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일
7화

에필로그 ; 이것은 에디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편집에 관한 책을 쓰자고 결심했을 때, 공교롭게도 나는 편집 현장에서 가장 먼 곳에 떨어져 있었다. 오른쪽 가슴에 자리 잡은 혹이 암으로 판명되면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막 치러낸참이었다. 병기는 초기여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생애 처음 주입한 전신마취제 후유증 탓인지 아니면 번아웃이 함께 왔는지, 무엇보다도 읽는 일이 힘에 부쳤다. 원고가 될 만한 글이라면 책 외에도 매체와 도구를 가리지 않고 읽어 치우는 것이 에디터의 일인데, 문단 하나를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와 읽고 또 읽는 일이 반복됐다. 사람의 말을 집중해서 듣고 응답하는 일도 힘에 부쳤다. 한두 마디 듣다 보면 의식의 초점이 흐려지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어질병이 일었다. 당시 편집장으로서 팀 단위 회의부터 임원 회의까지 크고 작은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했던 나로서는 마음속 깊이 위기감을 느꼈다. 책 만드는 사람이 읽고 쓰고 대화할 수 없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뜻밖의 인지 장애 상황에 직면하자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가 밀려왔다. 부정적인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자 당장 읽지도 못할 책을 잔뜩 사들여서는 제대로 펼쳐 보지도 않고 방바닥에 던져두었다. 방바닥에 방치한 책들이 잠자리까지 침범하던 어느 날, 무심코 책등이 보이도록 방바닥에 일렬로 줄을 세웠다. 줄을 세우며, 한 권 한 권 천천히 소리 내어 제목을 읽었다. 자연에게 말 걸기, 나무의 말이 들리나요, 욕망의 식물학, 숲의 인문학, 지금은 자연과 대화할 때, 조화로운 삶, 숲속의 은둔자…….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건강을 돌보기 위해 당장 숲에 가야 할 환자가 숲에 관한 책부터 쟁여 놓고 있었던 거다. 나의 일상이 바로 이런 에디터의 무의식적 습관으로 지탱되고 있음을 깨닫자 놀랍게도 마음의 결이 가지런해지며 평온해졌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던가. 삼면이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 누워 글 한 줄 제대로 읽을 수 없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역설적이게도 나는 읽고 쓰는 일에 대해, 듣고 말하며 소통하는 일의 본질에 대해, 이 습관들로 점철된 편집 행위에 대해 기나긴 질문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의 인지 능력은 예전 같지 않다. 200자 원고지 1000매 이상의 원고를 한 호흡에 읽고 한두 줄 또는 한두 문단으로 쓱쓱 정리하던 집중력은 사라졌다. 한 편의 글을 한두 단어로 개념화하여 명료하게 전달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겨운 과제가 됐다. 전체를 부분으로 치환하거나 부분을 통해 전체를 표상하는 뇌의 복잡미묘한 능력이 영영 사라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처하니 편집 행위가 지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겠다. 지력을 넘어선 내면의 열의, 타자를 향한 소통 의지, 존재와 세계에 대한 낙관적 태도 등이 이 업을 단단하게 받치는 대들보임을 알겠다.

위기의 사계절이 세 차례나 지났다. 이번에 복귀한 소속은 더는 타의에 의해 떠밀릴 일 없는 곳이다. 이곳에서 나는 에디터이자 디자이너이며 마케터이자 경영자로서 아이템 기획뿐만 아니라 자본 조달, 일하는 방식, 브랜딩, 경영 철학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설계하고 결정하고 실행해야 한다. 월급쟁이 시절에는 하루 스물네 시간을 타율이 아닌 자율로 살아가는 삶을 꿈꾸며 버텼는데 막상 현실이 되고 보니 두려움이 스멀거린다. 정말이지 만사를 스스로 해내야 한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나의 일은 그냥 멈춰져 있다. 이 상태를 지적하고 재촉하고 추궁하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다. 하루 종일 놀아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다. 놀랍고 낯선 경험이다. 출간 일정과 마감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타임라인 위에서 책을 밀어내고 사람을 만나 왔던 지난날의 관성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 다행하달까. 20년 넘게 책을 만들면서 다져진, 내 몸이 기억하는 현장을 수시로 떠올리는 이유다. 그때는 가능했으나 지금은 불가능한 일의 조건을 헤아려 본다. 지금이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일의 미래도 궁리해 본다.

배우고 익힌 것들을 다시금 돌아보고 나만의 편집 화두를 추출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20년 넘게 책을 만들면서 몸에 각인되다시피 한 지표들을 돌아보니 12개의 키워드로 정리됐다. 욕망, 질문, 창조, 원고, 안목, 매뉴얼, 의사소통, 의사결정, 포지셔닝, 관계, 공부, 노동. 다른 직종 사람들도 공감하기를 바라며 되도록 보편적인 주제를 골랐다. 지력과 체력이 한창일 때 썼다면 더 정교한 작업이 가능했겠지만, 그때는 불가능했던 메타적 관조를 시도한 것으로 위안 삼고 싶다. 현미경처럼 정밀하게 들여다보기보다 멀찍이 관망하며 편집이라는 ‘일’의 둘레를 스케치했다. 아울러 이들 키워드를 구체적으로 풀어 줄 사례(case+episode)를 덧붙였다. 적정한 인물과 책이 직관적으로 떠올랐다. 제외된 무수한 책과 인연을 떠올리면 아쉽고 죄송하지만 다른 기회에 더 나은 맥락에서 언급할 기회가 오길 바란다.

궁극적으로 나는 ‘편집(editing)’이라는 손가락을 통해 ‘일(work)’이라는 달을 가리키고자 했다. 세계적 커리어 전문가 리처드 볼스 박사가 말하길, 일이란 돈을 버는 방법에 국한되지 않는다. 일이란 내가 누구인지를 나타내는 매개체로서, 화가의 물감, 배우의 무대, 가수의 노래, 시인의 언어에 견줄 만한 무엇이다. 따라서 내가 선택한 일이라면 그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만의 고유한 개성이 드러나게 마련이다.[1] 편집 일을 좋아해서 잘하게 되었는지, 잘해서 좋아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제야 나의 일을 자력으로 ‘선택’하고 보니, 지난 24년이 기나긴 수습 시절에 불과했음을 알겠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내내 미지의 독자를 떠올렸다. 책을 비롯해 텍스트의 미래에 관심 있는 분들, 넘쳐나는 콘텐츠와 오락거리에도 불구하고 책과 저널을 탐독하는 분들, 웃고 즐기는 만인들 사이에서 고요히 내적 질문에 집중하는 사람들, 머릿속 앎을 일과 삶에 뿌리내리고자 오늘도 충실하게 분투하는 사람들, 일을 사랑하고 일을 통해 궁극의 자신을 실현하려는 사람들……. 에디터로 살아오는 동안 이런 지적 생활자들과 매일같이 교유할 수 있었다. 그것이 나의 일이라는 사실이 새삼 기쁘고 감사하다.
[1]
리처드 볼스(조병주 譯), 《파라슈트》, 한국경제신문 한경BP, 2013, 94-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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