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의 정치학
10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도시를 향한 동상이몽

건설 회사가 도산한다는 우려가 커진다. 부동산 불황과 원자잿값 상승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대규모 개발 및 정비 사업에 대한 소식이 들린다. 대표적으로 여의도가 그렇다. 12개의 단지가 마천루로 다시 태어나고자 한다. 이 중 아홉 개 단지는 특별 계획 구역으로 지정되며 그간 발목을 잡던 용도와 높이 규제가 풀렸다. 최고 높이는 200미터, 층수는 70층을 올릴 수 있다. 입이 벌어질 수준이다.

그 유명한 은마아파트도 이번엔 드디어 재건축이 되리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2023년 8월 중순으로 조합 창립 총회가 가시화한 은마아파트는 실거래가가 억 단위로 뛰며 존재를 재확인했다. 은마아파트가 재건축되는 날, 모든 언론은 1면에 관련 소식을 보도할 것이다.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왜 몇십 년이 넘도록 재건축이 지지부진했던 은마아파트가 다시금 요란해지는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이외에도 부촌을 중심으로 노후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뜨겁다. 지난 2023년 6월 압구정2구역 재건축 조합이 주최하는 ‘재건축 설계 공모 작품 전시회’에서는 국내 유명 건축 설계 업체들이 총출동했다. 세계적인 건축가나 설계 업체와 컨소시엄을 맺은 곳이 대부분이다.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미국의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Richard Meier), 조경 전문가 토마스 볼슬리(Thomas Balsley)가 그린 설계도도 나왔다.

부동산을 향한 욕망은 자연스럽다. 세계 어디서나 땅을 가진 사람이 망하는 것은 드물다. 문제는 그 욕망에서 사람이 지워진다는 것에 있다. 같은 6월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새로 들어서는 한 주상 복합 아파트의 광고는 충격을 안겼다.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캐치프레이즈로 활용했다. 논란이 일자 시행사는 사과 후 문구를 삭제했다. 건물 하나가 새로 지어질 때마다 도시는 시민들에게 거주민의 자격을 묻는다.

갑자기 개발과 정비 바람이 분 것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부임과도 무관치 않다. 거기에 윤석열 정부의 찬동이 시너지를 냈다. 35층 룰이 폐지되고 재건축 안전 진단의 구조 안정성 비율이 낮아졌다. 더 많은 공공 주택이 들어서고 주거 불안이 해소된다면 박수칠 일이다. 반면 도시를 투기와 경쟁의 장으로 만들고 결과적으로 소외 계층을 도시 밖으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우려스러운 일이다. 도시 계획의 구조를 알면 정책이 보인다. 그 속의 생각이 읽힌다.

이밖에 화려한 도시로 태어나려는 신흥국들의 움직임은 거대한 랜드마크와 함께한다. 한국엔 수주 먹거리로 보도되곤 한다. 그 중심에도 사람은 없다. 기술과 자본이 자리할 뿐이다. 대대적인 보도와 멋진 트레일러는 금방이라도 미래 도시가 성큼 다가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권위주의 국가가 아닌 다음에야 이 같은 도시 계획에 논외로 둘 수 없는 것이 주민과 지역의 역사, 사회적 영향이다. 사업성이 있고 없고는 어쩌면 그다음 문제다.

도시 계획은 강제적이고 파생되는 갈등은 무수하다. 각각의 사업들이 개별적이라면 이해관계자는 한정적이겠지만 모든 도시 계획은 서로 크고 작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도시를 향한 욕망을 조절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그런데 막상 개발·정비 사업에서 정치가 비리와 결탁하거나 포퓰리즘으로 이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도시 계획엔 제대로 된 정치가 부재했고 욕망은 포화했으며 일반 시민들에게 주거는 불안한 것이 됐다.

전쟁터와 같은 부동산 시장은 주거 난민을 만든다. 지역 균형 발전에 실패하고 투기를 막지 못한 정치가 과거와 같은 방법론으로 도시 계획을 반복한다면 미래 도시는 없다. 도시 경쟁력의 지표가 다양하듯 도시를 그리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정치의 극한, 도시 계획에 어떤 힘의 논리가 작용하든 그것의 영향을 받는 것은 모든 시민이다. 그 구조를 들여다보며 자본의 논리가 아닌 사회 구성의 조건을 반추하길 희망한다.

이현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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