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 현수막은 왜 시끄러울까

7월 17일, explained

정당 현수막이 내려가고, 정치의 말은 땅으로 떨어졌다. 시민들은 박수를 쳤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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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에 얼기설기 매인 끈이 끊겼다. 인천시가 지난 12일, 개정된 인천시 옥외광고물 조례에 어긋나는 정당 현수막을 강제로 철거한 것이다. 인천시는 정당 현수막을 지정 게시대에만 설치하도록 하고, 설치 개수는 국회의원 선거구별 네 개 이하로 제한했다. 현수막에는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을 담을 수 없게 규정했다. 철거 시작 후 이틀 동안 인천 연수구에서 정당 현수막 92개가 강제로 철거됐다. 현수막이 내려간 자리에는 파란 하늘이 들어찼고, 시민들은 박수를 쳤다.

WHY NOW

인천시는 이번 주부터 시내 다른 지역에서도 정당 현수막을 철거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12월, 옥외광고물법이 개정되며 정당 현수막 수량과 규격 제한이 폐지됐다.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을 홍보하는 정당 현수막이 도시에 난무하기 시작했고, 관련 민원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1] 일상적인 도시 풍경에 불만이 생긴다는 건 비일상적인 무언가가 시민들의 눈에 띄었다는 뜻이다. 정당 현수막은 소리 없지만 시끄러운, 그래서 보기 싫은 무언가가 됐다.

홍보가 없으면 정치도 없다

정치인은 의제를 이끌고 정책을 메시지로 만든다. 그리고 홍보를 통해 말을 퍼뜨려 국민들과 공감한다. 그래서 정치에서 홍보는 핵심적인 영역이다. 2022년 국회의원 정치 자금 지출 437억 원 중 홍보를 위한 비용은 113억 원으로, 전체 지출의 25.89퍼센트에 달할 정도였다. 현수막 홍보비는 이 중 15억 원 이상을 차지했다. 통상적으로 현수막에는 명절 인사, 예산 확보 성과 등 정치 활동, 정책 홍보가 담긴다. 그런데 요즘 정당 현수막에는 좀 다른 것이 담기고 있다.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상대 당과 정치인을 비방하는 말이다. 시민들이 현수막을 공해처럼 느끼기 시작했다.

현수막이 시끄러운 이유

정치인의 어떤 말은 역사에 남는다. “못 살겠다, 갈아 보자!”라던 신익희도,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김영삼도 정치의 카운터파트를 상정하고 말을 했다. 이 말들과 달리, 현수막의 말은 땅으로 떨어졌다. 핵심에는 정치 양극화가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의 최근 보고서 〈한국의 정치 양극화 : 유형론적 특징 13가지〉는 2019년부터 정치 양극화와 관련한 기사가 급증했으며, 이것이 한국 정치 최대의 난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한국 정치는 극단적인 당파성을 띠고, 야유와 경멸의 언어를 동반하며, 인물 위주의 팬덤 정치로 돌아간다. 양극화는 정치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팬덤 정치’라는 낙인》의 저자 조은혜의 분석에 따르면, 정당 정치가 실패한 결과로 국민은 정치를 불신하고, 구원자가 될 만한 인물을 스스로 찾아 나선다.

온라인의 문법을 익히는 정치권

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정치권이 찾은 새로운 영역은 온라인이다. 팟캐스트와 유튜브, 페이스북과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정치인들은 정치 고관여층과 적은 비용으로 직접 소통할 수 있다. 그런데 온라인에 들어가려면 온라인의 문법을 익혀야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감성과 말을 정치인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학자 사라 손턴(Sarah Thornton)은 하위 문화 자본(subcultural capital)이라는 용어로 이를 설명한다. 세련되고 정중한 문화 자본(cultural capital)이 아니다. 인터넷 은어와 같은 하위 문화 요소를 알아야 ‘뭘 좀 아는’, ‘힙하고 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 새로운 소셜 미디어인 스레드(Threads)에서 일상을 공유하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시민들과 반말을 주고받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전략이 이러하다. 두 정치인은 스레드에서 시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스레드의 문법을 배웠다.

자극의 효과

온라인에서의 격의 없는 소통과, 정치 현장에서 국민을 상대로 한 언어는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2018년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열성 지지층을 향해 ‘문슬람’이라고 표현했다. ‘문(재인)+(이)슬람’의 합성어인 이 단어는 이슬람 극렬 원리주의자나 이슬람교 교리에 대해 진지하게 비판하기 위해서 나온 단어가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와 팬덤 정치를 비판하기 위해 이슬람교와 그에 대한 편견을 끌고 온 것이다. 문제적 발언은 단지 문제만 낳지 않는다. 배타성이 우리 편도, 반대 편도 똘똘 뭉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전략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갈라진 틈 사이 대다수의 일반 국민에게는 실망을 불러일으킨다. 올해에도 국회는 정부 기관에 대한 국민 신뢰도 조사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현수막을 없애면 사라지는 것

정당 현수막을 내린 인천에서는 어떤 일이 발생할까? 거리 풍경은 깨끗해진다. 하늘을 가리는 현수막은 없어지고, 끈이 풀려 그것들이 거리를 나뒹굴 일도 없다. 그런데 사라지는 게 하나 있다. 군소정당의 존재감이다. 소속한 국회의원이 적거나 없어서 활동을 홍보하는 데에도, 예산에도 한계가 있는 군소 정당에게도 홍보는 필요하다. 현수막이 없어져도 거대 정당은 얼마든지 정책을 홍보할 수 있다. 하지만 군소 정당에게는 현수막의 존재가 소중하다. 현수막은 일부러 TV를 틀거나 공보물을 뜯어보지 않아도 길거리를 지나면 누구나 한 번쯤 보게 되기 때문이다.

기본권의 충돌

정치 컨설턴트가 선거에서 현수막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현수막은 매일 뉴스를 보지 않는 바쁜 시민도 우리 동네에 새로운 시설이 생긴다는 걸 알게 해주는 홍보 도구다. 국민에게는 깨끗한 도시를 누릴 권리도 있지만, 정치에 대해 알고 참여할 권리도 있다. 인천시는 행복추구권이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들어 현수막을 내렸다. 그러나 현수막 역시 정당법이 보장하는 정당의 정치 행위이다. 즉, 참정권이라는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한다. 현수막이 없어지면 시민들이 정치에 대해 떠올리는 시간도 줄어들고, 자주 노출된 거대 양당의 메시지만이 남게 된다.

현수막의 환경 문제

현수막은 정치권의 언어 인플레이션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환경 문제다. 최근 5년간 치러진 다섯 번의 선거에서 발생한 폐현수막은 1만 3985톤에 달하고 재활용률은 30.2퍼센트에 불과한다. 장당 2.37킬로그램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폴리에스테르 성분으로 만들어져 땅에 묻어도 잘 썩지 않는 현수막은 이제 선거철의 골칫거리다. 세계는 이미 대응 중이다. 아일랜드에서는 2019년 지방선거 당시 녹색당 캠페인을 통해 전국 150개 이상 도시에서 선거 포스터 게시를 자발적으로 금지했다. 지난 2월 필리핀에서도 타포린으로 만들어진 캠페인 포스터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상원에 제출됐다.

IT MATTERS

지금 인천시는 행정안전부와 갈등하고 있다. 행안부는 인천시의 개정 조례가 상위법에 위배된다며 인천시를 대법원에 제소했다.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정치적이다. 법의 위계와 환경 이슈, 혐오의 언어 등 다양한 맥락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수막을 제거한다는 인천시의 결정에 시민들이 박수를 보내고, 우리 지역에서도 제거해 달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한 이유다.

현수막은 환경을 위해서라도 언젠가 없어져야 할 홍보 수단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현수막 공해는 현수막만을 없애서 사라지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우리는 누구나 쉽게 정치에 접근할 수 있다. 정치 소식을 얻거나 정치인에게 말을 걸고, 정책 제안을 하는 것은 스마트폰만으로도 당장 가능하다. 그런데도 정치는 멀게만, 시끄럽게만 느껴진다. 국민 다수를 감화하고 설득하기 위한 게 아닌, 같은 편을 향해 ‘나는 당신의 편’이라고 소리치기 위해 극단적으로 변하는 정치의 말 때문이다. 현수막이 시끄러운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다.
[1]
개정 옥외광고물법 시행 후 3개월 동안 정당 현수막 관련 민원은 1만 4197건으로, 법 시행 전 3개월 동안의 민원 건수 6415건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출처: 임준배·조민주, 〈정당 현수막 현황과 개선방안〉,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2100, 2023. 0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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