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는 일본 경제

2023년 6월 12일, explained

일본 경제가 반등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저성장 국면을 앞두고 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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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됐다. 6월 8일, 일본 내각부는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0.7퍼센트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2.7퍼센트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일본이 오랜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WHY NOW

그 배경에는 국제 정세의 반사이익이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기회로 삼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따라간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 기조로 접어들고 있다. 경제적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레퍼런스가 될 일본 경제와 정책을 짚어 본다.


세계 경제 상황

일본의 경제 성장률을 두고 깜짝 성장이라 한다. 6월 6일 세계은행(WB)의 세계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2.1퍼센트다. 세계은행은 1월 전망치보다 소폭 올렸지만, 내년까지 약세를 보일 것이라 설명했다. 세계 각국 은행의 긴축 통화 정책 때문이다. 6월 8일, 호주 중앙은행(RBA)은 기준금리를 0.25퍼센트포인트 인상했다. 다음 날, 캐나다 중앙은행(BOC)도 기준금리를 0.25퍼센트포인트 인상했다. 금리 동결 기조를 보이던 호주와 캐나다가 급선회하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다. 일본의 성장률이 더 크게 보이는 이유다.

잃어버린 30년의 시작

일본의 저성장을 이해하기 위해 오래 전으로 거슬러 간다. 1950~1970년대 미국은 스태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인상해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주요 국가의 통화 가치를 올려 달러의 가치를 조정하고자 했다. 1985년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의 재무장관이 모여 일본의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가치를 올리는 ‘플라자 합의’를 이뤘다.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하며 호황기를 누리던 일본이었다. 이 합의로 엔·달러 환율은 2년 만에 48퍼센트 올랐고, 일본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급락했다. 일본은 기준금리를 낮추며 내수 부양을 꾀했고 시장에 많은 돈이 풀리자 주가와 집값이 상승했다. 일본의 버블 경제의 시작이었다. 그러자 일본은 다시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버블이 꺼지며 일본은 장기 저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신냉전 반사 이익

그리고 30년 만이다. 일본은 저성장 탈출을 눈앞에 두게 됐다. 저성장의 시작에도 반등의 기회에도 미국이 있다. 일본의 이번 실적에는 민간 설비투자가 큰 영향을 미쳤다. 전 분기 대비 설비투자 증가율이 1.4퍼센트였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자동차와 반도체 관련 산업을 중심으로 설비투자가 활발했다고 설명한다. 미국과 중국 갈등으로 일본이 반사 이익을 얻은 것이다. 최근 1년간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미국 수입에서 중국산의 비중은 15.4퍼센트로 떨어졌다. 2006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반면, 미국 수입에서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 제품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중 갈등이 일본 제조업에 대한 외국 기업의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TSMC 공장

실제로 그랬다. 6월 6일 류더인 TSMC 회장은 주주총회 뒤 기자회견에서 일본 구마모토현에 두 번째 반도체 공장 설립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일본 내 두 번째 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한 뒤 처음으로 구체적 위치를 밝힌 것이다. TSMC는 2021년 일본 소니와 합작사 JASM을 설립해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있다. 2024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 두 번째 공장을 설립해 생산 능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도 기회를 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제1공장 사업비의 약 40퍼센트를 일본 정부가 보조했다. 향후 10년간 10조 엔 이상을 투자해 반도체 관련 매출을 현재의 세 배로 늘릴 계획이다.

버핏이 산 일본 주식

공장뿐 아니다. 투자자도 일본으로 옮겨 가고 있다. 5월 19일, 닛케이225 지수는 3만 선을 넘었다. 1990년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다. 지금 상황에서 일본은 안전한 선택지다. 정치·외교적으로 확실히 서방을 향하고 있으면서, 중국과도 상당 수준의 경제 교역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본 수출입의 2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 주식은 중국의 경제 성장을 간접적으로 누릴 수 있는 투자처가 됐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의 행보도 이러한 의견을 뒷받침한다. 버핏은 “일본이 대만보다 좋은 투자처”라며 일본 5대 무역상사의 지분율을 각각 7.4퍼센트까지 늘렸다. 버핏 덕에 미국 빅테크에 집중하던 일본 젊은 세대가 버핏을 따라 국내 증시로 옮겨 오고 있다는 긍정적인 분석도 나온다.

물가와 임금 상승

물가상승률도 4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오랜 시간 일본 물가 상승률은 1퍼센트대 또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민간 소비가 늘면서 4.1퍼센트를 기록했다.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 이익이 증가하면서 근로자 임금도 상승했다. 일본 경제단체연합회의 2023년 춘계 노사 협상 1차 집계 결과 대기업 임금 인상률은 3.91퍼센트였다. 1993년 이후 최고치다. 다만 실질 임금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일본 정부는 최저임금 상승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올해 중으로 전국 평균 최저임금을 시급 1000엔, 우리 돈 약 9400원 이상으로 올려 두꺼운 중산층을 회복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일각에선 신중론

물론 일본 경제가 완전한 회복세에 들어섰다고 단언할 수 없다. 30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CNN은 고령화를 일본 경제의 거대한 장애물로 지적하며 “잠시 꿈틀대다가도 다시 침체에 빠지는 ‘관성’이 반복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간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일본은 고령화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했고, 그 결과 세계 1위 국가 부채 비율을 갖게 됐다. 고령화로 자본 시장도 둔화했다. 일본의 개인 금융 자산 60퍼센트 이상을 65세 이상 인구가 보유하고 있다. 노인 세대가 안정성 위주로 자산을 운용하면서 자본 시장의 역동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IT MATTERS

경제를 되찾는 것은 일본 정부의 오랜 과제다. 기시다 총리는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간판 정책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첫 번째 계획은 ‘자산소득 두 배 증가’였다. 일본 증시의 2대 주주인 일본 중앙은행이 직접 주식을 사들이며 시장 활성화를 노리고 있다. 6월 7일 진행한 ‘새로운 자본주의 실현’ 회의에서는 반도체·배터리·바이오·데이터 센터 등 네 개 산업을 전략 분야로 선정했다. 특히 일본에 공장을 건설하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에 신규 투자 비용의 최대 절반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활용해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다. 이대로라면 25년 만에 일본 경제 성장률이 우리나라를 넘어설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 경제가 일본의 길을 걷고 있다는 분석은 나온 지 오래다. 한국 경제 성장률은 3분기 연속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에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5월 25일 “한국 경제는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에 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 통화 등 단기 정책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타협을 통한 연금, 노동, 교육 등 구조개혁을 논해야 할 때라고 설명하며 “한은 총재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고 하는데, 다 관련이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타협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리더십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지금,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대책이 절실하다. 그리고 사회적 리더십이 곧 경제적 리더십인 때다.
정원진 에디터
#세계 #경제 #일본 #expla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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