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반란은 우크라이나의 평화로 이어질까

7월 3일, explained

푸틴의 세계가 무너진다. 우크라이나 평화 회담이 열린다. 골든타임은 지금인가.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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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이번 달 초, 우크라이나 평화 회담이 개최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독일 ARD방송이 브뤼셀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이미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극비리에 비공식 평화 회의가 열렸다. G7과 유럽연합(EU), 심지어 브릭스(BRICS) 국가들의 대표자도 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종식을 향한 국제 사회 차원의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쟁은 끝날 것인가.

WHY NOW

평화 회담 논의는 늘 있었다. 심지어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전운을 걷어내고자 많은 국가가 출사표를 던졌다. 전부 허사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강고했고 천연가스 공급 대란과 식량 위기, 인플레이션은 러시아의 옷깃을 세웠다. 그러나 엄석대의 세계는 무너지려 한다. 우크라이나는 대반격에 나섰고 러시아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다. 일련의 사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의 신호탄이 될지, 평화 회담은 해답이 될지 알아본다.

반란의 기억

현지 시간 6월 23일, 푸틴은 소련을 떠올렸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인 ‘글라스노스트·페레스트로이카’에 불만을 품은 보수파 군부는 1991년 ‘8월 쿠데타’를 일으켰고 4개월 뒤 소련은 해체됐다. 소련 붕괴를 주도했던 러시아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도 1993년 반대파에 의해 의회에서 탄핵되는 일을 겪는다. 국회의사당을 포격하면서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지지율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다. 1999년 권력을 넘겨받은 ‘스트롱맨’ 푸틴은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 다짐한다. 그로부터 32년 뒤, 크렘린궁에서 푸틴이 목도한 것은 바로 이 반란의 기억이다.

실로비키와 올리가르히

정권을 잡은 푸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청이었다. 소련이 붕괴하며 각종 국유 산업이 민영화됐는데 이를 헐값에 물려받아 성장한 ‘올리가르히’가 그 대상이었다. 순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석연치 않은 죽음을 맞았다. 옐친의 사람들을 걷어낸 푸틴은 정부 요직을 자신의 최측근인 KGB 출신 ‘실로비키’로 채웠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올리가르히가 탄생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푸틴의 요리사’로 불렸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다. 범죄자였던 그는 푸틴의 총애를 받아 러시아에서 공식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민간 군사 기업(PMC) ‘바그너 그룹’의 수장이 됐다. 바그너 그룹은 푸틴의 해결사로 암약하며 각국의 내전에 참여해 친러시아 정부 수립을 도왔다.

프리고진이 진격한 진짜 이유

바그너 그룹 반란 나흘 뒤인 6월 28일 《월스트리트저널》은 프리고진의 당초 계획을 보도했다. 자신과 갈등을 빚어온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납치하려 했으나 이 계획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에 발각되자 ‘플랜B’로써 반란을 일으켰다는 게 골자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 정규군과 바그너 그룹은 주도권 경쟁을 벌여 왔다. ‘피의 전장’이라 불린 바흐무트에서 정규군은 십자포화가 이뤄지는 곳에 바그너 그룹을 배치하고 보급을 중단했다. 여기에 푸틴이 올 1월 전황 부진을 이유로 프리고진과 가까운 총사령관 수로비킨을 문책하고 게라시모프를 대신 그 자리에 세우자 갈등이 폭발했다. ‘바그너의 난’이 일어난 이유다.

리더십 균열의 단서들

푸틴은 무너질까? 리더십의 상실을 보여 주는 단서는 많다. 먼저 반란을 사전에 알았으면서도 막지 못했다. 여기엔 수로비킨을 포함해 군부 일부의 찬동, 전쟁 반대자의 지지가 있었다. 중재를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대통령에게 맡긴 것도 오점이다. 푸틴은 프리고진의 반란죄를 묻지 않는 조건으로 그가 벨라루스로 망명하는 걸 허용했는데 루카셴코는 프리고진을 이용해 군대를 강화할 목적이다. 유능한 장수가 주군을 옮긴 모양새다. 게다가 러시아 제재가 이어지며 이너 서클이 나눌 파이도 작아지고 있다. 반란 이후 재산이 3조 원에 달하는 억만장자가 또 러시아 국적을 포기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벌써 여섯 번째다. 《푸틴의 사람들》을 쓴 로이터통신의 기자 캐서린 벨턴은 러시아 이너서클이 푸틴에 대대적 반기를 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엄석대의 세계가 무너지려면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빌런 엄석대의 세계는 변절자, 방관자, 새로운 압제자로 인해 새 국면을 맞는다. 중국은 반란 이후에도 러시아에 대해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 사회에서 서방의 영향력을 걷어내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모두가 한병태처럼 방관자일지는 미지수다. 푸틴의 리더십 위기를 틈타 ‘김 선생’ 미국이 취한 방법은 두 가지다. 변절자를 끌어들이는 것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 전자는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들을 거국적 평화 회담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후자는 프리고진의 반란에 선을 긋는 것이다. 외부의 공세는 러시아를 단결하게 만든다. 오히려 푸틴의 실책으로 보여야 리더십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미국은 푸틴의 이미지를 벗기는 법을 잘 안다.

푸틴 실각 = 전쟁 종식?

푸틴의 실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까?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는 프리고진이 반란을 일으킨 이후에도 푸틴의 지지율이 80퍼센트대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오히려 프리고진의 지지율은 60퍼센트에서 반란 이후 29퍼센트로 감소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법은 상호 간 적대적 인식을 극복하고 만족할 만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에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 역시 지난 5월 “두 나라가 적대 행위를 지속할 것이란 결의를 보여” 중재가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푸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이 이를 뒷받침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1991년의 국경 회복을 주장한다. 크름반도와 돈바스를 다 내놓는 것은 러시아로서 수긍키 어렵다.

평화 회담의 난맥상

두 나라가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로 대치한 것은 아니다. 개전 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대표자들은 벨라루스에서 만나 ‘인도주의 회랑’ 건설에 합의했다. 2022년 3월 5일엔 나프탈리 베네트 전 이스라엘 총리가 중재자로 나서 양측의 중요한 양보를 이끌어 냈다. 푸틴은 무려 우크라이나의 탈군사화·탈나치화 요구를 철회했고, 젤렌스키는 나토 가입을 포기했다. 그러나 당시 나토(NATO) 국가들은 푸틴 정권의 약화를 노리며 강경 대응을 이어갔다. 여기에 중국이 서방의 공세를 견제하며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길을 열어주는 바람에 양측은 장기전에 돌입하게 됐다. 이후 튀르키예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흑해 곡물 수출길을 연 것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성과는 없었다. 전쟁이 길어지며 피해가 쌓이자 평화의 조건이 점차 비현실적으로 변한 것이다.

IT MATTERS

현재 유력한 것은 중국의 중재안과 다가올 평화 회담의 중재안이다. 후자의 경우 사실상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10개 항 평화안이다. 여기엔 중국의 참여가 없고 러시아도 관여하지 않아 실효적 해법이라 보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 6월 16일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을 지지한다는 EU 중국 대사의 발언이 재조명되며 중국이 방향 전환을 했다는 기대감도 읽힌다. 중국을 향해 이어지는 디리스킹을 상쇄하려는 목적일 수 있다. 다만 중국은 자국의 핵심 이익으로 대만의 영토 수복을 바라고 있고, 기본적으로 타국의 내정 간섭에 반발하는 입장이라 진의를 가늠키 어렵다.

골든타임은 지났다. 이 전쟁에서 잇속을 채우려던 서방과 반서방의 대립 속에 평화 회담은 난제가 된 지 오래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나 이탈리아의 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 등 서방의 중재자로 나선 이들은 샤를 드골식 ‘예외주의’를 표방하는 듯 했으나 사실상 국내 정치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애초에 러시아는 NATO의 확장을 경계하며 침공을 감행했는데 이 중재자로 NATO 일원들이 나서는 것은 부적절했다. 유일한 희망은 중립, 비서방으로 분류되는 ‘글로벌 사우스’에 있었다.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의 신흥국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극 체제에 대한 서방의 견제는 오히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잘못된 신호를 줬다. 양측은 이제 뺏긴 만큼 얻지 못하면 체제 붕괴가 일어날 수 있는 위기임을 직감하고 있다.

지난 6월 초 열린 아시아안보회의 ‘샹그릴라 대화’에서 인도네시아는 현재의 교전 지점에서 각 15킬로미터씩 후퇴하고 비무장지대(DMZ)를 설치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 국가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아프리카의 중재안은 러-우 양측의 불만족으로 무산됐다. 제3국의 중재안이 스러지며 이 전쟁은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공허한 해법만이 나부끼고 있다. 양쪽이 의미있는 양보를 내어놓지 않는다면 이 전쟁은 한국 전쟁처럼 지난한 고지전이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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