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의 정치학
7화

포스트 뉴딜, 민자 사업의 비밀 (1)

차가 너무 막힌다. 도로에 차를 버리고 걸어가는 게 빠를 것 같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출퇴근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 대낮에도 지하철에 앉을 자리 하나 없이 사람이 가득하다. 지하철과 버스의 혼잡도는 항상 빨간 불이다. 도로만 문제가 아니다. 쓰레기처리장 용량이 초과해, 제때 쓰레기를 수거해 가지 못해서 도시 곳곳에 악취가 가득하다. 도시의 어디를 가도 주차장이 부족해 차에 시동을 걸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주민들의 민원이 넘쳐나고 시민들의 불만은 점차 높아진다. 시장과 도지사, 구청장을 비난하는 기사들이 연일 끊이지 않고, 반대 정파의 공격이 거세지며 정치적·사회적 사안으로 발전한다.

 

인프라의 시대
 

위 이야기는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상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을 가정해 소설처럼 적어 본 것이다. 우리는 도시에 살면서 알게 모르게 수많은 시설을 사용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하지만, 너무 일상적이고 당연해서 개인들은 잘 체감하지 못하는 시설들이 있다.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오히려 그 시설과 인프라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도시에 수많은 사람이 빽빽하게 생활하고 거주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러한 시설을 흔히 ‘도시 계획시설’ 혹은 ‘사회 간접 자본(SOC·Social Overhead Capital)’, 더 쉽게는 ‘인프라’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도로, 공원, 상하수도, 변전소, 지하철, 버스 정류장과 주차장, 차고지 등이 있다.

대부분의 도시 계획 시설은 국가와 지자체가 세금을 통해 조성하고 운영한다. 이 시설들은 공장이나 업무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수익이 되진 않는다. 하지만 돈이 안 된다고 이러한 인프라에 투자하지 않거나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하지 않으면 생활 환경이 악화하고 생산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간 신경도 쓰지 않은 시설들의 소중함을 즉각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이는 국가 경제까지 위협할 수 있는 사안이다. 만약 대규모 공장에서 최신형 반도체를 생산했는데, 이를 수출하기 위한 항만이나 공항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글로벌 기업이 새로운 공장 건설이나 대규모 투자를 고려할 때 해당 도시나 지역, 더 나아가 국가 자체가 선택받지 못할 것이고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를 위해 대통령이 별도의 회담까지 진행하는 이유는 테슬라의 공장인 ‘기가팩토리(gigafactory)’를 유치하기 위함이다. 국제적 갈등 심화로 생산 시설을 자국에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 움직임에, 다국적 기업의 탈중국 흐름까지 더해지며 각국의 매력 뽐내기는 더욱 치열해졌다. 유명한 기업의 공장 하나만 유치할 수 있어도 엄청난 공적이다. 정치인 입장에서 인프라의 부재는 결코 허용할 수 없는 일이다.

 

고도 성장기의 엔진


한국은 급속한 경제 성장과 도시화로 단시간에 다수의 인프라와 도시 계획 시설이 만들어졌다. 경부고속도로로 대표되는 대규모 토건 사업이 서울을 포함한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건설·토목 사업이라는 단일한 사업을 위해서는 다수의 하도급 업체가 필요하다. 설계사무소, 감리 회사, 시멘트 공장, 아스팔트 제조 회사, 중장비 대여 심지어는 건설 인부의 식사를 책임지는 ‘함바집(현장 식당)’까지 필요하다. 노동 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첨단 산업과 같은 하이테크(hi-tech)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며, 대규모 고용 창출이 가능하다. 비용 투입에 대한 결과물을 공정률에 따라 즉시 확인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1970~1980년대 고도 성장기에 이 같은 사업은 속칭 ‘뉴딜’로 통했다. 심각한 주택난, 대중교통 부족, 수출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사회적·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며, 동시에 기업의 확실한 성장을 담보하는 좋은 사업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 당시 시장과 구청장, 도지사 등의 정책 결정자들이 하는 일은 비교적 간단했다. 언제 어디에 어떤 회사가 도로와 지하철, 인프라를 놓을지 결정하면 됐다. 예를 들어 현대건설이 지하철 2호선을 공사하고, 대우건설이 동작대교를 시공하며, 올림픽대로는 삼성물산이 건설하는 것을 정해주면 되는 것이다. 강남 개발(영동 택지 지구)을 비롯한 수많은 건설 현장이 서울 각지에 넘쳐났고 토목·건설 회사들이 할 일 또한 끝이 없었다. 서울시장은 하이바를 쓰고 착공식과 기공식, 안전 기원제, 준공 기념행사 등을 돌아다니며 기념 촬영을 하는 게 주요 일정이었다.

비단 한국만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뉴딜 사업 모델은 원래 미국에서 왔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에서 진행된 대규모 인프라 사업은 주간 고속 도로 Interstate highway를 만들고 후버댐을 만들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활 환경을 개선했다. 이처럼 국가·정부가 사업을 주도하며 민간이 참여하는 경제 모델은 케인스주의로 불리며 미국을 포함한 서구 유럽권 국가의 경제 모델로 자리 잡았다. 전쟁 상흔을 복구하고 도시를 재건하는 사업들이 50년대와 60년대를 책임진 것이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난 뒤 한국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로 수입되어 절찬리에 전국 각지로 퍼졌다.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그만큼 경기를 부양했지만 이 사업이 무한히 지속할 수 없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돈이었다. 인프라와 사회 기반 시설은 돈 먹는 하마다. 인프라 사업에는 시설을 지을 수 있는 땅이 필요하고 그 뒤에는 건물을 짓는 공사비가 들어간다. 시설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비용도 꾸준하게 필요하며, 시설이 오래되거나 고장나면 이를 유지· 보수하기 위한 수선 비용도 필요하다. 이 비용들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이다. 국가가 진행한 만큼 납세자의 몫으로 돌아오는 일이 부지기수다. 가장 최근 준공되어 개통한 월드컵대교는 공사비로만 3550억 원이 들어갔다. 1980년에 완성된 성산대교는 1128억 원을 들여 2017년부터 5년에 거쳐 성능 개선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 같은 비용은 매해 꾸준히 사용된다. 2022년 서울시 부문별 예산 39조 2000억 원 중에도 6조 8000억 원, 약 17.5퍼센트가 유지·보수 비용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더는 건설 현장에서 시장이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은 부담스러운 행사가 됐다. 급격한 고령화로 노인 빈곤이 대두되고, 경제 위기로 문을 닫는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또 공사판을 벌여 혈세로 건설 회사의 배만 불린다’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뉴딜은 끝났다


뉴딜의 시대는 지났을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확실한 것은 공사장만으로 국가가 유지될 순 없다는 점이다. 사회 기반 시설 유무에 따른 사회적 효용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지만, 있는 것을 개량하고 확대·운영하는 시점부터는 인프라의 비용 대비 체감 효용이 크게 떨어진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서울에서 부산을 내려가는 고속도로가 없다면 굽이치는 국도 위에서 12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아야 하지만, 경부고속도로가 만들어진 뒤로는 5~6시간 동안 쭉 펼쳐진 직선 도로 위를 달리기만 하면 부산 바다를 볼 수 있다. 도로 개설로 발생하는 투자 효과는 확실하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가 너무 많이 막혀서 한 개 더 만든다면, 그 효과는 처음보다 훨씬 떨어진다. 도로 설계를 더 잘하고 터널을 효과적으로 뚫어서 서울부터 부산의 거리가 자동차 기준 네 시간으로 단축된다고 하더라도, 투입되는 비용 대비 효과는 첫 경부고속도로에 비해 미비할 수밖에 없다. 새마을호가 다니는 노선을 KTX가 다닐 수 있게 개량하는 사업, 4차선 국도를 6차선으로 확폭하는 사업도 모두 비슷한 법칙이 적용된다. 경제가 발전하고 고도화될수록 토건 사업의 효과는 점차 수확 체감된다.

또 하나의 이유는 경제 성장의 공식이 바뀌었다는 것에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경제의 주도권은 IT와 인터넷, 바이오 등과 같은 고부가 가치 산업으로 이동했다. 1억 원은 강남역 근처의 땅 한 평을 사는데 부족하다. 하지만 이 돈을 열 명의 잠재력 있는 창업 준비생에게 지원한다면 어쩌면 수백 명 이상을 고용할 스타트업이 탄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업이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다. 100개의 기업이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매출과 영업 이익을 일으키며 경제를 이끌어나가던 시대에서, 한두 개의 기업이 특정 산업 부문의 과반을 차지하며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경제 구조로 변화한 것이다.

한국의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삼성은 2022년 기준 전체 시장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하지만 토목·건설 업계의 시장 구성은 이정도 수준의 독과점은 아니다. 2022년 국토교통부의 전국 종합 건설 사업자의 ‘시공능력평가’를 기준으로 보면, 상위 열 개 업체는 전체 시공 능력의 합계에서 35퍼센트를 차지한다. 1위인 삼성물산이 사업 규모에서 22조 원을 기록하고 있지만, 전체 271조 원에 비하면 그렇게 큰 비중은 아니다. 압도적인 기술력 차이도, 특별한 원가 절감 방식도, 확고한 소비자의 팬덤도 없는 시장에서 크고 작은 회사들이 시장을 적당히 나눠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가장 달라진 점은 고도의 경제 성장과 인구 성장이 저물었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5퍼센트를 밑돈 것은 십여 년도 넘었다. 마지막으로 6.8퍼센트를 기록했던 2010년은 지금에 비하면 호시절이다. 합계출생률은 2018년 1.0 아래로 떨어진 이래 지속 우하향하는 중이다. 유소년(14세 이하) 100명 대비 노인(65세 이상) 인구를 의미하는 고령화 지수는 2017년 처음 100을 돌파한 이후 2022년 167로 급격하게 상승 중이다.

이 모든 지표는 사회 복지 비용의 급격한 증가를 가리키고 있다. 2005년 61조 원에서 2020년 302조 원까지 사회 복지 지출은 다섯 배 증가했다. 2020년 대한민국 GDP의 14퍼센트가 사회 복지 비용으로 사용됐지만, 이 규모의 복지 재정조차 OECD 평균 복지 지출 비율의 60퍼센트 수준이다. 향후 10년 이내에 급격한 경제 활동 인구 감소로 이 비율은 14퍼센트에서 20퍼센트까지 증가할 예정이다. 경제 성장 둔화에 따른 인프라 수요 감소, 국가 재정 중 사회 복지 비용 확대, 경제 시스템의 변화는 과거 국가 주도의 사회 기반 시설 투자와 건설에 대한 패러다임에 대한 변화를 가속했다. 세금은 한정적이고 써야 할 곳은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인프라 투자를 중단할 수는 없다. 어쨌든 만들어 놓은 시설을 유지·운영·보수해야 하고, 수도권을 향한 인구 이동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기반 시설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엔 단순히 ‘필요하다’에 그쳤다면 이제는 ‘더 안전하게, 빠르고 쾌적하게, 편리하게’와 같은 질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인프라와 도시 계획 시설, 사회기반 시설에 대한 좀 더 효과적인 방식이 요구된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민간 투자 사업이다.

 

기적의 논리에 숨겨진 것


언제나처럼 새로운 시도는 해외의 선진 사례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유럽과 미국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도로와 상하수도, 철도 등을 민간에서 건설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 과정에서 민간 투자 사업이 태동했다. 국가와 도시, 시대마다 적용되는 기준과 운영 방식, 법규 등은 각양각색이지만 사실 기본 원칙과 개념은 비슷하다. 민간 사업자가 자신의 비용으로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일정 기간 민간이 투자한 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민간 사업자와 국가·지자체 사이에 계약을 체결하는 형태다. 사업에 따라 다른 점은 소유권과 운영권에 관한 내용이다. 건설한 시설의 소유권을 국가·지자체가 갖는지 혹은 민간 사업자가 갖는지, 민간의 투자 비용 회수를 공공에서 지원하는지 혹은 민간이 자력 운영을 통해 해결하는지에 따라 민간 투자 사업 각각의 디테일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민간 투자 사업의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 사업 유형은 임대형과 수익형이다. 민자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시설물을 공공이 임대하여 사용하면 임대형, 민간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면 수익형이다. 일반적으로 임대형은 사용료 수익으로 투자비 회수가 어려운 시설, 이를테면 학교, 기숙사, 복지 시설, 상하수도 등에 진행된다. 수익형 방식은 사용료· 이용료 등을 통해 투자비 회수가 가능한 시설 즉 고속도로, 철도, 철도 역사 등에 주로 적용된다.

임대형 민자 사업은 전문 용어로 ‘BTL(Build-Transfer-Lease)’이라 불리며, 민간 사업자가 시설물을 짓고, 공공이 해당 시설을 사용·임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1000억 원 정도 소요되는 기반 시설이 있다고 했을 때, 민간에서 직접 비용을 들여 시설물을 건설한다. 이후 정부·지자체가 시설물을 임대해 수십 년에 걸쳐 임대료·사용료를 지급, 이 임대료로 민간 사업자가 투자 원금과 이자를 회수하는 구조다. 대표적인 사례는 학교, 항만, 박물관, 철도 시설, 군인 관사 등이 있다. 이렇게 지어진 건물들은 세금으로 지어진 시설과 외관상으로도 그리고 운영상으로도 전혀 차이가 없다.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도 일반적인 학교이고, 철도일 뿐이다. 시설물의 소유권도 공공이 가진다. 돈이 부족해 뉴딜 성격의 사업이 좌초를 겪은 것을 생각하면 기적의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사업 구조를 잘 보면 ‘대출’과 닮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국가와 지자체가 민간 사업자에게 사용료·임대료를 계약 기간에 나누어 지급하기 때문이다. 민간이 얼마를 투자하고 공공은 어느 정도의 임대료를 지급하는지, 몇 년에 걸쳐 비용을 지급하는지가 다를 뿐이다. 이 방식의 한계는 명확했다. 시설물의 건설과 조성에 당장 세금이 투입되지 않을 뿐, 여기에 쓰인 돈은 결국 임대료와 사용료를 통해 갚아야 할 국가(지자체)의 비용이었기 때문이다.

위 이유로 서울시를 포함한 정부와 지자체는 ‘수익형’ 민간 투자 사업을 주로 진행했다. 수익형은 흔히 ‘BTO(Build-Transfer-Operate)’라 불린다. 민간 사업자가 자기 비용으로 시설물을 건설하여 공공에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점에서 임대 방식은 같다. 사업 계획의 앞 페이지도 거의 비슷하게 흘러간다.

다만 차이점은 국가가 임대료·사용료를 민간에 지급하지 않고, 민간 사업자가 일정한 계약 기간 동안 직접 시설을 운영·수익하여 사용자(시민)에게 이용 요금을 징수한다는 점이다. 시민들이 내는 사용 요금에는 해당 시설의 운영 비용뿐만 아니라 초기에 시설을 조성하고 설치하기 위해 들어간 민간의 투자금까지 포함되어 있다. 대표적인 시설은 신분당선과 같은 대중교통이나 자동차 전용 도로, 민자 고속도로다. 2023년 기준 21개의 민자 고속도로가 운영되고 있으며 인천공항고속도로 등이 여기 포함된다.

임대형BTL과 다르게 수익형BTO 인프라는 시민들에게 묘한 이질감이 있다. 시민들은 해당 시설에 들어서면 민간 투자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시설이라는 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서울지하철 중 신분당선과 9호선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신분당선은 신분당선 주식회사, 9호선 일부 구간은 서울시메트로구호선 주식회사가 운영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운영하는 1호선부터 8호선까지의 노선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용자들이 환승·탑승할 때 교통 카드를 태그하는 별도의 개찰구가 존재한다. 민자 노선에 탑승하는 이용자의 숫자와 이동 구간을 정확히 측정하여, 별도의 요금을 징수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중점적으로 살펴야 할 사업은 바로 수익형 방식의 민간 투자 사업이다. 임대와 달리 수익형은 공공이 기본적으로 비용을 부담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다. 과거에는 국가나 지자체가 민간 사업자에게 제도적으로 최저 운영 수입 보장(MRG·Minimum Revenue Guarantee)을 약속한 사례도 종종 있었다. 이런 약속이라도 없으면 민간이 섣불리 큰돈을 투자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측에서다. 하지만 2006년 민간 투자 사업 관련 법률이 개정되고, 기존에 계약한 사업들도 공공과 민간 사업자 간 운영 계약을 변경하면서 현재는 최저 수입 보장을 약정한 사업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사회에 필요한 인프라를 공공의 부채 없이 확충하는 기적의 방법을 찾아낸 걸까? 공공이 민간 사업자에게 수입을 보장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업 시행에 대한 세금 부담도 없으니 많은 기반 시설을 다 수익형 방식의 민간 투자 사업으로 진행하면 공공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고’가 된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시민의 세금이 투입되지 않았다고, 마음 놓고 있을 순 없다. 한 가지 꼭 알아야 하는 점은 이런 방식의 민간 투자 사업에도 공공의 비용이 크든 작든 분명 투입된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고려할 점은 토지와 사업에 대한 기회비용이다. 대부분 인프라는 국가·지자체의 땅에 조성된다. 이를 무상·유상으로 민간 사업자가 임대해 시설물을 건설하는 게 대부분이다. 사업 계획에 따라 건물이나 대중교통 등의 시설이 만들어지면, 그 땅에는 다른 시설이 들어설 수 없고 다른 사업을 할 수 없다. 민간 자본 100퍼센트로 건설과 운영을 한다고 가정해도, 시설이 들어선 땅은 공공의 것이다. 즉, 이를 다른 용도로 활용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셈이 된다. 격변하는 미래에는 초기 계획한 시설이 아닌 다른 시설물이나 인프라가 필요할 수 있다.

다음은 보조금에 대한 부분이다. 민간 투자 사업에는 건설 보조금 혹은 운영 보조금이 지원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GTX와 같이 공공의 필요 하에 진행되는 국책 사업을 민간 사업자가 진행하는 형태에선 건설 보조금이 지급된다. 이미 조성된 민자 사업 인프라에도 지속적으로 적자가 발생할 경우, 공공이 운영권을 인수하거나 일부 적자를 보존하기 위해 운영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각종 보조금·지원금뿐만 아니라 해당 계획의 사업성 검토 용역과 타당성 평가, 사전 조사, 민자 사업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한 용역 또한 공공이 초기에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다.

마지막으로는 시설의 이용 요금이다. 일반 시민들의 피부에 가장 와닿는 대목일 것이다. 돈 없이 굴러가는 것은 없고, 누군가는 비용을 어떤 형태로든 부담해야 한다. 세금을 통해 만들어진 인프라는 이용 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하지만 민자 시설을 사용하려면 이용자들은 더 비싼 비용을 내야 한다. 불특정 다수가 납세하는 세금을 통해 시설을 구축하여 이용자의 비용을 낮추는 게 좋을지, 민간 투자 사업을 통해 세금 투입을 줄이는 대신 사용자의 이용 요금을 더 높이는 게 좋을지, 정부와 지자체는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인프라는 엄밀히 말하면 시민 모두를 위한 것인데 이용 요금에 차이가 나버리면 공정성에 어긋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강에 멋진 수상 택시가 생기더라도 이용 요금이 터무니없다면 이를 활용하는 것은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무엇보다 공공이 치러야 할 가장 큰 비용이자 리스크는 민간 사업자 선정에 대한 공정성 문제다. 사업 규모가 큰 부동산·건설 사업에서 특혜와 공정성, 정당성 이슈들은 툭하면 불거지지만, 민간 투자 사업의 경우 그 빈도가 훨씬 심하다. 사업 계획 관련 특혜, 사업자 선정 절차의 공정성, 지원금·보조금의 적정성, 사업 자체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논란은 끝이 없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했던 중점적인 민자 사업은 다음 정권에서 조사를 시작하는 첫 번째 프로젝트가 된다. 정권이 바뀌고 정당 색깔이 바뀔 때마다 전국 각지의 지자체에서도 이 같은 일이 반복된다.

기적의 논리와 같던 민간 투자 사업이 실제 어떤 구조로 이뤄졌는지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들여다보고자 한다. 공공이 이루고자 한 목표는 무엇인지, 민간 사업자는 어떤 이익을 보고 무슨 역할을 어떻게 맡았는지 보면 왜 이들 사업이 지속적으로 파열음을 내는지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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