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의 정치학
8화

포스트 뉴딜, 민자 사업의 비밀 (2)

GTX는 해방을 가져다줄까


2022년 방영했던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출퇴근만 네 시간 걸리는 경기도민 청년들의 애환을 ‘해방’에 빗대 그려 호평받았다. 극 중 창희(이민기 분)의 대사는 작품에 드러난 주제 의식을 관통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걔가 경기도를 뭐라 한 줄 아냐? 경기도는 계란 흰자 같대. 서울을 감싸고 있는 계란 흰자.”

서울은 가뜩이나 사람이 많은데, 서울 외곽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일자리와 교육을 위해 매일같이 서울의 중심부로 통근하기 때문에 더 많게 느껴진다. 강남과 광화문, 여의도를 향하는 도로는 항상 막힌다. 서울에 지하철 노선이 11개나 되지만 지하철 승객은 이미 포화 상태다. 평일 퇴근 시간, 강남과 사당에서 빨간색 광역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과 버스전용차로에 가득한 버스를 보고 있자면, 서울살이의 팍팍함을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1기 신도시 이후 2기 신도시 그리고 각종 택지 지구 개발 사업으로 수도권은 급격히 확장됐다. 수도권의 물리적 확장은 교통 체증과 대중교통 포화,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민원으로 연결됐다. 이에 정부는 수도권 광역 급행 철도를 도입하여 수도권 외곽의 신도시에서 서울 도심까지 30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는 새로운 교통 수단을 강구, GTX를 발표했다. GTX는 <나의 해방일지〉의 주인공들과 같은 수도권 주민을 출퇴근 지옥에서 해방해 줄 꿈같은 해결책이다. 이들에게 교통은 곧 삶의 질과 ‘워라밸’을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GTX는 지하철과 고속 철도 그 중간 정도의 위계를 지닌다. 보통 고속 철도라 하면 KTX나 SRT를 의미한다. 시속 300킬로미터의 속도로 수백 킬로미터씩 전국을 돌아다니는 열차다. 반면 GTX는 일반적인 전철보다 빠른 시속 100킬로미터 수준으로 서울과 경기도를 연결한다. 많은 지역을 커버하는 것보다 빠른 연결에 중점을 두다 보니 보통의 지하철보다 정차역이 훨씬 적다. 지하철보다 훨씬 깊은 지하(대심도)에 터널을 뚫고 선로를 건설하는데, 이는 지상의 토지 소유자 보상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파주에서 동탄까지 차를 타고 간다면 100킬로미터 정도의 거리를 돌아서 두 시간 가까이 운전해야 하지만, GTX가 완성된다면 교통 체증 없이 한 시간도 안 걸려 도착할 수 있다.
2023년 현재까지 사업 일정이 확정되어 사업 시행자가 정해진 노선은 총 세 개다. 경기도 파주에서 동탄을 연결하는 A노선, 인천 송도부터 경기도 남양주를 연결하는 B노선 그리고 경기도 양주시부터 경기도 수원을 잇는 C노선이다. 이 세 노선 모두 기본적으로 민간 투자 사업으로 기획되어 민간 사업자가 선정됐다. 현재 A노선은 공사가 진행 중이고 B와 C노선은 국토교통부와 실시 협약을 준비 중이다.

방만한 재정 사업 vs 효율적인 민간사업

민간 투자 사업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공 입장에서 자금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GTX에 걸린 기대를 고려하면 왜 이렇게 중요한 광역 철도 세 노선을 모두 민자 사업으로 진행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일까? GTX는 십여 년 동안 경기도 주민들이 염원해 오고 다수의 정치인이 공약으로 내건 국가 중점 사업이다. 오히려 국가와 지자체의 재정을 투입해 빠르게 완성하고 저렴하게 운영하는 것이 공익에 부합할지도 모를 일이다.

일견 타당한 이야기다. 재정 사업, 즉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사업으로 진행할 경우, 시민들은 더 저렴한 비용으로 GTX를 이용할 수 있다. 민간 사업자와 실시 협약 과정에서 빚어지는 문제나 운영 중에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돈과 시간의 문제는 앞선 요소들을 무색하게 한다. 더 큰 문제는 과연 이 돈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이냐다. GTX 사업비는 약 4~6조 원으로 추산된다. 세 개 노선을 다 합하면 12조 원에서 15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이 비용이 나올 곳은 두 곳, 중앙 정부(국토교통부) 혹은 지자체다. 서울시와 경기도, 경기도 내부에서도 다양한 기초 단체를 지나는 GTX는 비용 분담 문제가 난해할 수밖에 없다.

중간에 공사비가 증액되거나 설계가 변경되면 더 골치 아프다. 공공사업은 국민의 세금을 집행하기 때문에 민간사업에 비해 돈을 쓰는 절차가 훨씬 복잡하다. 재원을 확보하기도 어렵지만, 이를 국회와 시의회, 도의회 등에서 각각 통과시키고 집행하는 절차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4년에 한 번 지방 선거로 선출직이 바뀌는 것도 문제다. 시장이나 도지사와 같은 대표자가 바뀌는 것도 치명적이지만, 시·도의회 같은 입법·감시 기관의 구성원들이 바뀌는 것도 재정 사업의 지속성과 일관성에 어려움을 더한다. 서울 상암동과 양평동을 연결하는 월드컵대교만 해도 서울시 인프라 예산 감소와 다른 인프라 사업 추진에 따른 예산 분산 등의 이유로 착공부터 개통까지 11년 4개월이 걸렸다. 재정 사업의 한계다.

민간 투자 사업은 단순히 속도나 비용만의 문제는 아니다. 점점 거대해지는 공기업의 규모를 줄이며 정부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하려는 목적도 있다. 동시에 민간이 가지는 효율성과 창의성을 인프라 사업에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국민연금이나 각종 공제회, 보험 기금 등 국내의 거대 연기금이 해외 인프라·부동산 투자로 빠져나가지 않고 국내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흔히 말하는 ‘철밥통 공무원 마인드’가 수조 원의 인프라 사업에 발붙이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민간 자본의 기회비용과 목표 수익률은 확실하다. 이들은 막대한 예산을 넣었기 때문에, 확실한 수익을 내야 한다. 은행에 예치만 해도 엄청난 이자가 붙는 돈을 사업에 투자했기 때문에 ‘아님 말고’ 식의 사업 진행이 불가하다. 인프라 사업에 투자한 자본이 원하는 수익률을 얻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할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인프라 사업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인프라만큼 그 중요도가 크고 국가 안보·방위와 직결돼있는 우주 산업도 민간 자본과 합심해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었다. 미국 항공우주국 NASA이 그간 투자한 돈과 비용에 비해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 X가 보여주는 이른바 ‘가성비’는 압도적이다.

‘돈이 된다’는 명제가 가지는 힘은 크다. 민간 사업자는 하루라도 빨리 GTX를 준공해서 운영을 시작해야 매출이 생기고 프로젝트의 대출이자도 줄일 수 있다. 역사 내 자투리 공간에 상점을 입점시키고 열차와 역사에 무인 관제 시스템을 도입하고, 객차 내 광고와 광고판 임대 등을 진행하면 지출을 줄이고 운영을 효율화시킬 수 있다. 코레일이나 서울교통공사라면 국회와 시의회, 각종 행정 절차를 밟기 위해 수개월이 걸리는 일들을 단 몇 주 만에 기획부터 실행까지 할 수 있는 게 민간 기업이다.

민간 투자 사업 vs 재정 보조 사업

효율성은 챙겼다. 그다음 복병은 뭘까? 앞서 민간 투자 사업에서 공공의 비용이 발생하는 사례로 보조금 문제를 짚었다. GTX는 얼마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까? 정부는 GTX 사업을 위해 공정률에 따라 건설 보조금 수천억 원을 민간 사업자에게 지급한다. GTX-B노선의 민간 사업자 공모 지침서를 보면 건설 보조금은 총공사비의 50퍼센트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이 금액은 최대 1조 8000억 원이다. 아직 실시 협약을 체결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얼마의 재정이 지원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보조금이 결코 적지 않을 거란 점이다. 전체 사업비 3조 8000억 원 중에서 최대 1조 8000억 원의 금액이 건설 보조금으로 지원된다면, 그걸 민간 투자 사업이라 할 수 있을까.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점은 운영 이익과 손실에 대한 국가의 부담이다. 운영이 잘 된다면 별문제가 없다. 문제는 예상 수요보다 실제 탑승이 훨씬 낮아, 영업 손실이 발생할 때부터다. 사회적 불편과 요구가 커서 새로운 지하철 노선을 신설했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많은 수요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우이신설선, 의정부경전철, 용인에버라인과 같은 소규모 경전철은 물론이고, 신분당선과 9호선과 같이 중형 전철까지 모두 민간 투자 사업으로 건설된 철도들이지만 동시에 모든 노선이 적자다. 이 노선 모두가 초기 민자 사업을 검토하고 실시 협약을 맺을 때 예상했던 통행량에 비해 현저히 낮은 이용률을 기록했다. 당시 예측에 비하면 실제 탑승 인원은 평균 60퍼센트 정도이며, 심한 경우 20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운영 손실을 지자체에선 매년 수백억 원씩 보조금이나 대여금, 운영 지원금 형태로 세금을 들여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 9호선만 하더라도 2021년 4분기부터 2022년 3분기까지 운영 손실에 대한 지원금으로 520억 원, 대여금으로 200억 원이 민간 사업자에게 지급됐다. 신분당선의 경우, 2021년 대법원에서는 신분당선 운영 적자에 대하여 285억 원을 정부가 신분당선 주식회사에 지급해야 함을 판결했다. 2017년 의정부경전철을 운영하는 운영사는 운영 적자와 과도한 부채로 인해 국내 민간 투자 사업 최초로 파산했다. 이에 의정부시는 경전철을 다시 정상 운영하기 위해 2019년 새로운 운영사를 선정했으며, 매년 200억 원 수준의 관리 운영 보조금을 지급 중이다. 이 비용조차, 민간 사업자와 공공 사이의 실시 협약을 다시 맺고 재구조화하면서 최저 보장 수입과 손실 보존 비용을 줄이거나, 민간 지분을 공공이 일부분 인수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최소화된 숫자다.

2006년 민간 투자법이 개정되어 최저 수입 보장이 사라졌다고 해도, 그 전에 체결한 민자 사업에는 해당 내용이 여전히 남아 소급 적용이 불가하다. 그 밖에 민간 사업자의 과도한 운영 손실을 막고 철도의 공익성을 지키기 위해 적정 조건에 따라 운영 비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각각의 사업별로 지자체와 민간 사업자 사이의 실시 협약에 따라 보조금이나 지원금이 지급되는 것이다. 민간 투자 사업에 혈세가 쓰이는 아이러니는 이렇게 발생한다.

또 한 가지 변수는 시점의 차이다. 협약을 체결하는 시점과 운영되는 시점 사이에는 최소 3년에서 많게는 7년 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사이 통행 수요도 바뀌고 도시의 공간 구조도 바뀌며, 수많은 일자리가 생기고 없어진다. 개별 민간 투자 사업의 실시 협약이 완벽할 수도 없거니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더욱 운영 상황을 보장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재정 사업보다 빠르게 완성하여 효율적인 인프라 운영을 위해 추진한 민자 사업이 사실상 공공의 재원을 통해 겨우겨우 연명되는 그림이 그려지는 이유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철도 노선 대부분도 만성적인 적자 상태다. 코레일의 KTX, 서울교통공사의 2호선 정도가 예외에 해당한다. 하지만 국가와 지자체는 무궁화호가 적자라고, 서울 3호선에 사람이 적게 탄다고 운영 중단을 고려하지 않는다. 수많은 다른 노선을 조정하고, 일부 운영 흑자가 나오는 노선에 운영비를 분배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사회 전체의 공익과 사회적·경제적 취약 계층에 대한 간접적 사회 복지 수단으로서 기반 시설을 운영한다는 목적이 있어 가능하다. 민간 사업자에게 기대하긴 어려운 점이다.

확실한 건 사업의 손해와 이익을 민간 사업자가 올곧이 책임지는 수익형 민간 투자 사업이라고 할지라도, 시민들의 발이 되는 대중교통과 인프라를 다루기 때문에 운영 적자든 사업자의 파산이든, 이러한 이슈를 공공이 못 본 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애초에 해당 시설이 없었다면 모르겠지만, 한번 완성되어 운영 중인 시설이 갑작스럽게 중단되면 문제는 심각하다. 역세권이 더는 역세권이 아니게 되고, 시민들의 출퇴근 수단이 없어지며, 인프라 운영과 유지 관리를 위해 일하는 노동자가 해고된다. 갑자기 당산과 여의도에서 9호선이 사라지는 것을 상상해 보라. 이는 결코 사업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울링이 세워지려면


2023년 현시점에서 가장 화제인 민자 사업 계획을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꼽을 대형 프로젝트가 있다. 이 계획은 서울 한복판에 영화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하는 구조물을 세울 것이라 말한다. 바로 오세훈 서울시장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다.

오세훈이 서울시장으로 돌아오며 굵직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뉴스가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온다.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는 글로벌 도시 서울에 걸맞은 다양한 종류의 랜드마크를 한강에 조성하여, 관광 자원으로 활용함과 동시에 그 지역 일대를 개발하겠다는 취지다. 이 계획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다. 오세훈 시장이 2006년 처음 서울시장에 취임하며 이듬해 내놓은 ‘한강 르네상스’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계획이었다. 한강 일대의 수변 환경을 새롭게 조성하고 접근성을 강화하려는 이 계획으로 반포의 세빛섬이 탄생했다. 반포, 뚝섬, 여의도, 난지 등 네 개 한강 공원은 특화 공원이 됐다. 이는 오 시장의 대표적 업적으로 평가받는 동시에 전형적인 전시 행정이라 비판받는다. 특히 세빛섬은 적자에 시달리며 흉물이 되었다는 평이 많다.

오 시장은 2011년 무상 급식 관련 논란으로 사퇴했지만, 그는 한강 르네상스의 꿈을 버리지 않고 2021년 서울시장으로 돌아왔다. 이를 발전·계승한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는 그래서 ‘한강 르네상스 2.0’으로 여겨진다. 기본적인 사업 목표는 한강과 한강으로 흘러드는 다수의 지천을 활용해 자연성과 한강 접근성을 개선하고, 문화·관광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을 ‘글로벌 매력 도시’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직 세부적인 실행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고, 초기 구상 단계지만 확실한 건 거대하고 눈에 띄는 계획을 숱하게 포함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추측성 기사와 사업의 효과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에 포함된 다양한 사업 중 가장 주목을 받는 사업은 바로 ‘서울링’이다. 180미터 높이의 바큇살 없는 혁신적인 대관람차다. 마포구 상암동의 하늘공원에 세워질 예정이다. 가뜩이나 반지처럼 생겼는데 예상 이미지로 공개된 사진이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한층 더〈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와 같은 느낌을 준다. 이 혁신적인 구조물을 한강을 바라보는 경관 시설이자 서울의 특별한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포부는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심지어 이 사업에 서울시 예산은 소요되지 않는다. 앞서 말한 다양한 민자 사업처럼 서울링 또한 수익형 방식의 민간 투자 사업으로 추진하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원하는 바는 확실하다. 민간 자본을 통해 빠르고 확실한 랜드마크를 세우는 것.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처럼 서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상징물로서 서울링을 구상한 것이다. 이 역시 사업 타당성과 민자 사업의 적정성을 검토받고 중앙 정부의 승인을 받는 절차를 밟게 된다. 민자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4000억 원짜리 랜드마크를 수십억 원 정도의 용역과 컨설팅 비용만 들이고 얻어낼 수 있다. 심지어 민간 사업자와의 협약이 종료되면 서울링은 온전한 서울시의 손안에 들어온다. 일반적으로 협약 종료까진 30~40년이 걸리지만, 잘 지은 시설물 하나가 창출하는 가치를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다. 정치인으로선 최소한의 세금으로 보기 좋은 업적도 만드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2021년 12월 기준, 서울시에서 진행한 25개의 민간 투자 사업은 모두 수익형 방식이다. 사업의 종류는 도로 아홉 개와 도시 철도 여섯 개 노선, 주차당 여덟 개소, 문화·전시 시설 두 곳이다. 대부분 철도와 도로 같은 교통 시설에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서울시는 민자 사업의 새로운 종류로 관광·문화 시설에 도전하고 있다. 오랜 저성장 속 불황이 찾아오며 오 시장의 프로젝트를 보는 눈도 곱지 않지만, 엄밀히 말해 혈세 낭비는 없다. 세빛섬 역시 민자 사업으로, 사업비 1390억 원에 직접 투입된 서울시 재정은 없다. ‘세금둥둥섬’이란 농담은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민간 투자 사업 중 다수의 철도 사업의 사례를 간과해선 안 된다. 무작정 적자를 감내할 민간 사업자는 없다. 어떻게든 비용을 줄이면서, 수익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게 자본주의 시장에서 자본의 운명이다. 세빛섬 역시 2011년에 완공된 이후 최초에 추진한 민간 사업자가 경영 악화를 이유로 사업에서 손을 떼며 효성티앤씨가 맡게 됐다. 운영사 선정과 설계 및 시공 문제로 몸살을 앓던 세빛섬은 2014년 전면 재개장했지만, 만성 적자는 해결되지 않았다. 2021년 한 해 손실액만 58억 원에 달하고 2022년 말 기준 누적 적자액은 1218억 원이다. 자본금 역시 마이너스 795억 원에 부채 1204억 원으로 자본 잠식 상태다. 세빛섬이 전시 행정의 표본이라 불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세빛섬에 정말 세금이 들어가지 않았느냐다. 세빛섬은 지어질 당시부터 사업비가 애초 예상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 서울시 공기업인 SH가 128억 원을 출자하고 민간 사업자에 239억 원의 대출 보증을 서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2022년 12월 기준 세빛섬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효성티앤씨가 62.25퍼센트, SH가 29.9퍼센트, 대우건설이 5퍼센트 등을 가지고 있다. 자본 잠식 상태인 세빛섬의 적자는 민간 사업자인 효성에도, 서울특별시가 보증하는 공기업 SH에도 위험이다. 민간 투자 사업이라고 해서 그저 손 놓고 방관할 일이 아닌 이유다.

서울링 또한 다른 민자 사업과 마찬가지로 건설 보조금이 일부 투입될 것이고, 정확한 금액이나 비율 등은 실시 협약 단계에 정해질 것이다. 게다가 하늘공원은 일반적인 언덕이나 평지가 아닌 쓰레기 매립지였다. 이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지반 침하나 메탄가스 처리 문제는 민간 사업자에겐 리스크다. 인근의 문화비축기지나 월드컵경기장, 인접한 공원과의 연계 또한 필요하다. 덩그러니 하늘공원에 서울링만 있다면 이를 찾아갈 동인이 줄어드니 연계 사업은 필수라 하겠다. 이와 동시에 상대적으로 외진 위치에 계획되어 있는 서울링으로 사람들을 이동시킬 대중교통 확충도 필요하다. 4000억 원의 총사업비가 전적으로 민간 자본으로 구성되기 어려운 이유다. 생각보다 보조금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서울링은 앞서 말한 GTX나 경전철과 같은 사례와 다르다. 대중교통이 아니라 문화 관광 시설이기 때문이다. 한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서울을 즐길 수 있는 랜드마크는 될 수 있어도, 수만 명의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생활 필수 시설은 될 수 없다. 사업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이용료까지 비싸게 책정된다면 더욱더 시민들이 이용할 동인이 줄어들 것이다.

만약 수요 예측에 실패해 수백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운영에 난항을 겪는다면 어떻게 될까. 제아무리 세계의 유일무이한 대관람차라고 해도, 매달 운영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 수십 년간 민간 사업자가 울며 겨자 먹기로 운영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주식이나 부동산과 같이 영속적인 투자 자산은 수익률이 회복될 때까지 버틸 수 있다. 하지만 민간 투자 사업의 인프라는 준공과 동시에 소유권이 공공에 귀속되는 것은 물론이고, 계약된 운영 기간이 끝나면 시설 운영권조차 공공에 이양된다. 민간 사업자가 참여를 결정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만약 민간 사업자가 운영을 포기하거나 파산할 경우, 서울시가 서울링을 필수 기반 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할 수 있을까. 자칫 세금을 축내며 시민의 삶에는 별 도움되지 않는 애물단지로서 전락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안 또한 미리 고민해야 한다.

 

민자 사업, 공공의 역할


민간 투자 사업이 도입된 지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아직 민간 사업자와 공공 사이에 커다란 관점 차이가 존재한다. 민간 사업자는 투자 사업으로 접근하는 반면 공공, 특히 선출직 공무원은 민자 사업을 일종의 정치적 힘으로 생각한다. 자신들의 인허가와 사업자 선정을 일종의 특혜나 특권을 사업자에게 제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 위에서 상호 대등한 파트너로서의 계약은 맺어지지 않는다. 공공을 갑이고 민간을 하도급자 을로 두려는 경향 때문에 실시 협약 과정에서 과도한 요구를 한다거나 운영과 관련해 민간의 자율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보인다. 심지어는 공정성이나 형평성, 공익을 언급하며 민간 사업자의 사업권을 임의로 종료·해지하는 사례까지 발생한다. 민간 투자 사업에 대한 몰이해와 일방적인 생각에서 발생한 일이다.

사업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건 시장 논리에 따라 결정되어야 하며, 약속된 조건들은 지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그 약속이 깨진 사례도 부지기수다. 특히 김포와 일산을 연결하는 일산대교에서는 상호 간의 신뢰, 더 나아가서 민간 투자 사업 자체에 대한 신뢰를 흔들만한 일이 발생했었다.

2002년 일산대교주식회사는 정부와 지자체의 승인을 받아 민자 사업 실시 협약을 체결했다. 5년의 공사를 거쳐 2008년에 교량은 준공됐고 통행료 징수가 시작됐다. 그러나 2021년 10월 돌연 경기도지사와 김포시장, 고양시장은 민간 사업자의 관리·운영권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린다. ‘일산대교 무료화를 위한 공익 처분 시행 방안’이란 멋들어진 이름이 붙었다. 통행 거리 대비 과도한 통행료, 경기도 서부 지역 주민이 부담하는 과도한 요금 등의 이유였다. 민간 사업자는 이 결정에 불복해 법원에 가처분 취소를 신청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그 결과 통행료 징수가 중단된 지 채 1개월도 되지 않아 통행료 징수가 정상적으로 재개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민간 사업자와 지자체 사이에 생겨난 깊은 골을 메울 수는 없었다.

물론 일산대교주식회사에 대한 사업권 취소는 꽤나 극단적 사례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가 지급해야 할 보조금· 지원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을 거부해 분쟁 및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다수 있다. 신분당선, 용인에버라인 등이 대표적이다. 상당수의 소송은 정부·지자체의 패소로 끝난다. 이유는 뻔하다. 초기 민자 사업을 상호 간에 협상하고 조건을 명문화한 실시 협약이 분명히 체결돼 있는데, 단순히 상황이 변했다고 말을 바꾸는 쪽은 주로 공공이기 때문이다. 수요 예측이 잘못돼 공공의 부담이 과도하단 이유로 계약을 파기하거나 책임을 뒤로 미룬다면, 아무리 사법부라도 정부· 지자체의 손을 들어줄 수 없게 된다.

특정 인프라 시설을 민간 투자 사업으로 진행할지 혹은 재정 사업으로 진행할지 결정하는 일은 결코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하나의 도시 계획은 수십 년 뒤의 도시 구조를 결정하고, 개인의 재산권을 좌우하며, 형평성과 공정성, 효율성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한번 만들어진 인프라나 사회 기반 시설도 최소 30년 이상 장기간 운영되며 직간접적으로 사용자와 인근 주민에게 영향을 끼친다. 정책을 수립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플레이어들은 더욱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신중하고 신속하게 계획을 이행해야 한다.

보고서를 만드는 사람들

성공적으로 민자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서 공공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판단력이다. 판단을 내리기 위해선 알아야 한다. 차를 구매하기 전, 어떤 차가 얼마인지,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운전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야 어떤 차를 살지 결정할 수 있다. 도시 계획도, 인프라 사업도, 국토 개발도 마찬가지다. 모든 정치적 판단에는 적합한 정보가 필요하다.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관련된 내용을 전문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있는 기관이 바로 국책 연구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토연구원, 교통연구원 등은 여러 분야의 학자와 전문가들이 모여 국가와 지자체에서 필요한 연구를 진행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들 기관이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불필요한 혹은 비효율적인 사업에 투자를 방지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사업 협약 시 운영 손실 보상이나 최소 비용 보전의 기준을 명확히 세워 운영 기간의 보조금 및 운영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민간 투자 사업에도 사업의 특성과 목적에 따라 크고 작은 세금이 투입된다. 시장이나 정치인 마음대로 국민의 세금을 객관적인 조건과 기준 없이 무계획적으로 사용할 순 없다. 수백억 원에서 수조 원의 예산이 집행되는 사업이 얼마나 타당한지, 효과가 있을지, 국가적·지역적으로 봤을 때 적정한지 엄밀히 판단해야 하기에 전문성이 필요하다. 게다가 특정 사업이 누구에게 효과가 있는지, 누가 비용을 부담할지에 따라 모두의 이해관계는 다르다. 따라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숫자’를 판단할 기관이 필요하다.

문제는 정치권의 인식에 있다. 일부 정치인들은 본인의 지역구나 지지 세력으로부터 표를 얻기 위해 과도한 계획을 밀어붙이고 연구원에 외압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 결과 무리한 수요 예측이나 과도한 편익이 포함된 보고서가 나오는 것이다. 왜곡된 자료를 바탕으로 국회나 지자체에서 사업을 결정하게 되면 추진되지 않아야 할 사업에 국가 재정이 사용된다. 초기 투입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데이터에 따른 비용 보전이나 운영 비용 분담, 지원금 등이 사업 협약에 포함되면, 운영 단계에서도 장기적인 세금 낭비와 비효율이 발생한다. 연구원에 외압을 행사하려는 일부 정치권의 행태는 민간 사업자를 하청 업체로 보는 것과 같은 인식에서 출발한다. 사업을 정치적 힘이자 자신의 표로 보고, 전시용 업적으로 삼으려는 인식이다.

정치가 해야 할 일

상황과 조건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경제는 사이클을 타고 호황기와 불황기 사이를 진동한다. 민간 투자 사업의 수많은 변수 중 어떤 것은 악화하고 어떤 요소들은 개선될 수 있다. 이런 점들을 무시하고 초기 조건만을 고집하고 강요하거나 초기 약정을 무시하려는 것은 민자 사업의 장점을 무력화한다. 이는 공공과 민간 상호 간의 협력이라 볼 수 없다. 민간 투자 사업의 취지에 맞게끔 상호 간의 합의점을 찾으며 최대한 시민과 이용자의 편익을 생각하고 공익을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 중재자 역할이 바로 여러 이익 집단과 조직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대변하는 대표자이자 정치인, 선출직 공무원이 해야 할 일이다.

다 정해진 사업에 도장을 찍고, 기념 촬영을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런 일은 홍보 대사나 대변인에게 적합한 일이다. 도시와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면 민간 사업자에 대한 존중과 객관적 전문성, 판단력이 필요하다. 국가의 세금과 사회적 비용을 등한시한 채 민간 사업자의 손해를 만회하는 데 급급해도 안 된다. 이는 시민에 대한 배임이자, 근시안적 오류다. 민자 사업에는 국내의 민간 자본뿐 아니라 수천억 원의 외국 자본이 들어와 진행되는 민자 사업도 있다. 지자체와 해외 기업의 협업이 많아지고 세계 유수의 스마트시티들에 수주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제 지역 대표자의 결단력과 판단이 국격과도 연결되는 시대라 할 수 있다.

흔히 재개발이나 도시 계획, 토건 사업에 ‘정치’가 개입된다고 말하면 시민들의 인식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공공의 특징인 장기적 시야와 안정성, 민간이 가지는 창의성과 수익성을 양손에 쥔 채 저울질하는 것이 진정한 정치임을 입증해 낸다면 도시 계획에서 벌어지는 각축전은 조금 더 이타적인 모양새를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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