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14. CITY

2023년 7월, THREAD

이달의 이야기

차가운 서울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신아람 CCO입니다.

태어나기는 청주에서 태어나 예닐곱 살까지는 대전에서 자랐습니다. 특별한 기억도 없고,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은 여러 번 넘어져 무릎이 까졌던, 집 앞의 울퉁불퉁한 오르막길뿐입니다. 청소년기는 경기도 남부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동네를 벗어나는 일은 없었습니다. 주택가와 학교, 그리고 학원가가 제 세계의 전부였죠.

그래서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야말로 저의 지역적 정체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20년 넘게 누리고 즐기며 시간을 쌓아 온 곳입니다. 네. 제 삶은 서울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빠르고 역동적인 변화의 도시, 서울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울은 기를 써야 남아 있을 수 있는 아슬아슬한 도시이기도 하죠. 분열과 배제라는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어, 어떻게든 극복해 나아가고 싶은 도시이기도 합니다. 이번 달 《스레드》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몇 군데를 둘러보며 문을 열어 볼까 합니다.

사람을 품지 않는 도시

혹시 문래동, 좋아하시나요? 저는 그곳의 냄새를 좋아합니다. 골목 가득 매캐한 기름 냄새가 가득한데 걷다 보면 고소한 커피 향이 바람에 섞여 들잖아요. 그 냄새야말로 2023년의 문래동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빠우’, ‘샤링’, ‘로링’과 같은, 한국어라고 생각하기는 힘든 단어들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문래동의 얼굴입니다. 20세기부터 문래동은 영어도 아니면서 일본어도 아닌, 그런 간판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철판을 잘라서(샤링) 가공하고, 구부리고(로링), 용접하고, 표면 처리(빠우)하는, 제조업의 모든 공정이 문래동에 모여있기 때문입니다. ‘설계도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죠.

그런데 이 문래동이 ‘힙’ 해졌습니다.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2010년대 초 문래동으로 모여들었던 것이 시작이었죠. 창작 아지트를 시작으로 독특한 공간이 곳곳에 자리 잡았고 축제도 열렸습니다. 일하러 오는 사람들 말고 놀러 오는 사람도 생기다 보니 소소한 카페나 음식점 등의 상권도 시작됐습니다. 철공 골목 사이에 카페라니 얼마나 운치 있나요. 그 독특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은, 지금도 인스타그램에서 참으로 멋스럽게 소비되고 있죠.

그렇게 문래동 임대료는 치솟았습니다. 2010년 중반 문래동 한 상가의 월세는 50만 원이었는데요, 지금은 3배 많은 월세를 내고도 못 들어간다고 합니다. 기름 냄새 나는 소규모 공장이 아니라 향긋한 커피 냄새 나는 카페가 어울리는 동네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일본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초정밀 작업이 가능한 작은 공장들의 거리, 문래동. 세월로 쌓은 기술을 가진 문래동의 소공인들은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기를 써도 문래동에는 남을 수가 없다는 것을 당사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함께 옮길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이들의 바람입니다. 금속 및 기계 제조의 모든 과정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지역적 협업의 힘을 잃지 않도록 말이죠. 문래동에서 수많은 시제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까닭도, 음대 학생들이 섬세한 악기 부품을 수리하러 문래동을 찾는 까닭도 그 지역적 협업에 있었으니 말입니다.

청계천의 공구 상가들은 실패했습니다. 을지로의 인쇄 골목도 실패했습니다. 천 곳이 넘는 문래동의 작은 공장들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시대가 변하고 돈이 흘러 들어오면 몇십 년 그 자리를 지켜 왔던 골목의 주인들이 자리를 비켜 줘야 하는 서울. 서울이 사람을 제대로 품지 못하는 까닭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실패한 유토피아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장소는, 서울에 문래동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세운상가도 각종 부품 상가와 개발자들이 모여 ‘집적 효과’를 누렸던 대표적 장소입니다. ‘로보트 태권 V’도 세운상가에서 만들어졌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니까요.

겉보기에는 참 낡고 위험해 보이는 이곳,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처음부터 상가 층으로 지어진 하층부도 생각보다 깨끗하고, 주거 공간으로 설계된 상층부 쪽은 복도부터가 꽤나 고급스럽습니다. 바닥에는 대리석까지는 아니어도 일명 ‘도끼다시’라고 불리는 인조석이 깔려있습니다. 또, 모든 층에는 넓은 로비 공간도 확보돼 있죠. 채광도 좋습니다. 196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호사스러울 정도죠.

사실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이 도시에서 구현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실현해 보고자 시도했던, 일종의 ‘도시 구조물’입니다. 여러 채의 건물이 모여 단지를 이루는데, 그 모양이 종로부터 을지로, 퇴계로까지 동서로 나 있는 길을 남북으로 연결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즉, 당시만 해도 성격이 제각각이었던 서울 거리들을 가로지르며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단지를 구상했던 것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복도를 만들어 사람은 공중으로 다니고, 옥상에는 정원을 만들어 도시 속에서도 자연을 즐기고자 했습니다. 또 유리 지붕을 씌워 도시 속 거대 구조물임에도 외부와의 연결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었죠.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현실이 되지 못했습니다. 돈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꿈을 실현하려면 돈이 드는 법이니까요. 결국, 세운상가는 연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서울 구도심을 동서로 나누는 단절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운상가는 다시 철거 논의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넓고 깊은 한강

하지만 서울을 정말 두 쪽으로 나누는 것은, 이제는 낡고 바랜 세운상가가 아니라 한강입니다. 강의 남쪽과 강의 북쪽이 연결되려면 자동차나 지하철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도시를 나누는 크고 깊은 강입니다.

이런 사례가 드문 까닭은 애초에 그 정도로 큰 강을 품고 하나의 도시가 되는 일이 잘 없기 때문입니다. 원래 마을이나 도시의 경계가 높은 산이나 강을 경계로 생겨났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한강도 원래는 수량이 지금만큼 많지 않았습니다. 뱃사공이 건너 주거나 물이 말랐을 때는 걸어서도 건너는 강이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후반부터 서울은 한강을 키워 나갑니다. 구불구불한 건천에 가까웠던 한강을 곧게 펴고, 수중 보를 건설해 압도적인 수량을 확보하고, 강변을 따라 높은 둑을 쌓은 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건설했습니다. 이제 한강은 쉬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의 남쪽에 대대적인 개발 사업이 일어납니다. 바로 ‘강남의 탄생’입니다.

서울은 한강을 중심으로 단절된 도시입니다. 옥수역과 압구정역은 한 정거장 차이지만 풍경은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도보로 이동할 수 없는 구간이니 사람이 쉬이 섞이지 않습니다. 경험이 섞이지 않습니다. 문화가 섞이지 않습니다. 그 결과 두 동네는 같은 서울이되, 지근거리이되, 가장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도시의 주인

시간을 들여 삶의 뿌리를 내려도 사람들을 품어주는 법 없고, 이상적인 도시를 꿈꾸는 건축가의 청사진도 실현할 수 없으며 한 도시의 사람들을 단호하게 단절시키는 도시, 서울.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서울에 머물고 싶습니다. 저의 일도, 사람도, 기억도 모두 서울이라는 도시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좀 더 너그러워지기를, 좀 더 환대해 주기를, 좀 더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이 바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 고민이 이번 달 《스레드》 에 담겨있습니다. 백승민 에디터의 〈브랜드 아파트와 불평등 한국 사회〉는 도시 안에서 자신만의 성을 쌓고 싶은 브랜드 아파트 주민들의 욕망을 파헤칩니다. 그리고 너그럽지 않은 것이 과연 서울인지, 시민인지를 묻죠. 또, 이현구 에디터의 〈통계에 없는 다문화 군인〉은 우리에게 환대의 시대, 함께 사는 시대가 필연적으로 도래했음을 이야기합니다. 배척을 통해 기득권을 지켜나가는 도시의 문화도 이제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강 변에 들어서게 될 재건축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초고층 아파트 붐’에 따끔한 경고를 보내는 글도 있습니다. 김혜림 에디터의 〈뉴욕의 침몰을 막을 상상력〉인데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초고층 건물들의 아찔한 위험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지금부터 《스레드》와 함께 도시를 탐험해 볼까요?

explained

브랜드 아파트와 불평등 한국 사회

최근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라는 아파트 광고가 화제였습니다. 노골적인 표현에 문제가 제기되자 시행사는 사과문을 올렸지만, 씁쓸함은 남았죠. 한국에서 브랜드 아파트는 진화하고 그 성벽은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잘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매한가지인데 유독 아파트에 욕망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요? 우리는 정말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고 있을까요?


워커홀릭 Z세대

Z세대는 워라밸을 중시한다는데, 특이한 연구 결과가 나왔어요. 18세에서 24세, 젊은 Z세대 직원이 자발적인 초과 근무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그 시간이 무려 주당 8시간 30분에 달했어요. 점심시간에 일하고, 야근하는 식이죠. 그런데 자발적 야근을 하지 않더라도 요즘 Z세대는 정말 바빠 보여요. 사이드 프로젝트에 N잡, 꾸준한 자기 계발까지 말이에요! 이들이 택한 워커홀릭, 과연 ‘자발적 선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사회적 구조와 경제적 여건이 이들을 워커홀릭 상태에 몰아넣는 것일 수도 있어요.

뇌에 칩 심는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가 뇌에 칩을 심게 됐습니다. 정확히는 다른 사람 뇌에 칩을 심을 수 있게 됐죠. 공상 과학 같은 얘기지만 사실 상용화가 진행되고 있는 기술입니다. 인간의 뇌 신호를 칩으로 받아 블루투스 신호로 컴퓨터에 보내 읽게 하는 건데요, 2021년 한 루게릭병 환자는 이 기술로 트윗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뇌과학 스타트업 뉴럴링크(Nueralink)도 미국 식품의약국(FDA)로부터 인간 임상 실험을 승인받아 제품 연구를 할 수 있게 됐죠. 인간과 AI의 결합이 가능해질 거란 기대와 윤리적 문제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뉴욕의 침몰을 막을 상상력

뉴욕이 가라앉고 있습니다. 원인은 다름 아닌 건물입니다. 뉴욕에 늘어선 스카이라인과 마천루가 너무 무겁다는 거예요. 뉴욕하면 떠오르는 그 풍경이 곧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집니다. 우리에게 성공한 도시의 전형은 높고 빽빽한 건물, 그 사이를 쌩쌩 오가는 자동차와 사람이었잖아요. 당연해 보였던 도시의 모습이 기후 위기의 시대에는 지속 가능하지 않을 수 있어요. 뉴욕의 침몰을 바라만 볼 때가 아닙니다. 상상 속 도시를 다시 만들 필요가 있어요!


엘니뇨는 어떻게 생길까

할 말 없을 때면 날씨 이야기만 한 게 없었는데요. 요즘에는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게 무서워졌습니다. 이상하리만치 덥기 때문이죠. 향후 5년간 지구 온도는 최고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열사병 발생 시기가 지난해보다 한 달 빨라졌습니다. 엘니뇨 때문입니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찾아오면, 더 많이 눈에 보일 단어입니다. 엘니뇨는 폭염뿐만 아니라 가뭄, 홍수 등 기상 이변을 만들어 냅니다. 엘니뇨는 어떻게 생기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겠죠.


사라지는 곤충

하루살이 떼가 서울과 경기권을 뒤덮었죠. 각 지방자치단체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하루살이 소식, 금방 잠잠해지지 않았나요? 수명이 일주일밖에 안 돼 금방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루살이는 인간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고 해요. 문제는 하루살이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곤충이죠. 우리나라의 소똥구리는 절멸했고, 꿀벌 실종 소식은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다섯 번의 멸종에도 지구를 지켜온 곤충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두고 여섯 번째 멸종의 신호탄이라고 말하죠. 벌레라고 불렀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볼까요?


통계에 없는 다문화 군인

올해부터 입대할 이주 배경 청년들은 얼마나 될까요? 약 1만 명이라고 해요. 2029년부터는 약 1만 9000명가량이 징병 검사 대상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 군의 4~5퍼센트나 되죠. 이 숫자, 감이 잘 안 오시나요? 통상 외국인이 5퍼센트면 ‘다문화 사회’라고 하고요, 1만 명이면 사단 하나를 구성할 수 있는 규모입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우리나라도 다문화 군대로의 이행이 필연적인 것이죠. 그런데 뭔가 꺼림칙하지 않으신가요?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군대 안에서 과연 다문화 장병들이 어려움 없이 군 생활을 할 수 있을지 말이에요. 포용이 안보가 되는 시대, 우리 군의 과제를 들여다봅니다.

톡스

원의 독백 대표 임승원 – 내가 무신사를 퇴사한 이유

유튜브 ‘원의 독백’을 아시나요? 광고 영상에 가까운 편집과 특정 브랜드에 관한 탐구, 시대를 관통하는 진솔한 이야기로 한 번 보면 팬이 될 수밖에 없는 채널이죠. 홀로 채널을 운영하는 임승원은 원의 독백이 입소문을 타며 무신사에 영입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에게도 평범한 취준생 시절이 있었습니다. 학점 3.0 미만, 취업 시장은 고되기만 했죠. 독백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기 자신을 포트폴리오로 펼쳐 낸 것이 바로 원의 독백 채널입니다. 무신사에서 화려하게 커리어를 쌓던 그는 돌연 퇴사를 선언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인디펜던트 워커 임승원에게 퇴사의 이유와 자신만의 일을 정의하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롱리드

그 많던 자전거는 다 어디로 갔을까

파리와 암스테르담, 런던부터 홍콩, 도쿄, 시애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도시 운하에 수많은 자전거가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선 우후죽순 늘어나는 공유 자전거 사업으로 자전거가 대량 증식하고 있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저자는 공유 모빌리티가 그리는 무지갯빛 미래 뒷면에 너절하게 방치된 쓰레기와 하찮게 취급되는 개인 정보가 있다고 말합니다. 개인형 이동 장치(PM)의 시대,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THREAD EXPLAINS THE NEWS
스레드는 스트리밍 세대를 위한 종이 뉴스 잡지입니다.
이달에 꼭 알아야 할 비즈니스, 라이프스타일, 글로벌 이슈의 맥락을 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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