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박사하기
2화

내가 경험한 대학원

문제를 직면하다


강수영 저는 대학원에 입학한 2015년에 학부에서의 인연으로 이우창 선생님을 만났고, 지금까지 서울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자면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대학원 총학생회가 함께 한 〈201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조사보고서〉[1] 작업에 참여한 것입니다. 조사에 참여하면서 대학원의 실태를 들여다보게 됐어요. 성폭력, 금전적 어려움과 열악한 노동 환경, 교육 및 연구 제도의 미비, 건강 상태 악화 등 모두가 잘 아시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문제들이 나왔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대학원생 개인이나 학과마다 상황이 정말 다르고,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창구도 거의 없는데요. 그럴수록 점처럼 흩어진 상황들을 건져 내 유형화하고 알리는 작업이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2017년에는 총학생회 활동으로 연결 고리가 생겨서 대학원생노조 초기 멤버로 활동했고, 2018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학부까지 범위를 넓힌 성폭력, 인권 침해 실태 조사의 문항 설계에 참여했습니다. 석사 과정을 졸업한 이후에는 ‘학생 같지만 학생이 아닌’ 상태가 되면서 느슨하게 활동해 왔는데요. 생활을 꾸려 가고 연구만 하기에도 벅찬 환경 속에서 목소리 내고 연대하시는 선생님들 보면서 늘 힘을 받아 왔습니다.

김보경 저는 작년 여름, 동료들과 뜻을 모아 제가 속한 학내 전공의 대학원생 자치 기구 발족을 준비하고 발족 후에 운영 위원으로 약 1년간 활동했습니다. 자치 기구를 구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교내외에서 대학원생 인권 이슈가 거듭 불거지는 상황에서 대학원생이 중심이 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구가 부족하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제가 학부를 졸업할 즈음부터 석사 과정을 밟던 시기, 인문대학 학생회가 성폭력 문제로 몇 차례 연속으로 와해됐던 정황 때문에 꽤 오래 학생 자치 기구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그러다 국문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원내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할 때, 대학원생이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루트는커녕 대학원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표하는 공식적인 대학원생 기구가 학과에 없다는 것에 갑갑함을 느꼈습니다.

보통 대학원생 권리 침해 문제가 발생할 때, 그 문제가 사법 절차 단계로 넘어가고 나면 학교나 학과 측에서의 사후 처리는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당 문제가 발생하는 데 일조한 학내의 구조적 문제는 거의 방기된다는 것도 큰 문제인데요. 이러한 점들을 개선하고자 자치회를 꾸리는 과정에서 서울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에 참여하고 있는 동료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 과정에서 이우창 선생님과도 인연이 닿았습니다. 으레 그러하듯 없던 것을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준비 단계에서 여러 동료들이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속도를 내서 자치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자치회에서는 크게 학과 내 연구·교육 제도 개선, 대학원생의 권리 보장 및 복지 증진, 대학원생 간 교류 기회 확대와 같은 사안을 다룹니다.

저희가 회칙을 짤 때 서울대학교에서 만든 대학원생 인권 헌장 및 인권 지침을 많이 참조했습니다. 이 인권 헌장 및 지침은 여기 계신 유현미 선생님을 비롯해서 인권센터 연구원이나 교수진, 대학원 총학생회, 학생회 등 여러 교내 구성원들이 협력하여 마련된 것인데요. 학내에선 현재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놓고 일부 반대에 부딪혀 여전히 계류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국가 인권위나 교육부에서는 대학원생 권익 강화를 위한 연구와 관련 기구 설치에 관한 제언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만, 학내 의사 결정자가 교수로 편중되어 있고 그 권한이 막중한 상황에서 대학원생들의 권익 이슈는 부차가 되고 있다고 느끼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원생이 제도 정비 및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 다양성을 확보하는 구색 맞춤에 그치는 건 아닐지 고민이 듭니다. 물론 그 다양성조차 일부의 눈치를 보느라 확보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대학원의 위계적 문화


유현미 저는 우선 박사 과정 때 학과 대학원 자치회장을 하면서 구성원들과 함께 대학원 원우논집을 발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등재 학술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담론 공간을 열어 보고자 했던 시도입니다. 2012년 서울대학교가 성희롱‧성폭력 상담소를 인권센터로 개편할 때 처음 수행한 구성원 인권 실태 조사에 연구 보조원으로 참여한 경험도 있습니다. 당시 열악한 대학원생의 인권 침해 현실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교수 집에 개밥 주러 가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생’이란 자극적 헤드라인으로 주목을 받으며, 서울대학교 교수들의 큰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결과 보고서 공개가 어려워지기도 했죠. 해당 사건을 성찰과 소통 시도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일부의 극단적 사례라고, 문제를 사소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는 교수 사회의 반응에 조금 놀라고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2017년 H교수 갑질/성희롱 사건에 대응하는 학과 대학원 대책 위원회 일에 참여하면서, 대학원 총학생회나 대학원생노조 설립을 주도하는 분들과 자문, 회의 등을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3년 정도 전국대학원생노조 조합원으로 활동했고, 노조 성평등 강의를 맡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한국 대학 정책과 고등 교육 제도의 전반적 맥락 속에서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사고할 수 있게 되면서 관련 내용으로 박사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또한 앞서 김보경 선생님께서 언급해주신 〈대학원생 인권보호 지침에 관한 연구(2020년)〉에 참여해, 평등한 대학원 연구 환경 조성을 위한 가이드라인 개발에 함께했습니다. 2021년에는 대학원생 자치 활동의 일환으로 대학원생 성폭력 피해자, 조력자를 위한 사건 대응 지침 개발 연구에도 함께했고요.

저는 성적 괴롭힘 현상을 가해자 개인의 도덕적 일탈이기보다는 성차별적 조직 구조와 관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앞선 활동들을 통해 대학원 성폭력 사건이나 다양한 인권 침해 경험이 불평등한 학계 제도의 모순 속에 심화하고 있다는 교훈을 이끌어 낼 수 있었고, 노동과 젠더 평등에 대한 감수성 없이는 대학원의 문제들이 해결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습니다. 대학원생을 소위 교수 갑질의 피해자로만 재현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으며, 대학원생들 역시 이 불평등한 학계 구조의 재생산에 공모하고 있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봤어요.

제가 연구하거나 접한 사건들 중에 대학원생들 역시 연구실을 유지하고 성과를 쌓기 위해서 어느 정도 인권 침해는 수용할 수 있다는 반응, 심지어는 피해자를 부적응자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한 지나치게 자신들을 피해자로만 여기면서 어떤 주체적 행위나 문제 해결의 역량을 기르려 하지 않고, 익명성이나 보호 속에서만 머물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또한 교수가 되고 싶거나 학계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속에 부당한 관계나 요구를 수용하고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학원생들이 자신을 피해자로만 규정한다면 이러한 공모의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문제 해결의 적극적인 당사자가 되기에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정책적 제언이나 실제적인 변화는 개별 피해 사례의 나열이 아닌 여러 행위자의 조직적이고 능동적인 움직임, 협상, 갈등 조정을 통해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송희 저도 2018년 ‘스쿨 미투’가 한참일 때 처음으로 대학 제도와 관련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속한 학과 내에서도 성폭력 사건이 존재한다는 게 드러났고,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에 참여했습니다. 비대위에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대학원생은 왜 제도적 약자가 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라 대학원 생활을 하며 부조리를 직접 느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운이 나쁜 경우라면 폐쇄적인 대학원의 권력 구조 속에서 대학원생이 어떤 일을 겪을 수 있는지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서 3년가량 활동하며 주로 학내의 대학원생 인권 이슈에 대응하는 일을 했습니다. 피해자를 대변하게 될 때마다 학교 측에 제도 개선을 요구해 오기는 했지만, 사실 경험이 쌓일수록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도 했는데요. 학계라는 곳이 전공마다, 연구실마다 형성된 커뮤니티를 기반에 두고 활동하다 보니, 아무리 학교나 학과에 피해자 보호를 요청하고 보완책을 요구하더라도 그 내부에 속한 사람이 피해자와 맺은 관계에 따라 결과가 무척 달라지더라고요. 물론 이것은 단지 개인적인 친분이나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문제가 발생한 커뮤니티 내부에서 공공선에 대한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져 있고, 피해자 보호와 자정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면 피해자는 사건 발생 이후에도 문제없이 학업과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반면, 실적주의가 강고한 공동체에서는 가해자가 많은 권력과 자원을 보유하고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산출해 왔을 경우 피해자의 문제 제기가 오히려 공동의 이익을 해치는 행위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수직적 위계질서가 강한 경우 문제 제기를 통해 기존의 권력 구조가 변화할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못하기도 하고, 당연히 그런 환경은 위계형 인권 침해가 빈번히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이 됩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당사자들이 피해자를 해당 학과나 연구실의 질서를 파괴하는 적으로 간주하는 경우, 제도적 보호로는 충분치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제도 개선은 당연히 앞으로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제도만을 개혁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를 믿고 문제 제기를 했지만 전혀 해결되지 못할 때 피해자가 가장 절망하기도 하고요.

 

대학원의 교수 의존성과 대학원생의 인권


전준하 대학원 제도나 연구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구체화하게 된 출발점은 지도교수님을 통해 과학기술 인력 정책을 다루는 연구 과제에 참여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 달째 실험도 못 하고 연구비를 따기 위해 제안서에만 매달린다던 선배, 매일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지도교수 눈치를 보느라 집중이 안 된다던 친구, 지도교수를 못 본 지 한참 되어 다른 교수들한테 조언을 구하러 다닌다는 후배까지,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한 주변 사람들이 종종 연구실에서의 삶을 들려주곤 했는데요. 저는 그 다양하고 생생한 경험들을 석·박사급 연구원 수와 같이 획일적이고 딱딱한 숫자로 환원시켜 계산하고 분석했습니다.

이렇게 인력을 단순히 숫자로 표현할 때, 친구들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생략되는 것도 아쉬웠지만 무엇보다 경험의 다양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대학마다, 분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학원에서의 교육과 연구 환경은 다른 무엇보다 지도교수에 의존하게 됩니다. 교수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경험을 하는 대학원생이 있다는 말이지요. 때문에 더 나은 과학기술 인력 정책을 위해서는 실질적인 연구 인력인 대학원생이 연구실 안에서 어떻게 연구하고 있는지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눈에 들어온 게 바로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매년 실시하던 〈연구 환경 실태 조사〉입니다. 연구 자료를 확보할 목적으로 원총 활동을 시작했지만, 막상 자료 중 오래된 것은 유실되고 원 데이터 접근이 어려워 활용이 어려웠습니다. 대신 다양한 이공계 대학원생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석사 마지막 학기에 제가 원총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던 지도교수님이 교육부 연구 용역 과제였던 〈대학원생 권리 강화 방안 연구〉를 함께 하자고 제안해 주셨는데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학원과 대학원생의 현실에 진지하게 관심을 쏟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정말 하루가 멀다 하고 대학원생 인권 침해 사건 사고가 일어났고, 교육부도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겠다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여느 연구 용역 과제가 그렇듯 대학 내 인권센터 설치라는 결론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것이 근본적인 처방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이공계 대학원,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명성이 가장 높고 연구비도 많은 곳인 카이스트 바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국을 돌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현미 선생님을 비롯해 한창 출범을 준비하던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 속하신 분들, 서울대 원총에서 활동하시던 이우창 선생님, 그리고 이미 설립된 대학 인권센터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학과 학문 분야를 막론하고 대학원생 개개인의 삶이 교수에게 너무나 크게 의존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대학원이라는 제도 자체가 구성원 중 일부에 불과한 전임 교수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오늘 다른 분들과의 논의를 통해 이 문제의식을 확장하고 유의미한 대안을 찾아봤으면 합니다.

조승희 정책을 공부하는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니 대학 정책도 궁금해져서, 석사 때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활동했었습니다. 2014년부터 총 3년간 학교 학생회에서 활동하고 마지막 해에는 총학생회장을 역임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회의 경우, 대학원 총학생회와 인권센터의 역할은 분리돼 있습니다. 성폭력 문제나, 대학원생 개개인이 연구실에서 겪는 어려움들에 대한 상담이나 대응은 많은 부분 인권센터 학생들이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학생 복지나 등록금 정책, 문화 사업, 연구 환경 실태 조사 등 카이스트 대학원생의 전반적인 입지를 다루는 일을 더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학생회를 하고 가장 기억에 남은 건 크게 세 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제가 학생회 1년 차였을 때 김연주 당시 회장이 기획한 대학원생 권리장전 선언이었습니다. 대학원생에게 어떤 권리가 있고,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지 선언하고 낭독하는 캠페인이었는데요. 당시 권리장전을 선언한 곳은 국내에 없었기 때문에, 해외 사례를 참고하고 다 함께 고민하며 권리장전을 쓴 기억이 납니다. 그 과정에서 대학원생이 학교에 입학하고 등록금을 내면서 가지는 기대감에 비해, 학교를 실제로 다니면서 포기해야 하는 권리가 많다는 걸 알게 됐던 것 같아요. 학교 측은 학생회가 학교와 협의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대학원생의 ‘권리’만 낭독할 게 아니라 ‘의무’도 넣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냈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학원생의 의무는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지만, 권리이기 때문에 선언하는 의미가 있는 건데, 학생의 의무까지 권리장전에 꼭 넣어야 했을까, 우리가 너무 눈치를 봤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음은 박근혜 대통령 명예박사 취소 청원식이었습니다. 많이들 기억하시겠지만, 2016년 당시는 거의 모든 단체에서 성명문을 내며 박근혜 정권에 뜨겁게 항의했습니다. 카이스트에서 박근혜에게 명예박사를 수여한 바 있기 때문에, 카이스트 학생회에서 목소리를 강하게 낼 수 있는 방법은 이 명예박사 학위를 문제 삼는 일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제가 회장일 때라, 카이스트 원총에서 선언을 하려면 제 이름과 얼굴까지 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정권이 어떻게 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기도 했고, 내 취직 길이 막히는 건 아닐까, 솔직히 걱정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이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학생들이 학생회에게 이보다 무언가를 확실하게 요구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사회는 이 난리인데) 원총은 뭐하고 있냐”는 글까지 보았었는데, 전 오히려 그런 글이 반가웠던 기억이 납니다. 연구하느라 주위를 둘러볼 시간도 없어 학생회 활동에 많은 관심을 안 가지던 학생들이 드디어 학생회를 찾아 주는구나 감격스럽기도 하고, 단기간에 900명 가까이 설문 조사에 참여하는 걸 보고 놀랐던 기억도 납니다. 그것에 용기를 얻어서 명예박사의 의미가 무엇이고, 왜 우리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박사 학위를 재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건 사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화두인데, 학생과 노동자 사이에 낀 대학원생의 위치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팟캐스트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의 박대인 씨와 대화하면서 가장 처음 접했던 화두였는데요. 김민섭 작가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2]에서 썼듯이, 학교에는 법의 사각지대가 많아서, 대학원생은 노동하는 사람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유는 학생과 학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나마 보편적인 이유라면 대학원생이 교수에게 졸업을 담보 잡힌 숙명을 가지고 있어, 어쩔 수 없는 권력 관계 속에 놓여 있어서가 하나일 것 같고요. 또 하나는 한국에서 학생이 노동자의 신분을 가질 수 없는 제도적인 현실 때문입니다.

카이스트처럼 국가의 지원을 받는 대학에서 특히 뚜렷하게 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공계 특성화 대학 학생은 국가에서 공부를 하라고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사람인데, 돈을 버는 노동자가 되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학생 신분이 아니게 됩니다. 때문에 장학생 신분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2020년에 발의됐던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사람”이라는 정의 안에 대학원생을 포함한다는 구절을 보고, 드디어 대학원생이 사람이 되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지요. 다행히 지금은 학생 연구자 산재 보험 제도가 시행되는 등, 사람으로서 꼭 보장받아야 하는 부분들은 조금씩 마련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학생이 노동을 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최저 임금이나 노동 시간이라는 숙제도 남아있는 것 같고요. 이 화두를 처음 알게 된 지도 벌써 8년이 지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학생 사회가 무엇을 새롭게 말할 수 있을까, 학생에게도 노동자 신분을 인정해 달라는 말 이상으로 무엇을 주장해야 할지를 고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 총학생회를 하면서 카이스트 대학원생들이 연구실에서 겪는 어려움도 많이 접했지만, 저는 전사보다는 일꾼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속으로 비판적인 생각은 많아도 당장 저도 대학원생 당사자였기 때문에, 여러 문제에 관해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학생회를 그만둔 게 못내 아쉬운 점으로 남아 있습니다. 카이스트가 이공계에 특화된 환경이라 카이스트생의 어려움이 종합 대학 학생의 경험과 다를 때도 많았고요. 카이스트 소속이라 목소리를 내기 조심스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학교와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들었던 말 중에, “너희 정도면 대우가 좋은 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만, 카이스트 학생 개개인이 겪는 문제 중에 많은 대학원생이 함께 겪는 보편적인 문제들이 분명 많은데, 어떻게 보면 명문대 학생으로서 누리는 점을 더 부각시켜 대학원생으로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선 목소리를 내기 어렵도록 만든 것이죠.

 

목소리 내기


현수진 저는 박사 과정에 입학하던 2017년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학생회장을 맡게 됐습니다. 당시 제가 학생회장이 됐던 건 전임자의 추천이라는 관례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저는 솔직히 그때까지만 해도 학생회장이 대학원생들과 관련된 여러 실무를 처리하는 다소 귀찮은 직책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조금 부끄럽네요. 그런 마음으로 일을 하려니 학생회장 관련 업무가 부담으로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학생회장이 학생들을 대표하는 자리인 만큼 그에 따른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다시 생각해 보니 학생회장이란 건 제가 그때까지 대학원에 다니면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들을 보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더라고요.

제가 학생회장으로서 제일 처음 기획했던 일은 신입생 간담회였습니다. 처음 대학원에 들어왔을 때 학부와 대학원 차이에 적응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학생회 차원에서 신입생 간담회를 열고 대학원생 생활이 어떤 건지 소개해주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수업과 시험, 논문을 비롯한 학제 관련 내용과 공간 소개, 세미나 참여 방법, 도서관 사용 방법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다행히 대학원 신입생 분들께 반응이 좋았고, 아직까지 신입생 간담회가 열리고 있는 걸로 압니다.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전체 학과 대표자 회의에 사학과 학생회장으로서 참석했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여기서 대학원생들의 의사가 대학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파묻힐 수밖에 없는 상황을 처음으로 마주했습니다. 명색이 전체 학과 대표자 회의이고, 대학원 학과가 많은데도, 참석하는 대표자들은 총학 포함 열 명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각 대학원 학과의 대표자가 존재하는 학과 자체가 많지 않았고, 대표자가 있더라도 학과 구성원들의 건의 사항을 미리 받아 전달하는 등 실질적인 대표자의 기능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즉, 대학원생들의 목소리가 풀뿌리 단위인 학과 자체에서부터 모이기가 힘든 상황이었던 거죠. 대학원생들의 연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대학원생들이 겪는 부조리가 더욱더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런 부조리가 대학원생의 연대를 막고 있기도 하고요.

게다가 또 다른 큰 문제는 학과별 대표자들과 대학원 총학 사이의 온도 차이였습니다. 당시에 저를 포함한 학과별 대표자들은 대학 측의 문과대 조교 임금 일괄 삭감 통보 문제, 연구 등록비의 금액과 납부 방법에서 대학의 편의성만 도모한다는 문제, 대학원생 휴게실 확보 문제 등 대학원생의 연구 환경과 노동에 관한 여러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총학 측의 대답은 놀랍게도, 혹은 놀랍지 않게도 “건의는 해보겠지만 학교 사정상 어렵다”라고 일관됐고, 후속 조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상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대학원생들이 학과 단위로도 결집하고 학과나 대학이라는 단위를 넘어 연대해야 학내외 부조리를 해결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당시에 제가 이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진심을 가지고 뛰어들었다면 사학과 내의 여론을 모아 총학을 압박하고, 다른 학과 대학원생들에게도 함께 연대하자고 설득했어야 하겠죠. 그런데 당시의 제 자신은, 아니 분명히 지금의 제 자신도, 다른 대학원생들에게 함께 연대하자고 설득할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면 첫 번째로는 무섭고, 두 번째로는 학업과 생계를 동시에 꾸려 나가기가 벅찼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본교 강사였던 동양철학과 류승완 박사님이 학교 정책과 학교를 운영하는 삼성에 대해 비판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어 1인 시위를 하고 계셨습니다. 제가 나섰을 때 이처럼 불이익을 입을까 봐 두려웠습니다. 또 작은 조직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인데, 나서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사람이 조직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터놓고 말해보자면 ‘우리 이걸 바꾸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실무를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입니다. 학업과 생계를 동시에 꾸려 나가는 게 벅찬 상황에서 더 이상 일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보자면, 결국 개개인의 이런 두려움이 얽혀 대학원생들 간의 연대라는 나무가 성장하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우리 대학원생 개개인은 무력감을 학습하고요. 이게 또 다른 용기를 내지 못하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지 않나 합니다. 문제는 대학원생 개개인들에게 현실적인 대안 없이 두려움을 버리고 용기를 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이 개개인의 힘을 결집해 낼 수 있는 또 다른 구조가 필요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저도 그 단계에서 좀 더 나아가지 못한 채 현실에 머물렀고 이런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네요.

일 년간의 학생회 생활을 마칠 무렵, 적어도 사학과 대학원 학생회가 대표성과 사명감을 가지고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학내 의견을 규합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기능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차후에 학내 문제가 터졌을 때 조직적으로 대응할 수 있겠다는 판단도 했고요. 적법한 제도와 절차를 거쳐 학생회가 구성되고 학생회장이 선출되면 그 학생회 구성원들이 자부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임기가 끝날 무렵 학생 총회를 소집해 처음으로 학생회 회칙을 제정했습니다. 석·박사 과정 및 수료생 대다수가 참석해 조항 하나하나에 대해 열띠게 토론했고, 그 결과 학생회의 구성 방법과 임기, 학생회장과 학생회 구성원의 역할, 학생회 회원의 의무와 자격 등을 회칙으로 정했습니다. 그때는 의견만 제시되고 회칙에 넣지는 못했지만, 이후 회칙 개정 과정에서 학과 내 성폭력 사건 대응 방향과 방법에 관한 내용을 넣기도 했습니다.

사실 회칙 제정 이후 학생회의 활동이 그 이전과 비교해서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저는 풀뿌리 단위에서의 작은 움직임을 모으는 게 변화의 시작이라고 믿는 이상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최근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학생회장에 두 명이 출마해 경선을 치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매우 뿌듯하더라고요.

이우창 저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2015년부터 2021년까지 6년 동안 고등 교육 전문 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대학원·고등 교육 제도 개선 문제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계기는 2011년 서울대학교 법인화 논쟁입니다. 이때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는 한국 대학의 의사 결정에서 대학원생의 의지나 교육 환경 같은 사항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현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학을 제도라는 관점에서 사고하는 시선입니다.

원총에 들어가 먼저 시작한 일은 대학원생 인권실태 조사보고서를 만든 것입니다. 저는 대학원생은 현실적으로 다수의 인원을 지속적으로 동원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운동’ 개념보다는 ‘제도 개혁’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봤습니다. 제도를 바꾸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근거가 생기려면 데이터가 쌓여야 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함께 두 차례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제도개선 조사보고서〉[3]를 만들고, 국가인권위 용역 과제에 연구 보조원으로 들어가서 〈대학원생 인권실태 조사보고서〉[4]를 만들었습니다.

당시는 2015년 발생한 인분 교수 사건이 보도되면서 대학원생 인권에 대한 관심이 갑자기 높아지던 때였고, 그래서 이런 보고서를 몇 차례 만들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사회과학 전공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와 함께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만드는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만 2010년대 중반까지는 한국에서 대학원생의 권리를 규정하는 문서 자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원생 권리장전을 가장 먼저 만든 곳은, 앞서 조승희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입니다. 카이스트 대학원생 권리장전이 형식적으로 조금 더 한국 헌법에 가까운 느낌이라면, 저는 미국 대학의 사례들을 참조했고 무엇보다도 거버넌스 관련 문제를 포함시키고자 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인권위 상임위에서 대학원생 인권 보호 관련 권고안 부록으로 낸 인권장전 가이드라인의 예시[5]를 작성하는 일에 참여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때가 한창 자연권과 인권 관련 연구들을 읽고 있을 때라, 권리 선언문이라는 장르를 직접 만져보는 게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작 서울대학교에서는 몇 차례의 시도를 통해 이미 좋은 퀄리티의 헌장안[6]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차원에서 이를 제정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네요.

세 번째로 학교 바깥에서 대학원생 인권 관련 제도를 개선하려는 여러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와 함께 서울대학교에서 처음으로 대학원생 인권실태 조사보고서를 만들면서 제도 개선안도 같이 넣었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국회의 입법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특히 그때 전국대학원 총학생회 협의회에서 다른 학교 대학원 총학생회와 함께 협력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고받았습니다. 마침 2016년 4월 총선 이후 대학원생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의원들도 생기기 시작했고요. 그때 정책도 짜보고, 정책 제안서나 후보 질의서도 만들었습니다. 단발성 법안을 하나 내는 걸 넘어 입법과 행정을 통해 어떻게 지속 가능한 제도적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를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 외에 학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대학원생의 권익을 대변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대학교 시흥 캠퍼스 추진 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대학원 기숙사의 방 구조와 관련한 전체 설문 조사를 진행하고, 실제 대학원생들의 수요를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대학원생 인권 침해와 성폭력 사건 등에서 피해 대학원생을 대리하여 사건 대응을 보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유현미 선생님 등과 함께 피해자 및 조력자를 위한 행동 지침[7]을 작성한 것이 원총에서 저의 마지막 활동이었습니다. 피해자와 함께 직접 사건을 맡아 활동하다 보면 현재의 제도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이 계속 보이는데요, 이런 경험이 다시 제도적 생태계를 디자인할 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이런저런 역할을 다 한다는 건 조직의 인원과 체계가 부족하다는 뜻입니다만 현실은 현실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거버넌스 디자인과 현장의 작동을 함께 볼 수 있어서 배울 게 많았습니다.
[1]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서울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 《2016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환경 조사보고서》, 2016.
[2]
김민섭,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은행나무, 2015.
[3]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대학원생 제도개선 연구팀, 〈201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제도개선 조사보고서〉, 2015.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대학원생 제도개선 연구팀, 〈201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교육환경 조사보고서〉, 2017.
[4]
국가인권위원회, 〈대학원생 연구환경에 대한 실태 조사〉, 2015.
[5]
국가인권위원회, 〈대학원생 인권증진 정책 권고〉, 2016.
[6]
송지우, 〈서울대학교 인권규범 제정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2020.
[7]
서울대학교 국가인권위원회, 〈대학원생 인권증진 정책 권고〉, 2016.대학원 총학생회, 〈대학원생 성폭력,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 보호를 위한 개선안 및 피해 조력자를 위한 행동지침 제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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