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위험한 레트로
2화

전자 제품 시장의 갈라파고스화

기울어진 스마트폰 운동장


모노즈쿠리(monozukuri, ものづくり). 과거 일본이 자랑했던 ‘첨단 기술’은 장인 정신의 혼을 담아 정밀하게 작업한다는 이 모노즈쿠리 정신의 결과였다. 반면 오늘날 첨단 기술은 그 의미가 변모했다. 데이터를 디지털화하고 손쉽게 옮기는 정보 통신, 말 그대로 IT 기술과 인프라가 핵심이다. 그런데 일본은 과거의 장인 정신을 고수하며 글로벌 흐름에 대응하기를 포기한 듯, 내수 시장에서 연명하는 업체들이 점점 증가해 왔다. 이러한 일본식 갈라파고스 현상(galapagos syndrome)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제품이 바로 휴대폰이다.

세계 전자 제품 시장엔 결국 삼성과 애플만 남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삼성전자는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잘 된다는 애니콜을 내세워 당시 국내 시장을 장악하던 모토로라를 멀찌감치 앞지르고는 세계 시장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해 왔다. 모토로라보다 기술이나 기능 면에서 한참 뒤처진 삼성은 1995년 1월, 불량 휴대폰 15만여 대를 수거한 후 경북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 이를 전부 불태워 버리는 ‘애니콜 화형식’을 치렀다. 무선 전화기 불량률이 무려 11.8퍼센트에 이르던 심각한 상황에서 ‘화형식’은 대중들에게 삼성의 철저한 자기반성인 동시에 전 임직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굿 퍼포먼스였다. 돈으로 계산하면 500억 원에 이르는 휴대폰이 잿더미로 변했지만, 이를 계기로 삼성은 재도약하며 국내 휴대폰 시장의 선두에 오르게 된다.

이후 양보다 질 위주의 경영을 채택한 삼성은 2006년 10월, 드디어 세계 최초로 1000만 화소의 디지털 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SCH-B600 모델을 출시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80만 원이 넘는 고가의 휴대폰으로 획기적인 광학 줌을 지원했고 ISO나 화이트 밸런스, 측광 방식 등도 직접 설정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당시 디지털 카메라는 일본이 전자 기술과 광학 기술, 두 가지 첨단 산업을 중심으로 선도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발 주자는 기술 트렌드를 따라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선두 주자였던 일본조차 휴대폰에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접목할 생각은 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기존 기술을 응용해 휴대폰 시장에 접목하려는 노력은 소극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일본 스마트폰의 글로벌 점유율은 거의 전멸 상태다. 내수용 스마트폰 이상의 가치를 갖기 힘들고,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갤럭시가 차지하고 남은 점유율을 얻고자 경쟁하는 정도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 스마트폰 기업 상위 3사, 소니·FCNT·샤프는 내수 시장에서 분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니의 엑스페리아폰이다. 2001년 10월 1일, 일본의 소니와 스웨덴의 에릭슨(Ericsson)은 각각 휴대 전화 사업부를 분리하고 50:50으로 합작한 새로운 브랜드를 출범시켰다. 이것이 바로 소니의 에릭슨이다. 음향 및 영상 기기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던 소니와 휴대 전화 판매량 세계 3위를 차지하던 에릭슨이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 휴대 전화 사업부를 통합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합병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채 삼성전자와 LG전자에도 뒤지며 2009년 세계 시장 점유율은 5퍼센트대로 추락했고, 2010년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후에는 세계 6위권으로 밀리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2011년, 소니는 에릭슨의 상표를 포기하는 대가로 잔여 지분 50퍼센트에 해당하는 10억 5000만 유로에 에릭슨을 인수하고 휴대 전화 제품에서 소니 단독 상표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엑스페리아는 일본 국내의 소니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다. 2020년 10월 ‘엑스페리아5 Ⅱ’를, 그리고 2022년 5월 ‘엑스페리아1 Ⅳ’를 출시하며 내수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고가라는 단점으로 해외 시장에서는 대중의 관심을 거의 얻지 못한 상황이다. 더구나 신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그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주요 부품은 모두 ‘메이드 인 코리아’다. 스마트폰용 메모리는 SK하이닉스, 저장 장치인 UFS는 삼성전자, 고화질 디스플레이는 LG전자의 제품이다. 즉 일본의 스마트폰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한국 기업이 돈을 버는 구조다. 한국 시장에서도 소니는 2018년 10월 ‘엑스페리아 XZ3’ 출시를 마지막으로 신제품을 더 내지 못하고 철수했다. 간혹 일본 직구로 엑스페리아를 구매하는 마니아들도 있으나 휴대폰 등록 절차가 번거롭고 삼성과 애플을 뛰어넘을 정도의 매력을 갖추진 못해 소매 매출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음으로 FCNT의 애로우폰이 있다. 2009년을 기점으로 일본 휴대폰 시장이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하는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는데도 현 FCNT의 전신인 후지츠(富士通)는 여전히 피처폰에 집중했다. 2015년에는 세계 최초의 홍채 인식 휴대폰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한 결과 2017년 8월 휴대폰 사업을 전면 매각하고는 종료 절차에 돌입하며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된 것이다. 이후 2021년 4월, 후지츠로부터 완전하게 독립한 FCNT가 스마트폰 ‘Arrow We’ 시리즈를 판매하고 있으나 판매량이 저조하며 피처폰도 여전히 함께 취급하고 있다.

마지막은 샤프의 아쿠오스폰이다. 시초는 샤프의 전자책 단말기이자 전자책 서비스였던 갈라파고스(Galapagos)라는 브랜드였다. 2010년 7월 20일 샤프가 전자책 분야에 진출했고 동년 9월 27일에 구체적인 제품을 발표했지만, 종이를 향한 일본인들의 사랑 탓에 전자책 단말기 보급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판매가 부진하자 샤프는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태블릿 컴퓨터 사업으로 방향을 변경했다. 갈라파고스를 론칭할 당시 샤프에는 삼성 갤럭시나 소니 엑스페리아 같은 자체 브랜드가 없었다. 아쿠오스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해 기존 피처폰 형태의 휴대폰을 판매했지만, 과거 스카이(SKY)로 대변되는 우리나라의 팬택(Pantech)처럼 내수 시장 중심으로 판매되다 보니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진 못한 것이다. 이후 샤프는 2021년 6월 아쿠오스 R6를 출시하며 내수 시장에서 인기를 얻은 바 있으나, 실은 2016년 대만 홍하이(鴻海) 그룹의 폭스콘(Foxconn)에 인수됐다는 점에서 엄밀히 말하면 샤프를 더 이상 일본 기업으로 보긴 어렵다.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일본 스마트폰 시장의 휴대폰 출하 대수를 살펴보면 스마트폰은 3275.7만 대, 피처폰은 235.3만 대가 팔렸다. 애플은 9년 연속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고, 2위는 샤프였지만 홍하이에 인수된 후로는 기존 고객을 제외하고 신규 구매자들은 이제 애플이나 삼성으로 넘어가는 추세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 휴대폰 시장 점유율 3위에 머물렀던 삼성은 현재 2위로 올라섰다. 다만 한국 브랜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다 보니 삼성 로고는 제거하고 ‘갤럭시’라는 브랜드를 부각해서 팔고 있다. 아쉬울 필요는 없는 것이, 일본 언론에선 갤럭시가 삼성의 브랜드라는 것을 보도하고 있어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이 사실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2022년 4월 삼성전자가 일본에서 출시한 갤럭시 S22 시리즈가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이제는 소니(7.5퍼센트)와 샤프(9.2퍼센트)를 제치고, 1위인 애플에 이어 13퍼센트를 넘는 점유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점유율은 계속해서 올라가는 추세인데, 그 이유는 일본인들이 고가의 애플 제품을 사기는 부담스럽지만 중국제는 쓰기 싫은 상황에서 가성비 좋은 갤럭시를 선택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차는 것과 같은 일본 스마트폰 기업은 어떤 행보를 보일까.

 

이노베이션 딜레마


그렇다면 한때 휴대폰 시장을 선도했던 일본은 왜 글로벌 시장에서 밀린 것일까? 전 세계 최초로 휴대폰에서 인터넷을 구동한 기업은 일본의 NTT 도코모다. 1999년 2월 NTT 도코모는 스마트폰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아이모드(i-mode)를 출하했는데, 당시 일본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필자 역시 NTT 도코모 휴대폰을 사용하며 하루하루 변하는 환율과 날씨 정보를 확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러나 애플의 아이폰이 시장에 등장하며 NTT 도코모는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해외에서는 WAP가 무선 인터넷 서비스의 표준이 됐지만, 아이모드는 국제적인 트렌드를 무시하고 독자적인 무선 인터넷 규격을 만들며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되는 전형적인 일본식 갈라파고스화를 겪은 것이다.

일본은 1억 2600만 인구의 튼튼하고 커다란 내수 시장을 갖춰 자국 업체들끼리 치열한 내수 경쟁을 벌인다. 그러다 보니 장인 정신을 가진 기술자들이 중심이 되어 기존 제품의 품질을 개선해 신제품을 내놓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섬나라이다 보니 국경 바로 넘어 일본을 기술적으로 위협할 주변국이 없다. 그래서 1등만이 살아남는 가혹한 환경을 만들기보다는 시장에서도 화(和)를 중시하며 상호 공존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상당히 까다로운 일본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내수 시장 1등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하면서 ‘메이드 인 재팬’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그 결과가 다시 내수 시장에서 신뢰도를 높이며 또 한 번 신제품 개발에 돌입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고도 성장기 일본의 화려했던 선순환 법칙이 일본 전자 업계의 악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글로벌 시장이 빠른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시도하는 환경에서도, 일본은 튼튼한 내수 시장이 떠받쳐 주는 덕분에 매출이 눈에 띄게 감소하지 않았고 기업들은 당장 체감할 만큼의 위기를 느끼지 못했다. 그 결과 스마트폰이 처음 대중화될 때 애플이 일본 시장을 선점했던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현재 일본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은 애플 제품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혹시 디지털 전환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감지했다 할지라도, 여전히 장인 정신으로 무장한 기술자들은 아날로그 형식을 버리지 않은 채 어떻게든 기존 기술을 개량해서 대응해 보려는 문화를 지속했을 것이다.

오히려 축적된 기술이 별로 없던 한국 기업은 기존 기술을 개선하는 대신 새로운 기술로 대응하며 일본이 내주는 시장을 차지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과거에는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어떤 기술이든 새롭게 흡수하고 적응해야 했기 때문에, 차라리 일본 기술을 그대로 차용해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래서 쌍용중공업이 일본 얀마(Yanmar)로부터 디젤 엔진에 관한 기술을, 삼성이 샤프로부터 IC 제조 기술을, 롯데가 캐논으로부터 복사기 기술을, 현대전자가 소니로부터 VTR 제조 기술을 전수받았던 것이다.

하버드대학 비즈니스 스쿨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 교수의 이노베이션 딜레마(Innovation Dilemma) 이론은 후발 기업이 선발 기업을 제치는 상황을 설명한다.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시장을 선도하지만 후발 주자에게 따라잡히는 상황, 예를 들어 전자 제품과 반도체 부문에서 선두 주자였던 일본이 한국과 대만의 추격에 따라잡힌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 기업들은 고장이 잘 나지 않는 디램(DRAM) 기술로 미국과 유럽 기업들을 제치고 반도체 1위 대국으로 부상하면서 고성능, 고품질의 디램만을 고수했으나, PC가 대량 공급되며 시장은 고품질 디램보다는 저가, 저품질의 상품을 요구하는 추세로 전환했다. 여전히 고품질을 추구한 일본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시장에서 물러난 것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첫 출시 제품에 부끄러운 것(하자)이 없다면, 그건 출시가 늦어버렸다는 증거다.”

실리콘 밸리에서 당연시되는 말이다. 그런데 일본은 부끄러운 것이 있으면 절대 시장에 내놓지 않으려 한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좋으니 완벽한 제품을 출시하길 원한다. 기술력에 자부심이 넘칠지는 몰라도 시장 경쟁력에선 뒤처지는 것, 그 결과가 지금 일본에서 나타나고 있다.

 

가전 왕국, 막을 내리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일본의 가전제품은 그 명성을 떨쳤다. 특히 패전으로 잿더미가 된 일본이 20여 년 만인 1967년,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데에는 전자 산업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1951년 말 미일안전보장조약 이후 안보에 관해서는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한편, 전자·기계 제품을 수출해 경제 발전에 올인하는 전략을 내세워 ‘가전 왕국’, ‘제조업 강국’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중국 제품이 아이들 장난감에서 IT 제품에 이르기까지 미국 시장을 장악했듯, 과거 일본 전자 산업은 1960~ 1970년대에 걸쳐 미국 전자 부품 시장의 70~80퍼센트를 점유하는 고도 성장을 이뤄냈다. 일제 전자 제품이 미국을 장악하고 전 세계 부동의 시장 점유율 1위를 굳히던 1979년 당시, 미국 하버드대학의 에즈라 보겔(Ezra Vogel) 교수는 《Japan as No.1》이라는 책을 발간하며 일본식 기업 경영을 극찬했으며 미국 어린이들은 소니가 미국 브랜드인 줄 알고 자랄 정도였다. 미국의 공업계가 “일본이 미국을 지배하고 있다”며 경계할 정도로 일본 부품 없이는 메이드 인 USA가 불가하던 때였다. 이러한 분위기는 1980년대까지 이어졌고,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호황기를 맞으며 일본은 대형 컴퓨터용 디램 부분에서 세계 시장의 80퍼센트를 점유했다. 1989년 NEC, 히타치, 토시바 등의 전자 기업들이 세계 반도체 시장 매출 상위 3개사에 이름을 올렸고 1990년까지만 해도 세계 상위 10개 기업중 6개가 일본 회사일 정도로 세계 반도체 시장을 휩쓸었다. 1970년대부터 시작한 일본의 가전 열풍은 30~40년간 이어졌고, 일본 브랜드는 사실상 세계 가전 시장의 전부라 불릴 만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어느 가전 매장에서도 일본의 제품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일본 반도체 기업은 TV 시장이 황금기를 맞을 때 급격히 성장했지만, PC 시대에 접어들면서 주도권을 미국 인텔에게 넘겨줬다. 일본 쇠락의 신호를 가장 먼저 보낸 기업은 샤프였다. 일본 최초로 흑백 TV를 개발하고 세계 최초로 14인치 LCD TV도 출시하는 등 압도적인 원천 기술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이 아닌 개선에만 머문 결과, 대만의 홍하이에 매각됐다. 소니 역시 샤프에서 개발했던 LCD 기술을 애써 무시하며 TV 시장이 PDP와 LCD 기술로 넘어가는 단계에서도 브라운관 TV를 고집했다. 파나소닉도 비슷했다. 대표 제품으로 TV를 내세우며 오직 가전의 길만 걷겠다 선포했고, 더 이상 디지털 기술이나 네트워크 기술을 출시하지 않아 IT 기업과 승부할 능력이 없어진 것이다. 일본 가전을 대표하던 산요(현 AQUA)가 2011년 중국의 하이얼 그룹(Haier Group)에 인수됐고, NEC의 디스플레이 사업도 홍하이에 인수됐다. 당시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었던 토시바 또한 TV 사업 부분은 중국의 하이센스에, PC 사업은 홍하이에 매각하며 일본 가전 시장은 막을 내리게 됐다. 이제는 파나소닉, 소니 등의 가전제품이 중국의 하이얼에도 밀리면서 가전제품 매장의 뒤편에서나 간신히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쇠락의 원인은 지나친 완벽주의에서 기인한 과잉 품질과 기술 신앙이었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품질은 좋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최고의 품질을 위해 혼신을 다하는 모노즈쿠리 정신이 왜 문제인가?”

중요한 것은 시대의 수요였다. 일본의 전자 기업들은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최고 성능의 제품을 만들었지만, 시장이 원했던 것은 빠른 주기 변화에 대응할 가성비 제품이었다. 고품질·고성능을 추구하던 신념이 판매 전략의 유연성을 떨어뜨렸고, 품질에 집중하는 반면 고객은 챙기지 못한 것이 성장의 걸림돌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의 LG전자나 삼성전자는 어떻게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가전 업체의 자리를 차지했나? 우선 소비자 심리를 정확하게 읽고 이를 제품 기능에 반영하는 ‘뚝심 경영’의 역할이 컸다. LG는 기술력만을 고집하며 소비자들의 브랜드 충성도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 무엇인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았다. 대표적으로 의류 관리기 ‘스타일러’가 있다. 2017년 일본 시장에 진출한 스타일러는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한 일본의 특수성을 고려해, 한국 제품에는 없는 화분증 알레르기 모드를 추가하는 현지화 전략으로 까다로운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본 가전 업체는 의류 관리기라는 블루오션에 뛰어들고 싶어도 1000여 건이 넘는 LG의 스팀 특허를 피해 가는 것이 어렵기에 섣불리 시장에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끓는 물에서 나오는 스팀을 이용해 탈취와 살균, 의류 주름 완화의 효과를 지닌 트루스팀(TrueSteam) 기술은 현재 일본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트롬 스타일러에도 적용되고 있다. LG전자가 현지 수요를 반영한 특허 기술을 발명해, 가전 업체의 벤츠로 불리는 유럽의 밀레(Miele)의 로봇 청소기 생산사로 발탁됐다는 소식도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다.

기술력도 큰 역할을 했다. 한국 업체들은 브라운관에서 일본과의 경쟁에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빠르게 판단하고는 LCD라는 차세대 기술을 준비하며 판도를 바꿨다. 그 결과 2022년 6월 기준 LG전자의 OLED TV ‘올레드 에보’와 ‘올레드 에보 갤러리 에디션’은 일본 TV 시장에서 토시바를 제치고 점유율 두 자릿수인 12.6퍼센트로 선방하고 있다. 한때 소니의 트리니트론 TV는 삼성이나 LG의 브라운관 TV보다 여섯 배나 선명한 화질을 자랑하던 글로벌 시장의 독보적인 베스트셀러였다. 그러나 브라운관에서 PDP, LCD 시대가 열리는 트렌드를 읽지 못해 힘없이 무너져 버렸다. 현재 전 세계 TV 시장의 매출 기준 점유율은 삼성전자와 LG전자를 합친 국내 업체가 5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3위인 중국의 TCL(8.7퍼센트), 5위인 일본의 소니(7.4퍼센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나간 수치다.[1]

또한 트렌드에 충실했다. 삼성의 경우 개발 부서와 양산 부서 간의 이동이 자유로우며 수백여 명의 전임 마케터가 현지 시장에서 어떤 반도체를 무슨 용도로 만들면 좋을지에 대한 정보를 끊임없이 팀에 보고했다. 일본의 오랜 경쟁사였던 미국의 인텔 또한 두 부서가 긴밀히 협업하도록 대우해 주는 동시에,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 인센티브를 없애는 구조를 통해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가격의 제품을 내놓았다. 반면 일본은 기술력을 신격화하는 개발 부서가 신제품을 제조하는 양산 부서보다 훨씬 우대받는 환경을 고수해 왔고, 고품질 제품이 수요를 창출할 것이라는 자신감 속에서 서서히 몰락했다.

지금 일본의 가전제품 기업들은 신제품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 축소 또는 철수를 발표할 정도로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기술을 예술(art)로 대하는 일본과, 기술을 시장(market)으로 보는 한국의 차이다. 휴대폰이 나오기 직전인 1990년대 유행했던 ‘삐삐’는 2019년에야 서비스를 중단했다. 한국이 아닌, 일본 이야기다.

 

한일 반도체 추월전


오늘날 반도체는 단순히 기술의 의미를 넘어 전략적 무기로 자리 잡고 있다. 코로나19의 유행 이후 전자 기기, 디지털 인프라의 코어 부품으로서 수요가 계속 증가한 것은 물론, 5G를 비롯해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 주행 등 미래 기술의 핵심은 모두 반도체 기술에 있다. 미중 패권 다툼으로 전 세계적인 글로벌공급망에 혼란이 가중되며 현재 주요 선진국들은 반도체를 국가 안보 차원의 관리 사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 또한 반도체 기술이 자국 안보와 직결된 전략 물자라는 점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은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양적 성장에서 탈피하고 본격적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1983년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이 도쿄 선언 후 1986년 12월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인수하며 본격화했다. 정부의 반도체 공업 육성 계획을 통해 지원책을 마련했고, 이후 일본과 미국에 이어 한국은 반도체 생산 BIG 3 국가로 성장했다. 반도체 수출은 1977년 3억 달러에서 2021년 1313억 달러로 연평균 15퍼센트 증가했으며 동기간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퍼센트에서 19.7퍼센트로 여섯 배 이상 상승했다. 이때 반도체 산업은 IMF 국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 어떤 산업 분야보다도 크게 기여했으며, 지금은 메모리에 편중된 생산 구조에서 벗어나 비메모리 개발 전략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 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 세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며 최첨단 기술 개발에 몰두했다.[2] 그러나 1990년대 초부터 한국에 밀리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일본의 기술력이 뒤처져서가 아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일본의 기술력은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1990년대 초반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이라는 장기 불황이 이어지고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 시기를 놓치며 일본 국내 기업들의 비즈니스가 축소됐던 것이다. 그 사이 한국, 중국, 대만은 연구·개발뿐만 아니라 대규모 조성금과 감세 정책 등의 장기 설비 투자로 시장 점유율을 높여 갔다. 다음 페이지의 표는 미일반도체협정 이후인 1987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의 변화 추이를 나타낸다.
세계 우위를 점하던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쇠퇴한 요인에 대해서는 분야마다 여러 갈래의 분석이 있었으나, 가장 최근의 분석으로 2021년 6월 일본의 경제산업성은 다음 세 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첫째, 미일 무역 마찰에 따른 메모리 시장의 경쟁 실패다. 1980년대 전 세계를 석권했던 일본의 반도체 제조사들은 1986년 9월 미일반도체협정에 따라 무역 규제가 강화되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후 1990년대 반도체 중심이 메모리(DRAM)에서 로직(CPU)으로 변하는 조류를 따라가지 못했다.

둘째, 설계와 제조의 수평 분리에 실패한 탓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로직의 설계 및 제조가 수직 통합형에서 오픈 아키텍처(ARM)를 이용한 수평 분리형으로 조류가 바뀌었지만, 일본 반도체 업체들은 전기 및 정보 통신 기기의 경쟁력을 잃고 반도체 제조업이 분리되는 난항을 겪었다.

셋째, 디지털 산업화에 뒤처졌다. 21세기 들어 PC, 인터넷, 스마트폰의 보급 등 많은 시장이 디지털 전환을 겪었지만, 일본은 국내 디지털 투자가 늦어지면서 반도체 산업 체계를 정비하지 못한 채 현상 유지에 머물렀고 첨단 반도체는 해외 수입에 의존해 왔다.

그러나 경제산업성의 분석 외에 다른 요인도 있다. 시대의 변화에 둔감했다. 가격 대비 품질을 계산하는 시장 추이와 달리, 일본 기술자들은 고도의 품질을 우선적으로 고집했다. 물건 하나를 구매하면 25년 보증 기간을 약속할 정도로 엄격한 품질을 추구하다 보니 판매가가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일본은 한때 대형 컴퓨터용 디램 시장에서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의 기술력을 자랑하면서 전 세계 디램 시장의 80퍼센트를 차지했다. 그런데 가족이 한데 모여 TV를 보고 웃던 시대가 저물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PC를 사용하는 시대로 바뀌는 현상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반대로 한국 업체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수율뿐 아니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장기간 보증과 고품질을 자랑하는 일본의 고가 전략과는 달리, 한국은 3년 보증 PC용 디램을 값싸게 내놓으면서 1998년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지금이야 만만한 부품으로 취급받고 있지만, 당시의 디램은 메인 프레임의 성능을 결정짓는 핵심 부품이자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고급 부품이었다. 그런데 한국산 디램은 비교적 저렴해 쉽게 구할 수 있고, 본체 내 슬롯에 끼우기만 하면 즉각적인 성능 향상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디램 설계의 핵심은 스택(stack) 공법이냐 트렌치(trench) 공법이냐의 문제인데, 거칠게 말하자면 불량이 많은 대신 단순하거나, 아니면 복잡한 대신 완벽하거나의 차이다. 이 차이가 한국과 일본 반도체 업계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당시 스택 공법을 채택한 삼성은 디램을 저렴한 가격에 빠르게 생산할 수 있었다. 반면 트렌치 공법을 사용한 일본은 생산력 부문에서 삼성과의 출혈 경쟁에 뒤처지며 하나둘 무너졌다. 성능과 수명을 내세우며 전 세계 1위였던 일본의 오랜 방식을 꺾고, 수율과 가격을 선택한 결과 한국 기업은 현재까지도 디램을 가장 많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낸드 플래시(NAND Flash)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낸드 플래시는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비휘발성 메모리 반도체로,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셀을 쌓는 단수에 따라 기술 수준이 나뉜다. 적층 기술에 있어 단수가 높아질수록 더 저렴한 비용으로 고용량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국내외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은 3D 적층 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적용한 제품을 양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적층 기술은 기본 저장 단위인 셀을 수평이 아닌 수직으로 쌓아 올리는 공법을 말하는데, 한국의 기술력이 두각을 보인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업계 1위인 삼성전자는 싱글 스택으로 100단을 쌓아 올리는 기술력을 갖춘 세계 유일 기업이다. 업계 3위인 하이닉스 또한 176단 512기가비트 낸드 플래시를 개발했으며 업계 최고 수준의 넷다이(Net Die・웨이퍼당 생산 가능한 칩 수)를 확보했다. 한국 기업들이 하드웨어 부문 반도체 기술력의 정상에 설 수 있던 것은 일본 디램 시장보다 시대를 읽는 눈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국이 모든 반도체 분야를 선도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시장 점유율 70퍼센트를 차지하는 메모리 분야와 달리,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두뇌 격에 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는 시장 영향력이 아직 미미하다. 특히 반도체의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fabless) 시장 점유율은 2021년 기준 일본과 비슷하게 1퍼센트에 불과한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 같은 선진국은 이미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 및 인프라에 상당한 규모로 지원하고 있다. 이에 일본도 반도체 및 디지털 산업에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주로 민간 주도로 진행돼 왔지만, 이제는 정부의 주도하에 제조 장비 및 소재 산업의 강점을 살리고 로직 반도체의 양산화를 위해 파운드리의 국내 입지를 다지는 전략을 취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슈퍼컴퓨터 등에 사용하는 로직 반도체는 디지털 경제 사회를 지탱하는 디바이스이자 한 국가의 산업 경쟁력을 쥐고 있는 사회 경제의 중추계다. 일본은 로직 반도체의 경우 공장 수에서는 현재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제조 시설이 노후화했고, 메모리, 센서, 파워 반도체 등에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에 일본은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 업체인 대만의 TSMC와 일본 소니의 반도체 자회사인 소니반도체솔루션의 합작 회사 JASM(Japan Advanced Semiconductor Manufacturing)을 만들고 지금 구마모토현(熊本県)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 중에 있다. 최근엔 일본 대기업 8개사가 첨단 반도체 회사를 공동 설립하고, 여기에 일본 정부는 700억 엔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며 반도체 주권 경쟁에 본격 뛰어들었다.[3] 여덟 개 회사에는 도요타와 소니, 키옥시아, 덴소, NEC를 비롯한 다섯 개 대기업과 소프트뱅크로 대표되는 IT 기업, 미츠비시UFJ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사, 그리고 NTT 이동 통신사까지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 기업은 공동 출자를 통해 래피더스(Rapidus)라는 반도체 기업을 설립할 예정이다. 다만 양산 시점을 2027년으로 잡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은 아직 첨단 반도체 개발과 양산에 있어선 한국에 뒤쳐져 있는 상황이다. 한국 또한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정부 차원의 인재 양성과 기업의 연구·개발을 지속한다면, 일본 반도체 산업이 K-반도체를 추월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1]
송충현, 〈삼성-LG, 세계 TV시장 점유율 50%대… 1년만에 회복〉, 《동아일보》, 2022. 5. 25.
[2]
1988년 일본의 반도체 점유율은 50.3퍼센트로 전 세계 매출 상위 10대 기업 중 6개가 일본 기업이었으나, 이후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을 잃으며 현재는 10퍼센트의 점유율(50조 엔 규모)로 떨어졌다.
[3]
中山淳史, 〈トヨタやNTTが出資次世代半導体で新会社、国内生産へ〉, 《일본경제신문》, 2022.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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