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나아가는, 달리기
완결

앞으로 나아가는, 달리기

행복하고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는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선조들이 그랬듯, 뜀박질을 함으로써.

©Jonathan Chng

1. 호모 사피엔스, 달리기를 멈추다


호모 사피엔스는 동아프리카의 평원을 휩쓸고 다니면서 먹을거리를 구하고, 생존을 위해 싸우고, 먹잇감을 사냥하면서 번성했다. 우리 선조들은 약 1만 2000년 전 농업 혁명 기간에 한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때 이른바 문명의 진보가 그들의 활발한 운동을 멈춰 세웠다. 인류의 삶은 부자연스러운 정지 상태가 되었다.

한곳에 정착해서 뿌리를 내린 뒤 지금까지 불과 600세대가 지나갔다. 우리 역사에서 이전까지의 99퍼센트가 수렵채집 활동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의 신체와 두뇌가 여전히 구석기 시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시간의 척도를 진화의 맥락에 펼쳐 놓으면, 문명은 그저 하나의 시기에 불과하다. 농업이라는 것도 그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의 수많은 건강 문제들이 현대 문명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기인하는 이유 역시 설명이 가능하다.

현대의 주요한 사망 원인은 심장병, 골다공증, 비만, 그리고 암이다. 진화생물학자들은 구석기 시대에는 이러한 병들의 발병률이 지금보다 낮았을 거라고 오랫동안 믿어 왔다. 당시에는 일상에서 운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요즘보다 훨씬 더 높았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2006년, 어느 인류학 연구는 현대에 살아남은 수렵채집 그룹의 정신 건강 상태가 뛰어나다는 사실을 발견해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 이후로 연구자들은 그들의 우울증 비율 역시 상당히 낮을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많은 신경과학자들은 우리가 장시간 격렬한 운동을 하고 나면 경험하는, 소위 ‘러너스 하이(runner's high)’가 우리의 수렵채집인 시절에 대한 공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운동과 정신 건강이 왜 그토록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 이론은 2004년에 대니얼 리버만(Daniel Lieberman)과 데니스 브램블(Dennis Bramble)에 의해 대중적으로 알려져 점점 더 영향력을 얻고 있는 ‘달리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가설과도 일치한다. 그들은 현 인류의 조상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약 200만 년 전의 초기 호미닌(hominin) 화석 잔해에 이미 적응(adaptation) 형질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진화로 인해 우리가 장거리를 달리는 끈기 어린 사냥꾼이 될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달리기 위해 태어난 것이다.



2. 우리는 달리기 위해 태어났다


초기 호미닌은 이미 짧은 발가락, 좁은 골반, 튼튼한 관절을 가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대퇴골에 붙는 대둔근(大臀筋)의 부착 부위가 넓었다. 우리 인간의 엉덩이는 다른 영장류들보다도 유달리 튀어나와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예전에는 직립 보행을 위한 적응 때문이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자원자들의 신체 여러 부위를 선으로 연결해서 진행한 실험에서, 리버만은 걷기 동작에 대둔근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달리는 것은 대둔근 없이는 불가능했다.

‘달리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는 가설은 또한 왜 초기 인류가 창 또는 화살과 같은 발사형 무기나 그물을 개발하기 훨씬 이전에도 이미 능숙한 사냥꾼이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였던 우리 선조들은 별다른 무기 없이도 사냥감이 지칠 때까지 쫓아갔을 것이다.

우리 몸에는 털이 적고 열을 발산하는 땀샘이 풍부하다. 이런 특성 덕분에 우리는 달리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우리 몸을 식힐 수 있다. 즉, 우리는 아프리카 사바나 평원에서 몇 킬로미터에 걸쳐 추적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포유류를 능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처럼 현재도 존재하는 수렵채집 부족들을 선사시대를 추정해 보기 위한 참고 사례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선조들의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루에 약 두 시간 동안 걷거나 달리기를 하면서, 약 6~9마일[1]을 돌아다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뒤에는 다시 야영지로 돌아와서 요즘의 우리보다도 더 많은 여가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아무래도 수렵채집인들은 능수능란한 게으름뱅이였을 것으로 보인다. 불필요한 운동을 피하는 것은 고대의 본능일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먹거리가 부족한 환경이었기에, 살아남으려면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 선조들은 이유 없이 달리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리기는 일이었다. 달리기는 생물학적으로 내재한 직업적 만족감을 가져다주는 일이었을 것이다. 열심히 운동한 뒤에 찾아오는 더없이 의기양양한 도취감 말이다. 일부 고인류학자들은 ‘러너스 하이’가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돌아다닌 것에 대한 ‘신경생물학적 보상’의 형태로써 우리 선조들에게 진화적으로 장착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까지만 하더라도 러너스 하이를 일으키는 물질은 우리가 운동할 때 활성화되어 분비되는 천연 아편인 엔도르핀일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미시건 소재 웨인주립대학교(WSU) 의과대학(School of Medicine) 심리 및 행동 신경과학과(DPBN)의 조교수인 힐러리 A. 마루사크(Hilary A. Marusak)는 거의 확실히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관련 근거들에 의하면, 우리가 느끼는 지극히 행복한 기분은 엔도카나비노이드(endocannabinoid)에 의해 유발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질(지방)로 만들어진 작은 분자인 엔도카나비노이드는 우리가 운동할 때면 언제나 신체에서 생성된다. 엔도카나비노이드에는 칸나비스(cannabis·대마)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한 향정신성 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다.

“저도 달리기를 합니다.” 마루사크의 말이다. “모든 사람이 아침에 엔도르핀을 얻으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동안 과연 엔도르핀이 러너스 하이를 일으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들이 있었습니다. 엔드로핀은 상당히 커다란 분자이기 때문에 혈관과 두뇌 사이의 장벽을 쉽게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엔도카나비노이드는 지질 또는 지방 분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들은 두뇌 조직을 좋아하는 데다, 보호막도 매우 쉽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마루사크 박사는 운동선수들이 엔도르핀과 같은 아편의 효과가 차단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도취감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여러 연구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엔도카나비노이드가 차단되면 러너스 하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이런 결과는 인간과 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 전반에 걸쳐서 재현되어 왔다.

마루사크는 운동이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한 33건의 문헌을 메타분석(meta-analysis) 하였다. 그녀의 연구팀은 30분 동안 조깅 또는 자전거 타기 같은 격렬한 운동이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를 지속적으로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도 소위 ‘행복을 가져다주는 분자’라고 불리는 아난다미드(anandamide)의 분비가 가장 두드러졌다. 마루사크도 역시 ‘달리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다’ 가설에 동의하는 편이다.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은 우리의 신경 계통만큼이나 매우 오랫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우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고정 회로와 중복되는 이런 보상 시스템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다.

데이비드 라이클린(David Raichlen)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USC)의 진화생물학 교수이다. 라이클린은 만약 ‘끈기 있는 달리기 사냥’ 가설이 사실이라면, 장거리를 움직이며 사냥하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이와 동일한 보상 패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2012년, 라이클린의 연구팀은 사람과 개 모두에게서 고강도의 운동 뒤에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가 현저하게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반면 가축화된 족제비인 페럿(ferret)에게서는 그런 증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라이클린은 이것이 바로 사냥하는 동물은 본능적으로 유산소 활동에 적극적이지만, 사냥하지 않는 동물은 그렇지 않은 이유라고 설명한다.
©Damir Kopezhanov
우리 선조들이 달리기를 할 때면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cortisol)이 단시간에 치솟고, 이는 고조된 각성 상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흔히 스트레스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코르티솔은 우리를 투쟁 도피(fight or flight) 상태로 몰아넣는 물질이다.

마루사크 박사는 운동 뒤에 고조되는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치가 항상성(恒常性)이라고 불리는 과정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을 누그러트리고 두뇌와 신체의 균형을 빠르게 회복하는 데 핵심적이라고 설명한다.

이제는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의 주요한 역할로 여겨진다. 항상성은 수면, 체온 조절, 면역 반응, 식욕, 성욕, 기억 형성, 기분 등을 조절하는 데 관여한다고 여겨진다.

전문가들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활동적이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자기 조절 시스템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발달시킨다고 생각한다. 자기 조절 시스템은 자기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최적의 상태로 자신의 생리 체계를 복원하는 것을 말한다.

정신 건강 측면에서 보자면, 운동은 고통과 불안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엔도카나비노이드 수용체를 더욱 많이 만들어낸다. 즉, 운동을 함으로써 우리는 외부적 또는 정서적 스트레스 요인에 훨씬 더 잘 대응할 수 있다.

우리의 선조들에게 있어서, 먹잇감을 쫓는 장거리 달리기는 유익한 외부적 스트레스 요인이었을 것이다.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에 의한 도취감과 함께, 최적화된 상태로의 빠른 회복이 보상으로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꽉 막힌 답답한 사무실에서 책상에 묶인 채 마감에 쫓기며 일하는 현재의 인류는 주로 정서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그것은 완화할 수단이 거의 없는 만성 스트레스가 되기 쉽다.



3. 달리지 못하는 현대인


극한의 상황에서 우리 선조들에게 매우 유익했던 스트레스 호르몬이, 현대의 일터에서는 잠재적으로 해로울 수 있다. 우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제약 조건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하루 종일 유독하게 높은 수준으로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머리가 멍해지고, 피로해지며, 의욕이 뚝 떨어진다.

장기간의 스트레스 노출은 신체에도 해로울 수 있다. 심지어 고혈압이나 면역 체계 저하와 같은 의학적으로 우려스러운 상태가 유발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스트레스는 직업적 위험 요인이 된다. 또 스트레스는 때로는 불안감과 우울증의 전조증상으로 여겨진다.

만약 운동이 일종의 마약이라면 그것은 지금까지 개발된 가장 유익한 의약품이 될 것이다. 이는 현대 의학에서는 거의 격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제 운동은 심혈관계 건강의 수호자인 동시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주력 요인으로 여겨진다.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마루사크 박사는 운동의 효과가 매우 폭넓고 복잡해서 우리는 이제야 겨우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은 현대 의학에서 새로운 분야입니다.” 마루사크는 말했다. “우리가 그걸 발견한 건 5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아주 오래된 진화 체계이지만, 우리는 요즘도 매일 이에 대한 새로운 점들을 배워나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운동을 마약으로 묘사하는 대신에, 우리의 평형 상태를 유지해 주는 원천으로 여기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이 우리의 항상성에서 갖는 역할 때문이다. 항상성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엇나가기 시작한다.

우리의 두뇌 및 신체 기능이 불가분의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의 생리학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특히 우리의 사고 능력이 우리가 움직인 직후에 더욱 잘 작동한다는 것은 아마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는 여전히, 라이클린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지 활동에 종사하는 장거리 달리기 선수(cognitively engaged endurance athletes)’로 남아 있다.

걸어 다니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아리스토텔레스나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소요학파(逍遙學派) 철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더욱 잘 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움직이는 것이 더욱 명확한 사고를 촉진한다고 믿었다.

불행한 기분은 인간으로서 불가피한 부분이 아니라, 현대적인 환경에 우리 인류가 유전적으로 적합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부작용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의 의학과 철학 모두에게 혁명적인 발상일 것이다.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고인류학자들에 의해 화석 기록에서 발굴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그런 발견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그곳은 마루사크 박사가 이끌고 있는 신경과학 실험실일 것이다. 그녀의 연구팀은 아이들 및 성인들의 스트레스 조절과 불안 장애에 엔도카나비노이드 시스템이 미치는 복잡한 역할에 대해서 연구한다.

한편 지구상에서 숨 쉬었던 인류 가운데 가장 행복했던 이들은 지금으로부터 수만 년 전에 아프리카 사바나에 살았던 부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상당히 흥미로운 발상이다.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선조들의 생활 리듬을 그대로 모방하고 싶다면, 러닝화 구입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러닝 동호회에 가입하는 건 훨씬 더 나은 생각이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춰서 운동하는 것은 엔도카나비노이드를 급증하게 만든다고 한다.

사바나 부족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들이 사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며 맺어진 끈끈한 애정의 유대감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사냥을 마친 뒤에는 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사냥의 결과물을 나누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둘러앉아서 잡담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노래와 춤으로 그날 저녁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노래하고 춤추는 행동 역시 두뇌에서 행복감을 유발하는 화학 물질을 촉발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대의 공동체 생활이 현대에 와서는 성취해야 할 목표를 가진 조직적 생활로 바뀌었다. 비록 오늘날의 일터 조직 내에서 고대의 유대 의식을 재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사냥꾼으로서의 끈기가 우리 DNA에 단단히 새겨져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우리에게 삶이란 언제나 단거리 경주보다는 마라톤에 가깝기 때문이다.
[1]
약 10~14킬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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