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더피치 최호근 대표 - 축구장 너머에서도 즐기는 축구를 위해

축구장 너머에서도 즐기는 축구를 위해
오버더피치 최호근 대표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프로 축구(K리그)는 주말마다 성행 중이다. 축구장에는 구단과 선수, 팬만 있지는 않다. 팬들의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을 디자인하는 스포츠 전문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오버더피치(Over The Pitch)가 있다. 오버더피치의 목표는 축구장 안에 있지 않다. 그들은 마니아의 벽을 넘어 누구든 즐기고 사랑하는, 문화로서의 축구를 만들어가고 있다. 축구는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그랬던가. 오버더피치에게 축구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서울 서교동 오버더피치 매장에서, 모두의 삶에서 축구를 조금 더 중요한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최호근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매장이 판매용 유니폼들로 꽉 찼다. 원래도 수집이 취미였다고.

400벌까지 모아봤다. ‘덕력’으로 붙어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웬만해선 없을 거다. 사실 자주 입는 건 열 벌 내외고, 나머지는 잘 꺼내 보지도 않는다. 수집은 쓸데없다. 쓸데없지만 감성적인 일이다. 그리고 그런 컬렉션 문화가 오버더피치의 코어 밸류 중의 하나다. 보상 심리나 목적 없이 순수하게 허비하고 즐기고, 거기서 뿌듯함을 느끼는 것.

스포츠 디자인은 생소한 분야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당시에는 한국에도 그렇고 세계적으로도 스포츠로 디자인을 하는 분야가 아예 없었다. 당시에는 미국 나이키 본사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어서, 포트폴리오를 위해 재능 기부 형식으로 아마추어 구단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전시도 스포츠를 주제로 하게 되고, 다른 구단에서 의뢰가 들어오기도 했다. 용돈 벌이를 하면 좋으니까 그냥 사업자를 냈다.

창업을 위한 시장성 조사 같은 과정은 없었나?

창업이란 말도 몰랐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게 창업인 줄도 몰랐다. ‘재밌으니까 하고 싶은 거 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운동선수가 꿈이었다. 집안의 반대로 선수는 포기하고, 어릴 때 하던 미술을 다시 시작했다. 미대에 진학해서 열심히 하니 결과는 좋았는데, 재미가 없어졌다. 축구도 안 보고 미술에 흥미도 잃었을 즈음, 유럽에 여행을 갔다. 좋아하던 선수의 발자취를 보면서 마음을 바꾸게 됐다. 내가 할 줄 아는 두 가지, 그림 그리는 것과 공차는 걸 같이 해보자고.
오버더피치와 김창완밴드, 대한축구협회(KFA)가 2002년 월드컵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컬래버레이션 ©Over The Pitch
없던 분야를 창조한 건데, 막막하지 않았나?

스포츠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었는데 일이 없었다. 프로 구단들은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러면 내가 유니폼 컬렉션을 평생 해왔으니 이걸로 뭐라도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 오게 햄버거 먼저 쥐여주는 것과 비슷했다. 유니폼을 예쁘게 코디한 이미지로 콘텐츠를 내고, 속아서 왔겠지만 이런 재밌는 것, 이런 예쁜 게 있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이 많다는 식으로 전도를 했다. 축구 팬을 늘리다 보면 우리 일도 많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웹 매거진도 만들고 여러 화보나 행사를 기획함으로써 커뮤니티나 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프로 축구 구단 중에 오버더피치와 작업을 안 한 구단이 드물 정도다.

사실 K리그 작업은 어느 순간 안 하려고 했었다. 2019년에 프랑스 파리생제르맹과 대구FC 작업을 했다. 나름의 투자를 했는데 코로나19가 터지며 모든 게 셧다운 되니 정작 회수를 못했다. K리그를 완전히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울산현대에서 제안이 왔다. 구단 이미지를 젊게 만들고 싶어 했다.
2022년도 울산현대 브랜딩 비주얼 ©Over The Pitch

어떤 젊음이었나?

일단 우리는 기존 K리그의 이미지 스타일을 바꾸고 싶었다. 기존 스타일은 불꽃이 터지고 연기가 날리는 가운데 선수들이 서 있는, 웅장한 이미지였다. 스포츠계 바깥에서의 트렌드는 달랐다.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BMW 등 자동차 브랜드도 로고를 플랫(flat)하고 심플하게 바꿨다. 그걸 K리그에 접목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울산현대에서 싫어할 줄 알았다. 너무 파격적일 수도 있고, 선수 사진도 최대한 안 쓰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히 서로의 공감대가 맞았다.

기존 축구 팬들은 놀랐겠다.

호응만큼 낯설고 어색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판을 그냥 축구판으로만 보기가 싫었다. 당장은 조금 어색하더라도 전체 아트 신(scene)을 봤을 때 트렌디하고 좋은 것들을 축구에 적용하고 싶었다. 우리는 안전한 것만 하지 않는다. 축구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며, 결국 축구와 연결시키려 한다.

많은 구단들이 오버더피치를 찾는 이유일 것 같다.

처음엔 구단 사이에 오버더피치에 대한 악명이랄까 선입견 같은 게 있었다. 우리만의 색이 진하고, 말을 안 들을 것 같다는. 그런데 우리가 고집 안 부리면 작업이 산으로 간다. 막상 일을 맡으면 후속 관리도 열심히 한다. 예를 들어 유니폼을 디자인했는데 구단에서 콘텐츠나 화보를 찍을 계획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우리가 제품 뷰티 컷을 찍어 보낸다. SNS나 포스터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질지, 다음 시즌 유니폼 디자인을 어떻게 변주시킬지에 대해서도 먼저 이야기하는 편이다. 지금 클라이언트들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고집을 좋아하고, 웬만하면 수정을 안 한다.

후속 관리에는 에너지가 많이 들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는 이유가 있나?

유니폼이 실제로 나왔을 때, 그것이 팬들에게 어떤 식으로 공개될지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낀다. 브랜딩은 디자인으로 끝이 아니다. 안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계속 필요하다. 사실 대전하나 유니폼은 내가 원했던 색감이나 비례감이 최종본에 완벽히 반영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노란색의 채도나 목깃 같은 게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이야기했다. 내년 유니폼도 할 거면 미리 하자고, 내후년 유니폼은 더 빨리하자고. 고집을 안 부리고 타협해서 나온 결과가 별로면, 과정을 모르는 사람은 결과만 보고 우리한테 실망한다.
오버더피치와 패션 브랜드 MCM의 컬래버레이션 화보. 해외 축구패션계에서 재유행 하고 있는 ‘차브룩’과 국내외 스타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급부상한 축구 저지 스타일을 모티프로 디자인했다. ©Over The Pitch

현대자동차나 MCM, 소니와 같이 축구와 별로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와도 협업했다.

모든 문화에 축구를 살짝 묻히는 작업을 하는 거다. 축구와 관계없는 브랜드와 협업을 해도 무조건 축구 유니폼과 거기서 따온 모티프는 넣는다. 나아가 앞으로 구단들과의 협업에도 대중적이고 트렌디한 브랜드를 갖다 붙일 거다. 기존 팬들 중에서도 트렌디한 것에 대한 갈증이 있는 팬들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 브랜드의 팬들이 콜라보를 했다는 이유로 축구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게 된다. 우리의 역할은 그걸 연결하는 거다.

부침도 있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상황이 어려워진 것도 그렇지만, 2020년에 백화점에 입점했다가 철수를 했다.

백화점이란 공간에서 우리 문화를 보여주는 게 상징적일 거라는 생각에 입점을 결정했다. 백화점은 기성의 공간이다. 게다가 1층이었다. 백화점 자체가 따분하지만 1층은 더욱 고리타분한 공간인데, 거기에 우리가 있다는 것 자체로 시장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우리의 스타일에는 맞지 않았다. 우리는 문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백화점은 문화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모으고 파티를 하고 싶어도 폐점 시간이 정해져 있고, 안전 관리 규정이 있고, 서류 결재를 받아야 했다. 문화를 만들려고 우리를 데려와 놓고 그걸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어 철수했다.

작년에는 야구로도 발을 넓혔다. 한국에서는 프로 야구 팬이 프로 축구 팬보다 훨씬 많다. 해보고 싶은 게 있나?

개인적으로, 시장은 KBO가 더 크지만 콘텐츠나 디자인에 관해서는 K리그보다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비주얼이나 상품의 퀄리티 면에서 아쉽다. 팬층이 워낙 두터우니 디자인에 투자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게 아닐까 싶다. 반면 K리그는 팬층이 얕으니 오히려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것 같고. 시장의 크기에 비해서 아직은 보수적인 KBO의 비주얼을 바꿔보고 싶다. K리그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더 멋있고 좋은 것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오버더피치가 스포츠 산업 자체의 파이를 키운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가 추구하는 게 온전히 그거다. 마니악하게만 유지되면 시장이 커지지 않는다.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관심을 두어야만 시장도 발전하고 좋은 선수도 영입하고 팀도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마니아가 아니어도 된다. 패션으로 사도 되고, 한 벌 있는 사람이 우리를 통해서 두 번째로 유니폼을 살 수도 있는 거다. 그렇게 문턱을 낮추고 싶다.

스트리트 편집숍 ‘카시나’로부터 36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더 많아졌을 것 같다.

이미 하고 있는 일이 많아서 그걸 고도화시키고 완성도 있게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 좋은 팀을 꾸리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팀 세팅을 열심히 하고 있다. 축구랑 똑같다. 좋은 선수 데려오면 골을 많이 넣을 것 아닌가. 최전성기에 있는, 이름 있는 선수를 써보고 싶은 거다. 여기에 더해서, 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스럽게 운영하고 싶다. 최근에 선수 에이전트 사업도 시작했다. 우리랑 맞을 것 같은 선수, 그게 플레이 퍼포먼스든 개인적인 이미지든 맞는 선수들과 함께 개인 브랜딩도 시작할 예정이다. 그냥 선수가 아니라, 팬들에게 더 어필이 되는 선수로 만들어보고 싶다. 그게 결국 오버더피치라는 브랜드의 매거진, 스토어와도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팬들에게 바라는 점도 있나?

팬들이 스포츠를 사랑하는 만큼 쏟고, 허비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생각하는 스포츠는 싸면 안 된다. 현재 축구 산업은 전반적으로 티켓값도 싸고 상품값도 싸다. 디자인 비용도 다른 영역에 비해 낮다. 전반적인 시장가가 올라가야 더 좋은 외부 인력도 K리그에 일하러 들어오고, 모르는 팬들도 좋은 제품과 콘텐츠를 소비하러 온다. 나는 나 혼자서만 축구를 좋아하고 싶지 않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백승민 에디터

* 2023년 5월 2일에 이메일로 전해 드린 ‘북저널리즘 톡스’입니다.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메일함에서 바로 받아 보시려면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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