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소송의 어머니

2024년 4월 8일, explained

화석 연료 회사에 기후 변화의 책임을 묻는 재판이 열렸다.

2020년 9월 8일 영국 런던에서 화석 연료 반대 시위가 열렸다. 환경 단체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의 회원들이 석유 회사 쉘의 로고 피켓과 ‘석유=죽음’ 배너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사진: Mike Kemp,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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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재판이 돌아왔다. 4월 2일 네덜란드 법원은 석유 회사 쉘이 제기한 항소의 심리를 시작했다. 앞서 2019년 네덜란드 환경 단체 ‘지구의 벗’은 쉘을 상대로 기후 소송을 제기했는데, 2021년 1심 법원은 쉘에 탄소 배출량의 45퍼센트를 줄이라고 판결했다. 쉘은 법원의 판결이 법적 근거가 없으며 회사의 에너지 전환 노력을 방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WHY NOW

지구의 벗과 쉘은 4월 2일부터 12일까지 변론을 진행한다. 올해 하반기에 항소심 판결이 나올 전망이다. 양측 모두 물러설 기색은 없다. 누가 패소하든 대법원까지 재판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은 향후 기업의 기후 책임에 관한 역사적인 선례가 될 것이다. 법원이 기후 대응의 중심에 섰다. 이번 재판의 경과와 쟁점을 살펴본다.



쉘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 회사다. 1907년 네덜란드의 로열 더치와 영국의 쉘이 합병하며 설립됐다. 1차 세계 대전 때 영국군에 연료를 공급하면서 성장했다. 합병 당시 회사 이름은 로열 더치 쉘(Royal Dutch Shell)이었는데, 2022년 쉘로 사명을 바꿨다. 70개국에 9만 4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원유 채굴부터 정제, 유통까지 아우르는 통합 석유 회사다.

기후 위기의 주범

국제 환경 단체 ‘지구의 벗’은 1854년부터 2010년까지 지구에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에 쉘이 2퍼센트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2018년 4월 지구의 벗 네덜란드 지부는 쉘에 온실가스 배출 제로 달성 등을 요구하면서 8주 안에 응하지 않으면 집단 소송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물론 쉘은 응하지 않았다. 이듬해 4월 지구의 벗은 쉘이 온실가스 배출 저감 의무를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쉘의 패소

2021년 네덜란드 법원은 쉘이 기후 변화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탄소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9년 수준 대비 45퍼센트 줄여야 한다고 명령했다. 재판부는 셀이 자체 배출뿐만 아니라 공급 회사의 탄소 배출에도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정부가 아닌 민간 기업에 기후 변화의 책임을 물은 첫 판결이었다. 기후 운동가들에게는 역사적 승리였다.

회사의 존폐 위기

항소심에서 쉘은 1심 판결대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려면 ‘과격한 조치’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회사가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자사가 탄소 배출을 줄여도 고객은 어차피 다른 회사의 화석 연료를 쓰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 또한 쉘은 기후 변화 노력의 필요성을 인식해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2021년 대비 15~20퍼센트 줄이려는 목표를 세웠고, 친환경 에너지 프로젝트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기후 대응 역행

지구의 벗은 쉘이 최근 가스 사업을 계속 성장시키기 위해 기후 목표를 포기했거나 약화했다고 주장한다. 최근 쉘은 2030년까지 판매하는 에너지 제품의 순탄소 집약도를 15~20퍼센트 줄이기로 했는데, 2021년에 세웠던 목표인 20퍼센트보다 후퇴했다는 것이다. 또 2035년까지 탄소 집약도를 45퍼센트 줄이겠다는 목표도 최근에 사라졌다. 지구의 벗은 쉘이 온실가스 배출 감소 목표를 축소해 기후 목표를 포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에너지 안보의 필요성

쉘은 에너지 안보의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의 에너지 위기와 에너지 안보가 정부의 우선순위가 됐다. 에너지 기업으로서 에너지 수요를 맞추려면 단기적으로 화석 연료의 역할이 있을 수밖에 없는 논리다. 쉘의 CEO 와엘 사완(Wael Sawan)은 “세계는 기후 변화라는 시급한 과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 재난의 책임

지구의 벗은 1심 이후 3년간 기후 재난이 더 잦아졌다고 주장한다. 폭염, 폭우, 홍수 같은 기후 재난이 변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후 재난은 부분적으로 쉘이 생산하는 석유와 가스를 연소해서 생기는 결과라는 것이다. 쉘은 향후 수십 년간 수백 개의 석유, 가스 프로젝트에 계속 투자할 계획이다. 지구의 벗은 쉘이 국제 기후 협약에 따라 행동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IT MATTERS

2021년 네덜란드 법원의 1심 판결은 “기후 소송의 어머니”였다. 법원이 기후 위기 대응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1심 판결 이후 세계 각국에서 화석 연료 기업을 상대로 비영리 단체가 모방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은 네덜란드와 쉘에만 국한하는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화석 연료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법원이 화석 연료 기업에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재생 에너지로 더 빨리 전환하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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