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이후, 희망의 근거
완결

세월호 이후, 희망의 근거

참사 이후,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준 것은 그 무엇도 아닌, ‘관계’였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아동청소년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은지 정신과 전문의는 스스로를 ‘안산 지박령’이라고 말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 단원고에 ‘마음건강센터’를 마련하고 2년간 머물며 스쿨닥터로 활동했다. 이후에도 아이들을 떠나지 못했다. 주기적으로 아이들과 꾸준히 만나고 함께 있었다. 그 9년의 세월이 스스로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했다고 이야기하는 김은지 전문의는, 세월호 참사로부터의 회복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생존 학생과 유가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의 회복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참사 이후, 생존자와 유가족에게 최선을 다했나?

긍정적인 답을 하기는 어렵다. 먼저, 유가족들이 가장 강하게 요청했던 부분이 ‘진상규명’이다.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진행해 왔지만, 그 과정에 정치적인 요소도 작용했고 파행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생존자도, 유가족도 참사에 관한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느끼는 부분이 크다.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무심한 비난도 존재한다.

온라인의 익명 채널들, 또는 정치인들의 공개 발언 등을 통해 참사 피해자를 향한 비난이 분명 있었다. 이태원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를 방송에서 공공연하게 높일 수 있다면, 그것도 공인이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아직 노력이 필요하다.

애도가 혐오로 변질되는 현상이 분명히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

사실, 그런 일은 흔히 발생한다. 역사 속에서도 쉽게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1922년 일본에서 발생했던 발생한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대학살로 번진 일이 있지 않았나. 이것은 인간의 동물적인 본능이다. 두려움이 분노가 되는 과정이다. 참사는 명확하게 100퍼센트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이 분노가 되고, 손쉽게 비난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비난하는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반대도 가능하다.

불안이 긍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나 생존 학생들이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을 위한 활동에 나서는 경우가 있다. 또, 지진 등 재난 현장에 찾아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공포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뀌는 사례다. 그런데 불안이 사회의 분란이나 정치적 갈등이 될 것인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건전한 에너지가 될 것인지를 가르는 것이 있다. 바로 그 사회의 품격이다.

2014년 4월 이후, 우리 사회는 ‘품격 있는 사회’였나?

참사 직후 초반에는 전국으로부터 지원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드라마틱하게 상황이 역전되었다. 이른바 ‘오뎅 사진’ 사건 이후 우리 사회가 양측으로 갈라져 한쪽에서는 혐오를 조장하고 한 쪽에서는 도움을 주고자 하는 움직임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재난 피해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매년 4월이 되면 늘 받는 질문이 있다. ‘이렇게 슬픔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어떻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에서 희망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 더 노력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다.

어떤 부분인가?

생존 학생들이 종종 겪는 상황 중 하나가 바로 취업이나 입학 면접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를 언급하는 경우다. 직장이나 학교 등 공동체 내에서 관련 사실이 알려지고, 참사 관련 질문을 해 오는 사례도 있다. 생존 학생들이 쌓아온 노력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것이다. “잘하려고 노력해 왔지만, 사람들은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다, (사회를) 신뢰할 수 없다”는 생각이 좌절로 이어진다. 참사가 아니었다면 경험할 필요 없을 좌절이다.

그 좌절을 막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을 대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존중’이다. 그 사람의 아픔뿐만 아니라 삶 자체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피해자에게) 딱지를 붙이고, 그것만으로 평가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실수’가 노력하고 있는 누군가를 또다시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정말 기회가 있다면 1년 365일 이야기하고 싶다. 잊지 말아 달라고. 쉽게 뱉는 그 한마디가, 때로는 공적인 자리에서까지 이루어지는 그 말 한마디가 피해자들의 삶을 얼마나 많이 망가뜨리는지 잊지 말아 달라고 말이다.

스스로에게도 힘이 되었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소개해 달라.

생존 학생 일흔다섯 명은 어디를 가든, 뭘 하든 가능한 한 함께 해왔다. 예전에 무슨 행사인지를 하러 갈 때 그 친구들이 서로를 툭툭 치면서 “야, 힘내자! 야, 잘하자!”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이 친구들은 잘하려고 하는구나, 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누구든 살고 싶다. 그런데 그 참사를 겪고, 친구를 잃고, 트라우마 속에서 힘든 상황에 놓인 그 친구들이 ‘나 혼자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같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지금도 그렇다. 누군가 힘들어하면 다른 친구가 내게 연락을 해 온다. 이들은 이미 대응 공동체가 되었다. 늘 함께하고 있다. 만남을 지속해 오면서 스스로도 감동하고, 함께 자라고 있다. 생존 학생들과 계속 만나는 순간순간이 그 자체로 기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관계가 기적이 된다는 얘기다.

6개월에서 1년에 한 번씩 아이들을 계속해서 만나고 있다. 이 만남을 통해 수행한 연구 결과에서 사회적인 지지가 회복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다. 해외의 참사 및 그로 인한 트라우마 상황에서도 사회적 지지는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우리 스스로도 얼마 전 경험했다. 팬데믹 시기,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이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지금까지 가장 큰 힘이 되었던 것이 무엇이냐고. 모든 답변이 ‘사람’이었다. 가족, 친구, 학교 선생님과 선후배, 지역 사회, 온마음센터와 쉼표 선생님 등 말이다. 다른 답변은 없었다. 이를테면 ‘보상금’ 같은 것 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얼마 전 우리 사회는 또다시 이태원 참사를 목격했다.

재난은 각기 다른 특성을 보인다. 재난의 성격과 사회적 맥락, 시대와 장소가 다르다. 감염병 재난과 사이버 재난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결국 우리는 늘 경험하고 깨닫고 고치고, 다시 경험하고 깨달아 고쳐야 한다. 이태원 참사가 세월호와 가장 달라던 점 중 하나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현장에 있던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다. 그런데 이른바 ‘토끼 머리띠’ 등의 논란으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2차 가해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결국 피해자들이, 생존자들이 숨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래서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닿을 수 없다. 국가적인 지원 기회를 5년이고, 10년이고 열어둬야 하는 이유다. 이런 고민을 당국이 했으면 한다.

세월호도, 이태원도 개인에게 일어난 불행인데 왜 사회가 함께 생각하고 지지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아직도 존재한다.

먼저, 우리는 원래 개인의 불행을 사회가 함께 생각하고 지지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모친상을 당한 직원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동료들은 함께하고 당사자를 배려하기 마련이다. 다음으로, 사회적인 참사는 원인의 큰 부분이 사회에 있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에는 안전망에 뚫린 구멍이 그것이었다. 이태원 참사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단순히 개인의 불행이 아니란 얘기다.

수학여행은 위험하니까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이태원 같은 번화가는 위험하니까 가지 말아야겠다고 대체 누가 생각하겠나. 모두 사회가 책임을 다하지 않아 발생한 일이다. 때문에 나 자신을 비롯한 그 누구라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 국민으로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재발하지 않도록 국가에 요구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던, 그 참사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함께하고 있다’라고 알리는 일 말이다. 앞으로도 함께 우리 사회를 바꿔 나가겠다고 알려줘야 한다.

참사가 발생했을 때 국가 혹은 사회 시스템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우리는 ‘매뉴얼’이라는 단어에 경도되어있다. A일 때에는 B를 하면 된다고 정해진 매뉴얼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삶에 딱 떨어지는 A라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겠나. 사람의 마음은 수학 공식도 아니고 법률도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그 사람이 처한 상황, 맥락부터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자. 실종자 가족들이 진도 체육관에 모여있었다. 실종자가 발견되면 가족에게 전화를 건다. 근데 그 전화번호를 가족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래서 휴대전화에 그 번호가 뜨자마자 가족들은 무너지고 오열한다. 그 상황부터 도움이 필요하다. 매뉴얼에는 담길 수도 없는 이야기다. 현장에 있어야만 알 수 있고 무언가 할 수 있다. 결국 필드에 있는 사람과 가장 큰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수시로 유연한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대응 구조는 그렇지 못하다. 가족들의 마음을 최우선으로 돌보지 못하는 구조다.

세월호도, 이태원도, 우리 사회는 언제 이 참사들로부터 회복될 수 있을까?

트라우마를 여럿 겪은 환자들은 한 번에 치료되지 않는다. 안정화, 치료, 재활이라는 세 가지 단계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점차 회복한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참사를 겪고 난 다음, 어느 날 갑자기 한꺼번에 회복될 수는 없다.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아갈 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안전법이 개정되었다. 트라우마 센터도 생겼다. 재난 보도 관련 언론 지침도 만들었다. 한 계단 올라갔다. 그런데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성숙한 대응을 할 것인가에 관한 계단, 시민단체 등 이미 존재하는 자원을 활용해 재난 시스템 네트워크를 돌릴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한다든가 하는 계단은 아직 오르지 못했다. 아직은 과정이다. 그리고 하나씩 해 나아가고 있는 과정이다.

‘김은지’라는 사람도 지난 9년 동안 힘든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여전히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존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다고, 참사 이후에 대학도 가고 취직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진료실에서 다양한 아픔을 가진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 환자들에게 “잘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희망의 근거가 바로 생존 학생들이다. 그 친구들이 내게 제일 큰 선물이고 그들에게 늘 배운다. 선생님이 더 많이 감사하다고, 늘 그렇게 이야기한다.

2014년에 세월호 참사를 목격한 뒤, 지금은 어른이 된 독자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당시 한 언론사에서 경기도 지역 또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봤던 것이 생각난다. 참사 이후 그들의 생각에 관한 것이었다. 학업 의지가 떨어졌다, 언론과 국가를 믿지 못하게 되었다는 결과가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내용도 있었다. ‘가족을 더 소중히 여기겠다’, ‘친구들을 더 소중히 하겠다’, ‘오늘을 더 열심히 살겠다’와 같은 내용 말이다. 그리고 ‘이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관심을 가지겠다’라는 답변도 있었다. 여러분 안에는 그런 소망이 있었다. 그 소망을 잊지 않아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소망들이 우리 사회를 바꿀 것이라고 믿는다.

신아람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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