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원죄

7월 18일, explained

도시는 물을 거스른다. 그러나 물은 제 갈 길을 가기 마련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겪어본 적 없는 홍수가 닥쳤다. 모든 곳이 젖고 잠기고 무너지고 있다. 특히 지난 주말에는 청주 오송 지하차도에 참사가 발생했다. 600미터 넘는 지하차도가 순식간에, 물에 잠겨버린 것이다.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정치권 곳곳에서 나온다. 행정 현장의 실무자들은 물론 국회도 공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다만, 근본적인 문제는 도시 자체에 있다.

WHY NOW

도시는 인간이 만들었다. 거대한 토목 건설의 역사는 부를 쌓아 올렸고 기회도 쌓아 올렸다. 사람이 몰렸다. 도시는 인구압을 견딜 방법을 고안했다. 효율과 생존, 그리고 도시의 지속을 위한 방법들이다. 초고층 빌딩 꼭대기부터 깊은 지하 공간까지 오롯이 사람만을 위한 공간으로 가득 찼다. 그래서 문제다. 빗물이 스며들 틈도 없는 도시가, 온난화로 불어난 수증기와 구름과 비의 양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인간이 자연을 거슬렀다. 해법은 토건이 아니라 자연에 있다.

도시의 땅은 땅이 아니다

물은 흐른다.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인간의 발밑 아래 더 깊고 낮은 곳이 물의 순리가 향하는 곳이다. 그래서 비가 내리면 곧바로 강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땅으로 스며든다. 만약 내리는 비가 모두 지상을 휩쓸고 강으로 향한다면 인류는 땅 위에서 아무것도 쌓아 올릴 수 없었으리라. 그런데 인간이 도시를 만들면서 빗물이 지하로 흡수될 방법이 사라졌다. 시멘트로, 아스팔트로 포장된 땅으로는 물이 스며들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땅은 식물에도, 동물에게도 열려있지 않다. 빗물에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빗물이 흐르는 길

이렇게 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토지의 면적을 물이 스며들 수 없는 면적, ‘불투수 면적’이라고 한다. 서울의 불투수 면적률은 2020년 기준으로 50퍼센트를 넘겼다. 침수 피해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강남역 일대의 불투율은 90퍼센트를 초과한다. 이렇게 땅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자연의 물길을 찾지 못한 물은 일단 사람이 만들어 둔 물길을 따라 천으로, 강으로 향한다. 바로 인간이 묻어놓은 하수관이다.

넘치는 물이 들어차는 곳

영화〈기생충〉의 침수 장면은 과장도 아니고 연출도 아니다. 도시에 인간이 만들어 둔 물길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뛰어넘는 비가 쏟아지면 가장 먼저 지하에 묻힌 하수관부터 기능을 잃어버린다. 그 결과 반지하 주택의 침수는 안에서 시작된다. 집 안 하수구, 변기 등 인간이 지하에 묻어둔 물길에 연결된 모든 곳에서 물이 차오른다. 밖에서 흘러드는 물 때문에만 반지하가 물에 잠기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도시가 감당할 수 없는 물은 주거의 가장 낮은 곳부터 집어삼키며 지상으로 올라온다.

어리석은 인간 도시의 결점

강남 도심 한복판에서는 맨홀 폭발이라는 현상으로 도시 배수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난다. 지하에 묻혀있는 하수관이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물이 차오르면 무거운 맨홀 뚜껑을 밀어 올리며 물이 솟구친다. 지난 2022년 8월, 서초구에서는 그렇게 뚜껑이 열려버린 맨홀에 빠진 남매가 모두 숨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인간이 만든 이 배수 시스템은 이렇게 불완전하다. 그리고 위험하다. 인간의 물길 때문에 지하수가 흘러야 할 곳에 지하수가 흐르지 못하면 땅속에 공간이 빈다. 혹은 상 하수관로에 손상이 생기면 물이 새어 나와 지반을 약하게 한다. 그 결과가 바로 도심 땅꺼짐 현상, ‘싱크홀’ 현상이다. 도로가 우리를 위협하는 흉기로 돌변하게 되는 현상들은, 불완전한 배수 시스템에 기인한다.

지하 공간의 주인은 누구?

사람은 지하에 하수관만 만들어 묻어둔 것이 아니다. 지상의 편의를, 허락된 이상으로 누리고자 지하까지 침범했다. 지하에 반쯤 묻힌 주거 공간 이야기가 아니다. 지하철, 지하 차도, 지하 주차장, 지하 통신구 등 수많은 인프라 시설이 이미 지하에 묻혀있다. 그러나 지하는 원래 인간의 공간이 아니라 물의 공간이다. 그래서 불어난 물이 길을 잃는 순간 지하 공간은 물에 잠식당한다. 2020년 부산 지하차도 침수 사건으로 3명이 사망했다. 시간당 80mm가 넘는 비에 해수면이 가장 높은 만조까지 겹쳐 물이 도시로 밀려들었다. 2022년 포항에서는 지하 주차장이 침수됐다. 7명이 숨졌다. 주변의 냉천이 범람하며 물이 밀려들었다. 2023년, 올해는 청주 오송 지하차도가 물에 잠겼다. 근처 미호천이 넘쳤다.

事必歸正

폭우의 잘못이 아니다. 물의 길을 멋대로 막아서고 물의 공간을 멋대로 침범한 대가다. 포항 침수 사고 당시 주민들은 의아해했다. 평생 넘친 적 없는 냉천이 넘쳤다는 것이다. 지역 시민단체들은 포항시가 추진했던 ‘고향의 길’ 사업을 의심한다. 냉천 천변에 보행로를 새로 만들면서 천 폭이 좁아졌고, 때문에 폭우를 감당하지 못하고 넘쳤다는 것이다. 포항시는 정비 사업을 하면서 80년 빈도로 계산한 한계 수량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주장한다. 시간당 77mm였다. 그러나 2022년의 태풍, 힌남노는 포항에서 시간당 100mm의 폭우를 퍼부었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도시를 포장하고 물길을 멋대로 좁히거나 바꾼 것은 사람이다. 탄소를 거리낌 없이 배출하며 경험한 적 없는 기후 재난을 현실로 소환한 것도 사람이다. 모두, 인간이 저지른 일이다.

지구의 뉴스

이번 오송 지하 차도 침수 사고를 비롯한 우리의 홍수 상황은 외신에서도 크게 다루고 있다. 한국의 뉴스가 아니라 지구의 뉴스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초래한 기후 위기가 극한 기상 상황을 초래했다. 그 결과 중 하나가 동아시아 전역의 잦은 폭우라는 것이다. 이달 초에는 중국 남서부에 폭우가 쏟아져 충칭시에서 최소 15명이 사망했다. 얼마 전에는 일본에서 홍수가 발생해 최소 6명이 사망했다. 한국에서도 홍수로 지하 차도가 물에 잠기고 산사태가 발생했다. 한국의 재난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재난이며 전 세계의 재난이다. 그리고 물의 재난은 유독 도시를 필연적으로 잠식한다. 도시의 원죄 때문이다. 도시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이제 살 궁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IT MATTERS

우리의 기준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하수관부터 교량, 축대, 천변 및 강변 개발까지 모든 것은 ‘설계 빈도 기준’이라는 것을 바탕으로 얼마나 큰 재난을 감당할지를 정한다. 설계 빈도 기준 10년이면 과거 10년간 최대 강수량, 30년이면 과거 30년간 최대 강수량이 기준이란 얘기다. 그런데 그 기준이 무용한 시대가 왔다.

재난의 한계를 예측할 수 없는 시대, 도시의 인류가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일까? 서울시가 선택한 방법은 대심도 빗물 터널이다. 강남, 광화문 등의 도심 지역 침수를 막기 위해 한꺼번에 쏟아진 빗물을 저장했다 흘려보내는 거대한 하수관이다. 시간당 100mm 안팎의 폭우를 감당하게 된다. 효과는 입증되었다. 일본, 말레이시아, 미국 시카고 등에서 이미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토건으로 생긴 문제를 토건으로 해결한다는 논리다. 10년 걸린다. 비싸기도 비싸다. 약 1조 4000억 원의 예산이 소요될 전망이다.

오늘의 기후 재난은 매번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50년 만의 홍수 다음에는 80년 만의 홍수, 500년 만의 홍수가 기다린다. 즉, 새로운 물길을 인간이 만든다고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도시가 자연처럼 작동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미 도입되어 사용되고 있는 기술이 있다. 포장된 도로도 물을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투수 콘크리트’, ‘투수 아스팔트’다. 물론, 포장된 도로를 갈아엎어 물을 흡수하는 새로운 포장재를 까는 일에는 돈과 시간이 든다. 같은 예산을 어디에 쓸지의 문제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명예교수는 건물마다 빗물 저장소를 설치하고 빗물을 모아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학교 옥상에 물을 머금을 수 있는 밭을 만들고, 설계한 아파트 단지에는 빗물 저수 및 정화 장치를 만들어 활용한다. 건물이 차지한 면적에도 빗물이 스며들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무조건적인 토건만이 도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아니다. 어떻게 물의 길을 되찾아 줄 것인지 자연의 관점에서 고민하지 않는다면, 물도, 불도 인류의 재앙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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