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운동장
1화

프롤로그 ; 전례 없는 선수의 등장

2021년에 치러진 2020 도쿄 올림픽 역도 경기에 전례 없는 선수가 출전했다. 남성의 신체 조건을 가진 뉴질랜드 여자 역도 대표팀 선수, 로렐 허버드(Laurel Hubbard)다. 그[1]의 출현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허버드는 여자 최중량급인 87킬로그램 이상급 A그룹 경기에서 인상 1, 2, 3차 시기를 모두 실패해 실격 판정을 받았다. 경기 후 취재진 앞에 선 허버드는 “출전에 대해 논란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밝히며 자신의 출전을 적극 지원해 준 뉴질랜드 올림픽 위원회(NZOC·New Zealand Olympic Committee), 일본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 위원회,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등에 감사를 표했다.

남자로 태어나 105킬로그램급 역도 선수로 활약했던 개빈 허버드(Gavin Hubbard)는 2012년 성전환 수술을 받으며 이름을 ‘로렐’로 개명, 여자 역도 선수로 활동했다. IOC는 성전환 선수가 올림픽 여성부 대회에 출전하려면 성전환 후 첫 대회 직전 12개월 동안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가 혈액 1리터당 10나노몰(nm/L) 이하여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2015년부터 2016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테스트를 받았다. 마침내 2016년 IOC가 제시한 수치 아래로 유지에 성공하자 허버드는 여자 역도 선수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었다. 그는 성(性)을 바꾼 뒤 2017년 뉴질랜드 여성 국가 대표선수로 발탁,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에서 열린 세계 역도 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뉴질랜드 역도 역사상 동 대회에서 메달을 딴 첫 선수로 기록되었다.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한 로렐 허버드 ⓒCBC News 유튜브
성전환한 선수의 스포츠 대회 참여가 늘어나고 있다. 허버드의 사례는 여러 트랜스젠더 선수의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미디어가 주목하기 전에도 그들은 엄연히 존재했다. 그럼에도 허버드의 사례가 세계 스포츠인들과 팬들에게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그 무대가 올림픽이기 때문이다. 엘리트 스포츠는 승패가 냉정하게 갈리는 세계다. 허버드의 등장은 엘리트 스포츠, 그것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에 큰 난제를 안겼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무대 조명이 꺼지면 관객은 떠난다. 올림픽 같은 국제 스포츠 대회의 특성상 논란이나 환호의 열기는 늘 일회성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제도적· 사회적 논의 없이 휘발한 이 이슈는 또 다른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경기 참여가 문제시될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

로렐 허버드는 리아 토머스(Lia Thomas)에 비해 덜 논쟁적이었다. 결국 올림픽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반면 토머스는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부터 미국을 발칵 뒤집고 있다. 2019년까지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 소속 남자 수영 선수였던 윌 토마스(Will Thomas)는 성전환 후 리아 토머스로 개명했다. 그는 2021년 12월 미국 애크런대학교에서 열린 전미대학체육협회(NC 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가 주관한 ‘2021 지피인비테이셔널(Zippy Invitational)’여성부 경기에 참가해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2위 선수와는 무려 38초나 차이가 났다. 2위와 3위 선수의 기록차가 3초가량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압도적인 격차였다. 그 와중에 토머스가 지난 어떤 대회에서 일부러 속도를 줄여 승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익명의 제보자에 의해 보도되었다. 참가 자격 논란을 피하고자 일부러 우승을 포기했다는 내용이다. 속도를 고의로 줄였는지 알 길은 없으나 토머스의 월등한 기량이 제보에 힘을 실어줬다.
트랜스젠더 수영 선수 리아 토머스 ⓒABC News 유튜브
미국은 분열했다. NCAA가 토머스를 품은 것에 대해 옹호와 반대의 입장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토머스의 출전 당일, 경기장 밖에는 토머스의 여성 스포츠 참가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경기장 내부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여성 스포츠를 구하자’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등장했고, 토머스가 인터뷰를 하는 도중 관중석에서 토머스를 사기꾼으로 지칭하는 야유도 쏟아졌다. 학부모들도 토머스의 불공정한 이점을 비판하는 서한을 NCAA에 보냈다. 한편 영국의 온라인 매체 인디펜던트(Independent)는 토머스의 기록을 두고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의 위력이라고 보기 어렵다”라며 옹호하기도 했다.

정치권도 목소리를 높이며 서로 맞불을 놨다. 주(州)마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경기 참여를 우회적으로 제한하는 법률이 제정되기 시작했다. 미국을 필두로 세계 곳곳에서 트랜스젠더 선수 문제가 논의되고 있으며 코로나 종식과 함께 각종 스포츠 경기가 활기를 되찾음에 따라 논쟁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 이슈는 언뜻 간단하기도, 복잡하기도 하다. 트랜스 여성(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의 여성 스포츠 참여 반대론자는 트랜스 여성 선수가 명백한 신체적 이점을 전제로 스포츠의 고유 가치인 공정성에 치명타를 입힌다고 주장한다. 소수의 권리를 위해 다수의 권리가 희생되고 있다는 논지다. 찬성론자는 신체적 이점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음을 근거로 트랜스젠더의 경기 참여 금지는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즉, 사회적 성 선택에 의한 차별은 없어야 한다는 논지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경기 참여 자체에 무관심하거나 그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지금 세계에서는 다양한 종목의 트랜스젠더 선수들이 생물학적 성별로 나뉜 경기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트랜스 여성 선수의 여성 스포츠 참여 논란은 전 세계 시민 사회와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시민 사회의 관심 부재는 그렇다 쳐도 누구보다 이 문제에 앞장서야 할 대한민국 스포츠계마저 이러한 사안에 무감각하고 진지한 논의조차 부재한 실정이다.

스포츠 강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도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됐다. 스포츠계의 새로운 바람은 머지않은 미래에 대한민국에도 불어올 것이다. 생물학적 성, 사회적 성, 젠더 공정성, 국제 사회의 통념과 제도, 생리학 등 이 이슈는 인간 사회에서 제기돼 온 다양한 문제가 다층적으로 함축돼 있다. 당장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문제인 만큼 학계의 통일된 의견도 없고 여론은 신념에 따라 분분하지만, 논의를 멈추는 순간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여 권리도 멈춘다.

이 책에서는 트랜스젠더 선수가 생물학적 성으로 분류된 스포츠 경기에 참여하는 것을 찬성 또는 반대하거나 섣부른 답을 내리지 않는다. 답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오히려, 미디어, 정치, 법, 사회, 의학적 관점을 기술하여 독자의 자발적 판단을 돕고 관련 논의가 진전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1]
이 책에서는 성 소수자 선수들의 성별 인칭대명사(pronoun)가 각종 언론 보도 등에서 선수 각자의 인용을 통해 명시되지 않은 경우, 일차적으로 ‘그’라는 표기로 통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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