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의 정치학
2화

도시 계획은 정치의 극한이다

심시티와 현실


게임 ‘심시티’나 ‘시티즈: 스카이라인’을 해본 적 있는가? 플레이어는 가상의 도시를 이끄는 시장이 되어 주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범죄나 화재에 대처하기 위해 경찰서와 소방서를 곳곳에 설치해야 하고, 주민들이 사용할 물과 전기를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주택이 부족하면 도로를 놓아 주거 용지를 추가로 확보해야 하며, 일자리가 부족하면 공장이나 오피스를 지어야 한다. 그게 바로 도시 계획이다. 게임 속 모든 선택과 결정은 도시의 효율적인 관리와 성장을 목적으로 한다.
심시티 4 게임 화면 ⓒMisk 유튜브
하지만 현실은 게임처럼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단 현실에선 게임 시작 화면 같은 허허벌판이 주어지지 않는다. 대다수 도시엔 켜켜이 쌓인 역사와 문명, 시민의 삶이 있다. 도시는 사람들이 안전한 공간과 거주지를 찾아 자발적으로 모여들어 군집을 이루며 탄생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한곳으로 모여들며 거주지가 넓어지자 그 공간을 관리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사람들이 사는 구역을 나누고 시장과 같은 주요 거점을 관리하는 게 도시 계획의 시작이었다.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도시가 계획적으로 수정되며 발전하는 과정은 게임의 플레이와는 다르다.

갈등의 존재도 현실과 게임의 중요한 차이다. 게임 속에서 도로를 놓고 기반 시설을 설치할 때 필요한 것은 돈과 약간의 소요 시간밖에 없다. 건물이나 인프라를 설치하는 데 수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의회의 의결이나 주민 공청회 같은 절차도 없다. 예산을 타이밍 좋게 배분하는 것이 전부다.

현실에선 어떨까? 아파트 근처에 쓰레기 소각장을 설치한다고 발표하면, 주민들의 행복도가 감소하는 수준으로 그치지 않는다. 잘못 설치된 도로를 다시 놓기 위해 기존 도로를 철거하면, 그 일대 교통량이 다른 구역으로 몰려 도시 전체의 교통이 마비될 수도 있다. 문제가 심각해지면 국정 감사나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고, 시민들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 수도 있다. 이처럼 현실은 게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다.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하면 성난 시민들의 저항과 시위를 도시 전역에서 마주할 것이다.

도시 계획은 강제적이다. 이 강제성에서 갈등이 피어난다. 공공의 이익과 공간의 효율적인 사용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강제력(법률과 행정 규칙)을 활용해 특정한 장소의 사용 목적과 형태를 제한하거나 강제하는 방법을 취한다. 내 땅이라고 무작정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국토를 공익의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발전을 도모하는 일은 헌법에서 정한 정부의 책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국토 종합 개발 계획이나 도시 계획·지역 계획 등을 세우고 국민에게 공표한다. 전자는 10년에서 20년 단위로 나라 전체의 현황에 맞게끔 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세우는 것이고, 후자는 국토 계획을 각 지역이나 도시에 맞게끔 구체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 계획은 도시 곳곳의 상황에 맞게끔 세부 계획과 지침, 설계 등으로 구체화된다. 국토-도시-건축으로 내려오는 계획의 흐름에 따라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듣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GTX, 신도시 등이 만들어진다. 위계에 따른 세 가지 계획이 바로 현실의 심시티다.

전장의 탄생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이 세 가지 계획이 처음부터 세칙까지 완성된 단일 계획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토 전체를 관리하는 계획을 한 권짜리 보고서로 완성할 수도 없거니와 계획대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각 계획은 큰 틀만 공유할 뿐이다. 위계의 아래로 갈수록 수많은 세부 계획과 법률,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제는 이것들이 서로를 보완하기도 하지만 상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갈등은 주체도, 성격도 다르다.

국토·지역 계획 단계에서 주로 맞불을 놓는 것은 정부의 각 부처다. 계획을 수립하고 변경할 때 부처별로 원하는 바가 다르고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목표도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이러한 계획의 목표가 ‘공익’과 ‘효율’이라고 말했지만, 이는 상당히 포괄적인 표현이다. 대부분의 요소는 공익과 효율로 포장할 수 있다. 국토의 균형과 발전은 물론이고, 인구, 경제, 환경, 교통, 대외 무역 관계까지 각 부처가 도맡는 사항은 모두 공익을 위해 중요하며 효율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게다가 개별 부처들은 해당 분야의 계획을 독립적으로 세우기 때문에 갈등은 필연적이다. 예를 들어 국토교통부에서 지방 도시의 교통 접근성 향상과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서해안의 습지 위로 20킬로미터 길이의 교량을 놓는다는 계획을 발표한다. 하지만 환경부에서는 해당 지역의 생태적 보존을 위해 보존 대상 습지 혹은 생태 지구로 지정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어떤 계획이 더 중요한지 국가적·공익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또 다른 갈등의 한 축은 중앙 정부와 지방 자치 단체(지자체) 사이의 갈등이다. 국토 개발에 있어 형평성을 고려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중앙 정부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역과 도시마다 우선순위를 두고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다. 어떤 지역에는 공원을, 또 다른 지역에는 공장과 화력 발전소, 쓰레기 소각장을 지어야 한다. 왜 우리 지역엔 기피 시설을 계획하고 다른 지역엔 문화 관광 자원을 계획하는지 언쟁이 오간다.

국토 계획은 너무도 광역적이고 장기적이라서, 개인의 사유 재산인 부동산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우는 드물다. 개인들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다. 그러나 계획이 아래로 내려가고 점차 구체화하면서 갈등은 복잡해지고 심화한다. 이를테면 가장 세부 계획에 해당하는 ‘건축 계획’은 대부분 사적 영역이다. 건물이 도시의 어떤 지역·구역에 있는지, 누가 어떤 목적으로 건물을 신축하고자 하는지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근 토지 소유주와의 갈등, 세입자와의 갈등과 같이 사인(私人)들 사이의 갈등이 빈발하고, 건축 인허가권을 가진 공공으로 갈등의 불똥이 튀기도 한다.

가장 논란이 큰 것은 역시 도시 계획이다. 도시 계획은 거대한 국토 계획과 세부적인 건축 계획 사이 어딘가에 있다. 그렇기에 정치적으로 위(중앙 정부)에서의 압력과 아래(지자체)서의 요구 사항이 끊임없이 충돌하고 갈등한다. 동시에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과 사유 재산의 활용을 제한·통제 혹은 촉진하기 때문에 잦은 민원의 대상이 된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 사인들의 이해관계가 뒤섞인, 한마디로 전장이다.

도시 계획의 공간적 범위는 해당 도시 전역이다. 개별 건축물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도로와 철도, 교량, 공항, 항만, 지하의 상하수도와 통신망까지 포괄한다. 계획의 대상에는 국유지나 공유지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법인, 종중 宗中, 종교 단체, 사학 재단 등이 보유한 땅도 포함된다. 물리적 범위가 넓기도 하거니와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시간도 장기적이다. 1~2년 수준의 계획은 단기 계획에 속한다. 못해도 5년에서 10년 정도의 계획이 중기 계획이며 20년 이상의 장기 계획으로 도시를 그려 나간다. 국가와 지자체의 공무원이기 때문에 세울 수 있는 계획이다. 이러한 복잡성이 다층적 갈등을 꽃피운다.

도시 계획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2020년 서울에서는 축구장 200개 규모의 도시공원이 없어진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공원 소유자들이 등산로와 출입구를 폐쇄해 해당 공원을 이용하던 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는 보도도 나왔다. 서울 만의 얘기가 아니다. 전국 각지에 있는 공원들이 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언론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등장한다. 공원이 갑자기 왜 사라진다는 걸까? 공원은 원래 국공유지 아니었나? 공원 소유자들은 왜 등산객을 막아섰을까? 뉴스의 헤드라인만 보면 무슨 영문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도시공원 문제는 도시 계획의 대표적 갈등 사례 중 하나다.

사건은 이렇다. 과거 공공은 도시에서 시민들의 쾌적한 삶을 위해 도시공원을 여러 군데 조성했다. 도시공원은 이른바 ‘도시 계획 시설’ 중 하나였다. 도시 계획 시설이란 사회 기반 시설로 불리는 도로, 상하수도, 녹지, 학교, 폐기물 처리 시설 등이 도시 계획에 법적으로 포함된 상태를 의미한다. 각 도시의 시장은 도시의 장기적인 운영과 공공의 이익을 위해 도시 운영에 필요한 주요 시설을 적절한 위치에 설치하고 운영해야 한다.

해당 위치가 국·공유지면 문제는 단순하다. 시설을 지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성하고 운영하면 된다. 문제는 시설을 짓기 위한 장소가 국공유지가 아닌 사유지일 때 발생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유지를 공공의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해당 지자체장이 사유지를 ‘도시 계획 시설’로 지정하면 다른 용도나 목적으로 사용 또는 개발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는 추후 재정·행정적 여력이 있을 때 해당 사유지를 매입해 시설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장기적 시각으로 도시 전체를 조율하고 관리해야 하는 공공의 특성상 계획의 실행도 더딜 수밖에 없다. 대개 이러한 계획은 수년에서 수십 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한 경우가 다반사다. 그동안 소유자들은 재산권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피해받는 상황이 이어졌다.

토지 소유자들도 가만있을 리 없다. 이들은 불합리함에 대항하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위헌 소송을 건다. 결국 1999년 헌법재판소는 도시계획법 제4조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리게 된다. 도시계획법 제4조는 도시 계획이 결정된 구역 안에서 토지 소유자가 재산권을 행사하는 것에 제약을 두는 법이었다. 과거 도시화 과정에서 정부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졌다. 그래서인지 공공이 사업을 계속 실행하지 않아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선 뒷전이었다. 이를 구제하기 위한 ‘손실 보상 규정’이 없던 게 위헌 판단에 결정적이었다. 헌법은 공공의 필요에 의해 사적 재산을 수용하더라도 정당한 보상을 지급할 것을 제23조에 명시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도시계획법 제4조가 이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이 재판 결과에 따라 10년 이상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미집행 시설은 지자체가 5년마다 재검토해 불필요한 시설일 경우 도시 계획에서 해제하게 됐다. 향후 결정되는 도시 계획 시설 역시 20년 이상 미집행 시 자동 실효 失效 되도록 구제 방안이 만들어졌다. 이른바 ‘장기 미집행 도시 계획 시설에 대한 실효제’다. 상술한 위헌 소송은 사실 성남시에서 학교 부지로 설정된 사유지의 땅 주인들이 제기한 것이다. 신도시 근처다 보니 토지 소유자들의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는 제도로 작동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실효제는 사실상 ‘도시공원 일몰제’로 불렸다. 왜일까?

장기 미집행 도시 계획 시설의 96퍼센트가 도시공원이기 때문이다. 도시공원은 학교나 도로, 상하수도, 철도 등 다른 시설에 비해 중요도가 낮아 우선순위가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전국 각지 도시공원이 없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20년간 사업 집행이 없어 도시 계획 구역에서 해제되는 것이다. 결국 판결로부터 20년이 지난 2020년 7월 1일 도시공원 일몰제가 가동됐다. 각 지자체는 세금을 투입해 급하게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도시공원으로 설정된 구역은 대부분 임야라 도심 녹지 조성에도 필요하고 그대로 계획 시설에서 해제되게 놔뒀다간 난개발(亂開發)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나는데 바로 지자체와 중앙 정부의 갈등이다.

대구시는 지난 2019년 8월 일몰제를 1년 앞두고 토지 보상을 위해 4846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지방채 4400억 원도 포함됐다. 웬만한 국책 사업 수준의 대규모 재정이다.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의 대부분은 1970년대 중앙 정부가 지정한 도시 계획 시설인데 왜 이제 와서 지자체가 이를 감당해야 하는지 볼멘소리가 나왔다. 정부는 지방채 이자를 일부 지원했지만, 땅값은 꾸준히 상승해 더 많은 매입 비용이 필요했고, 땅 주인이 매각을 거부하는 일도 발생했다. 전국의 지자체에서 토지 보상 문제는 중앙 정부의 외면 아래 더욱 난제가 되어가고 있다.

일몰제가 시행됐다고 해서 토지 보상이 곧장 이뤄지고 공공과 민간의 갈등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2020년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은 일몰제를 두고 “단 한 뼘의 공원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울시가 사유지인 공원 부지를 한 번에 매입하려면 1년 예산의 40퍼센트를 써야 한다. 어떤 묘수가 있던 걸까? 서울시는 일몰제로 만료된 공원 부지 일부를 매입하고 나머지는 ‘도시 자연 공원 구역’으로 지정했다. 도시 계획 시설은 아니지만, 개발이 더 강하게 제한되는 ‘용도 구역’으로 사실상 시간을 끌기 위한 조치였다. 서울시는 2023년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총 30개소를 정비해 생활 밀착형 공원을 조성한다고 밝혔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는 지자체에서 민간 개발을 풀어주거나 혹은 세금을 투입해 매입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이 싸움이 끝난다.

일몰제가 시행되기까지 20년간 우리의 뇌리에 잊혀 있었지만 도시공원 문제는 땅 주인과 지자체, 중앙 정부 간의 문제를 넘어 자연을 보전하려는 환경 단체, 미집행 도시공원을 등산로로 이용하던 주민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다. 기후 변화가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며 ‘도시 숲 총량제’와 같은 정책 제안도 나오는 마당이라 땅 주인들은 재산권에 더 민감해지고 있다. 도시 숲이 이산화탄소 흡수, 도시 열섬 완화, 생활 환경 개선, 소음 저감, 미세 먼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상기하면 곧 우리 모두의 문제기도 하다. 시작은 도시 계획과 건조한 법 조항이었지만 갈등의 파급력은 엄청나다.

이는 도시 계획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하다. 도시 계획은 성격과 종류가 다양하고, 시간적·공간적 범위도 천차만별이다. 민간에서 원하는 도시 계획도 있고 공공이 추진하는 도시 계획도 있다. 당연히 이해관계가 상충하며 영향을 받는 당사자도 다수 있다. 갈등이 심화하는 이유다.

글 서두에 도시 계획에 있어서 현실과 게임의 차이점을 몇 가지 살펴봤다. 이제 현실감을 한층 끌어올려 도시 계획이라는 게임을 생각해 보자. 최초에 국회에서 편성되는 예산안이 있고, 정부에서 세우는 거시적인 계획들이 다시 서울시와 경기도 등 각 지자체로 내려오면서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만들어진다. 건설사들은 사업을 따내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개인들은 계획에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갈등한다. 언론은 언론대로, 변호사는 변호사대로, 그 외에 다양한 단체와 개인들이 좋든 싫든 도시 계획 게임에 접속하게 된다. 이 게임의 규칙은 무엇이고, 엔딩은 어떨까? 어떤 플레이어들이 있을까?

 

도시 계획의 플레이이어들


도시 계획은 여럿의 명운이 걸린 거대한 게임이다. 플레이어를 파악하는 것은 도시 계획을 둘러싼 갈등 구조를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플레이어들은 크게 공공과 민간으로 나눌 수 있지만 이 게임은 단순히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싸우는 전장이 아니다. 공공은 다시 관할과 인사에 따라 세분된다. 거기다 공공과 민간에도 속하지 않는 비동맹 영역이 제 3지대를 형성한다. 이들은 각자의 영역을 넘어 상대의 영역을 침범하기도 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한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는, 매우 정치적이고 복잡한 전장인 셈이다.

공공

흔히 공공은 정부와 그 산하의 공공 기관·공기업을 지칭한다. 도, 특별시, 광역시 등의 광역 지방 자치 단체나 시군구와 같은 기초 지방 자치 단체까지 포함한다. 이론적으로 공공은 자기 자신의 고유한 이익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국익·국가 발전·공익 등 거시적이고 종합적인 이익을 위해 조직되고 운영된다. 가장 대표적인 공공 진영의 플레이어는 대한민국 정부다. 중앙 정부 산하에 있는 국토교통부는 대한민국 국토 전체를 관장하는 대표적인 정부 부처다. 공공을 구성하는 큰 두 축인 중앙 정부와 지자체는 주로 같은 편에 서지만, 정파적 대립이나 경제적 부담, 계획을 통해 얻고자 하는 이익에 따라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기도 한다. 2010년 국토부가 ‘도시 계획 결정권’을 지자체에 이양하며 갈등은 더 격화됐다.

관할 구역별 기관으로 나눠볼 수도 있지만, 그 기관을 이루는 개인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발견된다. 공공 부문에 소속된 개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정년 보장과 공무원 연금으로 표현되는 안정적 인사에 있다. 국가가 망하거나 본인이 심각한 범죄에 연루되는 게 아닌 이상 공무원은 정년과 연금을 보장받는다. 따라서 공무원들을 이 인사 특징을 누릴 수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전혀 다른 성격의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일반직, 하나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일반직 공무원은 고시나 공시 등 시험을 통해 임용된 공무원을 총칭한다. 정확한 법적 용어는 경력직 공무원이지만 이 책에선 이해의 편의상 일반직 공무원이라 부르겠다. 이들은 크게 지방직과 국가직으로 나뉘며, 특정직 공무원으로 분류되는 검사나 법관, 소방관, 경찰관 등을 포함한다. 우리 주변에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공무원으로, 대부분이 높은 경쟁률의 공개 채용 시험을 통과하여 채용·임용된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각자의 노력으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임용된 만큼, 이들의 목적은 명확하다. 무탈하고 무난하게 정년 퇴직해, 공무원 연금을 받으며 안정적인 노후를 즐기는 것이다. 국가와 공익을 위해 봉사하고 대의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이지만, 일차적으로 이들은 정책을 입안하거나 법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 행정 실무자다.

정무직 공무원은 우리가 흔히 아는 ‘정치인’이다. 이들의 힘은 선출직이라는 것에 있다. 시민들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대표’로서 제한된 임기에만 공직을 수행한다. 정무직 공무원의 이해관계는 일반 공무원보다 훨씬 까다롭고 복잡하다. 선거에서 본인이 말한 공약을 달성하면서도 본인을 지지했던 혹은 지지하지 않았던 다양한 이익 집단과 조직, 개인들의 요구와 민원을 해결해야 한다. 본인이 소속된 정당이나 정파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야만 다음 선거에서 다시금 선출되거나 권력을 유지해,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일반직 공무원보다 높은 지위에 있고, 정책을 제안하고 계획을 세우는 책무를 지기 때문에, 일반직 공무원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한다.

인사 성격에 따라 도시 계획에 임하는 자세 역시 달라진다. 일반직 공무원은 실무자다. 이들은 정해진 규칙과 기준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게 곧 자신의 자리와 안위를 지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무직 공무원은 선출직이고 임기가 존재하다 보니 소속된 정당의 이해관계나 본인이 선출된 지역의 민심에 민감하다. 지역 주민과 정당의 명확한 지지가 있다면 새로운 규칙과 기준을 세우고 계획을 변경해 새로운 사업을 만들 능력이 있다.

무엇보다 그 어떤 공무원이나 정치인도 개인의 배경이나 삶이 없이 홀로 뚝 떨어져나와 초인처럼 존재할 순 없다. 국가와 정부는 국익·공익을 위해 존재하지만, 조직에 소속된 개개인의 공무원은 결국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본인의 삶이 있고 가정이 있다. 동시에 사익이 있다.

민간

공공과 달리 본인이 속한 조직의 고유한 이익이 존재하는 모든 집단을 민간이라 할 수 있다. 도시 계획을 ‘부동산’이라는 사적 소유물과 시장 논리로 전환하여 이해하는 집단이기도 하다. 여기서 ‘민간’은 도시 계획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자로 한정한다. 예컨대 도시공원 문제가 결국 숲을 이용하는 시민 모두의 일이라 하여 ‘모든 시민’을 민간에 포함하지 않는 것과 같다. 도시 계획의 직접적 이해관계자라면 기업, 금융권, 주택·땅을 가졌거나 소비·구매하려는 개인, 이러한 개인들의 모임인 조합이 있다.

계획은 종이에 쓰인 글자와 그림일 뿐이다. 도시 계획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건 대부분 사기업이다. 토목·건설·부동산 회사들은 정부와 지자체를 대신하는 손과 발이 된다. 사업 규모가 크고 공인된 사업이기에 기업들은 누구라도 도시 계획을 탐낸다. 민간을 움직이는 핵심 동인이 이윤인 만큼 금융 회사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금융 회사는 부동산 대출, 금융 상품, 직접 투자 등을 통해 이윤을 추구한다. 부동산에 있어 기업과 개인 모두에 중요한 파트너다. 이들이 제공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없다면 첫 삽도 뜨기 어려운 게 우리나라 부동산 사업의 구조다. 금융 회사도 관리하는 돈의 성격에 따라 1·2·3 금융권, 보험 회사, 연·기금 등으로 다양하게 나뉜다.

개인은 도시 계획으로 만들어진 주택을 구매·사용하는 대표적인 최종 소비자이자 투자자다. 이 책의 플레이어 중 가장 다양한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각자의 배경과 이익이 다르므로 늘 도시 계획의 핵심 변수가 된다. 개인의 동상이몽은 역설적으로 조합에서 드러난다. 조합은 동질성(재산권)을 가진 개인들의 모임이다. 대표적으로 재건축·재개발 조합, 지역 주택 조합, 상가 세입자 조합 등이 있다. 개인으로는 국가나 기업에 맞서 협상력을 갖추거나 유의미한 의견을 전달하기 어려우니 사업 추진을 위해 뭉친 것이다. 이들은 법률적·행정적 절차에 따라 법인의 지위를 취득할 수 있다. 그런데 사업이 길어지거나 난관에 봉착하면 각자 개인의 이익과 상황에 따라 분열하기도 한다. 조합원과 비조합원 사이의 갈등도 쉽게 발생한다.

제3영역

도시 계획을 한층 더 난전으로 만드는 건 제3영역이다. 공공도 아니고 민간도 아닌 제3의 조직과 단체들을 말한다. 이들은 조직의 고유한 이익이 있는 동시에 사회 전체의 이익 혹은 공정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주로 연구원 같은 전문가나 시민 단체 등이 그렇다. 먼저 연구원·연구 기관은 도시 계획의 근거를 마련하는 집단으로, 특정 사업의 배경이 되는 통계 자료나 연구 보고서를 작성한다. 국가에 의해 설립된 기관도 있고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기관도 있다. 위 자료를 통해 계획이나 정책이 만들어지면 이를 평가하고 조언하는 것은 학회·대학교다. 주로 대학 교수들이 주축이 되는 전문가 집단으로 학문적 기반을 통해 계획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힘 있는 것은 위원회다. 도시 계획과 건축, 교통, 환경 등을 심의하는 교수와 공무원, 기타 전문가로 구성된 조직이다. 중앙 정부를 포함하여 각 지자체 산하에도 다양한 위원회가 설치돼 있다. 서울시 전역의 재개발·재건축 계획을 포함한 도시의 큼직한 계획들을 심사·검토하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등이 대표적이다. 계획의 타당성을 심사하는 사람들에는 국가에서 공인하는 전문직들이 숱하게 개입된다. 주로 도시 계획이나 부동산, 건축과 관련된 전문 직종으로 변호사, 감정 평가사, 공인 중개사, 도시 계획 기술사, 건축사 등이 대표적이다.

리스크 vs 이익

이 단체와 조직을 하나하나 알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핵심은 이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이익과 리스크 중 그들이 어떤 쪽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가령 일반직 공무원은 이익에 민감한 조직일까 리스크에 민감한 조직일까? 당연히 그들은 사업의 이익보다 리스크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평생의 직장이 보장되고 노후에 연금까지 지급된다. 이들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올해 성과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나 조기 승진에 실패하는 게 아니라 배임이나 횡령, 내부감사 등에 휘말려 징계받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것이다.

반면 소규모 시행사는 어떨까? 이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기업이 아니다. 10명도 안 되는 소수의 인력으로 일을 하며, 프로젝트가 바뀌면 회사나 법인을 바꾸는 경우가 흔하다. 이들의 사업적·조직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시행사를 설득할 때 리스크를 강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단기적 이익이나 인센티브를 강조하는 게 효과적이다. 도시 계획은 전쟁이기도 하지만 여러 톱니바퀴가 정확히 맞물려 돌아야 작동하는 게임이기도 하다. 각 플레이어의 속성을 잘 파악할수록 도시 계획의 성공률과 속도는 높아진다.

 

선택하고 분배하라


심시티와 같은 게임이 재미있는 혹은 어려운 이유는 한정된 자원에 대한 선택과 집중, 분배를 꽤 정교하게 반영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도시를 가꾸고 관리하기 위해 게임 내 재화와 시간을 전략적으로 써야 한다. 막상 게임을 해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하수도나 전기, 치안 등 도시를 위해 해야 할 게 꽤 많다. 민원을 빨리 해결해 주지 않으면 도시에 대한 불만족도가 높아져 시민들이 떠난다. 게임은 ‘건설 경영 시뮬레이션’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게임에서 플레이어의 판단이 현실에선 곧 정치다. 한정된 자원 혹은 자본 앞에서 성장과 분배에 관한 이해관계를 정리하고 결정하는 게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민간의 인내심도, 공공의 임기도 유한한 상황에서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게 현실의 도시 계획이다.

도시 계획은 정치의 극한이다.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이며,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밸런스 게임이다. 세금은 한정적이지만 이해관계자의 요구는 끝이 없다. ‘노원구 마을버스 추가 확보’, ‘서부선 경전철 착공’, ‘종합 부동산세 폐지’, ‘GTX-B 정차역 추가’ 등의 문구를 현수막이나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 모든 요구는 자신과 지역의 이익은 높이고 비용 부담은 축소하는 방향을 향한다. 누구도 본인이 세금을 더 내겠다고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며, 도시 인프라가 필요 없다고 사양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이 불만과 요구를 공약에 담아 전략적으로 지지율을 높이는 도구로 활용하곤 하지만 제한된 시간과 자원 속에서 모든 요구를 전부 이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작 도시 계획이 시작되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즉 정치적으로 더 효과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시점을 공공에서 민간으로 전환해 보자.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보통의 국민에게 부동산은 본인 재산의 대부분이다. 내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 안정감을 느끼며, 무주택자들은 내 집 마련을 위해 저축한다. 부동산 가치가 도시 계획의 영향만 받는 건 아니지만, 모든 부동산 가치를 일차적으로 좌우하는 건 분명 도시 계획이다. 주거 단지 근처의 도서관 신축, 재개발 지연, 기존 버스 노선의 폐선, 신규 철도 노선 발표 등 이 모든 것은 부동산에 직접 영향을 주는 계획이다. 도시 계획이 우리 자신과 밀접한 이유다.

도시 계획에서 촉발된 갈등은 때론 정쟁보다 격렬하다. 자유나 평등과 같이 추상적 가치가 아니라 당장 내 눈앞의 땅과 공간,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해관계가 나뉘기 때문이다. 피아식별은 빠르게 이뤄지며 민간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계산기가 돌아간다. 도시는 시민의 사유 재산(부동산)과 공공이 조성한 수많은 인프라가 뒤섞인 곳이다. 수많은 랜드마크와 공공장소, 주거 지역와 업무·상업 지구가 어우러진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의 풍경을 한 꺼풀 벗겨 내면 무수한 갈등을 마주할 수 있다. 모든 도시 계획에는 공간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만인의 정치가 있다.

개중에는 언론을 도배하는 사건들도 있다. 그 갈등의 규모와 여파가 크기 때문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뉴스지만 각각의 배경과 역사, 추진 경위와 갈등 구조를 정확히 알기 전에는 이해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각 사례의 맥락을 공방전으로 그리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도시 계획과 그 갈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플레이어들은 상황이나 장소에 따라 동맹이 되기도 하고 적이 되기도 하는데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영화 〈타짜〉의 명대사를 연상케 한다.

이 책에서는 네 가지의 대표적인 도시 계획 사례를 살펴본다. 첫 번째는 은마아파트 재건축이다. 강남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인 은마아파트를 통해 랜드마크 아파트를 원하는 조합의 목표와 재건축을 둘러싼 복잡한 인허가 문제를 다룰 것이다. 두 번째는 3기 신도시다. 신도시는 한국의 대표적인 주택 공급 정책으로, 분당·일산 등이 1기 신도시, 광교·판교· 위례 등이 2기 신도시에 해당한다. 덕양·광명·시흥 등의 3기 신도시를 통해 국가가 신도시를 만들고자 한 이유와 방식을 알아보려 한다.

세 번째는 재개발·재생 사업이다. 서울 강북의 노후 주택 밀집 지역에 일어난 일을 조명한다. 뉴타운, 도시재생, 그리고 다시 재개발로 연결되는 일련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서 공공 내부의 충돌과 갈등 그리고 주민들 사이의 내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마지막은 인프라에 대한 민간 투자 사업이다. 공공의 돈이 아닌 민간의 자본으로 이뤄지는 인프라 사업을 말한다. 민간 투자 사업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사업의 종류, 민간과 공공의 동상이몽을 알아보자. 오세훈 서울시장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 중 가장 눈에 띄는 ‘서울링’이 민간 투자 사업으로 진행되는 시나리오 또한 상상해 볼 것이다. 도시 계획과 민간 투자 사업 사이의 미묘한 정치를 그려내려 한다.

자, 이제 브리핑은 끝났다. 각 전투가 펼쳐지는 도시 계획 전쟁에 참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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