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은 언제 사라지나?

11월 16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스페인의 한 마을 전체가 매물이 됐다. 이 매력적인 도시는 마을이 아닌 관광지로 남으려 한다.

  • 스페인의 한 마을 ‘살토 데 카스트로(Salto de Castro)’가 26만 유로로 매각됐다.
  • 전 세계에서 마을과 공동체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 현대의 마을은 왜 사라질까? 마을이 사라지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BACKGROUND_ 살토 데 카스트로

포르투갈 국경에 접한 스페인의 도시인 살토 데 카스트로는 에너지 기업 ‘이베르두에로(Iberduero)’가 건설 노동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마을이다. 1989년, 카스트로 댐을 지키던 직원이 마을을 떠나게 되면서 이후 30년 동안 유령 마을로 남게 됐다. 살토 데 카스트로에는 교회, 막사, 학교와 버스 차고를 포함해 빨간 지붕의 44개 건물이 있다. 다만 없는 것은 사람이다.
RECIPE_ 관광 명소

아무도 살지 않는 마을이었지만 새로운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 한 남성은 살토 데 카스트로를 유명 관광지로 만들고자 매수했으나 2010년대 닥친 유럽 경제 위기로 인해 실패를 맛봤다. 2022년 11월, 이 마을은 3억 원의 매물로 한 부동산 사이트에 등장했다. 마을을 매물로 내놓은 주인은 “좋지 않은 경험을 하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NUMBER_ 12.5명

2014년 스페인 통계청의 추산에 따르면 스페인에는 최소 2900곳 이상의 마을이 비어있다. 현재 스페인 도시의 절반 이상은 12.5명 미만의 인구 밀도를 보인다. 갈리시아와 아스투리아스 등 스페인의 북서부 지역 절반 이상이 버려진 것으로 추정되며, 그 곳을 떠난 주민들은 더 큰 도시로 이동했다. 강원도의 인구 밀도는 평방킬로미터당 90명, 서울의 인구 밀도는 1만 5699명,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의 인구 밀도는 5375명이다. 버려진 마을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관광지를 꿈꾸거나 그저 남은 채로 낡아 가는 수밖에 없었다. 살토 데 카스트로에 임시 매매 계약을 체결한 건축업자 오스카 토레스(Oscar Torres)는 매력적인 가격을 강조하며 이 공간을 관광지로 재건할 것이라 밝혔다. 살토 데 카스트로는 결국 마을이 아닌 3억 원의 테마파크로 남게 됐다.
ANALYSIS_ 마을의 조건

헐값의 텅 빈 도시는 빠르게 관광 상품으로 전락한다. 마을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을은 언제 사라지게 될까? 우리는 마을을 구성하는 충분조건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필요조건을 상상해볼 수는 있다. 마을의 구성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간이 필요하다. 몇몇 물리학자가 정의하는 공간은 입자가 움직이고 관계할 수 있는 범위였다.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상호작용하는 공동체가 없다면 마을은 금방 가치를 잃었다. 이때 말하는 공동체의 움직임은 민주적 가치와도 밀접히 연결된다. 간디는 영국 독립 시기의 인도를 마을의 집합으로 바라봤다. 당시 인도 전역에는 70만 개의 마을이 있었고 이들은 느슨하게 상호작용하며 협력했다. 1962년 간행된 책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는 마을 자치를 꿈꾼 간디의 철학을 드러낸다. 마을은 넓을 필요도, 멋질 필요도 없다. 공간과 공동체, 상호작용만 있다면 마을은 언제든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반면 이들 중 하나라도 없어진다면 결국 마을은 해체되고 유령만이 떠도는 도시가 남는다. 영국의 건축평론가 로완 무어(Rowan Moore)는 건축과 욕망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대화는 구덩이 하나 파 놓는다고 시작되기에는 너무 미묘하고, 유동적이고, 알 수 없게 일어난다.”
REFERENCE_ 사라지는 마을

인간 역사는 마을의 구성과 해체의 역사였다.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유령 도시 ‘프리피야트’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전 5만 명의 주민이 상호작용하는 번화한 마을이었다. 사고 이후 비어버린 건 공간만이 아니었다. 마을 전체는 시대를 대표하는 트라우마로 남았고, 그 곳에서 구성된 다양한 공동체는 뿔뿔이 흩어졌다. 중국에서는 경기 침체로 인해 도시가 미처 마을로 발전하지 못했다. 갑작스레 닥친 부동산 붕괴 조짐으로 인해 중국 동북지역의 톄링시는 미완공 상태의 아파트만이 남아 미처 마을이 되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마을의 소멸은 현재 진행 중이다. 부산은 2021년을 기점으로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20퍼센트가 넘어가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부산 영도구의 신선초등학교는 재학생이 41명에 불과하다. 유일한 5학년이던 학생은 교육청의 방침에 따라 결국 전학을 택했다. 영도구의 소멸이 가속화되자 부산교육청은 영도구의 유일한 남자 공립 고등학교였던 부산남고를 강서구로 이전했다.
RISK_ 마을이 사라지면

경제적 이유, 인구통계학적 이유, 각종 사고와 같은 다양한 이유로 인해 현대의 마을과 마을 공동체는 유약해졌다. 영도구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한 번 사라지기 시작한 마을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황폐화된다. 지속이 어려워 보이는 마을에는 사회적 투자와 지원이 끊기기 시작하고 그 곳에 남은 작은 공동체는 해체를 지시 받는다. 떠난 이들이 번잡하게 모인 도시도 진정한 도시의 마을 공동체를 이루지는 못했다. 인구 밀도 1만 명에 이르는 서울시는 고독사 위험에 놓인 1인 가구를 12만 명으로 추산한다. 수많은 지방 정부는 취약계층 돌봄과 고독사 방지 대책으로 AI 챗봇을 말한다. 챗봇과 함께 살아가는 독거노인의 마을은 홀로 살아가는 작은 방 속에 갇힌다.
INSIGHT_ 베를린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이계수 교수는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의 사례를 통해 도시의 개념을 논했다. 1970년대 초부터 이어져온 크로이츠베르크의 주택 점거 운동은 도시 공동체를 건설을 목적으로 했다. 이때 주택 점거 운동을 통해 만들어진 도시 공동체는 “토착의 사회 구조와 이민자, 홈리스 혹은 정신 장애인과 같은 사회의 소수집단을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도시는 그 소유권자가 누구든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하는 공물(Commons)이기 때문이다. 상품이 된 도시는 돈이 없거나 힘이 없는 자를 마을 밖으로 내보낸다. 숱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에서 사회는 이를 목도했다. 마을로부터 배제된 이와 해체된 공동체는 결국 사회적 비용의 증가로 돌아온다. 마을이 튼튼해지면 마을의 사회적 경제 효과도 증대된다. 서울시의 마을 공동체 사업은 1000만 원의 투입에서 5600만 원의 효과를 냈다. 뿐만 아니다. 이웃과의 상호작용이 증대되면 돌봄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도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관계와 시간을 꿈꿀 수 있다. 몇몇 문제는 개인과 마을 공동체가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마을이 해체되면 그 모든 문제가 사회적 복지 비용으로 편입된다.
FORESIGHT_ 피지

오세아니아의 섬나라 피지 공화국은 기후 위기로 인해 수십 개의 마을이 곧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다. 기후 위기로 인한 커뮤니티 해체를 막기 위해 피지는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국가 전체를 이전할 계획을 세웠다. 마을을 옮기는 것은 사람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공간을 찾아야 하고 사회 기반 시설을 재구성해야 하며 커뮤니티를 이어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피지가 마주한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안전한 곳을 찾아야 한다. 마을은 결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힘들게 구성된 마을은 더욱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마을을 향한 위협과 공동체의 해체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결국 비용의 문제로 도시를 평가할 것이다. 도시 전체가 부동산 상품이 되어버린 시대는 디스토피아와 더 가깝다.


기후 위기로 인해 마을을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탄소 전쟁이 만든 난민〉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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