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파밍 이면의 위기와 기회

7월 25일, explained

도시에서, 집 안에서 채소를 키우는 사람들. 먹거리의 고정관념이 뒤집힌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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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홈파밍(Home farming)’족이 늘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치솟는 채솟값이다. 그런데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소식이다. 불과 1년 전에도, 2년 전에도 비슷한 기사들이 생산되었다. 집에서 채소를 직접 재배해 바로 식재료로 활용하는, 홈파밍이 각광받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들 말이다. 2022년에는 역대급 고물가 때문이었다. 2021년의 원인으로는 코로나 장기화가 꼽혔다.

WHY NOW

매년 보도된다는 이야기는 매년 보도자료가 나온다는 얘기다. 살펴보면 주로 이커머스 업체가 내놓는 관련 상품 판매 증가 데이터다. 홈파밍 트랜드에 실체가 있기는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채소 가격이 오른다고 누구나 베란다에 파를 키우고 텃밭을 일구어 상추를 심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 그것도 실내에서 채소를 기르는 사람들은 아직 일부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는 기회도 있다. 홈파밍 트랜드의 이면을 살펴보면 먹거리의 현재와 미래가 보인다.

도시의 콩나물시루

도시에서, 그것도 실내에서 채소를 직접 재배한다는 발상은 전혀 새롭지 않다. 우리의 삶이 도시와 농촌으로 극명하게 나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도시는 먹거리를 농촌에 외주 준 채 성장을 향해 달려갔지만, 필요가 발생할 땐 언제든 직접 채소를 재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실제로 도시화가 꽤 진행되었던 1980년대에도 가정용 콩나물 재배기가 개발되어 보급된 바 있다. 당시에는 꼭 이 기계가 아니더라도 들통에 콩나물을 직접 기르는 집이 적지 않았다.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농약 콩나물 사태’ 등으로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 높았기 때문이다.

농산물은 값싸다는 기본 전제

1980년대나 2023년이나 홈파밍은 뉴스가 된다. 도시에서 채소를 재배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이 부자연스러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언론은 홈파밍에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미덥지 않아서, 가격이 올라서가 단골 메뉴다. 농촌에는 안전한 농산물을 생산하여 도시에 값싸게 공급할 의무가 있다는 전제가 엿보인다. 농촌을 삶의 터전, 또 다른 경제 집단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도시민의 원활한 삶을 위해 제 기능을 다해야 할 공간으로 ‘타자화’하는 시선이다.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

이 시선은 잘못되었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에 의해 이와 같은 시선이 공고해지고 확대한다. 정부는 농산물 가격 상승에 늘 민감하다. 그래서 배춧값이 오르면 절임 배추를 수입해 풀고, 생강값이 오르면 생강을 수입해 푼다. 체감물가 때문이다. 사실, 실제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농축수산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밥을 먹는다. 즉, 농산물의 가격을 체감하는 빈도가 높다는 얘기다. 옷은 이번 달, 이번 계절 구입하지 않아도 괜찮다. TV는 10년에 한 번 바꿔도 괜찮다. 밥은 매일 먹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 그래서 장바구니 물가라는 용어가 준 전문용어로 통용된다. 먹거리를 잡아야 물가도 잡힌 듯 느껴지는 것이다. 정부는 시장 교란이라는 것을 알면서, 가격 폭등에서 가격 폭락까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 공급을 늘려 도시민의 불안을 해소하고자 한다. 여기에 언론이 기름을 붓는다.

매년 반복되는 ‘金추’ 보도

농산물값 폭등은 크게 보도된다. 채소가 사치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자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추가 아니라 金추”라는 기사는 포털 메인에 걸리지만 “배춧값 안정세”라는 내용은 주요 헤드라인에 걸리지 못한다. 우리에게 와 닿지 못하는 사실은 또 있다. 배추가 비쌀 때 고춧가루가 싼 경우가 있다. 쌈 채소는 비싸도 뿌리채소는 저렴할 수 있다. 즉, 품목마다 작황과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얘기다. 이런 내용은 클릭을 부르지 못한다. 기사 제목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 10명 중 8명 이상이 농산물값과 소비자물가와의 상관관계를 크게 느낀다. 그리고 절반이 넘는 소비자가 언론에서 농산물 가격 폭등 보도를 자주 접한다고 답변했다.

뉴노멀의 채소

그렇다고 해서 홈파밍이 경제적으로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채소는 점점 귀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세계화의 종식과 기후 위기다. 전 세계 곳곳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빠르게 배송하여 언제든 소비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식탁이 풍요롭지 않은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그 믿음이 확실히 깨졌다. 유럽이 가난해지는 시대다. 우리의 식탁은 언제든 빈곤해질 수 있다. 이러한 불안감을 더욱 부추기는 것이 바로 기후 위기다. 유럽중앙은행이 낸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유럽 지역의 폭염은 식품 물가 상승률을 0.67퍼센트포인트 밀어 올렸다. 2035년에는 세계 식품 물가상승률이 기후 위기의 영향만으로 3.23퍼센트포인트 증가한다.

홈파밍의 기회 요소

농산물의 수급이 불안해질 수 있다면, 어떻게든 먹거리의 탄소 발자국을 줄여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도시의 채소 재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홈파밍이 트랜드를 넘어 하나의 생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다면 위기의 크기는 유의미하게 줄어들지도 모를 일이다. 2023년의 홈파밍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1980년대의 콩나물 재배기와 비교해 보면 정체가 쉬이 드러난다. 20세기의 콩나물 재배기는 손이 많이 갔다. 콩을 잘 불려 기계에 깔아준 뒤 하루 3번에서 5번 물을 부어준다. 고인 물도 그때그때 따라 버려야 한다. 게다가 자라난 콩나물을 요리에 사용하기 위해 다듬는 일도 보통 손이 가는 일이 아니다. 21세기의 식물 재배기 ‘LG 틔운’은 다르다. 물 줄 시간을 앱이 알아서 알려준다. 볕 잘 드는 곳에 옮겨둘 필요도 없다. LED 등이 빛 에너지를 공급한다. 게다가 주로 권장하는 식물은 잎채소다. 그대로 따서 바로 먹을 수 있다. 21세기의 도시 채소 재배는 돌봄 노동의 최소화, 만족감의 극대화로 요약할 수 있다.

홈파밍을 넘어 어반파밍의 시대로

사실, 틔운의 기술은 수직 농법(vertical farming)과 많이 닮아 있다. 겹겹이 쌓인 선반 위에서 농작물을 재배하는 방법이다. 넓은 들판은 필요 없다. 도시의 지하실도, 컨테이너 내부도, 폐허가 된 방공호도 상관없다. 선반을 쌓을 수만 있다면 어디든 채소를 재배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야채 공장’이라는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마치 공장에서 공산품을 생산하듯, 자동화 시설에서 대규모로 채소를 재배하는 방법이다. 잎채소, 브로콜리 등이 이미 시판되고 있다.

IT MATTERS

신냉전과 기후 위기의 시대가 도래하는 가운데 농촌의 불행만을 점점 쌓아가는 현재의 먹거리 유통구조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홈파밍이 완벽한 대안이 될 리는 없다. 다만, 자신의 먹을거리를 일정 부분 직접 재배해 보는 경험이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여진다면, 어반파밍의 시대로의 전환이 좀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좀 더 중요한 것은 도시민들의 농산물에 대한 인식을 바꿀 기회를, 홈파밍이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채소는 완벽한 생김새와 안정적인 가격으로, 마치 공산품처럼 제공되어야 하는 상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채소는 때로 시든다. 예쁘지 않게 열매 맺지만, 맛이 좋은 것도 있다.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며 생겨난 오해를, 재배라는 경험을 통해 풀어갈 수 있다면 도시의 시선으로 농촌을 간편하게 타자화하는 지금까지의 폭력을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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