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일
5화

에디터는 노동한다

공부하는 사람을 공부하기


공부하는 학자의 삶은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지만 연구, 강의, 학술 발표, 저술 활동 등으로 이루어진 그들의 삶은 일견 외롭고 고단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갈고닦은 학문의 세계가 대중에게 전파되고 그들의 공부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일에 동참할 때, 그들의 삶은 누구보다 역동적인 파노라마를 그리며 불후(不朽)의 세계로 월반한다. 에디터는 학자의 공부가 세상을 향할 수 있도록 저자와 보폭을 함께하는 사람이다. 외로운 골방의 언어가 신명 나는 광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하는 후원자이자 덕후다. 그들의 언어와 그 뜻을 알아듣기 위해 그들의 가르침을 좇으며 공부한다.[1] 그래야 그들을 책이라는 용기에 담아 세상이라는 바다로 흘려보낼 수 있다(물론 세상 모든 에디터가 학자들의 책을 만드는 것은 아니며 이 길만이 가치 있는 것도 아니다).

무명의 언어로부터 배우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던 나는 지식보다 사람을 연구하느라 더 바빴다. 그래서 수업에도 자주 빠지고 학점 관리에도 미숙해 졸업 후 진로조차 불투명했다. 그러다 진짜 공부의 맛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대학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여름방학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시 창작 수업을 강의하던 홍신선 시인께서 박제천 시인이 운영하는 문학아카데미 출판사에서 편집 보조를 찾고 있다며 일할 마음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방학이면 아르바이트 자리 찾는 게 일이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그렇게 이 길로 들어섰다. 에디터가 어떤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로.

1999년 당시는 활판 출판에서 DTP(Desktop Publishing) 출판으로 진화해 개인 책상에 앉아 매킨토시 쿼크익스프레스 편집 프로그램으로 책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출판이 전자화됐다지만 지금처럼 한글 파일이나 워드 파일로 원고를 보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문인들은 대체로 수고(手稿)를 우편으로 부쳐 왔다. 출근한 첫날 내가 한 일도 원고지에 육필로 적힌 시를 컴퓨터로 입력하는 일이었다. 문청이었던 나는 저마다 독특한 필체를 자랑하는 문인들의 육필 원고를 보며 감격했고, 선배 시인들의 시를 마치 내 작품인 양 한 자 한 자 입력한 뒤 교정하는 일에 푹 빠져들었다. 그때 박제천 시인이 원고를 정리하는 요령 하나를 알려 주셨다. “원고가 들어오면 앞 장에 입수한 날짜를 적어 두렴. 그리고 다 입력한 원고에는 날짜와 함께 ‘입력 완(完)’이라고 적어 두고. 지금이야 한두 편이지만 마감 때는 원고가 수십 편 쌓여 정신없어질 테니.”

이후 나는 육필 원고뿐만 아니라 데이터 원고에도 일의 진행을 기록했고 이것은 여태 습관으로 굳었다. 막 들어온 원고에는 ‘입(入)’, 작업 중인 원고에는 ‘중(中)’, 작업을 완료한 원고에는 ‘완(完)’이라는 꼬리말을 붙이거나 그런 폴더를 만들어 정리했다. 더불어 편집본은 ‘초고’, ‘1교’, ‘2교’, ‘3교’, ‘OK교’ 등으로 버전을 달리해 저장하고 플로피 디스크에 복사본도 만들어 두었다. 도서관 아르바이트 시절에 더미로 쌓인 책을 정리하며 쾌감을 느끼던 정리벽은 컴퓨터 앞에서 파일을 정리하는 일에도 고스란히 적용됐다. 낱장 낱장의 원고에 차례를 부여하고 꼭지별로 정리한 뒤 디자인을 입혀 한 권의 책으로 둔갑하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꼭 마술쇼를 보듯 흥미진진했다.

당시 문학아카데미의 3층 회의실은 물류 창고를 겸했는데, 삼면을 빙 둘러 바닥부터 천장까지 철재로 짜 넣은 서가는 낡아가는 책 덩이로 가득했다. 데뷔했지만 무명이나 다름없는 시인들의 시집은 도통 팔리지 않아 오랫동안 벽을 이루다가 3개월, 6개월, 1년 등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파지가 되어 실려 나갔다. 창고 정리는 물류 담당자의 몫이었지만 나는 그 일을 자청했다. 창고를 정리하는 날이 오면 3층에 뛰어 올라가 누렇게 변색한 파지용 시집을 골라냈다. 처음엔 표지만 훑고 버리기 바빴는데, 어느 날엔가 시집을 내던지던 손이 떨렸다. 아마도 본문 안쪽에 실린 시를 읽어 버린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래층에 내려가 잡지 마감에 몰두하고 계신 박 시인께 여쭸다. “선생님, 저 시집들 한 권씩 가져가서 읽어도 될까요?” 박 시인은 돋보기안경 너머로 나를 힐끗 보시고는, 즐겨 태우는 담배를 입에 문 채로 “그러렴.” 하고 흔쾌히 허락하셨다.

아침 출근 전철 안에서 한 권, 퇴근 버스 안에서 한 권, 매일 두 권의 시집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대학에서 즐겨 읽던 무겁고 관념적인 언어가 아니라 보통의 삶을 노래하는 언어라서 이해하기 쉽고 몰입도가 빨랐다. 시인들이 일상의 어느 순간, 어느 대목에서 메타포를 발견하는지 힌트를 얻고 나자 세계가 모두 시적 제재(題材)로 변하는 마법을 경험했다. 뒤늦게 시심을 불태우는 이들의 언어는 눌러도 눌러지지 않는 삶에 대한 환희로 가득했고, 언어적 말놀이 이전에 삶의 민낯들이 포장 없이 뿜어져 나왔다. 담백하면서도 정직한 그들의 언어는 내게 깊은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문학아카데미 시선을 필두로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시들에 몰입하기를 반년, 집과 일터를 오가며 읽은 시집이 500권을 넘어서자 놀라운 일들이 펼쳐졌다. 그해 겨울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최종심에 이름이 거론되더니 이듬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다. 급작스레 마주한 일들에 아연실색했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무명의 언어였다는 것. 세상이 주목하지 않을 뿐 당당한 이름이 있고, 문단의 주인공이 되지 못할 뿐 저마다의 삶에서 주인의식을 잃지 않은 언어들의 힘이었다는 것. 내가 에디터가 아니었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세계다.

몰입의 힘, 각성의 순간

문학을 공부하려고 들어간 대학에서도 트이지 않던 시(詩)의 눈이 돈을 버는 일터에서, 8개월 남짓 압도적으로 읽고 몰입했을 때 트였던 경험은 내게 어떤 지향점처럼 남아 있다. 당시 경험한 것이 ‘플로우(flow)’라는 것을 안 것은 훗날의 일이다. 긍정심리학을 제창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에 따르면 지금 하는 일에 의식이 고도로 집중되어 다른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몰입 상태가 바로 플로우다. 이 상태에 이르면 일종의 오르가슴과 비슷한 쾌감과 행복감이 수반되기 때문에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어지간한 제약과 고생을 감내하면서까지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 든다.[2] 한국의 재료공학자 황농문 교수도 7년 동안 절정의 몰입 상태에서 수행한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몰입적 사고가 두뇌를 최대로 활용하고 자신이 상상하는 최고의 인생을 사는 방법임을 증명한 바 있다.[3] 이 ‘각성의 순간’이야말로 내 삶에서 진짜 공부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 압력과 임계점을 만들어 내는 일은 순전히 자신만이 할 수 있다는 자각은 자기주도 공부의 깊고 넓은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

이후 지식을 위한 지식보다는 삶을 위한 지혜에 방점을 두기 시작했다. 텍스트에서 사람이 느껴질 때 집중력과 몰입감이 최고조에 이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인문학 총서와 문고를 만들던 시절에 난해하고 복잡한 철학의 전모를 빠르게 파악하는 한 방법으로 저자의 전기나 자서전을 먼저 찾아 읽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들 삶의 어느 국면에서 개념과 이론 또는 작품이 ‘터져 나왔는지’를 파악하면 이해와 공감의 길이 쉽게 열렸다. 그렇게 전기나 자서전을 읽다가 빠져들어 사숙(私淑)한 지성이 여럿이다.

사실 타인의 원고를 읽는 일은 해를 거듭해도 좀처럼 수월해지지 않는다. 동시대를 살지도 않고 같은 언어를 쓰지도 않는 존재들의 말은 외계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탁월한 지적 생명체가 평생에 걸쳐 탐구한 세계를 한국의 무명 에디터가 며칠 만에 이해하고 정리해서 콘셉팅하고 마케팅하는 일이야말로 기적이다. 다만 경험상 그들의 사유와 작품 세계를 그들의 삶과 함께 독해할 때 기적이 시작됐으며, 동서와 고금의 한계를 뛰어넘어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고전의 진짜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천재(天才)를 발휘하고 싶다면 천재들의 생각(책)을 읽으라는 말은 온당하다.

공부가 삶의 도구가 아니라 목표여야 한다는 관점은 학자뿐만 아니라 에디터에게도 중요하다. 공부하는 태도를 장착한 에디터는 업무 스타일도 탐구적이다. 탐구하듯 목적성을 갖고 일할 때 전문가와 대중을 연결하는 지난한 일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책상에서 쌓아 올린 관념의 세계와 책상 바깥에서 펼쳐지는 실재의 현장을 매칭할 수 있다. 삶이 결부되는 한 어떤 언어, 어떤 지식이라도 사소하지 않다.

평생에 걸쳐 공부(해야)한다는 점은 같아도 에디터의 공부는 학자의 공부와 결이 다르다. 에디터는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수백 편의 콘텐츠를 참조한다. 학자는 공부 대상을 확정하면 평생을 몰입하지만 에디터는 공부 대상이 2~3개월 단위로 바뀐다. 나아가 방랑 기질이 강한 사람은 분야와 조직을 바꾸며 이리저리 흘러다닌다. 그러다 보면 에너지가 방전되고 방향을 잃기 쉽다. 이런 때 에디터는 책을 통해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는데, 나는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의 《공부하는 삶》을 자주 펼쳐 읽는다. 저자는 공부란 비범한 사람에게나 평범한 사람에게나 성스러운 의무이며, 지적인 삶을 사는 데는 매일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고 조언하며 공부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한다. 공부를 삶의 목적이 아닌 일의 수단으로 삼다가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성찰하다 보면 다시 누군가의 언어를 읽고 그들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본원적인 욕망이 꿈틀댄다.

‘천재성이란 오랜 인내’라고 할 때 그 인내는 조직적이고 총명한 인내여야 한다. 어떤 공부를 해내는 데에 비범한 재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평균 정도의 자질만 있어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에너지와 그 에너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데에 달려 있다. 정성을 들이며 착실히 일하는 노동자처럼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 노동자가 어딘가에 도달하는 동안 독창적인 천재는 대개 쓰라린 낙오자로 남는다. (…) 그들은 다른 이들보다 각자의 소명으로 성별(聖別)되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이 소명을 수행할 수 없는 처지라면, 적은 시간에 집중해서 수행해야 한다. 지적인 일을 하는 이의 특별한 금욕주의와 영웅적 덕목이 그들 일상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이 두 가지 자기 봉헌에 동의한다면 나는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신의 이름으로 진리를 알려줄 것이다.[4]

나는 상아탑을 흠모하지만 상아탑 바깥에 더 관심이 많다. 잡식성이라 만사에 관심이 많아 우선순위를 잘 가려내지 못하는데, 이런 면모조차 에디터에겐 개성이 되고 출판의 다양성으로 이어진다. 일과 삶이 서로를 결박할 때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된 스물넷 이후로는 인생이 하나의 거대한 시험지 같아서 세상의 모든 시험과 점수로 계층화되는 구조를 무시하고 살았다. 내 안의 질문과 그 질문을 자극하고 확장하는 세상의 지혜에 고갤 숙였다. 공부하는 태도만큼은 잃어버리지 않고 꾸역꾸역 걸어왔더니 ‘공부에 관한 공부’의 책이 다가왔다. 일본 철학계의 신성(新星) 지바 마사야 선생의 《공부의 철학》으로, 정처 없이 떠돌던 나의 편집 생활을 비로소 긍정하게 해준 멘토와도 같은 책이다.

자기 혁신을 동반하는 공부

2016년, 독자의 실용적 필요를 인문적 주제와 접목하기 위해 다시 책세상으로 돌아갔다. ‘성장’을 원하는 마음이나 ‘성공’을 원하는 마음은 결국 하나인데 출판 시장에서 인문학 독자와 자기계발 독자가 반응하는 어법은 천지 차이임을 유념했다. 대중이 접근하기 쉬운 심리학과 함께 공부법이나 메모법 등 성장과 성공의 도구들을 검토하던 중이었다. 곤도 마리에의 ‘정리’ 시리즈를 우리말로 옮긴 홍성민 선생님께서 일본을 자주 오가며 직접 일서를 발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부탁을 드렸다. 성실한 선생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따끈따끈한 책 정보를 보내 주셨다. 그 목록에서 단연코 눈에 띈 책이 《공부의 철학》이었다. 들뢰즈와 데리다, 메이야수 등 프랑스 현대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젊은 철학자가 쓴 메타 자기 계발서로 홍보 문구마저 이색적이었다. “인생의 근저에 혁명을 일으키는 깊은 공부, 그 원리와 실천! 공부는 이전까지의 자신을 잃어버리고 변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변신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공부를 두려워한다.”

자신을 잃어버리는 공부라니, 당장 읽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서둘러 《공부의 철학》 원서 서지 정보를 갈무리해 평소 자주 연락하는 에이전트에게 판권 조회를 의뢰했다. 타이틀 오퍼(offer) 의사도 미리 꾹꾹 전달했다. 먼저 찜해 둔다고 그 책이 내게 올 리 만무하지만 때로는 에디터의 적극성이 에이전트와 저작권자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는 법. 예상대로 《공부의 철학》 신간 정보가 국내에 오픈되자 여러 출판사가 관심을 보였다. 오퍼 마감일이 빠르게 정해지고 경매가 시작됐다. 일본 출판사는 한국에 독점 에이전시를 두지 않아 어느 에이전시를 통해 어느 출판사가 판권을 가져갈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신실한 에이전트와 책세상의 백리스트를 믿었다. 문예춘추라면 수십 년에 걸쳐 루소, 니체, 릴케, 카뮈 전집 등을 내며 인문 출판의 길을 뚝심 있게 걸어온 책세상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판권을 확보할 때는 선인세가 관건이지만 돈보다 출판 브랜드를 더 고려하는 저작권사도 있다는 걸 알았다. 양서를 내는 곳일수록 더. 책세상 또한 임원과 실무진 모두 우리가 잘 만들어 팔 수 있는 책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외서 확보에 무리한 비용을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잠시 내려놓고 최선을 다해 베팅했다. 그렇게 《공부의 철학》 한국어판을 편집할 기회를 잡았다.

몇 개월 후 우리말로 번역된 《공부의 철학》을 읽어 보니 예상보다 더 깊고 래디컬한 책이었다.[5] 기존의 공부법 도서와 차원이 달랐다. 암기와 이해 사이 어디쯤을 오가며 공부 스킬을 열거하는 단순 실용서가 아니었다. 철학적 원론과 자기계발적 방법론이 수미쌍관을 이룰 뿐만 아니라, 기존 공부법의 통념을 전복하는 메타적 성격이 강한 책이었다. 공부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남들과 차별화할지 자기 분석적으로 사유하는 책이자, 그런 공부를 위해 저자 자신의 방법론을 아낌없이 전수하는 책이었다. 철학자가 썼으니 철학책이 맞는데 ‘공부’에 대한 철학이다 보니 인문학도가 아니어도 두루 관심을 가질 만했다. 만인의 니즈와 원츠를 건드리는 책은 셀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저기 빈번히 노출돼 사람들의 입소문을 탄다면 더 그렇다.

마케팅 부서와 협의해 SNS 채널 홍보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철학을 공부한 김겨울 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 리뷰에 공을 들였다. 조회 수나 슈퍼챗에 연연하지 않는 김겨울 씨는 예상대로 이 책의 진가를 알아봤고, 실용서의 얼굴로 급진적이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철학책의 양가성을 예리하게 잘 짚었다. 오래지 않아 온오프라인에서 모두 반응이 왔다. 지바 마사야 선생을 직접 인터뷰한 기사와 호의 서린 서평이 일간지에 실렸다. 여러 서점에서 ‘화제의 도서’, ‘이달의 책’ 등으로 선정해 중요 매대에 진열해 주었다. 중쇄를 찍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손익분기를 넘기는 등 일련의 과정이 모두 흥미진진했는데, 무엇보다 오래 잠행 중이던 나의 일에서 뭔가 실마리를 찾은 기분이 들어 기뻤다. 좋은 책을 만들어 많이 팔겠다는 이상론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며, 지식의 최전선에서 근본을 고민하는 저자는 대중에게 그 활용법도 제시한다는 걸 확신하게 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쓰나미가 한국을 덮치는 동안 나의 이삼십 대는 열악한 일터에서 저물었다. 한창 공부할 시기를 놓친 까닭인지 늘 지적 허기에 시달렸고 그것이 콤플렉스로 굳어지는 게 싫어 대학원에도 진학했는데, 마음껏 읽고 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도 지적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그때는 ‘허기’ 자체가 공부의 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타인의 지식은 쌓는 게 아니라 버리는 것이며, 그때라야 자신의 지혜로 무르익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런 것들을 사람들과 부대끼며 책을 만들면서 터득했다. 나의 진짜 공부는 일터에서 시작되었고 일터에서 깊어졌다. 일터라는 제약이 있어서 진짜 공부가 가능했다.
 

노동의 조건을 설계하는 법


“book smart”, 영미권에서 헛똑똑이를 가리킬 때 자주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다. 책이 세상의 모든 것을 수렴하는 깔때기 같아도 책상 너머 세상은 실제로 얼마나 광대무변한가. 그래서 인류는 개개인의 삶, 경험, 지식, 지혜를 한 권 한 권 꿰어 백 년을 천 년, 만 년으로 이어가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인간은 답보하지만 역사는 진보한다는 노무현의 말은 일리가 있다. 한 권의 책은 왜소하지만 수천 년간 이어져 온 책의 역사는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하는 이유를 증명한다. 책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오로지 인간의 일,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는 믿음을 나는 갖고 있다.

텍스트 너머를 관조하기

생각을 편집하고 삶을 디자인하는 에디터의 일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모든 고귀한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6] 그러나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의 편집 현장은 대접받는 자리가 아니다.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팔리는 책을 못 만드는 에디터는 6개월도 버틸 수 없다. 대박을 터뜨릴 수 없다면 소박에 해당하는 책들을 기계처럼 찍어내야 한다. 자본주의의 약탈과 흡혈의 논리는 출판업에도 깊숙이 배어들어 있다. 출판사 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나날이 심화돼 자본력이 약한 소규모 출판사의 편집장은 나이 마흔을 넘어서면 연봉을 동결하든가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그런 대접을 받고 싶지 않다면 책으로 돈을 복사하는 기술을 장착해 경영자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아이템 기계가 돼야 한다.

양서를 만들고 팔기 위해 밤낮을 잊은 에디터와 마케터 등이 30여 년 동안 어렵사리 구축한 브랜드를, 금융 자본의 논리를 내면화한 냉정한 경영자가 계산기 몇 번 두드린 뒤 3년도 못 되어 완전히 무너뜨리는 현장을 지켜본 적이 있다. 나 또한 그 현장에서 쫓겨나듯 떠밀리는 지옥을 경험했고 마음 깊이 내상을 입었다. 편집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버티던 나조차 방어적 태도가 깊게 스며들어 어떤 일을 해도 온전히 기쁘지 않고 누구를 만나도 움츠러든 어깨를 펴기 힘들었다. 우리가 책을 통해 생산하는 의미와 가치와 실천(실용)의 사슬이 우리의 인권이나 노동권, 급여, 복지 등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노동은 계속될 수 있을까? 계속되어야 할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지자 속이 곪아들어 갔다.

출판계를 완전히 떠날 궁리를 했다. 생면부지의 땅 제주로 내려가 감귤농장 인부로 일하면서 제2의 인생을 도모했다. 그러던 중 내가 책을 만든 햇수만큼이나 오래 농사를 지은 사람들의 경이로운 몸을 보았다. 그들의 몸에 밴 기술을 한동안 질투하다가, 땅에서는 땅과 작물을 가장 잘 아는 농부가 빛이 나듯이 나 또한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할 때 빛이 난다는 사실을 아프게 받아들였다. 두 발로 농장을 누비고 두 손으로 과일나무를 어루만지며 종일 보내다 돌아오면 아무리 피곤하고 눈이 감겨도 SNS에 그날의 소회를 적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렇게 언어적 갈무리를 해야 하루를 온전히 살아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새벽달이 뜬 농장과 저녁별이 총총히 박힌 돌집을 볼 때면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며 자연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는 나를 보았다. 발견하고 표현하고 공유할 때 내 영혼이 반짝거렸다. 나는 풀었던 짐을 싸서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잘하고 좋아하는 일을 되찾기 위해.

서울로 돌아온 뒤 그동안 써온 편집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겨보았다. 마음에 서린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글을 쓴 날이 있는가 하면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해 글을 쓴 날도 있었다. 책들이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며 편집 과정 내내 기도하듯 마음을 가다듬던 날도 있었다. 어떤 순간, 어떤 일에서도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며 텍스트 너머를 관조하기 위해 애쓰는 나의 몸부림을 보았다. 에디터가 아니었대도 이랬을까? 사람의 일과 세계의 운행을 함부로 단정하지 않기 위해 어휘를 고르고 태도를 고민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물리학자 김상욱에 따르면 인간이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법칙에 따라 그냥 도는 것뿐이다. 물체가 1초에 4.9m 자유낙하하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4.9라는 숫자는 어떤 가치를 가질까? 4.9가 아니라 5.9였으면 더 정의로웠을까? 진화의 산물로 인간이 나타난 것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까? 공룡이 멸종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진화에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의 산물이다. 우주에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의미는 없다. 인간은 의미 없는 우주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는 존재다. 비록 그 의미라는 것이 상상의 산물에 불과할지라도 그렇게 사는 게 인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다. 인간은 자신이 만든 상상의 체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의미 없는 우주를 행복하게 산다. 그래서 우주보다 인간이 경이롭다.[7]

지속 가능한 편집을 위하여

사람을 발견하는 기쁨, 사람과 교류하는 기쁨, 자신도 미처 몰랐던 가능성과 잠재성을 타인에게서 끄집어내는 기쁨, 그 불가지(不可知)의 영역을 가지의 영역으로 변화시키는 기쁨, 그리하여 종국엔 그 기쁨을 모두의 것으로 돌려 공유하는 기쁨이 있다, 출판이라는 일에는. 그간의 기록을 돌아보면서 내가 이런 기쁨을 내려놓고 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아울러 내 앞을 가로막는다 생각했던 사람과 사건이 모두 이 마음을 강하게 심어 주기 위해 찾아온 화신처럼 느껴졌다. 이런 인식에 이르자 무엇도 준비된 것이 없건만 모든 것을 다 이룬 듯 벅찬 감정이 스멀거렸다. 흔들리고 꺾이고 주저앉는 일들의 연속이 ‘인간의 삶’이라면 다시 일어나 걷고 뛰고 날아오르는 것은 ‘인간의 일’이었다.

에디터로서 강한 내면에 이르기 위해 내겐 24년의 예비 기간이 필요했다. 더는 뒤로 물러날 곳이 없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 이제 편집은 내가 원해서 선택한 최초의 일이 됐다. 일생을 투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노동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평생 유지하기는 더 어렵다. 본인의 노동에서 일생을 투신할 만한 가치를 발견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상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포기(당)하지 않으려면 일의 기준과 규칙이 필요하다. 타인이 제시하는 규칙이 아니라 스스로 정립하는 규칙. 조직의 일원으로 노동했을 때 저질렀던 실수와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래 여섯 가지를 일의 근본으로 설정했다.

  ① 일의 의미와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 주변에서 어떻게 평가하든 나의 일을 평가절하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 자존감 있는 동료들과 느슨한 연결을 유지하며 서로를 동기부여하고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사람과의 다정한 대화를 즐긴다.

  ② 일에 매몰되지 않는다. 자정을 넘겨 새벽까지 책상 앞에 앉아 나를 양초의 심지처럼 불태우지 않는다. 무리해서라도 마감할 일이 생긴다면 마감 후에는 반드시 이완의 시간을 갖는다. 영화관에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가벼운 여행을 다녀온다. 나아가 3년, 5년, 10년 단위로 안식휴가를 쓴다.

  ③ 체력을 키운다.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읽고 쓰며 뇌를 단련하는 일 못지않게 운동, 등산 등으로 몸을 단련한다. 매일 한 시간 이상 명상과 스트레칭을 통해 정신을 이완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 산에 올라 근육과 호흡량을 키운다.

  ④ 일과 별개로 흥미 있는 분야를 꾸준히 공부한다. 히브리어와 라틴어 등을 익혀 고전 원문을 강독한다. 그렇게 공부한 언어로 낯선 사람과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언어는 하나의 세계다. 한 생에서 여러 세계를 동시다발로 사는 법을 포기하지 않는다.

  ⑤ 시간과 돈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보물처럼 꺼내 쓴다. 환경에 휘둘리지 않는 가장 기초적이면서 강력한 길이 숫자를 통제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유념한다. 더불어 숫자를 혐오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아끼되 차고 넘치는 숫자는 후원과 기부로 공화한다.

  ⑥ 사람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사람 안의 다양한 얼굴을 인정하고, 지나친 기대와 실망을 내려놓는다. 존재는 하나의 세계다. 나의 세계를 풍요롭게 일구는 지름길은 사람과 부대끼는 현장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

일의 원칙을 스스로 정립하고 수행하는 가운데 경제적 자립과 지속 가능한 출판을 실현하는 일이 말처럼 쉽진 않다. 그러나 지금이 아니면 영영 요원하다는 것 또한 잘 안다. 에디터는 자기 노동의 A부터 Z까지 전 과정을 들여다보고 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다. 개인의 노동이 개인의 철학과 취향과 습관과 함께 톱니바퀴처럼 매분 매초 맞물려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에디터가 자신의 내적 에너지에 온전히 집중함으로써 책다운 책이 만들어진다는 점은 거부하기 어려운 매력이다.
[1]
독자로서 내가 줄곧 흥미를 잃지 않고 몰입해 온 분야가 둘 있는데 바로 신학과 과학이다. 두 학문을 좋아하는 이유는 앎의 끝판왕이랄까, 그런 점이 느껴져서다. 신학은 신이라는 관념에 몰두하고 과학은 우주라는 사물에 몰두하지만 몰두하는 방식 자체는 대상에 대한 앎을 극단까지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두 분야는 서로의 학문적 대상과 믿음이 극단적으로 달라 양립 불가능한데도 수천 년 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인류의 세계를 지탱해 왔다. 서로가 서로의 목적이면서 도구인 샴쌍둥이 같달까. 이것이 ‘인간의 학문’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워 기회가 닿는다면 에디터로서 두 분야를 횡단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시작한 공부가 고대근동학(과 물리학)이다. 일례로 2014년 푸른아카데미에서 일반인 대상으로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인 주원준 박사의 ‘구약성경과 신들’이라는 강좌가 열렸는데, 강좌 소개문을 무심코 읽다가 ‘신’이 아니라 ‘신들’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유일신교의 본산지에 또 다른 신이 있었단 말인가?’ 다신교나 범신론에 우호적인데도 유일신교 가정에서 나고 자라 야훼 신앙을 거부할 수 없어 다소 괴로웠던 나로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주제였다. 이것 하나가 궁금해 시작한 공부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주원준 박사님이 대학 바깥에서 펼치는 강의를 대부분 쫓아다녔더니 어느새 우가릿어와 히브리어까지 공부하고 있다. 자그마치 기원전 언어다. 고전어도 아닌 고대어다. 몇몇의 인간이 신과 얼굴을 마주하던 시절의 언어. 기원후 21세기를 살아가는 나의 실무와는 하등 관련 없는 공부인데 어느새 나의 실무보다 더 중요해졌다. 놀라운 일이다. 누군가의 덕후, 무언가의 추종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그러하거니와, 실무와 관련 없이 오로지 그 자체로 즐거운 공부를 시작한 순간 에디터로서 나의 삶이 권태와 무의미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
[2]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 FLOW》, 한울림, 2018 개정판.
[3]
황농문, 《몰입》, 알에이치코리아, 2007.
[4]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이재만 譯), 《공부하는 삶》, 유유, 2013, 30-31쪽.
[5]
 《공부의 철학》 한국어판은 한일 통번역가 박제이 선생님의 번역을 거쳐 더 깊고 풍부해졌다. 이 책의 존재를 처음 알려 주셨던 홍성민 선생님은 일정상 번역에 참여하지 못하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지바 마사야 선생의 지적 세계를 우리말로 찰떡같이 옮겨 줄 번역자를 찾을 때 왜인지 철학 전공자에게 이 책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위와 논문의 틀에서 벗어나 있되 공부할 줄 아는 번역자를 찾고 싶었다. SNS에서 박제이 선생님의 글을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내내 생각났다. 이분 문장은 개념어를 부릴 때조차 촉촉하고 쫀득했다. 정확하고 명료한 번역문은 제법 많지만 우리말을 잘 살려 감칠맛까지 내는 번역문은 드물다. 《공부의 철학》 옮긴이 후기는 내가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글 중 하나다. 적당히 이해한 글은 난해하지만 완전히 이해한 글은 단숨에 읽힌다. 나는 박제이 번역가가 하루라도 빨리 저자의 삶을 시작하길 고대한다.
[6]
“Sed omnia 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 바루흐 스피노자(강영계 譯), 《에티카》, 서광사, 1990, 321쪽.
[7]
김상욱, 〈존재가 소중한 건 인간이 바라보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2018.5.17. 
https://www.khan.co.kr/view.html?art_id=201805172047005#c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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