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3. CRISIS

2023년 6월, THREAD

이달의 이야기

위기는 숫자 너머에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신아람 CCO입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숫자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지요. 숫자에는 온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뜻한지 뜨거운지, 시원한지 차가운지를 숫자는 판단해 주지 않습니다. 그저, 27도라는 객관적인 상태를 보여줄 뿐입니다. 그래서 뉴스는 숫자에 매달리곤 합니다. 신뢰를 팔아야 하는 언론사 입장에서 간편하며 믿음직스러운 도구이기 때문이죠. 의견에는 반박이 가능하지만 숫자에는 반박할 수 없으니까요.

문제는 숫자를 쓰는 사람들이 의도를 갖고 쓴다는 점입니다. 마찬가지로 읽는 사람들도 편견을 갖고 숫자를 해석하죠. 숫자 앞뒤로 붙는 수식어에서 그 속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A 기업, 성장세 주춤”이라는 기사 제목과 “A 기업, 성장 기조 유지”라는 제목은 분명 다릅니다. 전자는 A 기업의 경영상 난점을 짚으며 향후 주가는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이 덧붙을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후자는 A 기업이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유지할 만큼 내실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장기적으로 투자할 가치가 있는 기업이라는 내용이 될 수 있겠죠.

두 기사 모두 숫자는 동일할 것입니다. 영업이익과 신규 고객 증가율, 최근 유치한 투자 금액까지 말이죠. 하지만 기자의 주관이 한 기업에 대한 평가를 바꿉니다. 아무리 숫자가 근거로 붙어도 완벽하게 객관적인 기사란 나올 수 없다는 얘깁니다. 숫자의 맥락을 알지 못하면,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숲을 보지 못하면 진짜 내가 얻고 싶은 정보가 무엇인지조차 불분명해집니다. 그뿐인가요? 숫자는 우리에게 어떠한 철학을 강요합니다. 아주 오랜 기간, 인류의 의사 결정을 지배해 온 ‘성장주의’ 말입니다.

지표의 시대

요 몇 년간 우리는 숫자에 지배당해 왔습니다.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 때문이었습니다. 신규 감염자 숫자, 사망자 숫자, 가용 병상 수 등 익숙한 듯 낯선 지표들이 매일 발표되었고 속보로 전해졌죠. 우리 삶 전체는 그 지표들의 증감에 따라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팬데믹이 끝나고 나자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가 덮쳐왔죠. 우리 경제도 예외는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긴축 기조에 달라진 국제 정세,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 등의 영향으로 한 치 앞을 가늠하기 힘듭니다. 이제는 쏟아지는 경제 지표들이 뉴스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8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낮췄습니다. 걱정이 쏟아집니다. 모두가 ‘위기’를 이야기합니다. 이러다 성장률이 1퍼센트 초반대로 주저앉으면 어쩌냐는 전문가들의 우려 섞인 목소리가 방송에, 신문 지면에, 유튜브와 페이스북에 떠돕니다.

성장이 멈춘 것도 아니고 성장세가 둔화한 것인데 정말 위기일까요? 누군가에겐 그렇습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우리나라는 매년 10퍼센트에 육박하는 고도성장을 이어왔습니다. 그 시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지금의 경제성장률은 충분히 우려할 만한 상황입니다. 어제보다 무조건 더 나은 오늘이 보장되었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장 말고 ‘발전’ 얘깁니다.

성장의 함정, 발전의 의미

발전경제학자 마이클 폴 토다로(Michael Paul Todaro)는 ‘경제발전’이 ‘경제성장’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지적합니다. 경제발전은 경제성장과 동시에 사회적 구조, 대중의 태도, 국가 제도 등을 통해 인간적인 삶이 가능해지도록 사회 전체가 고양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겁니다. 50여 년 만에 GDP 100달러 국가에서 3만 5000달러 국가로 도약했지만, 여전히 더 열심히 살아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우리는, 경제적으로 성장은 했으되 아직 발전은 하지 못한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표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숫자 뒤에 숨겨진 더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진짜 위기는 경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 닥쳐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숫자로 재단할 수 없는 행복의 크기를, 우리는 여전히 쫓고 있습니다. 특히, 가족을 이루어 아이들의 삶까지 등에 짊어진 밀레니얼 세대들은 ‘완벽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밀키트 시장의 성장을 통해 2023년의 가족과 행복의 정의를 재해석한 김혜림 에디터의 〈밀키트를 고르는 밀레니얼 가족〉은 성장에 집착하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발전의 의미에 관해 묻습니다. 또, 정원진 에디터는 〈인구 대국이 된 인도〉에서 ‘인구성장’이라는 지표가 내포한 기회와 위험을 함께 분석합니다. 얼마 전 세계 1위의 인구 대국으로 올라선 인도의 사례를 찬찬히 뜯어보면, 숫자 너머의 진짜 현실을 봐야 비로소 제대로 된 정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숫자 만능주의에서 벗어나면 의심이 생깁니다. 정말 ‘성장’이란 좋은 가치인가, 언제까지나 추구해야 할 절대적인 가치인가 하는 의심입니다. 어제보다 오늘의 수치가 반드시 높아야 한다는, 현대의 강박증은 과연 인류를 행복한 미래로 데려다줄까요?

과학이 태어난 곳, 자연으로 눈을 돌려보기로 하죠. 자신의 머물 곳을 이고 살아가는 달팽이를 예로 들어볼까요? 달팽이의 껍데기는 나선형으로 자라납니다. 한 바퀴 더 자랄 때마다 공간이 열여섯 배나 커진다고 합니다. 그 성장 속도를 감당하려면 달팽이는 쉴 틈 없이 먹고 무리하게 성장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달팽이는 성장을 멈춥니다. 오히려 일정한 크기에 이르면 몸을 약간 수축시켜 남은 생을 그 크기 그대로 삽니다. 그런데 달팽이뿐만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동물이 비슷하죠. 우리 인간을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경제는 어떨까요? 경제도 계속해서 성장하면 혹시 탈이 나는 것은 아닐까요?

달콤한 경제 모델

이런 질문을 벌써 진지하게 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덴마크 코펜하겐, 벨기에 브뤼셀, 뉴질랜드 더니든 등입니다.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들이죠.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도시들이 성장 외에 다른 선택지를 검토하거나 혹은 이미 실행 중입니다. 바로 ‘도넛 경제’ 모델입니다. 경제 용어치고 꽤 달콤하게 들립니다. 내용도 쉽게 말해 부족한 것과 과잉인 것을 정의하고, 우리의 삶이 그 사이에서 인간답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개념입니다. 동그란 도넛 모양에서 안쪽 원에 해당하는 것은 교육이나 일자리, 사회적 공평함 등 사회적 토대입니다. 부족해서 보완해야 합니다. 최소한도가 보장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반면, 바깥쪽 원에 해당하는 것은 기후 변화, 담수 고갈, 해양 산성화 등 생태적 한계입니다. 과잉이어서 줄여나가야 합니다.

좋은 이야기지만 과연 이것이 경제 모델로서 작동할 수 있을지 의심부터 듭니다. 수출을 늘려야 한다. 내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일반적 담론과는 너무 떨어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암스테르담을 직접 방문해 보면 알게 됩니다. 이 도넛 경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말이죠. 시 정부가 직접 옷 수선집을 운영하고, 고장 난 노트북 등도 수리해서 필요한 시민들에게 나눠줍니다. 철거가 끝난 건물의 잔해도 허투루 버리지 않습니다. ‘재료 여권’ 제도를 통해 건축 자재를 가능한 한 재사용하는 것입니다.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소비하도록 종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도시 안에서 물자가 순환하도록 하고, 그것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합니다.

위기의 실체

성장이 언제나 정답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기후 위기라는 당면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성장이라는 끈을 놓을 수 없어 생겨난,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용어는 이미 낡은 논의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지금 당장 생산과 소비를 모두 중단하고 탈성장을 선택하자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장이라는 가치가 절대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달 롱리드, 〈탄소 전쟁이 만든 난민〉은 우리가 성장을 의심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제시합니다. 온대지방의 도시 거주민들은 체감하기 어렵겠지만, 지구 곳곳의 환경은 이미 붕괴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지역도 예외는 아닙니다. 삶의 터전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난민이 됩니다. 전쟁이 아니라 기후 위기가 난민을 만들고 있습니다. 성장이 담보하는 풍요로움이 누군가의 삶을 잔인하게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위기는 존재합니다. 실재합니다. 그러나 숫자만 쫓아서는 위기의 실체를 놓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우리의 도시를, 우리의 세계를 직시해야 합니다.

explained

밀키트를 고르는 밀레니얼 가족

밀키트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세요? 대부분 Z세대 1인 가구를 떠올리실 것 같은데요, 의외의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밀키트를 가장 많이 구입하는 고객의 연령대가 35~44세로, 밀레니얼 세대인 것으로 드러났어요. 판매량 상위 10개 제품 중 여섯 개는 찌개나 전골, 나베 같은 2인 이상이 즐기는 한식 메뉴였다고 해요. 이 트렌드를 보면서 저는 과거와는 달라진 가족의 모습과 밀레니얼 세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답니다. 밥상은 가족에게 의례죠. 의례가 바뀌었다는 건 생각보다 큰 변화일 수 있어요.


트래블 테크가 바꾸는 리뷰 생태계

엔데믹이 왔지만 물가는 떨어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소비 심리가 폭발한 분야가 있죠. 바로 여행입니다. 떠나고 싶은 마음은 인플레이션조차 막지 못했는데요, 이와 동시에 여행 업계는 리뷰 생태계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리뷰 사회죠. 적은 돈도 아니고 큰돈 써야 하는 여행이라면 리뷰를 더 깐깐한 마음으로 확인할 텐데요. 한편 별점 테러와 악성 리뷰로 인해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습니다. AI의 발전으로 허위 리뷰도 많아졌죠. 3세대 트래블 테크들은 올바른 리뷰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버즈피드의 몰락과 뉴미디어의 길

“이 드레스, 흰색이야, 검정색이야… 금색이야, 파란색이야?” 이 질문 익숙한 분들 많으실 것 같은데요. 드레스 대란이라고도 불렸던 바로 그 기사입니다! 핫했던 이 기사, 과거에는 유니콘으로 평가받았던 미디어 회사 ‘버즈피드’의 작품인데요. 최근 버즈피드가 과거에는 퓰리처상까지 받았던 뉴스 분야를 폐쇄하겠다고 발표했어요. 젊은 취향을 저격했던 미디어 ‘바이스’는 파산 절차를 밟고 있고요. 이들의 새로운 무기는 바로 소셜 미디어였는데요. 소셜 미디어가 흔들리니 덩달아 기울어진 겁니다. 그럼, 이제 뉴미디어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잇따른 미디어 회사의 위기는 무엇으로 돌파할 수 있을까요.


은행이 되려 하는 애플

애플이 또 엄청난 일을 벌였습니다. 애플페이, 애플카드도 모자라 아예 애플 통장을 출시했는데요, 혁신의 아이콘답게 시중 금리보다 훨씬 파격적인 금리를 내세워 시장을 공략합니다. 앞으로 아이폰 사용자들에겐 통장도, 카드도 따로 필요 없는 생태계가 펼쳐질 수 있겠습니다. 한편 애플의 금융 확장에 벌벌 떠는 것은 스마트폰 회사가 아닌 은행들인데요, 애플의 금융 파트너인 골드만삭스조차 ‘자기 잠식’을 걱정하고 있다고 하죠. 애플은 정말 은행이 되려는 걸까요? 장애물은 무엇일까요?


스파이 색출 전쟁의 실체

전 세계에서 첩보전이 벌어집니다. 각국은 스파이 색출에 열을 올립니다. 유럽은 러시아 외교관을 스파이 혐의로 무더기 추방합니다. 방첩법을 크게 강화한 중국은 외국계 기업을 압수 수색하고 직원들을 조사합니다. 미국에선 틱톡 금지법 등 중국을 대상으로 한 안보 견제가
심해진 지 오래죠.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져서일까요? 미-중 갈등이 심해져서일까요? 정말 간첩이 많아진 걸까요? 스파이 전쟁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북한과 국경을 맞댄 우리나라도 눈여겨볼 이슈입니다.


인구 대국이 된 인도

인도가 중국을 제치고 전 세계 인구수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14억 2800만 명이라는 풍부한 인구를 바탕으로, 인도는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의 타이틀을 가지고 올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막상 인도 내부에서는 인구를 억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해요. 일자리부터 복지 정책까지 지금의 상황으로 빠르게 증가하는 인구를 감당할 수 없다고 말이죠. 인구 증가는 인도에 득일까요, 독일까요. 자국의 실리를 찾아나서는 인도의 외교 행보도 주목할 지점입니다. 인도의 속사정을 따라 여행을 떠나 볼까요?


모두의 문제, 탈시설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더 오래 살게 된 대신, 노화로 인한 다양한 손상과 함께하게 됐습니다. 진태원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장애 문제의 보편화 시대일지 모른다고요. 실제로 노년학과 장애학의 연구 주제가 많은 부분 겹쳐 있죠. 그래서 탈시설 논의는 장애인만의 것이 아닙니다. 요양원이 아닌 내 동네에서 살아가길 바라는 모두의 것이죠. 탈시설 논의를 다각도에서 살피며, 역량으로서의 장애라는 새로운 개념까지 짚어 봅니다.

톡스

오버더피치 대표 최호근 - 축구장 너머에서도 즐기는 축구를 위해

‘축구’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잘 몰라서 관심 없는 사람도 있죠. 그런데, 상관 없습니다. 축구를 그냥 골대에 공 넣는 스포츠 정도로만 알아도 괜찮아요.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구 문화를 스포츠 전문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오버더피치가 만들고 있거든요. 축구와 무관한 MCM 같은 패션 브랜드나 힙합 아티스트들과 협업하는 오버더피치는 모든 문화에 축구를 묻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용감하고 그래서 앞설 수 있었던 오버더피치의 선택, 최호근 대표에게 그 면면을 물어보았습니다.

롱리드

탄소 전쟁이 만든 난민

이주는 쉬운 결심이 아닙니다. 지금껏 쌓은 것들을 버리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겠다는 각오가 있어야죠. 둘 중 하나는 충족돼야 합니다.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 혹은 지금 사는 곳에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공포. 기후 위기는 사람들에게 ‘여기서는 도저히 못 살겠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킵니다. 언젠가 물에 잠길 방글라데시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이 그 사례죠. 그런데 어쩔 수 없이 짐을 싸야만 하는 이민이라는 비극이, 인류 전체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다만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결단이 필요합니다.

THREAD EXPLAINS THE NEWS
스레드는 스트리밍 세대를 위한 종이 뉴스 잡지입니다.
이달에 꼭 알아야 할 비즈니스, 라이프스타일, 글로벌 이슈의 맥락을 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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