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일
4화

에디터는 연결한다

의사소통이 의사결정이다


편집은 지식과 정보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으로서 의사결정의 연속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의사결정권은 편집장이나 발행인만의 권한이 아니다. 원고 한 편을 두고도 기획, 편집, 디자인, 제작,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직무별 주체마다 서로 다른 견해가 존재한다. 수습 편집자부터 일반 편집자, 책임 편집자, 편집장, 발행인에 이르기까지 직급별로 수행하는 작업과 행사하는 결정권이 다르다. 감당하는 몫이 다를 뿐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내야 할 목소리를 내고 결정해야 할 것을 결정해야 한 권의 책이 탄생한다. 이렇게 어렵사리 탄생한 책이 서점과 도서관 등을 거쳐 독자의 손에 당도하는 데도 여러 사람의 지난한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이 개입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구심점이 있기 마련이다. 편집에 관한 한 구심점은 담당 에디터다. 직급과 경력은 별개의 문제다. 담당 에디터는 저자가 막 탈고한 원고를 최초로 읽는 독자이자 최초로 품평하는 비평가로서 책의 구조와 형태를 설계하는 한편, 출판사 내외부에 책의 존재를 알리는 홍보 마케터 역할을 겸한다. 담당 에디터는 출판 공정에 참여하는 동료 에디터, 디자이너, 마케터, 발행인, 인쇄업자, 서점인 들에게 저자와 원고에 대한 ‘첫인상’을 심어 주는 사람이기에 여러 얼굴로 활약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에디터는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 조화로운 협주를 이뤄내는 지휘자로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악보를 마련해야 한다.

최소한의 악보란 바로 원고의 핵심을 ‘심플하게’ 전달하는 능력이다. 저자가 오랜 기간 집필한 고도의 세계를 한두 문장 또는 한두 페이지로 압축하여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 필요하다면 한두 시간 이상 말로써 풀어내고 설득하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갖춰야 한다.[1] 전문가의 언어를 대중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은 그 반대 작업만큼이나 녹록지 않다. 이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땅에서 솟지 않는다. 차근차근 읽고 질문하며 저자와 독자에 대해 숙고한 시간만이 에디터 내면에 힘을 형성하고, 그렇게 결집한 힘이 외부로 표출되어 나온다. 저자만 추종해서도 곤란하다. 독자와 시장을 사랑해야 한다. 자신이 귀하게 여기는 가치를 남들도 받아들이게 하려면 그들의 언어로 설득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에디터가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의 연속인 출판 공정에서 구심점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소통하되 결정하라

나는 다수의 사람을 동시다발로 만나는 일을 불편해하면서도 저자, 번역자, 독자, 디자이너, 제작자, 마케터, 서점인 등과 소통하는 일은 즐기는 편이다. 이들이 자신만의 관점과 감각과 경험치로 내가 담당하는 책에 색과 형태를 입히고 날개를 달아 줄 때면 환희를 느낀다. 모두의 합심과 협업으로 하나의 관념이 책이라는 사물로 뚜렷하게 변화해 가는 과정이 신비로워 이 일을 평생 경험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여기게 됐다. 내 의사를 무시하고 결정권을 가져가는 저자나 상사나 발행인을 만나 에디터의 삶에 회의감이 든 적도 있지만, 그들은 그들 상황과 위치에서 나름의 의사결정을 행한 것이리라. 이런 상대화가 가능한 것도 에디터로 살았기 때문일 터.

어떤 직급에서 어떤 직무를 수행하더라도 내가 마치 최종 의사결정권자라고 생각하고 전체를 가늠하는 자세로 일하게 된 것은 처음 팀장이 된 때였다.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팀원 네 사람과 한 달에 신간 네다섯 종을 밀어내는 한편, 인문학 총서와 교양문고 기획까지 진행하던 시절이었다. 순수문학과 청소년 도서 위주로 출판하던 자음과모음이 설립 10주년을 맞아 인문교양, 경제경영, 장르문학, 전자책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확장하던 시기라서 팀별로 요구되는 성과가 간단치 않았다. 인문팀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판을 짜는 일이 중요했는데, 당시 나는 경기도의 한 예술고등학교에서 5년여간 시 창작법을 강의하다 출판계로 막 돌아온 참이어서 종합 출판사의 인문 출판 지형을 치밀하게 그릴 만한 경력이 보증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 개인으로 볼 때는 체력이나 지력이 한창이었고 직관과 감성으로 일을 밀어붙이는 힘도 있었다. 그래서 가능했겠지만, 한국 인문학의 새 지형도를 그리겠다는 불가능한 욕망을 품었다.

어느 날이었다. 인문팀이 진행하는 일을 대체로 순순히 승인해 주시던 사장님이 신간 표지 디자인을 놓고 계속 퇴짜를 놓았다. 표지 시안이 한 번에 통과되는 일이 거의 없었고, 무엇이 탐탁지 않은지 어떻게 개선하면 좋겠는지 친절한 설명 없이 ‘다시 해와!’를 반복하셨다. 표지 시안이 여러 차례 반려되면 그만큼 출간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부서별로 할당된 출간 종수를 채우지 못하면 회의 석상에서 깨지는 건 팀장인 나였다. 팀원이 담당하는 책이라 해도 결국 그 책의 표지 시안을 들고 사장실에 들어가 결재를 받아 내야 하는 사람도 나였다. 며칠 머리를 싸맸다. 무엇이 문제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은 밀리는데 시간은 없고, 상사는 까다롭고, 담당 에디터와 디자이너는 지쳤다……. 그때 마침 사장실로 표지 시안을 여러 종 들고 결재받으러 들어가는 또 다른 팀장을 보았다. 순간, 깨달음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아, 우리의 최종 결정권자가 지금 수많은 의사결정 문제들에 둘러싸여 무엇도 제대로 결정할 수 없는 상태로구나! 회의에 출장에 미팅에 영업에 잠잘 시간도 없구나!’

이후로 나는 상사와 경영진은 무조건 바쁜 사람들이라 규정하고 그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줄일 만한 묘수를 찾는 데 집중했다. 결재를 잘 받아 내기 위해 상사나 대표의 일정과 컨디션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버릇은 이때부터 들인 것 같다. 사장 결재 전에 마치 내가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양 표지 시안을 검토하고 디렉팅하는 과정도 추가했다. 나의 의사결정 위치를 바꾸니 달리 보이는 것이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내가 안일하게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자각했다. ‘내 선에서 용납되지 않는 결과물은 위로도 올리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먹고 편집 회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원고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어떤 매력을 강조해야 물성이 눈에 띌지 의논하고 토론했다.

무엇보다 선택지를 좁히는 데 총력을 다했다. 그래야 의사결정이 수월해질 터. 유사한 디자인을 붕어빵 찍듯 여러 개 만들지 말고 서로 다른 성격의 표지 시안을 두세 개만 만들어 보자고 권유했다. 제목 중심으로 레터링을 강조한 시안만 있다면 사진이나 그림 등 오브제를 활용한 시안을 추가했다. 흰색 바탕의 표지가 다수라면 과감한 색감으로 분위기를 압도하는 시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원고 성격에 부합하고 제목을 잘 살리면서 누가 봐도 참신하게 느끼는 표지가 무엇일지, 머리와 손이 바쁜 디자이너를 위해 에디터들이 보조할 일은 무엇인지, 나와 담당 에디터와 디자이너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방향을 잡아 나갔다.

그렇게 실무자 선에서 최선을 다해 ‘소통하고 결정한’ 시안을 들고 사장실에 들어가자 기대하던 일이 벌어졌다. 디자인에 관한 한 유독 까탈스러운 경영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결재가 수월해졌다. 일례로 워크룸프레스의 김형진 대표가 디자인한 ‘하이브리드 총서’ 표지는 단번에 결정됐다. 시리즈물이라 멀리 내다보고 결정해야 할 요소가 많았는데도 경영진은 한 번에 ‘OK’를 주었다. 디자이너와 에디터가 내심 찜해 둔 시안을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단번에 결정할 때의 희열이란! 하이브리드 총서 디자인은 에디터의 구조적 사고 과정을 디자이너가 직접 수행한 몇 안 되는 작품이었고, 이 작업을 통해 나는 출판 편집에서 차지하는 디자인적 사고와 가성비를 고려한 물성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게 됐다. 아울러 창의적인 협업자에겐 일다운 일을 의뢰한 뒤 그저 맡겨 두는 편이 윗길임을 항상 유념하고 있다.

협업의 출발점으로서의 기획안

뉴아카이브 총서와 하이브리드 총서를 만들면서 나는 기획 및 편집 총괄자로서 편집 단계마다 작업물의 완성도를 가늠하고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체득했다. 아울러 인문팀의 업무 프로세스를 정비하는 한편 자음과모음의 인문 출판 지형을 설계해 출판사 브랜딩에 기여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를 세웠다. 매출에 기여하는 베스트셀러가 없다 해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 ‘소통하고 결정한’ 책이 출판사의 격을 높이고 품을 키워 계속 좋은 책을 출간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당시 자음과모음에서 오랜 기간 자본과 인력을 투자해 발간하던 계간 문예지 《자음과모음》은 내 눈에 보물창고로 보였다. 연재를 완료한 원고들이 아직 단행본으로 묶이지 않은 채 쌓여 있었고 연재 중인 원고도 다수였다. 무엇보다 타 문예지와 다르게 〈인문편〉에 실리는 젊은 인문학자들의 주제 감각과 원고 밀도가 상당했다. 섭외된 필자들도 학위를 막 마친 감각적이고 능력 있는 신진 학자들이어서 무언가 일을 벌이기에 최적이라 느껴졌다. 〈인문편〉을 기획‧구성하고 필자들을 발굴한 복도훈, 최정우, 정여울 편집위원과 주기적으로 만나 총서의 밑그림을 그려 나갔다. 이들은 문학에서 출발했으나 철학, 미학, 역사, 문화, 예술, 과학 등에 두루 조예가 깊었다. 이론과 실천, 이념과 감각을 가로지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지적·미적 세계를 새롭게 교배하고 착종하는 일에 일가견이 있었다. ‘하이브리드(hybrid)’라는 제목이 탄생한 연유다.

무엇보다 우리는 X세대로서 시대와 시대를 잇는 브리지(bridge) 감각이 같았다. 우리가 기획하는 인문학 총서가 독자들로 하여금 인문학 본연의 사유하고 통찰하는 힘뿐만 아니라 느끼고 상상하는 힘까지 촉발하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경계 간 글쓰기, 분과 간 학문하기, 한국 인문학의 새 지형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그들과의 작업을 매주 문서로 정리해 경영진에 보고하고 경영진의 피드백을 다시 편집위원들과 공유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총서 두 종이 윤곽을 드러냈다. 정통 학술서의 기조와 방법론을 존중하되 새로운 사유를 담은 ‘뉴아카이브 총서’, 신진 학자들의 개성적인 문체와 스타일로 기존에 없던 문제의식을 보여 주는 ‘하이브리드 총서’가 그 주인공이다.
 
하이브리드 총서 기획안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다소 허술하다. 그런데 당시에는 총서의 윤곽을 A4 한 장에 압축하고 표로 정리한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 이렇게 해야 실무진과 소통하기 편하기 때문이다. 실무 현장에서 노동량과 일정에 쫓기는 사람에게는 장광설을 늘어놓은 여러 장의 기획안보다 잘 정리된 개념도 한 장, 핵심 단어 몇 개가 오히려 작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각자가 채워 넣어야 할 상상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너무 멀리까지 달아나지는 않도록 적당히 잡아두는 가두리 역할 정도. 이런 방식으로 기획 초안을 잡자 원고 검토서나 디자인 제안서도 A4 한 장에 압축해 정리하는 일이 습관화됐다. 그리고 몇 년 후 ‘강력하고 간결한 한 장의 기획서(The one page proposal)’[2]가 직장인들에게 크게 유행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일이란 의사소통의 과정이자 의사결정의 연속으로 누구라도 이 과정을 줄이고 단순화해 효율을 높이려는 니즈가 강력하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다만 의사결정을 위해 모인 여러 사람 앞에서 원 페이지 기획서를 놓고 그것의 바탕이 되는 기획 취지와 실행 과정, 예상되는 비용과 수익, 전망하는 비전을 한두 시간 이상 (데이터에 기반해) ‘썰’로 풀어내는 능력도 엄연히 에디터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나는 이를 위해 별도로 ‘기획 취지’를 써보곤 한다. 왜 이 책을 내야 하는지, 이 책이 출간되면 독자와 출판 시장에 어떤 유익이 있는지, 에디터 스스로 글로써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출판사 임직원들을 설득하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진다. 평소에 질문하는 습관, 집요한 문답법을 통해 사고를 발전시키는 습관을 들인 에디터라면 기획 취지를 글로 충분히 풀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자기 내부에 오랫동안 똬리 튼 질문을 그저 외부에 꺼내 보이는 일일 테니 말이다. 자신이 어떤 책을 만들고 싶고 왜 만들고 싶은지를 말과 글과 숫자로 수월하게 설명할 줄 아는 에디터가 흔하지는 않지만, 기어코 돌이라도 던지는 에디터의 ‘취지’가 사내 임직원과 학계와 언론과 시장과 독자를 흔드는 법이다.

○○○문고 기획 취지
지난 20세기를 ‘이성’과 ‘기술’의 시대로 요약할 수 있다면, 21세기는 과연 어떤 시대로 지칭할 수 있을까. 쉽지 않아 보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1세기가 ‘이성과 기술을 뛰어넘는 시대’여야 한다는 점이다. 중국 《당서》에서 유래한 ‘물극필반(物極必反)’의 뜻을 굳이 되새겨보지 않더라도, 20세기에 이룩한 기술문명은 오늘날 최대치에 이르러 그 반전을 꾀하고 있다.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직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사용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구축한 컴퓨터 회사 애플의 대대적인 성공이 그 실례다.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닌 사람을 위한 기술을 지향하며 기술과 인문학의 연결 고리, 교차로를 모색하는 이 회사는 21세기형 기업의 대표 주자다.

오늘날 한국 출판 시장에서 인문학(人文學)이 부흥하고 있는 양상은 실로 다양한 요인이 접목된 결과겠지만, 중요한 것은 문학이 ‘상아탑’에서 ‘시장’으로 걸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의 수요가, 인문학을 원하는 사용자가 그만큼 확대되었고, 그만큼 인문적 질문과 대답이 절실해졌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실용 학문이 아니고 20세기 내내 과학의 뒷전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 같은 현상이 가능할까?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풍요의 불일치, 빈부격차로 인한 분배의 문제, 이념과 문명의 갈등으로 인한 동서 화합의 문제, 에너지 고갈과 환경 파괴 문제 등 20세기 기술문명이 남긴 문제들이 한꺼번에 부상하면서 사람살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터져 나오기 때문은 아닐까?

인문학의 본령이라 할 사유하고 통찰하는 힘을 기본으로 하되 느끼고 상상하는 힘까지 길러 주는, 20세기와 21세기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지식의 요람, 학문의 전당을 꿈꾸는 일은 과연 요원한 일일까? ○○○문고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한다. 동서라는 공간차와 고금이라는 시간차를 뛰어넘어 인간과 세계에 유용한 모든 콘텐츠의 파편을 ○○○처럼 둥그런 원 안에 짜임새 있게 모으되, 크기와 부피를 줄이려 한다. 두껍고 어렵고 난해한 고전 인문서를 무작정 강요하기보다는 좀 더 쉽게 접근하는 길을 터 주려는 것이다. 내용을 압축하고 번안하기보다는 전체를 대변할 만한 예각(銳角)을 소개함으로써 전체를 가리키는 ‘손가락’이 되려 한다. ○○○문고는 궁극적으로 이런 손가락들의 조합(Combine)을 출판사가 아닌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둠으로써 열린 편집을 지향한다. (후략)


위 글은 교양문고 기획안의 일부다. 나는 정통 학술서(뉴아카이브 총서)와 신서(하이브리드 총서) 두 시리즈를 인문팀의 핵심 기둥으로 세운 뒤, 그 주변을 둥그렇게 감싸는 교양문고 또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복도훈 기획위원과 함께 로베스피에르, 니체, 벤야민, 노발리스, 칸트, 캄파넬라, 고진, 라캉, 뒤링, 링컨, 굴원, 육기, 사마천, 신채호, 조광조, 황지우 등 동서양의 뛰어난 사상가와 작가가 남긴 저작, 논문, 편지, 선언문, 팸플릿 등 통칭 ‘인구에 회자되는 문건들’을 발굴해 누구라도 손쉽게 접하고 읽을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주저(主著) 뒤에 가려진 소박한 아티클이 주저만큼이나 주목받는 시대는 생각만 해도 흥분됐다. 이를 위해 종이책뿐만 아니라 주문형(POD·Publish On Demand) 전자책을 만들어 독자마다 원하는 주제와 형태로 전자 문서를 배합해 판매하는 시스템도 상상하곤 했다.

다만 안타깝게도 이 프로젝트는 빛을 보지 못했다. 리스트를 확정하고 전공자를 매칭한 뒤 예산안까지 승인받았지만, 프로젝트 총괄자인 내가 건강상의 문제로 중도 하차하면서 후속 편집 작업이 중단됐다. 이 일을 계기로 에디터에겐 건강도 실력의 일부라는 걸 깨달았다. 끝내 실현하지 못한, 그래서 실패라는 이름이 붙은 기획안을 굳이 내보이는 이유는 하나다. 이런 실패의 문건들이 빙산의 뿌리를 이뤄 지금 우리가 별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넘기는 책 한 권 한 권이 탄생함을 말하기 위해서다.

좋은 기획은 독자를 성큼성큼 앞질러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반 발짝 앞서서 동행하듯 리드하는 법이라고 선배들이 귀가 닳도록 강조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내가 좀 더 버텼더라면, 내가 좀 더 강건해서 프로젝트를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더라면 ‘반 발짝 앞서는 감각’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을까? 지금 와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무용한 일인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물화되지 못한 기획은 의사소통과 의사결정에 실패한 프로젝트가 되니까. 책이 되지 못한 원고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마음이 쓰리다. 미완성, 불가능, 잠재태…… 이런 말로 뭉뚱그릴 수밖에 없는 어떤 시절의 냄새가 사무친다. 판을 짠 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신명 나게 일을 벌이는 것도, 판이 깨지면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종막을 감내하는 것도 에디터의 숙명이다.

잘 쓴 글은 멋스러워 보이지만 내면을 자극하지 못한다. 반면 훌륭한 글은 가슴을 뛰게 한다. 감각적인 기획은 사람의 시선을 일시적으로 붙잡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훌륭한 기획은 오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훌륭한 글과 기획은 공통적으로 위대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 기획의 위대한 품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기획의 취지와 배경, 의도는 기획의 품성이다. 그 품성을 위대한 것으로 키워라.[3]
 

포지셔닝의 비밀


일찍이 책의 우주를 상상한 사람이 있다. 그에게 책의 우주란 부정수 혹은 무한수의 육각형 진열실로 구성된 곳이다. 각 진열실에는 두 면을 제외한 네 면에 다섯 개씩 모두 스무 개의 책장이 층고 높이로 들어서 있고, 책장이 놓여 있지 않은 두 면 중 하나는 서서 잠을 자는 방과 용변을 보는 곳을 양편에 둔 현관과 맞닿아 있다. 현관에는 나선형 계단이 아득하게 위아래로 치솟거나 내려가 있고, 이 모든 모습을 복제하는 거울 하나가 걸려 있다. 육각형 진열실의 벽마다 놓여 있는 다섯 개의 책장에는 똑같은 모형으로 된 책이 서른두 권씩 꽂혀 있다. 각 책은 410페이지, 각 페이지는 40줄, 각 줄은 흑색 활자로 찍힌 80여 개 글자로 구성된다. 글자들, 즉 알파벳 철자의 수는 쉼표와 마침표와 띄어쓰기를 포함해 모두 스물다섯 개다. 동일한 원소와 구조와 형태로 이루어진 책들로 빼곡한 세상, 그러나 똑같은 내용의 책은 어디에도 없다. 여기서 태어난 사람은 일평생 책의 미로를 헤매다 죽음을 맞이하는데, 사람들의 손에 의해 난간 너머로 밀쳐져 높이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곳으로 추락한다. 시작도 끝도 없는 곳이라서 그의 몸뚱이는 끝없이 가라앉는 가운데 부식하다가 공중의 바람에 용해되어 흩어진다. 공기가 곧 그의 무덤 자리다. 이곳은 어디일까? 바로 바벨의 도서관, 세상의 모든 책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나머지 모든 책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책’도 존재한다. 그 책을 훑어본 사서는 신과 유사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그를 찾아 순례를 떠났으나 동어반복적인 육각형의 세상에서 그이가 머물던 고귀한 육각형을 찾아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무한한 세계에서 영원한 순례자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책의 세상을 주기적으로 지나갈 뿐. 다만 바벨의 도서관에는 몇 세기 후 이 무질서 속을 가로질러 갈, 그래서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순례자를 설레는 가슴으로 기다리는 ‘자’가 있다.

위 이야기는 아르헨티나의 대문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소설 〈바벨의 도서관〉을 재구성한 것이다. 보르헤스는 책이라는 우주에 대해 고독하고 무한하고 부동적이며 쓸모없다고 규정하며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벨은 하늘의 문, 신의 문이라는 뜻으로 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지명이자 실제 고대 바빌로니아, 현 이라크에 존재했던 도시다.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아 이름을 날리려던 인간들의 계획은 신의 노여움을 샀는데, 신은 바벨탑을 직접 쓰러뜨리는 대신에 인간이 사용하던 하나의 언어를 온 땅의 말과 뒤섞어 버림으로써 서로 말이 통하지 않게 만든다. 결국 불통하고 반목하게 된 인간들이 공들여 쌓은 탑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온 땅으로 샅샅이 흩어지고 만다. 지금의 오대양 육대주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인류처럼.

이 바벨탑 이야기에서 신이 자신에게 대적하는 인간에게 탑 자체보다 ‘공통된 하나의 언어(=신의 언어)’를 허락하지 않는 대목은 말과 글로서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려는 사람에게 무한한 영감과 함께 냉혹한 한계를 일깨운다. ‘말과 글의 힘(=신의 창조력)’을 각성하여 그것을 사용하려는 인간은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듯.[4] 보르헤스는 이를 정확하게 꿰뚫어 봤다. 이 소설에서 ‘나머지 모든 책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책’을 훑어본 사서는 누구도 만난 적이 없고 누구에게도 발견되면 안 된다. 부재함으로써 존재하는 ‘신의 언어’를 상징하는 유일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머릿속 도서관을 설계하는 법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은 모든 뛰어난 고전이 그러하듯 단숨에 이해하기는 어려우나 정서적으로 압도하는 아우라가 상당하다. 이 소설을 처음 읽고 경악했던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학비를 보태기 위해 학내 중앙도서관에서 일했는데 도서관에서 도서관을 소재로 한 희한한 소설을 접하고는 오랫동안 이 소설의 아우라에 사로잡혀 있었다. 불교 재단이 세운 학교에 다녔던 터라 지하 서고에는 오래된 불경과 고서가 가득했다. 출입이 제한된 지하 서고를 오가며 학우들의 대출 도서를 찾아다 주는 것이 내 일이었다. 신청 도서를 찾아 서고로 내려갈 때면 오래 묵은 한기에 소름이 돋곤 했는데, 〈바벨의 도서관〉을 읽은 뒤로는 ‘나머지 모든 책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책’을 찾는 재미에 들렸다. 인적 없는 서가를 오가다 보면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며 내가 서 있는 곳이 육각형의 우주로 끝도 없이 확장되는 느낌에 사로잡혔고, 누구도 침범하지 않는 태풍의 눈과도 같은 고요한 곳으로 성큼 들어선 것만 같았다. 거기서 나는 바벨의 도서관을 지키는 사서를 만날 꿈에 부풀었다.

한번은 어떤 기업체의 서고를 정리한 날도 있었다. 경기도 용인에 소재한 삼성 계열사에서 근무하던 선배가 사내 서고를 정리해 줄 사람을 찾았는데 당시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가 연결됐다. 대기업 계열사의 서고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창고처럼 방치된 서고에는 서적과 잡지가 마구잡이로 쌓여 있었고 분류는커녕 라벨조차 제대로 붙어 있지 않아 단순 정리 이상의 일이 될 터였다. 한숨이 나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 권 한 권 ISBN과 ISSN 숫자에 담긴 분야와 주제별 정보를 파악하면서 책등 하단에 견출지를 붙여 분류하고, 이용자의 동선을 고려하면서 십진분류법에 따라 서가를 재배열한 뒤, 최종적으로 책을 꽂아 넣었다. 며칠 후 친구들 몇을 더 데리고 가서야 서가 정리는 끝났다. 큰 기대가 없어 보였던 선배는 우리의 ‘다소 전문적인’ 작업 결과를 보고는 매우 흡족해하며 두둑한 봉투를 건넸다.

편집의 속성을 궁리할 때면 대학 시절의 도서관 아르바이트가 직관적으로 떠오른다. 돈이 필요해 시작한 일인데 의외로 내가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정보나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경험은 훗날 새로운 기획을 위해 수많은 자료 더미를 헤맬 때 큰 도움이 됐다. 원하는 자료를 찾고자 최적의 동선을 탐색한다거나 몸을 써서 어떤 공간을 질서정연하게 만들어 본 경험은 비물리적인 공간, 이를테면 머릿속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가령 오래 찾아 헤매던 A라는 문건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고 치자. 머릿속에서 A 문건이 어떤 시대와 지역에 속하는지 위상학적으로 탐색하는 동시에 지적 세계에서 A가 차지하는 곳의 좌표를 찍기 시작한다. 일단 이 좌표를 시작으로 원점이 생기면 그것을 기준으로 A', A'', A'''…라는 유사점에 의한 종 계열 또는 B, C, D…라는 차이점에 의한 횡 계열로 문서의 위치 짓기(positioning)가 수월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지식이 범주화되면, 설령 빈틈이 많을지라도 머릿속이 거대한 도서관으로 바뀐다. 나만 아는 서가에 나만 아는 통로로 들어가면 원하는 정보가 놓여 있다. 한편으론 머릿속에서 정보와 정보가 새롭게 연결되며 완전히 낯선 지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한다. 또 다른 지식의 위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입체적으로 형성된 지식의 3D 도면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굳이 모든 지식을 알지 않아도 된다. 어디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요령이 있어, 원하는 정보를 고구마 줄기 캐듯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은 지식의 위상학이자 공간학의 정점에 있는 분야다. 지식을 생산하는 일이 저자의 일이라면 지식의 위계와 범주를 설계하는 일은 에디터의 일이다. 에디터는 저자처럼 어떤 한 지식에 정통할 필요가 없다. 모든 지식을 알 필요도 없다. 원하는 지식이 무엇이고, 필요한 저자가 누구인지 분별하고 선별하는 일에 기민하면 된다.

오늘날 바벨의 도서관을 대신하는 것은 인터넷이다. PC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정보의 바다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가히 정보 포화의 시대지만 이 미로 속을 헤매다 보면 내가 자주 다니는 길, 오래 머무는 공간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다 편집 감각이 있는 사람은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정보를 취사선택하여, 범주화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즐겨찾기 시작한 정보는 일과 삶에 유용한 지식으로 자리 잡는다. 사소한 정보라도 취사선택과 범주화가 수월해지면 편집은 우리 삶에 스며드는 기술 또는 라이프 스타일이 된다. 학문의 토대가 약했던 나는 출판사에 들어가 문고나 총서 등 대형 시리즈물을 만들면서 나만의 지식 지형을 그리게끔 됐다. 나만의 지식 지도가 생기면 그것을 사다리처럼 딛고 올라서서 또 다른 세상을 엿보거나 욕망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에디터는 누군가 홑겹의 삶 안에서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에 하품할 때 한 번의 생에서 백만 번 산 고양이처럼 다채로운 삶을 경험한다.

카테고리 횡단하기

지금 내가 서 있는 곳과 다른 범주가 보이기 시작하면 이를 이중삼중 겹치거나 합치거나 분리해서 보는 일도 할 수 있다. 일종의 ‘포지셔닝(positioning)’이 가능해진다. 포지셔닝 개념은 잭 트라우트와 앨 리스에 의해 최초로 대중화되며 미국 광고 업계를 넘어 마케팅 업계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현대 사회는 커뮤니케이션 과잉 사회인데, 이런 사회에서 기업이 취해야 할 최선책은 상품에 대한 메시지를 극도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애매하거나 불필요한 것을 없애고 날카롭게 갈아서 극도로 단순화한 메시지만이 수신자, 고객의 마인드에 입력된다. ‘고객이 언제나 옳다’라는 말이 선행할 때 발신자 관점을 수신자 관점으로 뒤바꿀 수 있고 잠재 고객에 집중할 수 있다. 기업이 자사 상품의 의미와 가치를 설파하기보다 잠재 고객의 마인드와 인식에 집중할 때 비로소 원하는 포지션을 창출할 수 있다. 이것이 포지셔닝의 역학이다.[5]

앞서 〈편집은 창조다〉라는 절에서 없음(nothing)에서 있음(being)을 만들어 내는 것이 조물주의 창조라면 있음(being)에서 또 다른 있음(creative being)을 만들어 내는 것은 에디터의 창조라고 구별한 바 있다. 이 ‘또 다른 있음’을 만들어 내는 핵심 전략이 ‘포지셔닝’이다. 그걸 알게 된 계기는 인문서 에디터에서 자기계발서 에디터로 포지션을 바꾸던 내가 그간 배운 모든 것을 다시 원점에서 보게 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강이 좋지 않아 본가에 내려가 쉬고 있을 때였다. 혼자 고립돼 있던 시기인데 무슨 자신감인지 에디터로서 배울 일은 다 배웠고 할 일은 다 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브랜드를 갖기로 했다. 출판업은 면세 업종인데다 주거지를 사업장으로 신고할 수 있어 창업 자금이 넉넉하지 않아도 아이템만 있다면 바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안성시청에 출판사 등록 신고를 하고 며칠 후 세무서에 들러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그리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몇 종의 책을 냈는데, 정해진 순서인 양 가진 돈을 모두 쓰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몸으로 뭔가를 배워 익히기를 즐기는 사람이지만 굳이 꼭 사업 실패의 쓴맛까지 봐야 했을까. 다행한 건 출판에서 내가 더 배워야 할 영역이 있다는 사실을 늦지 않게 깨우쳤다는 것이다. 바로 독자, 시장, 마케팅이었다.

다시 원점에 섰다. 내 경력의 전부인 인문학의 안온한 울타리를 벗어나야만 했다. 내가 출간한 책은 왜 팔리지 않는지, 팔리는 책은 무엇이 남다른지 알고 싶고 배워야 했다. 자본이 작동하는 원리를 모르고 출판사를 운영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베스트셀러를 쏟아내는 실용 출판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다행하게도 해마다 대형 베스트셀러를 출간하는 한경BP 그리고 토네이도 출판사와 연이 닿았다.

의미와 가치를 디자인하는 인문 출판에서 숫자로 사고하는 실용 출판으로 포지션을 바꾸는 일은 쉽지 않았다. 책에 대한 용어 정의부터 달랐다. 허구한 날 ‘도서 기획안’을 쓰던 나는 이제 ‘상품 개발안’을 제출해야 했다. 회의 석상에서 동료들이 주고받는 소비 트렌드 분석을 전혀 알아듣지 못해 혼자 충격에 휩싸인 적도 여러 날이었다. 핑퐁처럼 쏟아지는 말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으니 낯선 행성에 홀로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막막했지만 매달 갚아 나가야 하는 은행 빚을 생각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적응하고 살아남아야 했다.

안 보던 텔레비전, 특히 편집의 총체인 예능을 보기 시작했다. 없던 SNS 계정을 만들었다. 핸드폰에 게임 앱과 쇼핑 앱도 깔았다. 직장인들의 뒷담화 문화에도 가담했고, 퇴근하면 온갖 강연과 스터디그룹을 쫓아다녔다. 대중은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에 아낌없이 시간과 돈을 쓰는지, 나와 같은 직장인이 적잖은 값을 치르고 얻으려는 지식은 무엇인지, 유리알처럼 위태로운 이상론이 아니라 호두알처럼 단단한 현실 데이터에 기반해 사고하고 예측하는 습관을 들여야만 했다.

그렇게 분투하다 만들게 된 책이 레이먼드 조의 《관계의 힘》(한경BP, 2013)과 신정철의 《메모 습관의 힘》(토네이도, 2015)이다. 전자는 거창한 인맥보다 진정한 인간관계가 성공의 사다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스토리텔링 자기계발서다. 후자는 대기업 연구원으로 일했던 저자의 직무 경험과 축적된 메모 습관을 바탕으로 SNS 사회가 요구하는 지적 생산의 도구로서 메모의 효용성을 밝힌 실용 자기계발서다. 두 책 모두 당해의 종합 베스트셀러가 됐다. 적게는 수만 부, 많게는 수십만 부가 팔렸다. 1~2년에 걸쳐 팔리는 초판 부수가 하루 매출 부수로 찍히는 것을 매일 보면서 매일 의심했다. 나도 드디어 팔리는 책을 만드는 에디터가 된 것인가? 설마, 그럴 리가. 나는 팔리는 책을 만드는 팀의 일원이 됐을 뿐.

베스트셀러는 개인이 노력하고 소망한다고 해서 쉽사리 탄생하지 않는다. 팔리는 책 뒤에는 일개인의 능력치를 넘어서는 조직의 협업과 전략과 자본과 비전이 자리한다. 한 권의 밀리언셀러를 만들기 위해 에디터들의 무수한 노고가 담긴 수십, 수백 권의 백리스트를 폐기할 각오가 되어 있는 조직에도 행운은 간신히 찾아온다. 저자만 바라보고 기대면 곤란하다. 상업 도서야말로 디렉터이자 마케터로서 에디터의 역량이 더 전방위로 요구되는 분야다. 시시각각 변하는 독자와 시장의 언어를 부단히 학습하고 그 흐름을 추적해 전략적으로 두드릴 때 기적의 문이 열린다.

그러고 보니 두 도서의 제목에 모두 ‘힘’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인문학 에디터는 의식적으로 피하는 단어 중 하나다. ‘힘’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 힘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메타포의 원리를 알고 있거니와, 메타포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분야가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실용서 영역은 다르다. 제목과 카피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는 비유적이기보다 직접적이어야 하고, 최대한 단순하고 명료한 단어들을 조합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누가 봐도 오독하지 않는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해석할 수 있는 표현은 최종 의사결정 단계에서 대부분 폐기된다. 인문서 에디터에서 자기계발서 에디터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힘겨워했던 과제가 이것이었다. 메타포의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인문학적 기의의 세계에서 실용적 기표의 세계로 진입하기. 그러나 기표들만으로 또 다른 기의를 만드는 묘미를 알게 된 뒤로는 굳이 에디터로서 나의 포지션을 따지지 않게 됐다. 지금 만드는 책, 그것이 가장 중요한 현장이다.

독자를 포지셔닝하기

두 권의 대형 셀러가 탄생하는 동안 에디터로서 내가 한 일이 전혀 없었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어느 날 퇴근 후에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는데, 습관처럼 향하던 인문학 매대가 아니라 베스트셀러 집계판 책장을 빠르게 훑은 뒤 자기계발 신간 매대로 성큼성큼 이동하는 스스로를 낯설게 인지한 적이 있다. 동시에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이 경제경영서 매대에 다닥다닥 붙어 책을 뒤적이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직장인들이 업무 증진과 자기계발에 이토록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을 투여하는지 몰랐다. 질문 하나가 솟았다. ‘와, 이 많은 독자를 다른 매대로 데려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아니, 이들이 즐겨 찾는 매대에 다른 책을 갖다 놓으면 어떻게 될까?’ 사람은 관성처럼 가던 길을 가고 보던 것을 보고 먹던 것을 먹는다. 어지간한 계기가 아니고서는 일부러 새로운 길을 찾고 낯선 것을 즐기는 부류가 드물다. 다만 자신이 습관처럼 가던 길에 낯선 풍경이 보이고 새 맛집이 생기면 없던 호기심이 살아나기도 하는 법.

독자를 바꿀 수 없다면 매대를 바꾸면 되겠다는 힌트를 얻었다. 이후 인문학 주제를 경제경영이나 자기계발서에 입히는 작업, 또는 실용적 감각으로 인문학의 주제를 선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인문 분야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를 자기계발로 포지셔닝한다면 어떤 어법을 취하면 좋을까? 반대로 자기계발 분야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를 인문으로 심화한다면 어떤 개념으로 포지셔닝해야 좋을까? 매일같이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과 분야별 베스트 목록을 비교하고 분석하면서 제목에 담긴 ‘말들의 조합’을 습관화하기 시작했다. 숫자로 평가받는 살벌한 일터에서 나름 재미를 느끼는 비법이 생기자 버티는 힘이 붙기 시작했다. 수년 전부터 하이브리드한 작업에 흥미를 느꼈거니와 이런 관점으로 사물과 세상을 보기 시작하니 성향이 비슷한 저자와도 곧장 연결됐다.

레이먼드 조와 신정철 작가는 무엇이 좋은 삶이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지를 묻는 인문적 가치를 대중에게 전달하는 법을 터득한 분들이다. 《관계의 힘》은 뻔해서 간과되는 인간관계의 지혜를 스토리텔링 기법과 드라마틱한 플롯에 간접적으로 실어 냄으로써 메시지 증폭에 성공했다. 《메모 습관의 힘》은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 기반하여 자기계발을 넘어 자기성장의 도구로서 메모 습관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도왔다. 두 책은 통상의 자기계발서라서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 아니다. ‘관계’와 ‘메모’라는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주제로 독자의 삶을 다시금 각성시키고 업그레이드하는 책이었기에 두루 읽히고 많이 팔린 것이다. 사실 책의 작품성과 상품성이 균형을 이루며 독자의 니즈(needs)와 원츠(wants)를 만족시키는 이 접점이야말로 자본주의 시대 에디터의 가장 긴요한 자질인지도 모른다. 내가 한 일은 저자들의 단점에 의기소침해하기보다 강점에 주목하고 의미를 부여해 그것을 더 극대화하는 방편으로서 포지셔닝을 고민한 것이었다.

“시인이 왜 자기계발서를 만들어요? 그래서 시를 쓰지 못하는 거예요?” 대형 셀러를 만든 뒤 연봉도 오르고 직급도 높아졌지만 이게 맞는 길인지 스스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던 때였다. 오래 알고 지낸 업계의 지인으로부터 이 질문을 받고는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초심자의 자세로 사력을 다해 만든 책이 자기계발 매대에 놓여 있다는 이유로 저평가를 받으니 책상머리 평자들을 향한 혐오가 스멀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괴로운 일은 다음 문제의식에 내놓을 나만의 답안지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자기계발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학교와 기업이 담당해야 할 몫을 개인에게 떠넘김으로써 사회 발전의 동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는 거대한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 돕는 자조(自助) 사회에서 서로 돕는 공조(共助) 사회로 바꿔가야 하지 않을까?’[6]

하지만 세태 비판은 학자들의 몫이 아니던가. 그들이 그들 방식으로 그들 일을 하듯 나는 내 방식으로 내 일을 하면 됐다. 그들의 문제의식에 공감한다면 당장 내놓을 답안이 없다고 괴로워하기보다 책을 통해 답하는 쪽이 나다운 방식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듯이 출판은 문화와 산업이라는 양 날개를 펼치고 오랫동안 인류의 성장을 견인해 왔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온갖 영상 콘텐츠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가운데 사양산업의 길로 들어선 활자 중심 출판이 여전히 인간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다.
 

사람이 콘텐츠다


텍스트를 찢고 사람이 걸어 나오는 순간

에디터는 언제 어떻게 탄생하는가? 출판사에 입사해 원고를 읽고, 저자를 만나고, 인쇄 골목을 누비고, 서점에 드나들면 저절로 에디터가 되는가? 이런 행적을 차근차근 밟아 나가면 모두가 에디터로 살아남는가? 나는 왜인지 뛰어난 사수들 밑에서 안정적인 경로를 밟고 있는데도 꽤 오랫동안 출구 없는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었다. 그런 내게도 편집의 맛, 출판의 멋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2008년 여름이었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왜 제 책이 이렇게 늦어지죠? 언제쯤 나오나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출간을 독촉하던 그이는 부산 청년 김성만이었다. 자전거 한 대로 중국 상하이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1만 4200킬로미터를 432일간 홀로 달린 뒤 돌아와 글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한 사람. 대학과 군대와 취업으로 점철된 20대를 유라시아를 여행하기 위해 설계하고 바친 기이한 젊은이. 나는 그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실용서를 만들던 팀이 해체하면서 기존에 계약한 원고들이 담당자를 잃고 사무실 한쪽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내 앞에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하느라 다른 팀 원고에 눈길 줄 여유가 없었다. 그날 그 전화도 대강 수습하고 윗선에 넘기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유선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거부하기 어려운 간절함이 실려 있었고, 그 힘이 결국 나로 하여금 원고 더미를 풀어헤치도록 만들었다.

그의 원고와 사진을 훑던 순간은 여태도 선명히 기억난다. 텍스트의 잿빛 세계에 푹 절여진 뇌가 푸릇푸릇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을 일러 ‘텍스트의 세계를 찢고 사람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던 순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정련되지 않은 글쓰기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를 기점으로 한 드넓은 유라시아의 숨결이 그의 문장을 타고 내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자신의 몸으로 직접 대면한 세계의 경이로움을 타인에게 그대로 공명시키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수려한 문장, 잘 짜인 프레임만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기술과 솜씨에 선행하는 한 사람의 정신과 영혼이 집약된 내면 어딘가일 것이다.

그의 원고는 그의 사투리처럼 투박했지만 세상과 공명하는 힘으로 가득했다. 전문가 수준을 상회하는 아름다운 사진은 보는 사람에게 길 너머의 길을 상상하게끔 했다. 중국, 티베트, 네팔,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이라는 열두 나라는 그의 원고를 읽기 전까지는 흩어져 산발하는 낯선 점에 불과했다. 그는 그 점들을 하나의 선으로 이어 자기만의 길을 내기 위해 비행기나 버스가 아닌 자전거를 선택했고, 수백 일간 지치지 않고 달리기 위해 부러 부사관이 되어 몸을 만들었다. 무명이었고 어렸지만 이미 거대한 세계를 자신의 맨몸으로 통과해 본 사람만의 힘, 그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나는 ‘군살 없는 영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편집에 돌입했다.

주머니는 헐겁고 가진 것은 자전거와 카메라, 그리고 체력밖에 없는 이십 대 청년, 말도 서툴고 지리도 밝지 못하다. 하지만 그는 달렸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속도를 즐기며, 해발 5000미터가 넘는 고지대부터 새들만 노니는 저 프랑스 저지대까지, 평화로움과 신비로움이 넘쳐나는 세계 4대 종교 발상지에서 여전히 전운의 긴장이 감도는 파키스탄 서부 사막 지대까지, 기쁨과 슬픔, 이완과 긴장, 문화와 문명 사이를……. 

두 바퀴 자전거로 횡단한 이번 유라시아 여행을 통해 무엇을 얻었느냐고 물었더니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요. 자연이 정말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요.” 그러한 경외감을 품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 물었더니 이번엔 이런 답을 들려 주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려면 우선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겠지요.”

그가 다녀온 모든 길을 보여 주기엔 58편의 여행기와 100여 컷의 화보, 24편의 포토에세이로는 모자라다. 하지만 엿볼 수는 있다. 그가 무엇을 보았고 어떤 이들을 만났으며 그러한 만남을 통해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중국에서 여행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살집이 통통했던 저자는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갈 때쯤이면 군살 하나 없는 라이더로 변해 있다. 성숙미가 물씬 풍긴다. 군살 없는 영혼……이런 표현을 읊조리며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는데 슬며시 웃음이 지어진다. 이런 건장한 청년들이 한국에 있다고 생각하니 신난다.


위 글은 《달려라 자전거》(책세상, 2008)를 만든 뒤 그 감흥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기획회의》에 기고한 편집자 서평의 일부다. 스스로 길을 내면서 세상을 알아가고자 원했던 청년의 첫 책은 2008년도 대한출판문화협회 올해의 청소년 도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청소년 권장 도서로 선정되며 순항했고, 김성만 선생님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제2의 여정을 시작했다. 녹색연합 활동가가 되어 4대강 현장을 누볐고, 자신처럼 강인하고 지혜로운 반려자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두 부부가 살아갈 거처 또한 두 발로 전국을 누비며 결정했다. 역시 그다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렵사리 고른 터에 손수 살 집을 지어 올리고, 두 아이를 집에서 자연주의 출산법으로 낳아 건강하게 키우면서, 청년 시절 고수하던 채식주의를 내려놓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친환경 흑돼지 농장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SNS를 통해 이들 일가족의 삶을 접할 때면 매번 감탄하고 매번 배운다. 삶을 근원부터 궁리하는 이들은 먹고 자고 일하며 살아가는 터전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군다는 공통점이 있다. 타인에게 자신의 세계를 헐값에 넘기지 않으며, 열려 있되 중심을 잃지 않는다.

《달려라 자전거》를 만들면서 사람을 발견하고 발탁해 세상으로 내보내는 편집의 숨은 힘을 비로소 자각했다. 에디터의 권능이 무궁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편집의 현장은 수많은 장애와 간섭과 좌절로 점철돼 있지만 그것 못지않게 잠재력이 꿈틀댄다는 것을 ‘군살 없는 영혼’이 가르쳐 줬다. 누군가를 위해 세상을 향한 첫 문을 열어 주고 그 길이 순탄하길 응원하며 지금의 자리에서 한 그루 나무가 되어가는 일. 지속 가능한 편집은 이렇게 사람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깨닫자 이 일을 평생 해도 좋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진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연에 뒹구는 실천 인문학자와의 만남

출판사는 책이라는 상품을 대량 생산해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다. 여타 기업과 마찬가지로 경제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기에 출판사를 운영하는 경영자와 책을 만드는 에디터는 자주 충돌한다. 책의 의미와 가치에 집중하는 에디터는 판매 부수라든가 매출액, 베스트셀러 순위 등 숫자의 세계를 우선시하는 경영자 담론이 무자비하다고 느낀다. 그렇다고 무시하지는 못한다. 팔리지 않으면 더는 만들 수 없는 이치가 모든 사업의 내재율이기 때문이다. 경영자 또한 숫자와 장부가 제일 중요하면서도 출판 정신에 충실한 에디터 없이는 사업을 지속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현장은 단선적이지 않다. 편집과 경영을 겸하는 크리에이터가 다수이며, 책이 상품이면서 문화라는 점을 모르는 편집 주체는 드물다. 한마디로 출판은 양립 불가능한 세상이 손을 맞잡고 있는 업종이다. 그래서겠지만 인간의 일들 가운데 사적 취향과 공적 이익이 교집합을 이루는 몇 안 되는 일이다.

출판의 이런 양립성에 주목하게 된 것은 ‘편집장’이 아닌 ‘기획실장’이라는 직함으로 일할 때였다. 사업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경영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책의 의미와 가치에만 집중하는 에디터도 아닐 때 고민이 극에 달했다. 내가 어떤 책을 기획해야 출판사를 살리고 내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을지를 모르지 않았다. 억 단위 연봉을 받으며 스타 편집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길도 보였다. 그런데 나는 일찌감치 엇박자를 탔다. 이미 이름난 존재, 그 이름 덕분에 다소 느슨하고 허술해도 책이 팔리는 저자들이 있다. 그들 대신 나는 이름이 약해도 세계가 있는 존재, 문장마다 팽팽한 결기로 사람의 영혼을 후벼파는 무명씨들에 눈이 갔다. 무한한 잠재 가능성을 가진 숨은 보석을 캐낼 때 내 일의 존재 가치를 느꼈다.

그중 첫머리에 두고 기억하는 저자가 있다. 오지 탐험가이자 우리나라에 오토 캠핑 문화를 선도한 박상설 옹. 선생님은 내 나이의 두 배하고도 9년을 더 산, 당시 내가 만나본 시니어 중에 가장 연로한 분이셨다.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87세였는데, 그 연세에 자신이 자연에 몸을 던져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사유하고 기록하는 노인은 처음 보았다. 50년 동안 주말농장을 운영하고, 2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고, 모든 끼니를 스스로 해결하며, 여전히 백패킹을 즐기는 깐돌이 할아버지. 선생님이 그런 삶을 살게 된 데는 사연이 있었다.

그는 건설기계 기술사로 직업 전선에서 전성기를 달리다가 1987년, 61세 나이에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뇌간동맥경색 판정을 받았으나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아스피린 한 알과 걷기 운동만이 유일한 처방이었다. 그는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병원을 뛰쳐나와 그 길로 세계 오지를 떠돌았다. 텐트 하나 걸머지고 알래스카, 고비사막, 타르사막, 인도와 네팔의 자연 속으로 뛰어들었다. 죽자고 뛰어든 곳에서 그는 살아났고, 눕지 않고 걷기를 계속한 것이 기적을 가져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오대산 북쪽에 주말레저농원 캠프나비(Camp Nabe)를 열고 ‘열린 인성 캠프’를 운영하면서 상처 입은 사람들이 자기 안의 자연성을 회복하도록 이끌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 이미 상당량의 원고를 확보해 둔 터라 그의 일대기를 어느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숫자의 세계에 질식할 때마다 인터넷 브라우저를 열고 그의 칼럼을 수시로 찾아 읽은 덕이다. 왜 이런 문장이 여태 책으로 묶이지 않았는지 의아할 뿐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에 따르면 직관이란 ‘몸을 통과한 이성’으로서 인간 경험의 총체를 바탕으로 한 지성적 태도를 가리킨다. 선생님의 글은 직관 그 자체였다. 한번 접하면 예리한 화살촉처럼 깊게 각인되어 빠져나가지 않았다. 몸으로 써 나간 그의 사유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어 내 마음은 첫 순간부터 들썩였다.

그를 만난 첫날을 기억한다. 선생님은 손주뻘 되는 사람이 당신의 책을 만들겠다며 무작정 찾아오자 두어 시간 정도 거실 한편 캠핑용 의자에 앉혀 놓고 탐색의 시간을 가졌다. 이윽고 무엇을 예감한 듯 자신이 글을 쓰는 컴퓨터를 켜시고는 거기 담긴 글을 싹 가져가라면서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다. “책은 김 실장님이 알아서 잘 만들어 주세요. 내 원고를 모두 맡길게요.”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도 전이었다. 우리는 비즈니스 대화를 후딱 마무리하고는 현관 밖으로 나섰다. 선생님이 늘상 다니는 산길과 아라뱃길이 궁금했다. 한쪽 머리를 갸우뚱 얹고 다소 비틀거리는 선생님을 따라 걷는 동안 빠르게 이동하는 적란운 사이로 햇살이 부챗살처럼 펼쳐졌다. 대자연 속 소우주, 외로운 인간들의 행성이 서로를 끌어당기며 불꽃을 일으키는 순간은 영원성으로 가득했다. 인류란 저 푸르디푸른 공중에서 찰나의 형태로만 감지되는 우주의 비밀을 직관하기 위해 걷고 또 걷고, 쓰러져도 걷는 직립 보행의 길을 선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이 모두 가져가라고 했던 원고의 분량은 엄청났다. 그날 가져간 USB에도 다 담기지 않아 사나흘간 선생님 네트워크에 원격으로 접속해 내 컴퓨터로 복사했다. 모든 원고를 빠짐없이 읽고 네 개의 장으로 나눈 뒤 공들여 다듬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7] 노인 특유의 염려 가득한 전화와 메일이 종종 당도했지만 나는 저자와의 사교보다는 책 편집과 제작에 집중했다. 당장은 서운해하셔도 책이 하루라도 빨리 나오는 편이 연로한 선생님께 더 좋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이라면 선생님과 편집 과정을 더 자세히 공유하면서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했겠으나 그때는 이런 지혜가 없었다.노란 꽃을 피우던 산수유가 붉은 열매를 맺기 시작할 무렵 선생님의 첫 책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토네이도, 2014)가 ‘백 년의 삶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이라는 부제를 달고 시장에 나왔다. ‘자연’과 ‘캠핑’이라는 두 키워드에 꽂혀 있던 내게 독자층을 넓히자며 부제를 직접 지어 주신 편집주간님 덕분에 책은 금세 2쇄를 찍었다. 일간지 전면에 저자 인터뷰가 실리고, 강연을 요청하는 기관이 늘고,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도 출연하며 선생님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시는 듯했다. 비틀거리되 쓰러지지 않는 강고한 정신을 알기에 나는 그저 멀찍이서 선생님의 남은 생을 응원하리라 마음먹었다. 건강한 사람보다 더 건강한 마인드로 무장한 분이시니 언제까지나 살아계실 줄 알았다.
 
그로부터 8년 후 어느 가을날, 이른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박상설 선생님이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아시아엔》의 이상기 발행인이었다. 박상설 선생님께서 2021년 12월 23일 94세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다. 다음 날에는 선생님의 유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 상중이라 슬픔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나를 꼭 한번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언젠가 선생님께서 스치듯 들려주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자식들 가운데 아픈 딸이 있는데 가족주의로부터 탈피하여 자연주의로 선회한 선생님의 여생을 지지해 주는 동지라고.

연달아 걸려온 전화 두 통에 나는 한동안 아찔했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언젠가 꼭 캠프나비로 선생님을 찾아뵙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에게 돌연히 나타나 자신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꿰어 준 사람이라며, 어리디어린 내게 어김없이 존대하시고 당신의 가장 내밀한 기록들을 스스럼없이 보여 주시던 어른. 내내 기다리셨을 텐데, 불경하게도 나는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선생님의 베이스캠프에 다녀올 마음을 냈다.

해발 600미터 고지에 위치한 캠프나비는 왼쪽에 맑은 계곡을 두고 기다랗게 뻗어 있는 농장과 비닐하우스 한 채로 이뤄져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감자 구워 먹으며 이야기하기 좋은 난롯가를 중심으로 당장이라도 캠핑할 수 있는 텐트 두 채가 서 있었고, 누구라도 사용하도록 캠핑 장비와 농사 도구가 질서정연하게 벽을 이루고 있었다. 선생님은 부재했지만 그의 습관과 철학과 비전이 구석구석 박혀 있었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죽는 순간까지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예외적 인간, 박상설 옹처럼. 그날 나는 심지를 굳혔다. 절판된 선생님의 책을 다시 살리겠노라고 선생님 영전에 서약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뒤집히기도 하는 것이 인간의 일이지만 복잡한 관계의 숲에서 선생님과 내가 연결됐다는 사실만큼은 비가역적인 진실이다. 나는 그분의 첫 책을 편집한 순간 마지막 책까지 편집하도록 내정된 연(緣)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출판 동네에 있다 보면 듣지 않아도 좋을 것을 듣고,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을 보게 된다. 사람과 말에 관계하는 직업이다 보니 누구보다 깊숙이 알게 된다. 만인이 감탄하는 작품을 쓴 사람이 사실은 대필 작가를 고용했다거나, 아름다운 시를 짓는 사람이 누구보다 세속적으로 부를 축적한다거나, 약자에 대한 존중을 주장하는 이가 정작 약자만 골라서 괴롭히는 현장을 목격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출판업 자체에 회의감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나의 업을 팽개칠 수는 없으니 문장과 행위, 글과 사람이 일치한다는 환상을 내려놓아야 오래오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고 지극히 모순적인 생물이라서 생각과 말과 행위가 서로를 자주 배신하고 엇나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진짜 출판이 시작된다. 그래야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사언행(思言行)이 조화로운 이를 발견하고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왜 우리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까? 저마다 곡진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 행위가 인간만의 일이자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고 여긴다. 사람보다 아름다운 존재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길 위에 놓인 한 덩이 돌조차 사람보다 아름답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돌은 글을 쓰지 못한다. 책을 만들지 못한다. 언어적 존재, 관념과 추상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돌은 돌만의 분자 구조를 가진 사물일 뿐이다. 그 사물의 심원을 직관하는 눈과 논증하는 언어는 인간의 것이다. 이 인간다움의 총체가 출판으로 귀결된다.

[1]
오늘날의 페이퍼백 포맷을 만들고 미국의 대표적 문예 교양지 《뉴욕 리뷰 오브 북스(The New York Review of Books)》를 창간한 전설적인 출판인 제이슨 엡스타인은 스토리텔링과 관련해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의 지혜와 역사를 말·제스처·노래를 통해 전달하는 행위, 즉 스토리텔링은 현대 출판업이 존재하기 훨씬 전부터 번창해 온 인간의 타고난 기능이다. 이것은 출판업이 사라진 뒤에도 융성할 것이다.” 제이슨 엡스타인(최일성 譯), 《북 비즈니스》, 미래사, 2001, 111-112쪽.
[2]
패트릭 G. 라일리(안진환 譯), 《The One Page Proposal》, 을유문화사, 2002 참조.
[3]
 김학원, 《편집자란 무엇인가》, 휴머니스트, 2009, 120쪽.
[4]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 관장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던 보르헤스가 머리가 찢기는 우연한 사고로 실명하여 더는 스스로 읽지도 쓰지도 못하게 된 시절에 이 소설을 썼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5]
잭 트라우트·앨 리스(안진환 譯), 《포지셔닝》, 을유출판사, 2021(40주년 기념
판), 31-34쪽.
[6]
이원석, 《거대한 사기극》, 북바이북, 2013.
[7]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는 ‘1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2장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3장 생각이 깊어지는 삶이 행복하다’, ‘4장 홀로 숲을 이루는 나무는 없다’로 구성돼 있다. 박상설이라는 사람의 생각과 삶의 궤적을 먼저 보여 준 뒤 세상을 향한 노년의 지혜와 금쪽같은 제언들을 후반부에 배치했다. 책 말미에는 선생님의 유언장을 실었다. 선생님은 의사로부터 걸어야만 살 수 있다는 진단을 받은 이후로 ‘혹여 길에서 자신이 죽어 있는 모습을 발견하거든 그저 자연에 버려 달라’는 내용을 적은 유언장과 소정의 장례비를 함께 담아 늘 몸에 간직하고 다니셨다. 가족과 타인과 우주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자신의 최후를 늘 염두에 두고 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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