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의 정치학
6화

도심의 내전, 재개발과 도시재생

도시의 역설


도시를 걷다 보면 ‘왜 여긴 아직도 재개발이 안 됐을까?’, ‘이렇게 노후화한 건물을 왜 새로 짓지 않고 있을까’와 같은 생각이 드는 골목이나 건물이 있다. 서울만 해도 역세권 근처 후줄근한 외관의 건물이나 무너질 것 같은 빌라촌이 많다. 바로 근처에 멋진 오피스 건물이 있고, 한 골목만 지나면 값비싼 아파트가 한가득한데 왜 특정 지역만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을까?

사실 도시가 낡고 노후화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도로 포장은 벗겨지고 건물 외벽의 색도 바라며 지하철도 자주 고장 난다. 도시가 성장하고 경제가 발전하면서 도시의 범위는 점차 넓어진다. 1970~1980년대 서울에도 엄청난 인구가 몰려들면서 강남과 잠실 일대를 대규모로 개발한 역사가 있다. 그 과정에서 도시의 중심축 역시 이동한다. 새로운 투자와 개발이 새로운 지역에 집중되는 사이, 구도심은 낡고 슬럼화된다. 1960~1970년대에 지어진 을지로와 종로의 4~5층 건물들은 당시 기준으로는 꽤 높은 건물이었을지 몰라도 지금 기준에서 보면 작고 낡은 건물일 뿐이다.

다행인 것은 도시의 물리적 요소들은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적정한 시기마다 도로를 재포장하고 지하철 열차를 교체하며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지으면 된다. 이처럼 도시가 전반적으로 더 나은 상태를 유지하게끔 만드는 게 도시 계획의 주요한 역할이다. 낡고 오래된 도시를 다시 건강하고 활기차게 바꾸기 위한 계획에는 크게 재개발과 도시재생이 있다. 큰 틀에서 목표가 비슷해 보이는 두 계획은 접근법과 뉘앙스에서 큰 차이가 있다.

재개발은 노후화된 도시 구역을 재건하는 사업이다. 앞서 은마아파트를 통해 살펴본 재건축과 비슷하지만, 사업의 물리적 대상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기반 시설의 유무다. 재건축은 양호한 기반 시설(대표적으로 도로)을 갖춘 상태에서 오래된 건물만 다시 짓는 것이다. 보통 다시 짓는 건물은 아파트다. 반면 재개발은 열악한 기반 시설을 포함하여 해당 구역 전체에 대해 도시를 다시 만드는 것에 가깝다. 재개발이 시작되면 오래된 단독 주택과 빌라만 철거되는 게 아니다.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부터 복잡하게 얽힌 전신주와 가로등, 막다른 길과 가파른 계단이 난무하는 미로 같은 노후 도심지가 통째로 철거된다. 그리고 번듯한 도로와 아파트 단지, 근린 생활 시설, 동사무소 등이 들어선다.

도시재생은 좀 더 포괄적이다. 사회·경제·문화적으로 침체한 도시 지역을 다방면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사업을 일컫는다. 그래서 ‘도시 활성화 사업’으로도 불린다. 흔히 골목길 벽화 그리기나 마을 협동조합 지원과 같은 개별적인 사업으로 인식되지만, 도시재생의 사업 범위는 꽤 광범위하다. 도시재생법 제2조 7항은 도시재생을 재개발과 재건축, 재래시장과 항만 재개발까지 광역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사람들의 통념에 부합하는 노후 주거 지역의 소규모 재생사업을 도시재생으로 설정하겠다.

지역마다 필요한 해법은 모두 다르다. 어떤 곳은 재개발이, 어떤 곳은 도시재생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두 사업에는 자주 정치적이고 당파적인 가치가 개입하곤 한다. 대중들의 인식 속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의 핵심은 부동산의 ‘개발 이익’이다. 반면 도시재생은 지역의 사회적·기능적 성장에 방점이 찍혀 있어 지역 주민의 ‘생활 안정성’이 핵심으로 인식된다. 이 때문에 도시재생과 재개발은 서로 대립·상충하는 사업이란 통념이 강하다. 이는 우리나라의 이분법적 정치 논리와 당파 갈등에서 비롯된다. 대상 지역의 주민 갈등 위로 정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도시 계획은 내전과 닮았다.

내전의 본질은 내분이다. 국가 내의 갈등이 전쟁으로 비화한 형태다. 내전에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 국지전의 형태를 띠고, 많은 경우 분쟁 주체들에겐 배후가 있다는 점이다. 양차 세계 대전 이후 선진국 간 전쟁은 크게 줄어들었지만, 아프리카와 중동 등에서 내전은 급격히 증가했다. 열강의 군사적 힘겨루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벌어지는 많은 내전은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대리전(proxy war)이다. 정부군과 반군, 반군 세력과 또 다른 민간 세력이 다투고, 각 세력을 지원하는 또 다른 배후가 각자의 실리와 가치를 내세워 분쟁에 개입하는 형국이다. 노후한 도심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갈등의 구조와도 같다.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똑같이 낡고 노후화한 구역이지만, 왜 어떤 지역은 이미 재개발이 끝나 수십억 원짜리 아파트 단지가 되었고, 또 다른 구역은 아직도 낡은 건물과 좁은 도로를 남겨둔 채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지나가고 있을까? 도시재생에 집중하느라 재개발이 중단된 것일까? 특정 정치인이 재개발보다 도시재생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걸까? 이와 같은 이분법적 접근으로는 올바른 답을 내릴 수 없다.

재개발과 도시재생엔 복잡다단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지역 사회에서 어떤 갈등이 있는지, 누가 재개발을, 누가 도시재생을 주장했는지, 어떤 법과 규정, 지자체 조례가 개정되며 사업이 지연되었는지, 그리고 법의 개정은 누가 무슨 의도로 추진했는지 살펴봐야 도시의 역설을 이해할 수 있다. 이를 다루기에 앞서 꼭 알아야 할 것은 땅값의 속성이다. 흔히 재개발은 땅값이 오르니 민간이 반기는 사업, 도시재생은 수익성이 낮아 민간의 선호도가 낮은 사업으로 인식되곤 하지만 이 같은 이분법이 늘 통하는 건 아니다.

앞서 말했듯 재개발은 낡고 오래된 지역을 전면 철거하고 신축하는 정비 사업이다. 재건축과 마찬가지로 해당 구역의 토지와 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조합을 결성해 진행하는 민간 사업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재개발을 통해 더 높은 부동산 가치를 얻으려 한다. 수년 이상이 소요되는 재개발의 기회비용과 시간을 고려하면 합당한 욕구다. 문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땅의 가치가 얼마로 평가되는지다.

좋은 위치지만 낙후된 동네, 즉 역세권이나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은 비록 건물이 낡았을지라도 가치 있는 위치로서 부동산 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건물주는 재개발 이후 건물 가치가 최소한 현재 거래되고 있는 가격보단 높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충분한 임대료를 받고 있고 현 상태로 매각해도 비싼 가격에 부동산을 팔 수 있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재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동기가 낮아진다.

같은 인기 지역 내에서도 악마의 디테일이 있다. 좋은 위치에 있을수록 작은 차이에 따라 땅의 가치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로변 사거리 코너에 위치한 100평짜리 부동산이 100억 원에 거래되었다고 가정하자. 10미터 떨어진 바로 뒤편 골목에 있는 부동산도 평당 1억 원을 받을 수 있을까? 똑같이 대로변에 있지만 두 면이 아니라 한 면만 접하고 있는 작은 건물은 어떨까? 대로변에 접해 있는 토지인지 아닌지, 도로에 접한 면이 몇 개인지, 토지형상(직사각형, 정사각형, 비정형 등)이 어떤가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재개발이 진행될 시 소유자 혹은 조합원 사이에 보상 가격과 분양권, 사업 이익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이 클 수밖에 없다.

반면 비슷하게 노후화되고 낙후된 지역인데, 위치조차 좋지 않은 지역을 상상해 보자. 언덕배기에 위치해 유동 인구도 적고, 지하철역과도 멀리 떨어져 있다. 상가는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언덕까지 올라오는 사람이 없어 파리만 날리기 일쑤다. 이런 곳에 있는 건물은 임대 수익도 낮고, 팔려고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거나 원하는 가격을 받기 어렵다. 어쩌면 월세가 몇 달째 밀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차라리 재개발 사업을 통해 재산 가치를 높이는 게 유리하다. 이는 같은 지역 내 앞집도, 뒷집도 마찬가지다. 역세권 사례와 반대다.

이처럼 현재 부동산의 가격이 낮고, 시간이 지나도 지금 가격에서 크게 달라질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재개발 동인이 크다. 물론 이러한 경우라도 막상 재개발이 시작되면 이런저런 이견과 갈등이 생기는 건 필연이지만, 그 갈등이 사업 자체를 반대하거나 중단시킬 만큼 크진 않다. 소유자 모두에게 ‘재개발이 아니면 안 된다’라는 공통된 의견이 있고, 재개발의 완성이 그들 사이의 ‘공익’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의 3요소는 입지, 입지, 입지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비싼 자재로 고급 건물을 지어도 그 위치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렇다. 도로나 지하철 노선과 같은 인프라도 대개 수십 년간 그대로 유지되기에 입지의 중요성은 더 크다. 좋은 입지의 땅은 재개발이 무산되더라도 대안이 많다. 정비 구역에서 해제되면 독립적으로 개발할 수도 있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임대로 줄 수도 있으며, 이도 저도 아니고 애매할 때는 팝업 스토어나 재고 떨이, 창고 대방출과 같은 단기 임대라도 급한 대로 끼워 맞출 수 있다. 재개발이 절실하지 않아 역세권 구도심이 낡은 상태로 유지되는 사이, 상대적으로 입지가 열악한 구역들은 재개발에 착수해 깔끔한 도시로 재탄생한다.

낡은 구도심을 두고 펼쳐지는 내전, 입지와 개발에 따른 부동산 가치의 차이는 주민 간의 수 싸움을 만들고, 사업 방식에 따른 정치적 이해관계는 정쟁을 만든다. 이 복잡한 실타래가 풀릴 수 있을지, 어쩌다 이렇게 엉켰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지만, 책 서두에 말했듯 모든 도시 계획은 갈등이다. 미-중 갈등이 멈춰야 대한민국에 안정이 찾아오듯 이 내전의 배후에 있는 자들의 생각은 무엇인지, 그렇게 주장하는 논리는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재개발의 배후


먼저 재개발이다. 재개발은 기본적으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토지를 개발하는 민간 사업이다. 실질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주체는 조합이다. 정비 구역 내에 땅과 건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즉 ‘토지등소유자’가 재개발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아 동의서를 걷어 조합을 만들어야 한다. 75퍼센트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정식으로 조합이 설립된다. 이후 세부적인 건축 계획을 세우고 시공사를 선정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주요 절차마다 지자체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 역시 재건축과 같다. 시공사 선정, 분양 가격 등과 같은 주요 내용은 조합총회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 재개발 정비 구역 지정으로 지정되면 해당 구역 전체에 대해서 건물 신축이 불가능해지고 토지 분할이나 지목 변경과 같은 행위가 일절 금지된다. 임의로 조합원의 숫자를 늘리거나 노후도에 문제를 줄 수 있는 행위를 막아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유도하는 것이다.

재개발은 주민들의 제안 혹은 지자체장의 지시로 시작된다. 낡은 마을의 주민들이 구청에 민원을 넣어 자신들이 거주하는 곳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지만 대부분 재개발의 선봉에 서는 것은 그 지역의 정치인인 지자체장이다. 그는 재개발에 대한 여론을 수집·수렴하고 주민 설명회와 도시계획위원회의 인허가 절차 등을 거쳐 재개발 구역 지정을 진행한다. 제도적으로도 지자체장이 재개발에 가장 큰 권한을 행사하는 게 당연하지만, 이들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지방 선거 당시 주요한 공약 사항으로 지역의 재개발을 통한 환경 개선(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재산 가치 상승)을 내걸고 표를 얻었기 때문이다.

재개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정치인은 흔히 보수 계열로 분류되는 정치인인 경우가 많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서울로 시간과 공간을 한정하면 정치적 이념과 재개발에 관한 정책 방향이 대부분 일치한다. 그들은 왜 재개발을 원할까?

논리는 이렇다. 현대사를 돌아보면 서울을 비롯한 대부분 도시가 발전한 역사는 명확하다. “오래된 것을 부수고, 더 크고 높은 건물을 짓는 것.” 보수 계열 정치인이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도 이와 같다. 그들이 보기에 이 역사적 흐름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시장 논리에 반기를 드는 불순한 세력이다. 그러니 재개발이 아닌 다른 사업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게 얼마나 편리한데 굳이 어려운 길과 낯선 길을 찾아가야 할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 개발 메커니즘은 멀쩡하게 잘 작동한다. 물론 소수의 ‘불행한 사례’가 있었지만, 이는 과격분자의 격렬한 반대와 몇 가지 불운 그리고 좋지 않은 타이밍이 겹쳐서 일어난 안타까운 일일 뿐, 패러다임을 바꿀만한 일은 아니다. 재개발에 반대하는 이들은 그저 발전을 모르고 고집만 부리는 보수적인 소수 집단일 뿐이다. 그마저도 진짜 속내는 다를 것이다. 더 많은 보상금이나 이익을 취하려는 욕심쟁이들일지도 모른다. 혹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외부세력이 개입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도시를 완성해 온 큼직한 사업들은 모두 재개발과 재건축, 뉴타운, 정비 사업이었다. 재개발의 고통을 잠시 겪고 나면 도시는 더 크고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며, 그때가 되면 반대하던 시민들도 결국 인정하고 박수치게 될 것이다.

이명박과 오세훈으로 대표되는 보수 계열 서울시장은 강북을 대상으로 하는 뉴타운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 1만 평 규모의 노후 주거 단지를 중심으로 전면 재개발을 단행해 대단지 아파트로 탈바꿈하려는 도시 계획을 짠 것이다. 동시에 서울 중심부에 위치한 종로구, 중구, 용산구에 대규모 업무 시설과 상업 시설, 복합 공간 등을 계획하여 ‘아시아 중심 도시 서울’을 달성코자 했다. 이 계획은 오랜 기간 순항했다. 성북구와 은평구, 서대문구, 마포구 등에 지정된 뉴타운은 우여곡절 끝에 착공에 성공해 번듯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했다.

이들에게 재개발은 도시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대의다. 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고 기업을 위한 업무 지구를 조성해 도시 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자유 시장주의의 논리다. 그들이 추구하는 경제·정치관에 잘 부합한다. 이와 같은 관점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진단하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낡은 도심을 갈아엎는 재개발이다. 좋은 입지의 역세권과 도심 지구가 고작 2~3층짜리 건물들로 가득 차 있으면 도시 경쟁력이 떨어지고 공간 효율도 좋지 않다. 게다가 재개발은 표가 된다. 부동산 가치를 올리는 데 제격이기 때문이다. 가시적인 성과물이 생기니 정치적 성과를 홍보하기도 좋다.

지금 서울을 채운 넓은 도로, 높은 아파트, 좋은 학군과 깨끗한 생활 환경, 쌈지공원과 새로운 주민센터는 모두 재개발의 공이다. 세계 무대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는 국내 유수의 건설사들이 언제든 개발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고, 은행들은 사업비와 건설비를 손쉽게 대출해 준다. 설계사무소, 감정평가법인, 법무법인, 인테리어 회사와 분양 대행사 심지어는 동네 복덕방까지 모든 부동산 관련 종사자들이 재개발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다. 이 완벽한 생태계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조감도와 이미지만 본다면 대부분의 재개발은 훌륭한 계획이다. 하지만 그림은 그림일 뿐이고,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이를 현실로 옮겨오는 과정은 우여곡절과 다사다난한 갈등의 연속이다. 수백 년의 오래된 도시를 이상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놓인 많은 제약 사항을 무시할 수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해관계를 따지면서 어떤 건물이 역사적 가치가 있고 어느 골목이 보존할 만한 지역인지 고려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된 대규모 계획을 세울 수 없다. 이 가운데 무시되어서는 안 될 요소도 분명히 있다.

보수주의 철학의 기본은 개인의 자유에 대한 존중이다. 하지만 재개발 과정에서 보이는 이들의 행동은 개인의 선택에 대한 존중이나 자율성·다양성보다는 공공의 이익이나 대의, 도시 전체의 효용을 더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노후화된 빌라촌에 거주하는 100명의 세입자와 주민들보다는 재개발 이후 아파트에 입주할 중산층 50가구가 경제적 측면과 정치적 이해관계, 도시의 이미지 모든 측면에서 더 나은 방향이라 판단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발생하는 딜레마, 즉 대의를 위해 소수의 피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이 재개발 과정에서는 숱하게 만들어진다. 이를 정치인이 스스로 밀어붙이게 되는 꼴이다. 진보 언론은 이러한 희생과 더불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긴다는 점을 들어 명분이 부족한 재개발 정책을 비판하기도 한다.

사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강제 이주·철거 문제는 다수의 철거민과 경찰이 희생되는 참사까지 만들어 냈다. 대표적으로 2009년에 있던 용산 4구역 철거 현장에서 일어난 비극이 있다. 2006년 용산역 앞의 용산 4구역에서 추진된 재개발 사업으로 세입자와 상인들의 반발이 있었고, 보상 내용에 반발한 상가 세입자 26세대가 철거 대책 위원회를 구성해 대치하다 발생한 사건이다. 무장한 철거민들과 진압 경찰의 극한 대치 속 건물 옥상에선 화재가 발생했고 철거민과 경찰을 포함해 여섯 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2010년 11월, 대법원에서 고등법원 판결을 확정하며, 철거 농성자에 대해 2년에서 5년까지 징역형이 확정됐다. 10년이 지난 2019년, 경찰의 진상 조사 위원회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해 인정하고 검찰 또한 경찰의 편파 수사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 참사가 발생한 구역에는 높은 주상 복합 건물이 완성되었지만, 아직도 당시의 사건은 재개발의 아픈 상흔이자 부작용으로 남아 있다.

이외에도 개발 업자와 정치인 사이의 유착관계, 조합장의 횡령과 비리, 불법 행위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져 나와 뉴스를 장식한다. 이는 재개발 사업이 결국 돈과 엮인 문제라는 인식을 대중에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권 다툼에 사업이 수년씩 지연된 경우도 다수 있고, 도시의 모습을 획일적이고 개성 없는 아파트 중심으로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이는 재개발의 필요성을 옹호하는 정치인에게 큰 골칫거리가 된다.

 

도시재생의 논리


수백 채의 빌라와 단독 주택, 수천 평의 구역을 전면 철거하고 아파트를 짓는 일은 크든 작든 반대를 동반한다. 이유도 다양하다. 보상금이 부족하거나 세입자 대책이 부적절한 경우, 혹은 선대부터 내려온 집을 보존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지 수백 명이 함께하는 사업에 반대가 없을 수는 없다. 특히 부동산 경기가 침체하는 국면에선 시공사도 사업 참여에 있어 보수적으로 움츠러든다. 동시에 개발에 필요한 PF 조달도 어렵기 때문에 사업은 더욱 난항을 겪는다.

재건축과 마찬가지로 재개발은 조합원 아파트와 비조합원 아파트·근린 생활 시설을 분양하며 발생한 매출로 사업이 진행된다. 새로 건물을 짓는 비용뿐만 아니라 도로·기반 시설을 조성하는 비용, 건축 및 설계비, 세입자 보상 비용, 전신주와 횡단보도, 신호등까지 모든 비용은 분양 매출을 통해 충당된다. 문제는 분양 가격이 인근 주택 가격보다 크게 높아지면, 사업을 추진할 동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미 완성된 아파트를 구입하면 되는데, 굳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재개발 단지를 분양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조합원이 부담해야 할 분담금이 커지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조합 내부에서 분열이 시작되고 사업이 장기화한다. 특히 앞서 말한 ‘좋은 입지’에 위치한 재개발 구역은 더더욱 그렇다.

이 틈을 치고 들어온 건 진보 계열 정치인이다. 보수 계열 정치인과 차별화되는 정책과 공약, 서로 다른 지지층을 확고히 하기 위해 이들은 전면 재개발이 아닌 다른 정책을 찾기 시작한다. 바로 도시재생이다.

그들에게 도시재생은 훌륭한 묘수였다. 기존 거주민과 경제적 약자들을 내쫓으며 약자들을 약탈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온 도시 개발의 역사를 바꿀 수 있는 정책으로 보였다. 진보 계열 정치인들은 뉴타운으로 대표되는 재개발 과정에서 쫓겨나는 세입자와 소유자들을 주목했다. 재개발 구역에 원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재개발이 끝난 이후 해당 단지에 그대로 거주하는 비율인 ‘재정착률’은 서울시 기준 25퍼센트 수준이다. 난곡이나 길음 뉴타운처럼 가난한 동네의 경우 재정착률이 8~9퍼센트에 불과하다. 다섯 명의 주민 중 최소 네 명이 쫓겨나는 재개발은 약자들에겐 정당하지 못한 사업이었다. 이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했다.

이들이 도시재생에 매료된 또 한 가지 이유는 해외의 선진 사례다. 뉴욕의 오래된 철길을 재생한 ‘하이 라인High Line’, 스페인의 오래된 공업 도시를 예술·관광 도시로 탈바꿈시킨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영국의 낡은 항만을 다시 활성화한 ‘리버풀 Liverpool’의 사례까지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는 충분했다. 수많은 나라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행 중이었고, 다양성과 환경, 소외 계층까지 포함할 수 있는 좋은 정책으로 보였다.

도시의 수많은 개발 사업은 외부인 즉 구매자를 위한 사업이 대부분이고, 내부자를 위한 사업은 매우 드물다. 무주택자든 유주택자든 결국 새로운 수분양자에게 주택을 팔기 위한 사업인 것이다. 오피스텔, 생활형 숙박시설, 지식산업센터 또한 수요자만 조금 다를 뿐 마찬가지다. 신도시 조성 또한 토지를 수용당한 토지주들에게 아파트를 공급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훨씬 넓은 지역의 무주택자에게 주택을 공급하려는 목적이다.

반례를 찾자면 아파트 재건축 사업 정도다. 소유자들이 자기 집을 개량하기 위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추가적인 일반 분양이 곁들여진다. 그 외에 내가 살 집을 짓는 단독 주택 개발, 회사 사옥 건설 정도가 본인의 필요를 위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노후 주택을 재생하는 것과는 이미지가 다른 게 사실이다.

물론 사업에는 돈이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와 빈곤층을 위한 공익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거주하는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선 큰돈이 필요했지만 재개발처럼 일반 분양이 없는 사업에 비용을 투자할 건설사나 금융 기관은 없었다.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도시재생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보기엔 이제 서울에도 내부자 즉 주민을 위한 사업이 필요한 시기였다.

도시재생은 투기의 이미지로 퇴색된 재개발과 달리 쇠퇴하고 노후화된 지역을 재건하고 활성화하기 위하여 본래 도시의 기능을 되살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주거 지역에서 진행되는 도시재생의 실제 사업 내용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자치회나 주민총회 등을 통해 주민 사이의 커뮤니티와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고 집 수선 프로그램 등을 통해 거주의 질을 향상하고자 한다.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 기업,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도시재생의 중요한 목적이다.

오래된 골목에 벽화를 그린다거나 지역성에 맞는 커뮤니티 시설을 만드는 일들은 모두 거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사업이다. 물론 외부 관광객 유입을 통해 마을 경제를 활성화하고 명소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종종 등장하지만 이는 주민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의 일환으로 제시된다. 사업의 목표가 내부를 향하고 있고 그에 따라 사업의 계획과 프로그램이 구성되기 때문에 ‘지역 거주민을 위해’라는 대의는 변하지 않는다. 외부인이 보기에 도시재생 사업이 별거 없어 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취지만 보면 완벽하지만, 도시재생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도시재생을 옹호하는 정치인들은 크게 두 가지를 간과했다. 도시재생이 아주 오래 걸리는 장기전이라는 점, 외부로부터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정책이라는 점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진행된 도시재생은 앞서 언급한 해외 사례와 달리, 대부분 노후 주거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하이 라인은 뉴욕 맨해튼의 로어 웨스트 사이드에서 운행됐던 2.3킬로미터의 고가 화물철도 노선을 철거해 공원으로 재탄생시킨 사례다. 빌바오는 20세기 초 철강, 화학, 조선 산업 등이 들어선 산업 도시였으나 70년대 중공업 경제 위기로 실업률이 35퍼센트까지 치솟으며 인구 급감과 낙후로 고생하던 지역이었다. 산업 및 항만 폐부지로 고생하던 빌바오에 유려한 디자인의 미술관을 지으며 이른바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를 만들어 낸 것이 먹혀들었다.

리버풀 역시 무역항이던 산업 도시에 단계적 도시재생을 실행해 문화 도시로 탈바꿈한 사례다. 지역성을 살린다는 취지를 일반적 노후 주거 지역에 모두 적용키는 어렵다.

게다가 주민을 위한 사업과 정책은 당사자가 아닌 이상 관심 갖기도 어렵고 효용을 체감하기도 힘들다. 즉, 사업의 동력이 쉽게 떨어진다. 또한 대규모 물리적 환경 변화가 수반되지 않기 때문에, 도시 인프라에 대해선 함구할 수밖에 없다. 소방차 진입 도로를 확보하거나 가파른 언덕길과 계단, 심각한 주차난을 개선하긴 힘들다.

한국의 도시재생은 서울을 중심으로 발생한 주택의 공급 부족에 대한 이슈에도 대응하기 힘들었다. 고소득층의 도시, 자본의 도시인 서울에서 아무리 단칸방의 거주 환경이 좋아지고 골목길 가로등이 밝아졌다 하더라도 그건 지역 주민이 좋아할 일이지, 지방에서 상경한 무주택자가 반길 일은 아니다. 값비싼 월세를 내고 살아야 하는 이들이 보기에, 서울의 좋은 위치에 재개발이 무산되는 이유는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적인 정치인이 밀어붙인 도시재생 때문이다.

도시재생이 공격받는 가장 큰 근거는 바로 데이터다. 도시재생의 효과는 정확히 측정이 어렵다. 앞선 사례들을 참고로 제시할 수 있을 뿐이다. 명확한 대답의 부재는 도시재생을 이상주의자의 낙관으로 만들었다. 재개발은 숫자로 증명된다. 빌라촌이 얼마나 비싼 아파트로 탈바꿈되었는지, 재산 가치가 얼마인지, 재개발 전후를 비교해서 세대수는 어떻게 바뀌었는지, 도로 폭과 기반 시설은 얼마나 확충되었는지 등등 조금만 검색해 보면 재개발의 효과를 알 수 있는 수많은 데이터가 인터넷에 넘쳐난다. 하지만 도시재생은 애매하다. 주민 삶의 질이나 거주 만족성 등은 계량화되기 어려우며 이는 곧 도시재생의 약점으로 드러난다.

심지어 도시재생은 재개발과 달리 공공의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수십억 원을 들여 마을 커뮤니티 센터 혹은 거점 시설을 조성하고 주민 행사와 활동가를 지원하기 위해 다시 수억 원을 인건비로 지급해야 한다. 지역 재생을 위해 소위 말하는 ‘마중물’을 해당 지역에 쏟아붓는 것이다. 하지만 세금의 효과가 늘 숫자와 데이터로 증명되는 건 아니다. 도시재생은 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지속 가능한 마을’을 위한 사업이지 ‘재산 가치 상승’을 위한 사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을 통해 전보다 활력 넘치고 살기 좋은 지역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삶의 질’은 언제나 ‘부동산 가격’보다 숫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처럼 재개발과 도시재생은 구역 내 주민 간의 싸움이자 그 배후를 둘러싼 정치인들 간의 충돌이다. 내전에 대한 효과적 해법에 학자들의 생각이 다르듯 노후 지역에서 벌어지는 싸움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지 정답은 없다. 두 사업 결과를 정량적으로 측정할 것인지, 정성적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다르고 지역 주민을 위할 것인지 더 많은 무주택자를 위할 것인지에 따라서도 다르다. 각 지역에 맞는 해법이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지역 정치인과 주민들의 몫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큰 틀에서의 논의였을 뿐이다. 내전에 수많은 복병이 존재하듯 재개발과 도시재생에도 살펴봐야 할 주체들이 더 있다. 이들은 사업의 큰 방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진 않지만, 사업의 완수를 위해 절대 논외로 둘 수 없는 주체들이다.

 

사업을 완성하는 사람들


정비 사업의 선봉엔 선출직 공무원인 정치인이 서 있지만 사실 성난 주민들을 현장에서 마주하는 것은 비선출직 공무원이다. 모든 공무원이 그렇지는 않지만, 공무원의 가장 큰 두려움은 민원인인 경우가 많다.

상관의 부조리한 지시만큼 민원인의 행패는 무섭다. 공무원의 시선에서 악성 민원인들은 목소리가 크고 절차를 무시하는 존재들이다. 공무원들도 중간에 끼어있는 존재라는 것을 악성 민원인들은 이해해 주지 않는다. 본인의 불편함과 불만을 외칠 뿐이다. 절차와 제도, 행정 시스템과 같은 것들은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 위한 변명으로 치부한다. 누가 악성 민원인일지 모르는 상황, 공무원들은 주민들과 직접 대면하는 일은 꺼리게 된다. 재개발과 재건축이 지연되는 원인엔 주민 사이의 갈등뿐만 아니라 이처럼 공무원 업무의 구조적 특성도 있다.

행정 기관의 공무원은 사업의 인허가를 위한 행정 절차와 서류를 검토하는 일을 한다. 3기 신도시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은 직접 건설사와 계약하거나 사업 비용을 집행하지 않는다. 관련 법규와 제도에 맞게 서류가 들어온다면 검토를 통해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도장을 찍어줄 뿐이다.

공무원 입장에선 공직자로서 인허가를 빠르게 처리하거나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생략해서 사업에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성과급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호봉이 빨리 올라서 승진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해당 사업을 반대하는 이들이 시비를 걸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내부 감사와 같이 번거롭고 위험한 일에 휘말릴 수 있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는 데 유리하다.

모든 공무원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 조직의 시스템이 공무원을 수동적이고 관료적으로 만든다는 의미다. 행정 기관에서 특정 집단을 도와주기 위해 절차를 건너뛰거나 간소화하는 일은 공무원 철밥통을 스스로 걷어차는 행위고 불필요한 의혹에 시달리는 일이다. 아무리 구청장이나 시장이 원하는 정책 사업이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선출직 공무원은 임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내부 감사나 감찰이 나올 때 정치인이 실무담당 공무원까지 지켜주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정권 교체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때마다 전임 시장·구청장이 추진하던 사업이 엎어지고 실무자가 문책받는 일은 수십 년간 반복된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재개발과 도시재생이라는 두 사업이 공무원에게 갖는 의미다. 두 사업 모두 낡은 도시를 바꾸는 일이지만 공무원에게는 큰 차이로 다가온다. 먼저 재개발은 공무원에게 낯선 업무가 아니다. 특히 중구와 종로구, 성북구 등의 서울 구도심 지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크고 작은 재개발이 꾸준하게 진행됐다. 수십 년간의 선례와 문제들이 쌓여 만들어진 법과 규칙, 서울시 조례, 주요 판례 등이 충분하다.

물론 다수의 소유자와 세입자, 시공사와 협의를 해야 하는 복잡한 일이란 점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축적된 선례들은 공무원에게 도움이 된다. 재개발이 공무원에게 유리한 또 다른 이유는 조합원을 직접 만나기보다 주로 정비 사업 전문업체나 엔지니어링 회사, 시공사, 조합장을 통해 사업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양한 지역에서 다수의 정비·개발 사업을 수행하기에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공무원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적시에 제공한다. 막무가내로 자신의 의견, 이권을 주장하지 않으니 민원인보다 훨씬 상대하기 쉽다.

반면 도시재생은 새로운 정책이고 통합적인 업무들이다. 기존에는 사회 복지 센터나 주민복지과 같은 부서에서 담당하는 업무가 갑작스럽게 도시계획과 혹은 도시정비팀으로 이관된 느낌을 준다. 도시재생은 아직 선례도 많지 않을 뿐더러 다른 지역의 사례를 그대로 참고하기 어렵다. 대상지에 맞춰진 지역적 계획이 많고 이 계획들은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주민들의 문화 행사도 고민해야 하고 대학교와의 연계 사업도 고려해야 한다. 도시 계획이나 인프라, 건축 허가 등을 담당하던 공무원들에게 갑작스레 도시의 주민을 만나서 이들의 요구를 직접 들으라는 시장과 구청장의 요구는 난색을 표할 만한 일이다. 이 불편한 상황에 실무진 공무원의 구원자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활동가다.

도시재생의 조력자들

도시재생을 논하면서 활동가와 총괄 계획가를 빼놓을 순 없다. 이들의 노력과 역할은 도시재생의 핵심이다. 도시 개발이나 재정비 사업에서 사업을 이끌어나가는 주체가 정비 회사들과 건설사, 조합이라면 도시재생에서는 활동가 집단이다. 이들은 흔히 젊은 건축가와 도시 계획가, 교수, 주도적인 마을 주민들로 이뤄져 있으며, 마을 활성화와 지역 재생을 위해 직접 주민을 만나고 공무원과 주민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한다. 공무원에게는 든든한 우군이다.

전국 각지에서 도시재생이 펼쳐지면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조직은 도시재생 지원 센터다. 이 센터에는 별정직(계약직) 공무원이 센터장으로 일하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한다. 도시 공학, 도시재생, 건축 설계, 사회 복지, 사회학과 등을 졸업한 학생들이 인턴이나 직원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해당 지역의 공무원이 잠시 파견 나오는 경우도 있다.

주된 업무를 보면 이들이 왜 도시재생의 핵심인지 알 수 있다. 이들은 담당 지자체 공무원과 업무 회의, 주민 자치 프로그램 기획, 주민총회(간담회) 진행, 각종 프로그램 준비 및 실행, 타 도시재생 센터와의 협업, 사업비 집행 및 정산 등을 도맡는다.

문제는 이 같은 업무가 시스템으로 구조화되지 못하고 활동가의 개별적 노력으로 유지되는 경향이 심하다는 것이다. 마치 시민 단체나 사회적 기업과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일자리나 기업이라고 하기엔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 업무의 범위가 매우 넓고 포괄적이라서 전문성이 생기기 어려운 것도 한계다. 지역 주민과 상생하고 도시재생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일을 시작했지만 가장 먼저 맞닥뜨리게 되는 건 광범위한 주민의 요구다. 주민들이 원하는 기준을 맞춰주느라 밤늦게까지 설명회에 참가하거나 주민 한명 한명을 대면하고 설명하는 업무를 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보다 보상이 적은 점도 문제다. 공무원보다 못한 월급과 불안정한 계약직 신분으로 인해 정권이 바뀌거나 지자체의 재정 지원이 없어지면 대다수는 자립하기 어렵다.

여기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도시재생 사업은 무한정 지속되는 게 아니라 3년에서 5년 정도의 사업 기간을 두고 사업비가 투입된다. 이 시간은 수십 년에 걸쳐 쇠퇴한 지역을 되살리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도시재생은 단순히 요구 사항을 듣고 조율하는 것 그 이상이다. 주민들을 교육하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이다. 마을회관 같은 거점 공간을 만들고 사업 운영을 안정시키려면 5년은 너무 짧다. 도시재생은 애초에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려운데 그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업이 끝나 버린다.

재개발의 포식자들

도시재생은 지역 주민과 활동가의 협력과 노력으로 한 땀 한 땀 진행되지만, 재개발은 명확히 자본의 논리로 추동된다. 재개발은 소유자들이 모여 땅을 모아 통합 개발하는 사업이다. 땅의 규모에 따라 1000평 이하의 소규모 재개발부터 1만 평이 넘어가는 대규모 재개발까지 다양하게 구분된다. 사업을 조합이 주체적으로 가져가는지 혹은 신탁 회사나 SH공사 같은 제삼자에게 위임하는지에 따라 민간 재개발, 신탁 방식 재개발, 공공 재개발로 구분될 수 있다.

재개발의 방식이나 주체와 무관하게 이 사업에는 수많은 사람이 숟가락을 얹는다.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고 지출되는 장기간의 사업이기 때문에, 그 주변에는 콩고물을 한입 하기 위해 배회하는 이들이 많다. 도시재생과 달리 해당 구역 전체에 대하여 전면 철거와 대규모 신축이 일어나며, 사업의 구간마다 용역비, 인건비, 공사비, 각종 부담금 등 막대한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돈 냄새를 맡은 포식자들이 재개발 구역으로 몰려든다.

가장 먼저 달려드는 회사는 정비 업체, 즉 재개발 컨설팅 회사다. 재개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주민과 소유자들에게 사업을 통해 새 아파트를 받거나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꼬드긴다. 이들은 소유자가 해야 할 업무를 대신해 정비 사업 전반에 대한 업무를 위임받아 동의서 징구나 인허가 서류 작성 같은 번거로운 일부터 조합총회나 대의원회 개최 같은 굵직한 일을 대신한다. 소위 ‘재개발 브로커’라 불리며 조합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사업을 추진해 나간다.

위 업무는 할 줄 안다고 해서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법인의 자본금과 인력 구성 등 자격을 확인받아 도시정비법에 따른 ‘정비사업전문관리업’ 면허를 취득해야 하고, 조합(혹은 추진위)과 정식 용역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하지만 무면허·무자격 정비 업체와의 계약, 불필요한 용역 계약과 과대하게 부풀려진 용역비로 초래된 조합-업체 사이의 갈등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잦다. 소송과 조합 내부 분열, 사업 지연·중단이 일어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시공사는 가장 잘 알려진 재개발의 수혜자다. 재건축과 마찬가지로 건설사는 재개발 구역 전체에 대한 철거와 신축을 총괄하며 엄청난 규모의 공사 매출을 따낼 수 있다. 자사의 아파트 브랜드를 알리는 것은 덤이다. 문제는 조합으로부터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다른 건설사와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져, 조합원을 대상으로 하는 불법·편법적인 행위가 다수 발견된다는 점이다. 시공사는 조합총회를 거쳐 선정되는데, 여기서 최다 득표를 얻기 위해, 마치 초등학교 반장 선거 때 햄버거를 돌리는 것처럼 뇌물과 금품을 조합원들에게 살포한 사례도 있다. 이 비용은 결국 돌고 돌아 공사비 상승과 분양가 상승으로 연결된다.

그 외에도 사업비와 공사비를 대출해 주는 은행과 금융 기관, 멋진 조감도와 이미지를 그려주고 설계 도면을 작성하는 건축사사무소와 엔지니어링 회사, 미동의자·세입자에 대한 수용·보상 업무를 진행하는 감정평가법인과 법무법인, 공사비·분양가를 검증하기 위한 한국부동산원, 분양·홍보를 위한 분양 대행사와 광고 대행사 등 수많은 회사가 서로 다른 역할로 재개발에 참여한다. 재개발이 왜 부동산의 황금알로 불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내전의 당사자, 주민들

무엇보다 사업을 완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주민이다. 하지만 같은 지역의 주민이 서로 적대하며 싸우는 광경은 늘 내전을 방불케 한다. 특히 2000년대 초반 재개발·뉴타운 구역으로 묶여 있다가 해제된 후 도시재생 지역으로 재설정된 지역은 2020년대부터 다시 재개발(공공 재개발, 역세권 활성화 사업, 가로 주택 정비 사업 등)의 소식에 들썩인다. 주택 한 채가 가계의 전 재산인 한국에서 내가 가진 작은 단독 주택이나 빌라를 둘러싸고 어떤 게 최선인지 저울질하는 문제이기에, 모두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이권을 주장한다.

분명히 할 것은 단순히 사업을 이분법으로 나눌 순 없다는 점이다. 주민들 역시 도시재생과 재개발 중 원하는 것을 취사선택할 순 없다.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도시재생 때문에 재개발을 못 했다”라는 것이다. 인과관계의 오류다. 재개발이 진행되지 않아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한 것이지, 도시재생 때문에 재개발을 추진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건 순서에 맞지 않는다. 도시재생법은 2013년에 제정된 반면, 현재 도시정비법이라 불리는 도시재개발법은 1976년에 나왔다.

그렇다면 반대로 왜 도시재생 구역으로 지정될 때까지 재개발이 이뤄지지 못한 걸까? 사업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아직 재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곳의 대부분은 재개발을 진행할 시 투입되는 비용 대비 효용이 떨어진다. 이런 곳들이 다시금 재개발로 들썩이는 이유는 그만큼 주변 아파트값이 올라서 과거보다 수익성이 높아졌거나 각종 도시 계획의 변경으로 사업 수지가 나아졌기 때문이다. 재개발 구역이 본격적으로 해제되며 서울시에서 도시재생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2012년은 비단 서울시장이 오세훈에서 박원순으로 바뀌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 2008년 이후 본격화된 미국발 금융 위기와 더불어 당시 정부의 대규모 주택 공급(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으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횡보하거나 소폭 하락하는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을 보면 많은 지역이 재개발 예정 구역으로 지정된 상태에서 허송세월 사업이 지연되어 거주자와 소유자 모두의 불만이 커졌다. 재개발 예정 구역으로 지정돼 건물 신축이 불가능하며, 리모델링을 하려고 해도 언제 철거될지 모르기 때문에 수선 비용을 쉽게 들이지 못한 것이다. 언제까지 여기에 살 수 있는지 불확실하기에 거주자들의 불안감도 높고 사는 지역에 대한 정감을 갖기 어려웠다.

쓰레기 무단 투기부터 파손된 외벽과 담장을 그대로 방치하는 등 노후 지역은 점차 우범 지대로 전락했다. 이에 정비 구역 해제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부동산 시장의 약세로 분양가 상승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분양 완판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도시재생은 장기간 걸리는 재개발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됐다.

영원한 것은 없다. 주민들의 부동산 가치와 거주 환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정답도 늘 바뀐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갈등은 거세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확실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는 갈등이 오히려 작다. 확실한 상승 추세라면 대부분이 재개발을 원하고, 명백한 하락장 혹은 침체기라면 재개발 해제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횡보하며 상승 거래와 하락 거래가 불규칙하게 반복될 때는 여론이 분분하게 갈린다. 이런 현상은 특히 입지가 좋은 서울의 노후 주거 단지에서 심하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원주민과 시세 차익 혹은 분양권을 위해 들어온 투자자 사이에 갈등은 첨예해진다. 낡은 집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고령층 실거주자와 그 동네가 빨리 재개발되어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자 하는 주민들 사이, 어떻게 의견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 확실한 경제적 이익 혹은 강력한 외부적 요인이 없다면 요원한 일이다.

 

오래된 도시


서울이 한반도의 수도로 자리 잡은 지 600년이 훌쩍 지났다. 조선 시대 이전에도 한양이라는 도시가 있었던 걸 생각하면 그보다 훨씬 오랜 기간 수많은 사람이 이 도시에 살았을 것이다. 지금의 서울은 오랜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시간의 도시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을 증명하고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몇 차례의 전쟁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됐고 새로 지어졌다. 광복 이후 수많은 개발과 재개발, 정비 사업은 수십 년간 반복적으로 계속됐다. 그 과정에서 서울은 계속해 소유자들과 정치인들, 외부자들에 의한 내전을 치러온 셈이다.

오래된 도심을 두고 어떤 방향이 올바른 방향인지 아직도 많은 갈등과 정치적 논쟁, 경제적 이해관계가 다툰다. 특히 부동산 소유권이 잘게 나눠진 도심 지역은 소유자의 소득과 재산 수준, 정치 성향, 보유 목적에 따라 소유자의 생각이 천차만별이다.

소유자 외에도 세입자, 구역 인근 주민, 구의회와 시의회, 구청장과 시장까지 이해당사자는 끝이 없다. 소유자 입장에선 내 땅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는 게 싫고, 공공 입장에선 대의와 공익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지역을 민간이 임의로 난개발하는 걸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이 싸움이 점점 가치 전쟁 양상으로 치닫는 것은 이러한 복잡성과 모호성 때문이다.

정쟁과 부동산 시장의 역동 속에서 수많은 지역이 재개발과 도시재생 사이를 오갔다. 주민들은 불안해했고, 언론들은 갈등을 부채질했으며 정치인은 자신의 표를 모으기 바빴다. 도시의 장기 전망과 미래 세대를 위해 기획된 사업들은 늘 산발적 이슈와 파편화된 논쟁 속에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이것은 꼭 정치인의 문제도, 이권만을 내세우는 주민의 문제도, 잇속을 챙기려는 제삼자의 문제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언론만의 문제도 아니다.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부재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개인의 생각과 철학, 이상에 따라 도시는 다른 모습을 한다. 어떤 이에게 서울은 오래된 역사에 비해 도시의 고유한 정취를 느낄 수 없고 문화성·역사성이 부족한 삭막한 도시다. 어떤 이에게는 대한민국의 수도로서 경제 규모와 국제적 위상에 맞지 않은 낡고 노후화된 도시일 수도 있다. 혹 누군가에겐 원주민을 내쫓고 뉴타운이란 이름 아래 돈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수혈하는 무자비한 도시처럼 보일 것이다. 서울은 옛말에도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었다.

도시는 사람과 생활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에 따라 내용물의 모양이 바뀌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릇에 담기는 내용이다. 건물과 인프라가 낡았다고 해서 도시 속 시민들의 삶과 생각이 과거에 머물진 않는다. 마찬가지로 화려하고 높은 건물들이 빼곡한 도시에서도 구시대적 발상이 난무하고 고리타분한 일상이 가득할 수 있다.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외관, 깔끔하고 정돈된 도로는 중요하지만 결국 도시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고, 사람이 생활하기 위한 장소다. 돈을 위한 공간일 수 없다. 수십 년이 지난 뒤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도시들은 어떤 도시가 되어야 할까. 그때 이들 도시가 가질 경쟁력은 어떤 것일까. 어렵고 혼란스러울 때일수록 도시 계획의 기본과 원칙을 돌아볼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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