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의 정치학
5화

신도시를 향한 정부의 대개척 시대

정부의 빅 픽처


“말을 키우려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을 키우려면 서울로 보내라”라는 말이 있다. 정치와 경제, 문화, 기술, 자본까지. 모든 것은 서울로 모여들고 집중된다. 서울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수도이자 모든 것의 중심지다. 그간 대한민국의 성장은 서울의 성장과 동의어였다. 성장을 위한 기업, 높은 임금을 위한 근로자, 더 나은 교육을 위한 학생, 상급 병원의 진료를 찾는 환자들까지, 밀려드는 사람들로 서울은 항상 비싼 주거 비용과 집값에 시달린다. 30년 전에도 집은 부족하고 비쌌으며, 지금도 여전하다. 정부는 서울에 집중된 인구와 기업, 시설들을 분산시킴과 동시에 만성적인 주택 부족을 해결할 목적으로 획기적인 방법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도시, 신도시다.

오랜 기간 국가의 수도였던 서울을 통째로 갈아엎는 것은 힘든 일이다. 좁고 빽빽한 이 도시를 물리적으로 뜯어고치는 건 엄청난 비용이 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고, 장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다. 서울은 해방 전부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소유권이 복잡할 뿐 아니라 임대차, 영업 보상, 지적 불일치, 문화재 조사 등 어려운 문제들이 수없이 산적해 있다. 어떤 단어들인지 몰라도 좋다. 각각을 해결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 차치하더라도 땅값이 너무 비싸다. 임기 중에 성과를 내서 다음 선거 때 재신임을 받아야 하는 민주주의 정치에서 십여 년에 걸쳐 고작 수천 세대가 증가하는 재개발은 시쳇말로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다.

그렇기에 정부는 값비싸고, 보는 눈이 많은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 논밭을 새로운 도시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금을 찾아 서부 개척을 시도한 미국 이민자들과 같이, 정부는 도시가 될만한 땅을 수용하며 경기도를 개척해 나갔다. 그렇게 진행된 것이 80년대 후반 1기 신도시 다섯 개, 2000년대 초반 2기 신도시 13개, 그리고 2018년 발표된 3기 신도시 다섯 개다. 계획은 현재 진행형이다.

큰 사업엔 큰 비용이 든다. 그리고 강렬한 빛 뒤로는 그만큼 어두운 그림자가 진다. 신도시 사업은 늘 숱한 파열음과 논란을 동반했고, 개인적 이해득실에 따른 거래가 오갔다. 도시 계획과 기본 구상, 세부 설계, 토지 보상, 완성된 신도시를 다시 분양하는 단계까지 신도시가 만들어지는 십여 년의 시간에 조용한 날은 없었다. 하얀 도화지에 쭉쭉 선을 긋고 색칠해 저렴한 주택과 기반 시설을 공급하고 자급자족 도시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내·외부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됐다. 어떤 계획은 추진 주체 내부의 비리로, 또 다른 건은 토지 수용 절차와 정당성에 대한 문제로 흔들렸다.

발표 직후보단 조용해졌지만, 간간이 언론을 통해 3기 신도시 소식이 들린다. 예상보다 계획이 많이 늦어져 최소 2년에서 많게는 5년 이상 입주가 늦어질 거란 소식도 있고, 여전히 많은 토지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이야기된다. 물론 빠르게 진행되는 곳도 있다. 하남 교산, 고양 창릉 등이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실제 입주는 요원하다. 2021년 8월 첫 사전 청약을 시작으로 2023년 3월까지 약 네 차례 사전 청약을 진행하고 있지만, 토지 소유자들 사이에선 반대 목소리가 여전히 불거진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화나게 했을까. 신도시 계획의 구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신도시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결사반대’, ‘백지화’, ‘무효’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지 알 수 있다.

 

개척의 신호탄


계획은 위에서부터 내려온다. 전쟁을 결정하는 게 국가 원수이듯 이 계획은 실무진의 아이디어가 아닌 정치인의 구상에서 출발한다. 담당 부처는 선전 포고를 앞두고 분주하다. 1기 신도시부터 3기까지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국토건설부에서 국토해양부로, 다시 국토교통부로 이름과 업무 범위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언제나 이들이 신도시의 작전 사령부였다. 대규모 전투를 앞두고 뚜렷한 명분도 필수다. 재건축에서 ‘건축물 안전 진단’이 그랬듯 신도시에선 집값을 안정화하기 위한 대규모 주택 공급이라든지, 과밀화된 서울의 인구 분산 대책이라든지 하는 확고한 이유가 필요하다. 신도시는 그야말로 정부의 ‘궁극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준비가 끝나면 드디어 개척의 신호탄이 오른다. 신도시 계획의 발표는 최소한 국토부 장관이나 국무총리, 시기와 상황에 따라서는 대통령이 직접 기자들 앞에 설 정도의 중대한 사안이다. 십여 년에 걸쳐 수백만 평의 새로운 도시들을 만들어 내겠다는 발표가 전국에 선포된다. 광활한 토지를 수용해 기반 시설을 조성하고 수만 명이 사는 주거 단지를 계획하며 철도와 도로를 놓아 서울로 연결하는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정부의 무기는 바로 인허가권과 토지 수용권이다. 30년 전부터 주택 문제가 심각해질 때마다 정부가 주택 공급을 위해 꺼내든 무기다.

정부군의 신호탄에 덩달아 호각을 울리는 건 지자체들이다. 지자체들이 1기 신도시 때부터 적극적인 역할을 한 건 아니다. 당시엔 지방 자치 제도 자체가 확립되지 않아, 지자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모두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1기 신도시가 조성되고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지자체들은 개척 시대의 새로운 플레이어로 떠오르게 된다.

지자체의 힘이 성장한 것은 인구의 변화로도 알 수 있다.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목소리가 커지게 마련이다. 1기 신도시가 추진되기 전인 1980년 경기도 인구는 고작 370만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1기 신도시가 완성된 2000년엔 그 인구가 900만 명으로 약 2.4배 늘었다. 2010년도에 들어서면 경기도의 인구는 서울을 넘어서게 된다. 2023년 5월, 경기도 인구는 1400만 명을 돌파했다. 그만큼 많은 목소리와 민심, 세금, 행정력이 경기도의 지자체에 실리게 된 것이다.
경기도와 달리 서울의 인구는 1990년 1000만 명에 도달한 이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사실 1000만 인구 서울은 90년도 이후 존재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서울 공화국이 저물어가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서울시 자체의 인구수는 감소할지라도 서울의 인프라와 경제력, 일자리, 교육을 누리기 위해 모여드는 수도권 인구는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 경기도가 서울 인구를 추월한 지 20년이 되어가지만, 경기도의 높은 인구 증가율은 서울에서 생존하기 위한 혹은 서울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한 시민들의 몸부림이었다. 화성 동탄 신도시와 삼성전자 평택 사업장 등의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면 경기도 신도시는 결국 서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는 태생적 한계를 갖는다.

그럼에도 정부의 개척은 계속된다. 더 많은 도시가 경기도에 만들어지고 시민이 이주하면서 군수는 시장이 되었고, 이장은 시·도의원이 되었다. 개척과 토벌의 끝에 이들에게 돌아갈 영광도 커졌다.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내려준 계획대로 도시를 만들던 지자체들은 이제 본인들의 고유한 개발 사업을 수행하고 계획을 수립한다. 이를 위한 준비 단계로 지자체 산하에 출연 연구원(경기연구원 등)을 두고 지자체만의 도시 개발 공사(경기주택도시공사, 성남도시개발공사 등)를 설립한다. 국토부의 지시나 요청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지역의 필요에 맞는 개발 사업이나 도시 계획을 진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에도 지자체의 손과 발이 될 조직이 이미 갖춰져 있는 상태다.

 

LH와 사공들


중앙이냐 지방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국토교통부나 지자체는 행정 기관이다. 기업이나 회사가 아니다. 기자들 앞에서 브리핑하거나 대국민 담화를 하기엔 적절할지 몰라도, 땅 주인과 협상하고 보상비를 집행하며, 건설 회사와 계약하는 실질적 전투를 치르기엔 그림이 적절하지 않다. 계획을 집행하는 공기업을 세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국가는 이 공기업을 선봉에 세워 업무를 지시하고 정책을 실현한다. 그게 국토교통부 산하의 LH공사, 지자체가 설립한 개발 공사들이다.

LH공사의 전신은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다. 전자는 70~80년대 국민을 위한 아파트를 건설하는 곳이었고 후자는 주택 용지를 개발·공급하는 곳이었다.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나뉘어 있던 두 기업은 2003년 LH공사로 통합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회사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하는 일은 같다. 국토부의 지시에 따라 신도시를 만든 후 민간 회사에 주택 용지를 공급하는 일이다.

LH의 일은 국토교통부가 계획 발표보다 먼저 시작된다. 경기도 곳곳에 신도시가 될만한 부지들을 사전 검토하는 것을 포함하여, 신도시의 세부 설계로 개척을 구체화하는 것은 물론 토지주들을 만나 토지를 수용하고 보상하는 절차까지 도맡는다. 보상이 마무리되면 국토부에서는 실시 계획을 인가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LH는 토목·건설 회사를 불러 도시를 조성한다. 중앙 정부가 계획과 인허가를 담당하는 브레인이라면 LH나 지자체의 개발 공사는 손발인 셈이다. 우두머리보다 행동 대장이 무섭듯 세부 설계와 땅에 관한 시시비비를 맡는 이들은 신도시 개발에서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이 회사에는 누가 있을까? LH는 공기업이지만 사장과 임원, 부장부터 사원까지 민간 기업과 비슷한 형태의 조직도를 가진다. 약 9000명의 임직원들이 속해있는 LH에는 각각 다른 업무를 수행하는 다양한 부서와 팀이 있고 내부 연구 조직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국가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 수행하는 공기업이기에 국토부 장관의 추천과 입김으로 사장이 선출되고 해임된다는 점이 다르다. 국토부가 원하는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사장은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기회를 얻으며, 회사에서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사장이 해임된다. 이 구도는 LH와 국토부 관계뿐 아니라 SH와 서울시, 각 지자체 개발 공사와 지자체 사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같은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이해관계를 공유하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LH 사장에서 국토부 장관으로, SH 사장에서 서울시장으로 영전하기 위해 이들의 계획은 한층 더 과감해진다.

하지만 과감한 사업을 할 수 없는 태초의 한계가 공기업에는 동시에 존재한다. 공기업은 법률에 근거해 세금으로 설립됐고 업무의 범위가 규정에 따라 명확하게 정해져 있다. 돈이 된다면 주주의 이익을 위하여 이것저것 다 할 수 있는 민간 기업과 달리, 공기업은 할 수 있는 일이 법으로 정해져 있다. 기업 운영 대부분이 지자체·중앙 정부의 지시로 진행되기 때문에 직원들은 비교적 책임에서 자유롭다. 직원의 중대한 비리나 과실이 없으면 정년이 보장되고,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되거나 회사가 파산하는 일도 극히 드무니 소위 말하는 ‘철밥통’이라 하겠다. 이는 직원들의 동기와 능률을 낮추고 책임감을 분산시키기는 여파를 낳는다. 국가를 등에 업고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지만, 조직 문화와 인사 시스템이 초래하는 비효율, 정해진 일만 할 수 있는 수동적인 업무 범위, 정부에서 내려오는 낙하산 사장은 공기업 특유의 문화를 만든다.

무엇보다 LH 등 개발 공사는 그들이 상대하는 토지 소유자뿐만 아니라 국민적으로도 쉽게 지탄받는다. 공기업 중 최대 규모의 부채 때문이다. 공익을 위해 국가에 의해 설립된 기업이기에 국정 감사나 청문회, 각종 언론 보도 등을 피할 수 없다. 기업의 부채와 재무제표, 영업 손실 등이 꾸준히 문제로 제기되면서 이들은 경영 효율화를 요구받는다. 방만 경영과 비리, 갑질 관행 역시 국감에서 꾸준히 지적되는 문제 중 하나다.

물론 안정적인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경영이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과도한 빚이 쌓이는 건 분명 문제다. 하지만 이들의 부채가 무작정 부실 경영의 탓은 아니다. 수십만 가구가 생활할 도시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수천억의 부채와 채무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공기업이 진행하는 사업의 많은 부분은 사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기업의 이름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복지엔 당연지사 돈이 들고, 주거 복지는 달성하기에 가장 비싼 과제다. 국가가 부담해야할, 즉 국민의 세금이 투입되어야 할 빚을 대신 짊어진 게 LH고 SH다. 이들이 빚을 떠안고 있지 않으면 주거 안정을 위한 복지의 구상도, 어떤 신도시도 운을 뗄 수 없다.

공기업의 특수성에 더해 늘어나는 사공들도 문제로 지적된다. 개발 정보는 더 많은 사람의 손을 탈수록 유출 가능성이 커진다. 국토부에서 소수의 인원만 해당 정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LH와 협업하는 과정, 다시 설계 사무소나 엔지니어링사로 도면 작업이나 정보 조사 용역이 발주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정보가 공유된다. 각종 자문 위원회나 심의 위원에게 계획을 검토받는 절차도 있어 정보가 새어 나갈 구석이 많다. 계획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비밀 유지 서약서나 보안 각서를 쓰지만, 최초 구상부터 계획이 전 국민에게 공표되기까지 수능 출제 위원처럼 마냥 가둬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1970~1980년대 권위주의 통치가 이루어지던 시절은 정보 유출의 우려가 적었다. 소수의 계획자와 정치인만이 정보를 독점했고 빠르고 신속한 하향식 지시로 개발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사전에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어 투기꾼이 몰려들거나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당연하게도 민주적 절차나 형평성, 사업 대상지의 현황은 무시됐다. 그림을 그리는 대로 도시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민주적 절차와 정보 공유는 나중 일이었고 오직 계획의 목표 달성에만 집중하면 됐다.

천문학적인 돈이 오가는 사업이다 보니 어느 쪽으로든 문제가 터져 나오지만 늘어나는 사공에 의한 정보 유출, 그리고 LH 직원들의 투기 사건을 보노라면 차라리 신도시 계획만큼은 권위주의 시절에 준하는 행정력이 필요한 게 아닌가 착시가 일어날 정도다. 주거 복지를 달성하려면 추진력이 필요하고, 공기업 특유의 책임감 결여를 방지하려면 구조 개혁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든 지금이든 실무진을 비롯한 몇몇 내부자들이 개발 정보와 도시 계획을 활용해 차명 재산을 축적하는 사례는 존재했다. 사회적 비용은 모두가 부담하고, 개발 이익은 소수의 개인이 혼자 얻게 되는 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도시 계획의 본질을 떠올려 보자.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사유 재산을 국가가 통제하는 과정이다. 대규모 토지를 수용해야 하는 신도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30~40년 전처럼 국가와 정부가 선을 긋는 대로 개인의 사유 재산을 무조건 수용하며 굴착기와 불도저를 앞세워 도시를 만들 수 있는 시절은 지났다. 밀실에서 소수가 임의대로 도시 계획을 세우는 방식은 아무리 그들이 공익을 위해 투철한 사명감에 가득 찼다고 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절차를 통해 전 과정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유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보를 활용한 투기를 방지하고 토지비 상승을 억제하는 구조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게 도시 계획가와 행정 기관, 입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수용과 보상의 줄다리기


본격적인 개척 시나리오와 현장의 전투를 살펴보자. 신도시의 목적은 싸고 빠르게 대량의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공원과 녹지, 대중교통 편의성은 부가적 요소일 뿐이다. 국토부는 계획을 세울 때부터 비용 절감과 사업 기간 단축을 위해 기존 시가지와 같이 비싼 보상비와 토지비를 지급해야 하는 지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며 신도시를 계획한다. 논과 밭, 과수원, 창고 등이 위치한 평야를 중심으로 신도시가 설계되는 까닭이다.

30년 전 진행된 1기 신도시부터 현재 진행 중인 3기 신도시까지, 모든 신도시는 토지를 전면적으로 확보해야만 사업이 진행될 수 있게끔 기획된다. 전체 구역 중에서 일부가 반대한다고 해서 그 구역을 빼거나 제외한 채로 구멍 난 신도시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마찬가지로 땅 주인이 팔기 싫다고, 계속 농사를 짓거나 기존 주택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소수를 무한정 배려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국가가 그린 큰 그림 속에 포함된다면 법적으로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 언제 수용되느냐, 보상금을 얼마나 받느냐의 소소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

무리한 일처럼 보이지만 신도시는 엄연히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공익 사업이다. 게다가 수용에 대한 정당한 보상은 헌법 제23조에도 원칙으로서 정의돼 있다. 공익 사업을 위한 사유 재산의 침해는 반드시 법률에 따라야 하며, 보상 금액도 최대한 합리적이고 공정하게 산정한다. 법에 따라 공정한 보상을 받는데 왜 수용 과정에서 잡음이 날까? ‘(미래)개발 이익에 의한 시세 차익’은 보상 금액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즉, 신도시 계획이 발표됨으로써 발생하는 토지 가격의 상승은 배제하고, 그 전에 거래되는 가격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게 제1원칙이다.

국가에선 신도시 계획이 발표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해당 지역을 토지 거래 허가 구역으로 전면 지정한다. 거래를 허가한다는 뜻이 아니라 거래를 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망이나 이민 등 아주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소유권 이전을 금지해, 신도시 계획 발표에 따른 투기를 막고, 토지 가격을 통제하려는 것으로, 건물의 신축 등도 금지된다. 땅값이 올라가면 국가는 비싼 돈을 치러가며 신도시를 조성해야 하고 이는 곧 세금 낭비가 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막대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LH에게는 민감한 문제다. 허가 구역이 지정되면 영업권이나 농작물 보상 등도 계산된다. 이를 정확히 계산하기 위해 국토부는 항공 사진이나 위성 사진, 현황 측량 등을 동원한다. 현황 측량은 말 그대로 지상 구조물이나 지형지물이 어디 있는지 현황을 측량하는 것인데, 핵심은 계획 발표 시점 전에 이뤄진 촬영 혹은 측량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발표 이후 추가된 물건들은 보상하지 않는다.

본격적인 갈등은 보상 단계에서 시작한다. 보상 금액과 방식은 신도시의 가장 큰 분쟁 요소다. 은마아파트에서 소유자들이 재건축이라는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과 달리 신도시는 토지 소유자가 두 부류다. 시세 차익·보상금을 위해 땅을 산 투자자와 애초에 땅을 가지고 있던 원주민이다. 이들은 전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투자자는 토지 수용을 통해 보상금을 받거나 적정한 타이밍에 더 비싼 가격에 땅을 팔아 이익을 챙기는 게 목적이다. 반면 원주민은 토지를 경작하고 지역에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일차적으로 땅을 지키려 한다.

땅을 소유한 목적이 다르니 이해득실도 같을 수가 없다. 투자자는 신도시 계획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어 보상금을 빠르게 받아 투자 이익을 회수하는 게 이득이다. 내가 받는 보상금이 투자 비용보다 크기만 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반면 원주민들은 다른 곳에서 적절하게 거주할 수 있는 대체 부지를 받거나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원주민 중 일부는 대체 부지와 보상 자체를 거부하며 현상 그대로 유지해 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의 돈이 걸려있으니 모두가 날카로워지는 건 당연지사다. 최소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토지주와 세입자, 지역의 농민과 노동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해답은 없다. 신도시 계획은 거대하고 획일적인 공공 사업이기에 개별 토지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해관계와 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결국 국가와 공기업은 가장 빠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과거 신도시를 만들 때 사용한 법과 제도를 만지작거리게 된다. 정해진 법률과 규정에 따라 기계적으로 보상하고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민간의 개발 사업은 인허가를 획득하기 전까지는 개별적인 협의·협상을 통해 토지주가 만족할 만한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수용권을 통해 강제로 소유권을 이전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에 의한 신도시 사업은 그럴 당위성도, 필요도 없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신도시와 택지 지구에서 잡음과 갈등이 멈추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수용과 보상이 고된 힘겨루기가 된 이유에는 토지비 보상 원칙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일단 토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는 개개인의 토지 소유권에 대한 보상과 땅과 관련된 영업권, 농작물, 시설물 등에 대한 보상이 각각 발생한다. 소유권에 대한 보상은 원칙적으로 개발 이익을 반영하지 않은 감정 평가액으로 치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현실적으로 개발 이익이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다. 강제로 대상지 전역의 땅을 사들여야 하는데, 일반적인 시세보다 조금이라도 비싸게 쳐줘야 그나마 일이 수월해지고 민원이 줄기 때문이다.

문제는 신도시 계획에 따른 토지 거래 제한 시점부터 토지 보상까지 최소 1년에서 많게는 3년 이상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 주변의 땅값은 더 많이 오른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개발 이익 즉 신도시 개발에 따른 토지 가격 상승분은 보상 금액에 포함되지 않는데, 신도시 인근의 이주할 만한 다른 지역은 해당 신도시 계획으로 이미 땅값이 올라가 있다. 시세 차익이 아닌 경작과 영업, 거주를 목적으로 하는 소유자들에겐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편 각종 암투와 눈속임도 횡행한다. 소유권 이외의 권리는 내부 기준에 따라 일괄적인 보상을 하는데 보상 업무를 잘 알고 있는 일부 LH 직원들이 이를 악용해 논란이 됐다. 내부 정보와 노하우를 이용해 개발 예정 구역에 땅을 차명으로 매입하는 것도 모자라 땅 위에 빽빽하게 나무 모종을 심어놓거나, 텅 빈 비닐하우스를 몇 동씩 지어놓는 사례들이 발생한 것이다. 획일적인 영업 보상 제도를 사적으로 악용한 사례는 신도시 계획마다 터져 나오는 단골 비리다.

 

토건 세력의 정치학


토지 보상보다 국민의 이목을 끄는 것은 토건 비리다. 본격적으로 건설사가 신도시의 주택 용지에 입찰하고 분양받는 과정이 신도시의 2차전인데, 여기서 우리가 흔히 접하는 비리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 신도시는 그저 건설 회사의 축제인 걸까?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은 없었나? 우리가 뉴스에서 접하는 비리 문제는 왜 생길까? 우리나라의 개척 시대를 톺아보면 그 미묘한 정치를 읽을 수 있다.

개척 시대의 MVP

신도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건 중앙 정부와 공공 기관의 역할이지만, 도시를 채워나가는 것은 민간 기업과 주민들이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민간 기업 중심의 주택 시장이 형성됐다. 주택 건설까지 국가가 할 역량과 자본이 없었기 때문에 몇몇 토목·건설 회사를 중심으로 많은 수의 주택이 공급됐다.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70년대 이후, 지역을 불문하고 똑같은 형태의 아파트 단지가 복사되면서 대량의 주택이 찍혀 나왔다. 주택 보급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가와 지자체들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땅인 주택 용지를 만들어 적절한 가격에 건설사에 매각했다. 주택 용지의 일부는 LH(당시는 대한주택공사)가 직접 시행해 서민을 위한 임대·분양 아파트를 만들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민간 건설사가 주택 사업의 주체였다.

LH가 직접 아파트를 짓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다. 돈 때문이다. 신도시를 위해 토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이미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다. 100만 평의 땅을 한 평당 100만 원에 일괄적으로 매입한다고 해도 매입 비용만 1조 원이다. 도로와 상하수도, 전기 등의 기반 시설을 조성하는 비용까지 고려한다면 수천억 원이 추가된다. 신도시 조성은 수년에 걸쳐 여러 종류의 토목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는 사업이다. 아무리 국가가 보증하는 공기업이라 할지라도 이 비용들이 막대한 부채임은 틀림없다.

그렇기에 LH는 신도시로 만들어질 땅을 민간에 선분양한다. 가령 토지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주택 용지 20개를 각각 500억 원에 민간 건설사에 판다면 토지비 1조 원을 빠르게 회수할 수 있다. 아파트 선분양과 마찬가지로 토지의 선분양 또한 사업자의 금융 비용을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신도시에서 민간 회사에 의해 주택 공급을 할 때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추첨을 통해 적격한 건설 회사에 해당 주택 용지(공공 택지)를 조성 원가 수준의 금액에 매각한다는 점이다. 경매처럼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회사에 파는 게 아니라 신도시를 조성하는 데 들어간 비용에 조금의 프리미엄을 얹어 민간 기업에 임의 추첨으로 공급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 특징은 이렇게 민간이 사간 땅에 지어지는 아파트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는다는 점이다. 민간 회사가 정부와 공공의 도움을 받아 저렴한 가격에 토지를 확보했으니 분양 사업을 통한 민간 이익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는 배경에서 분양가 상한제가 도입됐다.

추첨을 통해 무작위로 건설사를 선정하고, 매각도 적정선에서 진행하고, 다 만들어진 주택을 무턱대고 비싸게 팔 수 없게 상한제까지 적용하는데도 공공 택지 공급과 건설 회사에 대한 특혜 논란은 수십 년간 끊이지 않았다. 왜일까? 실제로 다수의 공공 택지 분양을 통해 급속도로 성장한 건설사들이 있었다. 임의 추첨을 통한 택지 공급과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많은 논란이 생겼다. 건설 회사가 두 가지 규제를 회피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분양가 상한제에 대한 대응은 매우 단순하다. 그냥 사업을 하면 된다. 주택 가격을 적정한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한 분양가 상한제는 부동산 상승기에 오히려 좋은 기회로 탈바꿈한다. 나라에서 공인한 저렴한 아파트라는 인식으로 대부분 분양 완판을 보장받을 수 있고, 막대한 이익은 아니지만 낮은 위험으로 꾸준한 매출과 영업 이익이 보장됐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약간의 옵션 장사를 더하면 금상첨화다. 아파트 발코니의 확장 비용, 각종 가전제품과 빌트인 가구 옵션 등을 끼워 팔면 시행사·건설사 입장에서 아쉬운 분양가를 조금 더 끌어올릴 수 있다. 이러한 옵션은 아파트와는 무관한 상품이기 때문에 각종 분양가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도 큰 장점이다.

안정적인 수주 먹거리가 있다는 게 건설 회사에 얼마나 대단한 요소인지는 건설과 같은 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보면 알 수 있다. 건설 회사에 가장 큰 위험은 수주에 있다. 국가든, 민간 시행사든, 중동 오일머니든, 지어달라고 하는 발주처의 요청이 있어야만 매출을 올릴 수 있다. 수주 산업은 사업이 없거나 혹은 과도한 경쟁으로 도급 원가 이하의 무리한 계약을 하게 될 때 재무적 위험에 노출된다. 공공 택지는 되기만 한다면 수주 리스크가 없는 사업이다. 국가가 보장해 주는 땅에서 적정한 이윤을 챙기기만 하면 된다. 게다가 수도권을 포함한 전국 곳곳에 택지 지구는 상당히 많다.

임의 추첨은 확률 게임이다. 그만큼 많은 회사를 동원하여 추첨 확률을 높이면 된다. 방식도 간편하다. 먼저 회사 내부의 현금을 외부로 돌려 다수의 회사를 설립, 택지 추첨에 지원한다. 계열사 간의 자금 흐름이 훨씬 자유로운 중소기업 규모의 비상장 회사가 하기 좋은 일이다. 추첨에서 낙찰받을 경우, 해당 회사를 인수·합병하여 토지와 사업권을 확보한다. 소위 말하는 ‘벌떼 입찰’이다. 이 방법으로 특정 회사가 수십 개의 관계 회사를 동원해 공공 택지를 쓸어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위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에서는 ‘민간 공모’ 방식을 통한 주택 용지 공급을 확대하고 있다. 신도시의 일부 주택 용지를 임의 추첨으로 매각하는 게 아닌, 민간 사업 공모를 열어 가장 우수한 설계·사업 계획을 제시한 업체(혹은 컨소시엄)에게 매각하는 방식이다. 천편일률적인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조화롭고 독특한, 특별한 아이디어가 반영된 공동 주택을 선정하여 도시를 좀 더 다채롭게 만들고자 하는 취지도 있다.

물론 공모 방식도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다. 불확실한 사업 기회를 위해 기획 설계·사업 계획을 작성해야 해서, 투입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 건설사나 자본력 있는 회사만 공모에 참여할 수 있다. 여기에 발주처와 공모 사업자 간에 소위 ‘짜고 치는 고스톱’이 발생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임의 추첨 제도의 악용을 막을 수 있으며 똑같이 생긴 성냥갑 아파트를 줄일 수 있다는 점, 경쟁을 통해 특화 설계가 발전한다는 점, 품질 등을 미리 개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점차 많은 지역에서 도입되고 있다.

비리 불감증 사회

그러나 제도적 진통과 별개로 비리는 계속됐다. 정부와 집권 정당이 바뀔 때마다 다수의 정치인을 검찰 포토라인에 세운 것은 기존 정권에서 진행했던 주요 건설·토목 사업이다. 택지 공급에 대한 계약 방식과 계약 금액, 사업의 정당성, 민간 사업권은 특혜 의혹과 뇌물 수수로 번져 논란을 만들었다. 진실과 의혹을 둘러싼 영혼의 한판 승부가 여야 사이에 벌어진다.

가장 대표적인 게 2022년 대통령 선거부터 지금까지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성남시 대장 지구 개발 사업이다. 개발 계획부터 사업 주체 선정, 개발 이익 환수, 정치권과 연루된 인허가 비리와 뇌물 수수 협의까지 대대적인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대장동 이외에도 사건은 넘쳐난다. 부산 해운대의 초고층 빌딩 엘시티, 호반·중흥건설 등의 중견 건설사의 택지 지구 벌떼 입찰, 광명·시흥 신도시 관련 LH 직원의 사전 투기 등도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사례들이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알게 된 보도들이 진실이든 루머든, 건설 회사와 정부, 정치권을 둘러싼 논란이 항상 반복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첫째로 매출액과 사업 이익 규모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받기 쉽다. 수백억 규모의 매출은 소소한 수준이다. 수천억 원에서 수조 원의 사업비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평범한 직장인 연봉의 수백 수천 배 이상이 기본이다. 큰 규모의 배임·횡령 사건보다도 ‘0’이 한두 개쯤은 더 붙어있다.

소재의 상징성도 논란의 이유 중 하나다. 부동산은 국민의 가장 큰 재산이자 경제 활동의 최종 목표다. 일상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집도시 계획과 부동산에 대한 몇 가지 단어나 법적 용어들을 알아놓을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과학·기술을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선행 지식이나 특별한 학습이 요구되지 않는다. 부동산은 정치권에서 논의하는 수많은 문제에 비하면 상당히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시민들에게 친숙한 그리고 관심받는 소재다.

마지막으로 공공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물건을 만들어 파는 제조업이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업과 다르게 부동산 개발 사업은 공공과의 지속적 교류가 필수적이다. 택지 지구든 신도시든 혹은 재개발·재건축이든, 모든 개발 사업은 국가와 지자체의 법률과 규칙, 도시 계획에 따른 인허가가 언제나 필요하다. 하지만 법과 규정은 급변하는 시장의 모든 상황과 조건을 세세하게 다루지 못한다. 공공과 긴밀한 혹은 강요된 협업 과정에서 공무원과 공공 기관, 인허가권자의 입김과 재량이 크든 작든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게 각종 의혹과 추측을 동반한다.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부동산과 관련된 뉴스들은 그저 ‘또 정치인이 크게 한몫해 먹었구나’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쏟아져 나오는 자극적인 기사들과 사실 관계를 곡해하는 뉴스들은 부동산 문제를 정쟁화한다. 그럴수록 진짜 문제는 흐려진다. 보도되는 것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정제하지 않으면 일련의 비리는 우리가 모르는 새 시스템화되어 계속된다. 해당 지역의 개발 사업이 왜 필요한지, 누가 사업을 주도했는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알아야 앞으로 이어질 개척 시대에 유권자로서 올바른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금융 문해력과 마찬가지로 우리 삶에 필수적인 부동산 문해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개발 사업의 큰 맥락을 이해하며 객관적인 데이터와 주관적인 판단 기준을 가지고 해석할 수 있다면 내가 살 집이나 분양받는 아파트, 혹은 지역과 도시에 대해서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다. 토건 비리는 오늘도 정치에 대한 혐오와 불신을 키우며 피로감을 자아낸다. 그러나 정부가 휘두르는 칼과 기업의 잇속 사이 내 부동산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개척 시대는 끝났는가


전 국민 90퍼센트가 도시에 사는 나라, 그중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모여 사는 나라. 땅을 새롭게 만들 수도 없고, 시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킬 수도 없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기 때문에 거주에 적합한 지역은 한정돼 있다. 수도권의 크기엔 한계가 있지만 일자리와 학교, 꿈을 찾아 사람들은 서울로 계속 올라온다. 신도시는 정치인에겐 표심을 얻을 공략 사업으로, 대중들에겐 크고 작은 비리와 저렴한 내 집 마련의 기회로, 투자자들에겐 투자처로, 원주민에겐 이주와 폭력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신도시 구상의 첫 삽은 그렇지 않았다. 정책의 원래 목적에 맞게 수십만 호의 주택을 일시에 공급해 수도권 주택을 단기간에 증가시켰고 서울의 주택 가격을 꽤 안정시킨 바 있다. 서울보다 더 나은 환경을 목표로 공원과 광장, 다양한 인구 밀도의 도시를 만든 것은 분명한 신도시의 공로다.

물론 신도시는 강제 수용을 통한 개척 사업이고 개척자의 손은 깨끗하진 않았다. 다양한 비리와 의혹, 부정부패 중에선 신도시의 공로를 빛 바래게 할 정도로 굵직한 것도 있었다. 공익의 이름으로 수용권과 인허가권을 앞세워 빠르게 도시를 만들 순 있었으나, 그만큼 더 많은 원주민이 더 먼 곳으로 밀려났다. 개척 시대의 빛과 그림자다. 2023년 현재 세 번째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고 그 역사는 반복되는 중이다.

얼룩진 오해와 얽힌 이해관계는 사회 갈등의 조정자, 정치가 해소해야 할 문제다. 경기도 시골의 한구석에서 대대손손 내려온 논과 밭, 과수원을 경작해온 원주민의 생활 터전이 중요할까, 혹은 조금 더 나은 연봉과 근무 환경을 찾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청년들의 주거 공간이 중요할까. 정부의 선택지는 가혹하고 엄중하다. 무엇을 택하든 그 선택이 10년 뒤에도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평가받으려면 사회 변화에 주목해야 하고 새로운 생각을 수혈할 필요가 있다. 다가올 시대에 걸맞은 해법은 뭘까?

확실한 건 인구 성장은 끝났다는 점이다. 2020년 인구를 정점으로 대한민국 인구는 순감소에 접어들었다. 절대적인 주택 부족은 1기 신도시를 비롯한 대규모 주택 공급 사업으로 많은 부분은 해소됐고, 주택 보급률 또한 전국을 기준으로 100퍼센트를 넘어섰다.

20~30년 전처럼 획일적인 줄긋기와 천편일률적인 토지 수용, 단순한 도시 계획으로 도시가 만들어지는 시대는 끝났다. 30년 전처럼 절대적으로 살 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똑같이 생긴 아파트를 찍어내듯 만들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시절도 아니다. 소비자들은 전보다 현명해졌고 다양한 조건과 요소들을 따지면서 집을 산다. 침실에 알파룸이나 드레스룸이 함께 있는지, 화장실의 크기와 개수는 적절한지, 아파트 동간 간격과 단지 내 조경은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끊임없이 비교한다.

그들이 원하는 도시도 마찬가지다. 공원이 많고 도로가 넓다고 좋은 도시가 되는 시절이 아니다. 서울까지 통근 시간, 대중교통 수단은 기본이고 도시 내 문화 시설이나 도서관, 주말에 가족과 놀러 다닐 만한 장소들, 도시 인근의 유해 시설까지 살펴본다. 어딜 가든 똑같은 모양의 신도시는 저렴한 가격에 시민들의 내 집 마련을 가능하게 해줬지만, 텅텅 빈 상가와 부족한 여가·문화 시설 때문에 재미없는 베드타운으로 전락한 경우가 부지기수다. 신도시들이 계획되고 설계되는 지역에 맞게끔 여전히 더 구체적이고 섬세한 계획이 필요하다. 양보다 질인 셈이다.

중앙 정부와 LH는 신도시 전반의 계획을 지시하고 총괄할 수는 있지만 각 지역에 맞는 디테일을 챙길 역량은 부족하다. 실제로 2기 신도시 중 하나였던 검단 2 신도시의 경우, 금융 위기 이후 얼어붙은 부동산 시장과 인천 지역에서 진행된 다른 대규모 개발 사업 때문에 토지 보상이 지연되며 난항에 부딪혔다. 대규모 주택 공급에 따른 부동산 가격 하락을 걱정하는 인천 시민들의 우려와 재산권 행사가 불가능했던 해당 지역 토지주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결국 검단2 신도시는 2010년 택지 개발 지구 지정 이후 3년만인 2013년, 개발 지구에서 전면 해제되기에 이른다. 이를 보완하려면 여전히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

도시에 대한 물리적 공간 설계와 기능에 집중하여 흔히 간과하지만, 도시 계획에서 중요한 변수는 바로 시간이다. 내년이 아닌 10년 뒤, 30년 뒤의 도시를 생각해야 하고, 당장의 인구 구조와 생활 환경, 거주 스타일뿐만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고 고려해야 한다. 도시는 시간을 먹고 자라나기 때문이다. 감소 추세의 인구수, 가구 분화로 인해 증가하는 세대수, 낮은 출산율에 따른 보육 시설과 학교의 재배치, 줄어드는 자영업자와 늘어나는 배송 서비스 등은 계획과 설계 단계에서 고려해야 할 미래의 조건이다. 무턱대고 새집을 지어 올리는 게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서 주민들의 생애 주기와 시간의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

30년 전, 1기 신도시 일산과 분당에서 태어난 갓난아기는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한 명의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 이젠 결혼하고 신혼집 위치를 고민할 나이다. 2기 신도시인 동탄과 광교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거나 중학교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성장하면서 경험한 신도시는 어떤 모습이었으며, 서울에서 나고 자란 시민들과 어떤 경험의 차이가 있을까. 신도시를 고향으로 성장한 아이들이 다 커서, 직장과 거주지를 선택할 기회가 왔을 때 어떤 도시를 선택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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