수당의 데이비드 에이미스(David Amess) 의원은 워튼에게 정부의 화재 안전 규제에는 “인명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들이 있으며 “즉시” 조치되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워튼은 에이미스를 만나기로 했지만, 막상 만나서는 에이미스에게 자신의 주요한 목표가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는 아주 많았다. 2015년 4월에 조사위원회는 브라이언 마틴이 화재 안전 지침의 재검토 필요성을 포함하는 ‘우려 목록’을 어떻게 작성했는지 알게 됐다. 그는 “우리가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라는 제목으로 해당 목록을 작성했으며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더욱 커다란 화재가 발생할 것이다!” 2016년 1월에 두바이에서 ACM PE 클래딩 때문에 어마어마한 화재가 발생한 이후, 마틴은 동료들에게 그곳이 “멋지게 빛나는 건물”이었지만 “화재에 노출되자 알루미늄은 녹아서 사라지고 폴리에틸렌 심재가 드러났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밀레트에게 질문을 받은 장관들과 공무원들은 때로는 전투적이기도 했고, 모순적이며 모호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몇 시간 동안이나 책임을 회피하는 과정에서도 눈에 띄는 순간이 있었다. 밀레트가 마틴에게 물었다. “당신이 다르게 했을 수도 있는 무언가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마틴은 눈에 띄게 괴로워하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답변했다. “그렌펠 타워 주민들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얼마나 죄송한지 표현하기도 어렵습니다. 저는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걸 막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럴 기회가 아주 많았습니다.”
올해 4월 조사에 출석한 에릭 피클스. ⓒPhotograph: YouTube

 

7. 거리두기의 함정


내년에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무어-빅의 최종 보고서는 다수의 책임자를 지목할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에는 어쩌면 경찰이 기업의 과실 치사 등을 포함하여 범죄 혐의를 계속해서 추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의 진정한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 조사는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수많은 위험한 관행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자세하게 들춰냈다. 규제의 목적이 그저 비즈니스를 방해하는 것뿐인 것처럼 대하며 규제와 맞선 데이비드 캐머런의 십자군 전쟁이 있었다. 자신들이 주택 공급자인지 아니면 부동산 개발업자인지를 분별하지 못했던 구의회도 있었다. 그리고 책임이 제대로 이전되지 않고 증발되어 버리는 하청 계약이 광범위하게 남용됐다.

조사의 전개를 지켜보면서, 나는 갈수록 복잡해지는 현대의 공급망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두 가지의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충격받았다. 그렌펠 타워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하청 계약으로 인해, 원청 업체의 임원들은 설령 자신들의 노력과 전문성이 부족하더라도 다른 업체들이 보완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안전 의식을 갖게 됐다. 한편으로는 비교적 간단한 시공 프로젝트에만 관여하는 업체들이 급증하면서, 노동자들은 잘못된 관행에 맞설 힘이 없다는 생각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가장 불편한 사실은 그렇게 복잡한 공급망에서 수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있었음에도 그 누구도 잘못된 관행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이 아닌지를 생각해 보라는 요청을 받거나 자신의 행위 때문에 일어난 결과를 마주했을 때 한결같이 몹시 난처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증인 대부분은 스스로가 전체적인 그림을 파악할 수 없는, 그저 기다란 사슬의 한 부분인 것처럼 여겼고, 그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언젠가 우리 시대의 폭력은 거리(distance)에 의해 규정된다고 서술했다. 저널리스트인 대니얼 트릴링(Daniel Trilling)은 바우만의 생각을 요약한 에서, 그것이 단지 물리적인 거리만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연관되어 있지만 그 누구도 연관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복잡한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적 거리와 심리적 거리도 의미한다. 바우만이 보기에 이것은 세 가지의 층위에서 작동한다. 첫 번째로, (이 시스템 안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실행자들의 기다란 사슬’에 의해 수행된다. 그 사슬 안에서 사람들은 명령의 지시자이자 수신자이다. 두 번째로, 여기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좁은 부분에만) 초점이 맞춰진 특정한 업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그 시스템 내부의 사람들에게는 온전한 인간으로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바우만은 이렇게 말했다. ‘현대성은 사람들을 더욱 잔인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잔인한 일들이 잔인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수행될 수 있는 방식을 만들어 냈을 뿐이다.’”

이 글은 그렌펠 사고의 조사에 대한 완전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사의 대상이 된 모든 조치들이 전부 부주의하게 처리된 것은 아니었다. 중대한 직접적 책임을 짊어지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위험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바우만의 이론이 설명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조직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그런 일이 계속해서 일어날 이유에 대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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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금도 그렌펠 타워 화재, 맨체스터 아레나 폭탄 테러, 코로나19 팬데믹 등을 포함하여 영국에서는 모두 14개의 공개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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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대법관 직위이며, 상원에 소속된 종신 귀족 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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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밀레트의 부친은 피터 밀레트(Peter Millett) 법관 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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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연방의 저명한 변호사 중에서 영국의 군주가 임명하는 직위. Queen’s Counsel의 약자이며, 찰스 3세가 국왕이 된 현재는 King’s Counsel(KC)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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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긴급신고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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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소방대 최초의 여성 청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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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S(société par actions simplifiée)는 간이합자회사(simplified joint-stock company)를 의미한다. 유한회사(limited company)와 유사한 법인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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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외벽에 설치하는 고정식 클래딩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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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구(royal borough)의 지위를 가진 런던의 자치구이며, 첼시, 노팅힐, 켄싱턴 등의 부유한 지역들이 이곳에 속해 있다. 그렌펠 타워도 행정구역상으로는 여기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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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는 접경지나 변경, 변방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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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국제 자동차 경주에서 사용하는 국가 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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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또는 판매 권유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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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남자를 일컫는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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