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 더 룸

2월 3일 - FORECAST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청소년 모텔’로 불리는 룸카페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 서울시와 여성가족부가 룸카페 단속에 나섰다.
  • 청소년들의 여가는 공간이 부족하고, 금전적 부담이 크며, 획일적이다.
  • 시간을 보낼 만한 장소의 부재는 청소년만의 얘기가 아니다.

BACKGROUND_ 룸카페
  • 여성가족부가 지난 1월 25일 룸카페를 단속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신체 접촉 또는 성행위 등이 이뤄질 우려가 있는 룸카페의 청소년 출입·고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 또한 2월 2일 룸카페 등을 전격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청소년 출입 적발 시 징역 2년, 최대 2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 룸카페의 전신은 멀티방이다. 지난 2013년 2월 멀티방은 청소년 유해 업소로 지정되며 청소년 출입을 금했다. 이후 룸카페를 비롯해 비슷한 시설들이 많이 생겨났다. 숙박업이 아닌 일반음식점 등으로 등록돼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ANALYSIS_ 공간, 돈, 익숙함

숙박 업소에 미성년자 출입이 가능해지면 룸카페는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청소년이 룸카페를 찾는 근본적인 이유는 세 가지다. 1)개인의 공간이 필요한데 2)돈이 없고 3)뭘 하며 시간을 보낼지 모른다. 집이 아닌 룸카페에서 성관계를 하거나 영화를 돌려 보고 한나절씩 누워 있는 이유는 사생활이 보장된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이 복닥거리는 좁은 집이나 기숙사 생활이 지긋한 성인은 반기에 한 번씩 호캉스를 즐기지만 청소년에겐 그럴 돈이 없다. 경험해 본 것이 많지 않아 친구나 연인과 시간을 보내는 방식이 몇 가지 패턴으로 굳어 있고 룸카페도 그 중 하나다.


CONFLICT_ 사생활

청소년이 자기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은 집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의 주거 공간들은 대다수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어려운 구조다. 좁은 집에선 아이에게 개인 방이 주어지지 않는다. 넓은 집에선 거실을 거쳐야 자신의 방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수많은 건축가와 심리 전문가가 집 안 소통을 강조하고 부모는 자녀와의 대화를 시도하지만 청소년은 혼자 있을 공간을 찾아 밖으로 나간다.


MONEY_ 64000

집밖으로 나선 청소년이 오늘 하루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은 얼마일까? 하나은행 금융플랫폼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6~12월 기준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월평균 용돈은 6만 4000원, 중학생은 4만 원, 초등학교 고학년생은 2만 2300원으로 나타났다. 고등학생 기준 하루에 2100원꼴이다. 시간당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PC방, 노래방과 달리 커피숍은 청소년이 시간 제약 없이 그나마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였다. 시장은 청소년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다. 2022년은 인플레이션의 해였고 커피도 예외는 아니었다.[1]


NUMBER_ 79.2

청소년의 여가 활동은 대부분 획일적인 몇 가지로 이뤄져 있다. 도시 과밀화가 진행된 한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 2020년 4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3~19세 청소년이 즐기는 여가 활동 1, 2, 3위는 각각 컴퓨터 게임 및 인터넷 검색(79.2퍼센트), 휴식 활동(60.8퍼센트), TV 및 DVD 시청(59.9퍼센트)으로 실내에서, 혼자, 무료로 할 수 있는 활동이 주를 차지했다. 주목할 점은 4위부터 항목별 편차가 심해졌다는 것인데 4위를 차지한 ‘취미·자기 개발 활동’의 경우 32.5퍼센트로 3위와 약 두 배가량 차이났다. 5위 ‘문화 예술 관람’ 또한 15.3퍼센트로 반토막났다.


RISK_ 우울

2022년 퓨리서치센터 조사에 따르면 미국 부모가 자신의 아이에게 갖는 가장 큰 걱정은 성적도 탈선도 아닌 정신 건강에 관한 것이었다. 전체 응답자의 40퍼센트는 자신의 자녀가 우울증을 앓을까봐 극심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정신 질환을 앓는 아동·청소년 수는 2016년 22만 587명에서 2020년 27만 1557명으로 늘었다. 청소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탈선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음지의 공간을 단속하는 것이 아니다. 안정을 갖고 우울감을 해소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RECIPE1_ 공간

청소년에겐 지금보다 더 넓고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다. 일례로 도서관은 현재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오랜 시간 머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구가 한 구립 도서관 폐쇄를 추진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민원을 제기했던 주민은 작은도서관이 “빈부 격차, 나이, 성별, 장애 구분 없이 책이라는 매체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마을 회관과 같은 곳”이라 지적했다. 반포도서관 조금주 관장은 도서관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곳으로 만들어서 자꾸 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머물고 싶은 공공 공간이 많아질 때 청소년들에겐 여가 활동의 선택지가 많아진다.


RECIPE2_ 정보

경기 거주 청소년 8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들이 여가 활동을 하는 장소 중 청소년수련관을 비롯한 청소년 시설에서 여가 시간을 보낸다는 응답은 1.3퍼센트로 매우 낮았다. 양질의 프로그램이 무료 공간에서 개최되는데 청소년들은 왜 이러한 시설을 이용하지 않을까? 청소년 시설이나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시설, 프로그램 정보 없음(110)’과 ‘참여 방법 모름(76)’이었다. 좋은 공간이 있다 해도 청소년들은 그곳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RECIPE3_ 통계

“아이들은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있다.” 어린이잡지 《고래가그랬어》를 발행하는 김규항은 아이의 마음을 지레짐작하는 어른 사회의 맹점을 지적한다. 공공 공간과 거기서 진행하는 건설적인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학부모와 행정가가 만든 결과물이다. 청소년은 또래를 만날 때 무엇을 하고, 만남을 위해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청소년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당사자의 수요를 정확히 조사하는 것이고, 그보다 선행될 것은 청소년의 다양한 요구를 묵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변하는 것이다.


INSIGHT_ SaaS, 고립
  • SaaS ; 시간을 보낼 만한 장소의 부재는 청소년만의 얘기가 아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돈을 들이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부동산이 금융 자산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 사회에서 장소는 그 자체로 재화를 지불해야 하는 서비스(Space as a Service)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 고립 ; 장소의 부재는 만남의 허들로 이어진다. 원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우연한 만남이 발생하기도 어렵다. 커뮤니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사회지만 이를 실행할 공간부터 마땅치 않다. 지난해 우리나라 1인 가구 비중은 전체 가구의 40퍼센트를 기록했고, 사람들은 고립에 익숙해지고 있으며, 단절은 문제가 아닌 하나의 상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FORESIGHT_ 디지털 네이티브

물리적 만남이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들은 이미 디지털 공간으로 떠나고 있다. 온라인에선 만남이 쉽다. 시간과 거리와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도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재화의 기준도 다르고 간섭 없이 나만의 구역을 만들 수 있다. 물리적 만남이 어려워지고 장소가 점점 부동산으로 계산될 때 사람들은 디지털 공간으로 몰릴 것이고 지금의 청소년, Z세대가 그 출발선을 끊고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돈과 시간을 들여 오프라인 만남을 시도해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지 못할 때, 물리적인 공간에서의 만남은 허들이 높은 것과 낮은 것 두 갈래로 양극화될 것이다.



공공 공간에 대한 더 알고 싶다면 〈백화점 멸종의 시대〉와 〈미래는 공공도서관에 있다〉를, 만인의 성 권리에 대해 더 깊은 논의가 궁금하다면 〈우리가 성적으로 건강할 권리〉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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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타벅스, 할리스, 투썸플레이스 모두 아메리카노 가격을 41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했으며 가격이 저렴해 청소년들이 많이 찾는 메가커피와 매머드커피 등도 200~300원 음료값 인상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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