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하기 지친 사람을 위한 데이터
3화

데이터와 다양성 ; 실재하는 차별

과거 예술 작품 수정, 검열일까 PC일까


디즈니의 실사 영화 〈인어공주〉가 개봉 전부터 화제였습니다. 주인공 에리얼의 인종이 백인에서 흑인으로 바뀌면서 일각에서는 “원작을 훼손하는 과도한 PC주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보다 앞서, 로알드 달의 동화가 새로운 버전으로 출판될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과거 창작자의 표현을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것은 원작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부정적 목소리가 높았죠. 현재와는 다른 시선으로 만들어진 과거의 작품을 어떻게 두는 게 맞는 걸까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과거 예술 작품의 수정은 검열일까요, 정치적 올바름일까요?

Female이 Woman으로 바뀌었다

로알드 달 상황부터 정리해 봅니다. 문제는 영국의 동화 작가 로알드 달의 작품 2022년 버전을 출간하면서 발생했습니다. 예전에 나왔던 작품이 종종 개정되거나 표지를 새로 해서 출간되기도 합니다. 로알드 달 작품도 여러 개의 개정판이 있었습니다. 출판사가 로알드 달이 쓴 주요 표현들을 삭제하고 수정한 2022년 판이 문제가 됐습니다. 신체 묘사라던지, 정신 건강에 대한 묘사, 혹은 젠더나 인종과 관련된 표현들을 손본 겁니다.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로알드 달의 1983년 소설 《마녀를 잡아라 The Witchs》의 2001년 버전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Even if she is working as a cashier in a supermarket or typing letters for a businessman(그녀가 슈퍼마켓 계산원으로 일하거나 사업가를 위해 편지를 작성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

2022년 개정판에는 슈퍼마켓의 계산원, 사업가를 위해 일하는 여성 대신 “top scientist(최고의 과학자)”와 “running a business(사업 운영)”라는 조금 더 주체적인 직업과 표현이 들어갔습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 데이터[1]를 살펴보면 로알드 달의 열 개 작품 속 505건의 표현이 수정됐습니다. 그중 아예 삭제된 표현은 78건이었고요.

로알드 달은 영국의 《타임스》가 선정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위대한 영국 작가 16위에 꼽힐 정도로 유명하고 대단한 작가입니다. 아동 문학계의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칭호를 갖고 있기도 하죠. 넷플릭스에서 뮤지컬 영화로 나오기도 했던 〈마틸다〉도 로알드 달 원작이고, 팀 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외에도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 《그렘린》 등의 동화를 썼습니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작가이긴 하지만 반유대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꽤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1990년 인터뷰에서 본인 스스로 반유대주의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영국 왕립조폐국에선 로알드 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주화를 제작하려다가 이런 이슈들 때문에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2020년 말, 그러니까 한참 뒤에 와서야 로알드 달 유족들이 그의 반유대주의적 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논란과 별개로 예전 시대적 상황에서 쓰이던 표현이 많은 탓에 수정 사항은 계속 생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출판사가 작품을 마음대로 고쳐도 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악마의 시》의 저자인 살만 루슈디는 로알드 달이 문제가 있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나 터무니없는 검열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죠. 영국 총리실도 나서서 검열은 없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반면 일각에서는 시간에 따라 작품이 변화하는 건 좋은 일이라고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과거 작품은 과거의 시선을 담고 있다

이슈가 된 건 로알드 달이었지만 사실 로알드 달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의 상황과 맞지 않은 표현은 예술 작품 곳곳에 남겨져 있으니 말입니다. 미국 아동 문학의 대가, 닥터 수스도 비슷한 논란을 겪은 바 있습니다. 2021년 닥터 수스의 책 여섯 권이 인종 차별적 묘사를 했다는 이유로 판매 중단 조치된 바 있습니다. 닥터 수스의 그림책에 아시아인은 백인의 지시를 받는 하인 역할로 나왔고, 흑인은 원시적인 캐릭터로 등장했습니다.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디즈니의 〈판타지아〉라는 애니메이션 본 적 있나요? 1940년에 만들어진 〈판타지아〉는 제작 당시엔 쫄딱 망했다가 1960년대 히피 문화가 유행할 때 재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재평가에 힘입어 60년대에 재개봉했는데, 재개봉 판에는 원작에 담겨 있던 인종 차별적 장면을 잘라 냈습니다. 위의 그림이 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백인 캐릭터의 하인으로 묘사된 흑인 캐릭터를 잘라 내고 화면에서 보이지 않게 조치를 취한 겁니다.

사실 디즈니의 옛 작품들을 보면 과거에 만연했던 차별적 시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선 〈백설공주〉 같은 디즈니 초기 작품을 자식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다는 부모가 있을 정도죠.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의 여성 대사 비율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얼마나 차별적인 표현이 많았는지 분석해 봅니다. 살펴볼 자료는 2016년에 발표된 논문[2]인데, 디즈니 프린세스 시리즈를 대상으로 성별에 따라 영화 대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석했습니다. 1937년 〈백설공주〉부터 2013년 〈겨울왕국〉까지 총 열두 편입니다.

먼저 남성과 여성의 대사 비중을 살펴봅니다. 총 열두 편의 공주 애니메이션 중 여성의 대사가 전체 대사의 50퍼센트 이상인 작품은 다섯 편에 불과합니다. 클래식 작품 세 편은 모두 50퍼센트 이상이었고, 80~90년대 작품에서 여성 대사의 비중은 상당히 낮습니다. 2000년대 이후 〈라푼젤〉, 〈메리다와 마법의 숲〉 작품만이 50퍼센트를 넘겼습니다. 공주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인데도 불구하고 대사를 양적으로 비교해 봤을 때 꽤 많은 차이가 보이는 겁니다.

물론 대사만으로 성별 격차를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습니다. 기존의 수동적인 공주 캐릭터를 벗어나 처음으로 능동적인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은 〈인어공주〉도 대사의 양만 봤을 땐 50퍼센트 미만으로 나오니까요. 참고로 디즈니 르네상스 시절의 애니메이션은 뮤지컬 스타일이 대세였던지라 등장인물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1990년대 이후부터 점차 여성 캐릭터의 대사 비중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겁니다.

대사의 내용을 분석해도 의미 있는 변화가 보입니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칭찬 대사를 분석해 보면, 과거 디즈니 클래식 시절엔 외모에 대한 칭찬이 절반이 넘는 55퍼센트였습니다. 능력에 대한 칭찬은 11퍼센트에 불과했고요. 하지만 디즈니 르네상스 시절에 걸쳐서 외적인 묘사보다 능력에 대한 묘사로 옮겨 가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여성 캐릭터의 능력에 대한 대사가 더 많아졌습니다. 뉴에이지 시절에는 능력에 대한 칭찬이 전체 칭찬의 40퍼센트, 외모에 대한 표현은 22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과거 작품을 기억하는 법: 수정과 유지 사이

과거에 만들어진 작품 속에는 현재의 시선으로 봤을 때 갸웃할 만한 지점들이 많습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로알드 달, 닥터 수스의 동화책에도 있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곳곳에도 있죠. 찾으면 더 많을 겁니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과 영화에도 당연히 들어 있을 겁니다. 작품엔 당시 시대상이 담기고, 또 시대상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녹아 들어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작품을 우리는 어떻게 소비해야 하는 걸까요? 시대에 맞게 수정해야 할까요? 아니면 원작 그대로 유지해야 할까요?

우선 첫 번째 입장은 ‘작품의 수정은 정치적 올바름의 일환’이라는 겁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성별, 인종,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죠. 과거 작품에 그런 표현이 있다면 시대에 맞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bowdlerize’라는 표현을 들어 봤나요? 연극이나 영화에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부분을 고치거나 삭제하는 식의 검열을 뜻하는 단어인데, 토마스 보들러Thomas Bowdler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단어입니다.

저 단어가 나오게 된 계기는 바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입니다. 사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는 반유대주의, 인종 차별, 성차별, 성 학대, 폭력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1800년 대 보들러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서 원색적인 장면을 삭제하고 가족들에게도 들려줄 수 있는 ‘패밀리 셰익스피어’를 만들었습니다. 그걸 따서 bowdlerize라는 단어가 생겼죠. 이런 편집과 수정은 계속 이뤄지고 있습니다. 만일 셰익스피어의 작품 그대로를 접한다면, 인종 차별적인 내용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두 번째는 ‘작품의 수정은 예술에 대한 검열’이라는 입장입니다. 원작에 대한 고유 가치를 인정해서 원작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당장 셰익스피어의 사례를 두고도 위의 입장과 다르게 생각하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NCAC(National Coalition Against Censorship)라는 곳인데, 이곳에서는 잘못된 과거 작품이라도 검열과 편집 과정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차별적 표현이 사라진다면 이 지점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기회가 아예 날아가 버릴 테니까 편집은 없어야 한다는 거죠.

정치적 올바름을 이유로 원작을 수정하는 것은 오히려 교육적으로 역효과를 가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고전 동화나 옛 작품에는 차별과 편견이 담겨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2021년 아동청소년문학연구 저널에 실린 〈언어적 유토피아의 불편함: 정치적으로 올바른 고전동화의 역설〉[3]에서 저자는 우리가 고전동화에서 주목할 지점은 차별과 편견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보는 비판 의식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의식이 길러지고 발동되기 위해선 편견이 담겨 있는 원본 작품이 남아 있어야 하는데, 만약 작품 수정이 이뤄지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겁니다.

앞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에 반유대주의적 표현과 분위기가 많이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나치 정권은 이를 이용해 유대인 학살의 정당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베니스의 상인〉을 정기적으로 공연했다고 합니다. 샤일록과 같이 돈만 밝히는 유대인들을 죽여 마땅하다는 분위기를 만들기에 〈베니스의 상인〉만한 게 없다는 판단을 한 겁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반유대주의적인 사회 분위기는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 최악의 참사,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졌습니다.

디즈니는 재가공으로 성장한 기업

디즈니는 시대에 맞게 원작을 재가공하면서 성장해 온 기업입니다. 1950~1960년대엔 원작 동화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벗겨 낸 〈신데렐라〉로 성공을 거두었고, 1980~1990년대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담아낸 〈인어공주〉와 〈미녀와 야수〉로 성장해 왔습니다.

안데르센의 원작에서 인어공주는 왕자를 위해 희생해 결국 물거품이 돼버립니다. 물론 이후 공기의 정령으로 승천하지만요. 1989년의 디즈니는 적극적인 여성성을 담아 새드엔딩이 아닌 해피엔딩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붉은 머리의 에리얼이 만들어졌어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아닌 디즈니의 인어공주로 디즈니 르네상스를 연 겁니다.

그리고 2023년의 인어공주는 1989년 애니메이션과는 너무나 다른 파격적인 캐스팅으로 이슈가 됐습니다. CG로 표현된 캐릭터도 기존의 만화 스타일이 아닌 사실적 생명체로 만들어지면서 부정적 반응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인어공주〉 이전부터 이어 온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에 권태를 느끼는 관객들도 늘어난 상황이죠. 디즈니의 이런 선택이 사람들과 발맞춰서 가는 모습보다 먼저 이끄는 모양인지라 권태를 느낀 사람들 입장에선 충분히 강요로 느껴지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야생 동물과 인간, 같이 살 수 있을까


“당신이 도시를 집어 들고서 거꾸로 뒤집은 다음 흔들면, 거기서 떨어지는 동물들에 경탄할 것이다. 고양이와 개만 떨어지지는 않을 거라고 장담한다.”

이번 장을 연 글은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4]에 나오는문장입니다. 미처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수많은 동물과 도심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파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보아뱀, 도마뱀, 오랑우탄, 악어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를 뒤집어 흔들면 토끼, 쥐, 비둘기, 너구리를 포함해 수많은 동물이 빗방울처럼 떨어질 겁니다.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도시의 모습을 들여다봅니다. 도시 속 야생 동물의 동거인으로서 우리 인간들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여러 사례와 데이터를 정리했습니다. 질문을 던집니다. 야생 동물과 인간, 공존은 가능할까요?

도시화로 파괴되는 자연

우리나라 인구는 감소하고 있지만 지구 전체로 봤을 때 인간의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UN이 추정한 세계 인구 자료[5]를 보면 전 세계 인구가 10억 명을 돌파한 건 1804년경입니다. 20억 명을 돌파한 건 1927년이고요. 10억 명에서 20억 명으로 늘어나기까지 무려 123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12년 사이 10억 명이 증가했습니다. 2022년 세계 인구는 어느새 80억 명을 돌파하고 있죠.

늘어난 인구를 수용하려면 더 넓은 장소가 필요할 겁니다. 그들이 먹을 음식도 더 많이 필요하겠죠. 그러기 위해서 도시는 커져야 했고, 더 많은 농작물을 생산해야 했습니다. 그과정에서 자연은 파괴됐죠. 농업을 위해 숲은 개간됐고, 도시를 넓히기 위해 습지는 땅으로 메워졌습니다. 도시와 도시를 잇는 도로 인프라 개발은 숲과 숲을 끊어 놓았고요. 자연에 인간의 손이 닿자, 수많은 생물종의 서식지가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있습니다.
10년간 일어난 자연 생태계 변화 지표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이렇게 줄어든 서식지의 영향으로 생태계 교란이 발생하고, 생물 다양성은 위협받고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은 지구상의 생물이 얼마나 다양하게 있는지를 지칭하는데, 단순히 눈에 보이는 동물과 식물뿐만 아니라 생태계, 그리고 유전자까지 포함한 개념입니다. 도시화가 계속 진행되면서 생물종, 생태계, 유전자의 다양성이 점점 훼손되고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를 볼까요?

1970년 이후 10년 주기에 따라 자연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들입니다. IPBES가 발간한 보고서[6]에 있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마부뉴스가 정리했습니다. IPBES는 전 세계 132개국이 참여하는 생물다양성과학기구를 말하는데, 2019년에 7차 총회를 열었고 여기서 14년 만에 생물 다양성에 관한 정부 간 보고서가 채택됐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자연 서식지, 숲, 해안의 보호 서식지, 산림, 해초·목초지 등 대부분의 자연 생태계 면적이 10년 사이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늘어난 지표도 있긴 합니다. 단위 면적당 나뭇잎의 면적을 보면 4.9퍼센트 늘었는데, 실상을 보면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북반구의 온대 기후 지방이 따뜻해져서 식물이 더 잘 자라난 영향이기 때문이죠.

유엔식량농업기구는 정기적으로 전 세계 산림 면적을 발표[7] 하는데, 이 데이터도 산림 파괴가 얼마나 심각한지 나타내고 있습니다. 1990년부터 2020년까지 농업을 위해, 도시화를 위해, 인프라 개발을 위해 파괴된 산림은 1억 7800만헥타르나 됩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여러 나라의 노력으로 산림 손실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연간 780만 헥타르가 파괴됐지만, 2010년부터 2020년에는 연간 470만 헥타르로 줄었습니다.

우리나라 산림도 비슷하죠. 1972년 우리나라 산림은 모두 659만 6728헥타르였는데, 지금은 629만 8134헥타르입니다. 약 30만 헥타르가 줄어들었죠. 1977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산림 면적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 꼽히는 갯벌의 면적도 마찬가지입니다. 2018년에 조사된 우리나라의 갯벌 면적은 2013년보다 5.2제곱킬로미터 줄어들었죠.

갈 곳을 잃은 동물의 선택지는?

인간의 개발로 서식지가 줄어든 동물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사실 별로 없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하거나 혹은 인간의 도시에 적응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세계자연기금WWF의 지구생명보고서[8]를 보면, 1970년부터 2018년까지 관찰된 야생 동물 개체군은 평균적으로 69퍼센트나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담수 생물종 개체군은 평균 83퍼센트 사라지며 전체 생물 집단 중 가장 큰 감소세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도시 속에서 인간과 공존하고 있는 야생 동물도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도시화가 많이 진행된 수도 서울만 보더라도 멸종 위기종 48종의 동식물이 함께 살고 있죠. 멸종 위기종 1급으로 분류되는 수달, 저어새, 참수리뿐 아니라 2급으로 분류되는 삵, 고니, 올빼미, 맹꽁이 등이 있습니다. 도시화라는 이름으로 인간이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면서 인간과 동물은 더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인간 발자국 지수와 관련된 포유류 변위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원래 동물은 서식지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활동을 하는데, 생활 공간이 인간과 겹치면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와 관련된 〈인류세의 이동: 지구상의 표유류 이동의 전 지구적 감소 〉[9]라는 논문이 있습니다. 오대양 육대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포유류의 움직임을 분석하자 인간의 손이 닿은 서식지에 사는 포유류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에 사는 포유류보다 2~3배 덜 이동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그래프에는 사바나얼룩말, 노랑개코원숭이를 포함해 48종, 624마리의 포유류 데이터가 흩뿌려져 있습니다. X축의 HFI(Human Footprint Index)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의 손길이 많이 닿은 지역이라는 의미인데, 그 지역에 사는 동물일수록 이동 거리가 줄어드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없다면 다시 야생 동물들의 이동 거리는 회복되겠죠?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에 칠레에서 퓨마가 도심을 활보하고, 일본에서 사슴이 지하철역을 배회하는 사진이 화제가 됐죠. 실제로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가 심한 지역 동물의 이동 거리를 분석한 결과, 이전 대비 73퍼센트 늘어났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

철마다 서식지를 옮기는 대표적인 동물은 새입니다. 원래 살던 서식지가 줄어들면서 살 곳을 잃은 새들이 종종 도심을 찾습니다. 때마다 들려오는 도심 하늘을 뒤덮은 까마귀 떼 이야기가 낯설지 않을 겁니다. 새 떼의 배설물이 만들어 내는 악취와 부식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시에서 따로 예산을 투입해야 할 정도죠.

우리나라에서 새와 인간이 가장 많이 부딪히는 곳 중 하나인 대전 이야기를 해봅니다. 카이스트에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수의 백로가 살고 있습니다. 2020년에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총 176곳의 백로 번식지가 있는데, 그중 카이스트 내 집단 번식지에 둥지 수가 가장 많습니다. 무려 1092개입니다. 번식 둥지가 500개 이상인 대규모 번식지는 열다섯 곳 밖에 없는데, 그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하죠.

처음 백로가 카이스트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반겼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는 거였죠. 백로 떼가 만들어 내는 소음, 그리고 백로의 배설물로 인한 오염과 악취 문제 등 계속해서 갈등이 생기자 사람들은 더 이상 백로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유해한 새라는 인식이 강해질 정도였죠. 서식지 주변 교직원들과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고 결국 시는 백로의 서식지를 없애는 방향으로 사건을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백로의 보금자리였던 나무는 결국 잘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백로들이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백로들은 근처의 다른 야산으로 거처를 옮겼고, 심한 경우엔 아파트 단지 내 나무에 둥지를 틀기도 했죠. 그럴 때마다 민원이 나오고, 민원에 따라 나무들은 잘리고, 그러면 백로는 또 다른 숲으로 서식지를 옮기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악순환만 반복됐습니다.

이번엔 시선을 해외로 옮겨 봅니다. 호주가 앵무새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이야기, 혹시 들어본 적 있나요? 호주 시드니는 주민들이 앵무새와 전쟁 중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갈등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거리의 앵무새가 시드니의 쓰레기통을 다 헤집어 놓고 있기 때문이죠. 영리한 앵무새가 쓰레기통 뚜껑을 여는 법을 학습했고, 학습한 앵무새가 미처 학습하지 못한 앵무새에게 알려 주면서 점차 문제가 되는 앵무새가 늘어난 겁니다.

20세기, 인간이 서식지를 파괴하자 호주의 앵무새는 본격적으로 도심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먹이 경쟁 상대였던 토끼 개체 수가 바이러스로 인해 줄면서 앵무새의 수가 확 늘었죠. 서식지가 겹치고 개체 수가 늘어나며 사회 문제가 발생했는데, 거기에 앵무새가 똑똑하기까지 하니 골머리를 썩이는 겁니다. 앵무새로부터 쓰레기통을 보호하는 연구를 기관에서 진행할 정도로 꽤 심각한 문제입니다.

미국에선 코요테가 도심에 출몰하면서 안전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멧돼지와 쥐가 쓰레기를 뒤지면서 발생하는 악취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갈등을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구분 짓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까요? 아니면 힘들더라도 공존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까요?

야생 동물과의 공존을 위하여

도시가 끊임없이 확장되고 생태계가 계속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야생 동물을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개발이 필수적일 테고, 생물 다양성 보호를 위해 야생 동물의 서식지 보존도 중요한 만큼 그사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백로 문제가 심각한 대전은 대체 서식지를 마련하는 방식으로 타협하려 했지만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백로가 사람들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알아서 이사 가는 게 아닌 만큼 효과가 크지 않았죠. 그래서 공존을 위한 제도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22년, 처음으로 환경 단체-학생-학교 간 백로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백로의 배설물로 인한 악취 문제와 소음 문제도 현실이고, 백로의 번식도 중요한 상황인 만큼 모두를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모으는 겁니다. 백로만을 위한 제도가 아닌, 또 사람만을 위한 제도가 아닌, 백로와 사람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제도를 위해서 말이죠.

쥐 문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파리는 쥐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려 합니다. 이른바 쥐와의 공동 서식 연구를 위한 위원회를 만들어서 연구를 진행하는데, 쥐 개체 수 관리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 관리도 하면서 쥐와 함께 살아갈 수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위험성이 아주 높은 게 아닌 만큼 관리를 통해 새로운 대안을 찾아보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도심 속 야생 동물과 인간의 갈등은 더 자주 발생할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인간과 야생 동물은 공존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서로 피해를 주지 않도록 격리해야 할까요? 어느 방향으로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 걸까요?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세상을 다르게 보는 색각 이상자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힌트가 있다면 2022년 큰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도 등장합니다. 바로 색약을 가지고 있는 전재준과 하예솔, 이번 장은 색각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사람들

색각은 색을 분별하는 감각을 의미합니다. 색각에 ‘이상’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말 그대로 색을 분별하는 감각이 정상과는 다르다는 뜻이죠. 우리 몸의 시각 세포는 원추 세포와 막대 세포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중 막대 세포는 명암을 인지하고 원추 세포는 빛, 그러니까 색을 인지합니다. 색각 이상은 색을 감지하는 원추 세포의 기능이 이상해져서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인 겁니다.

보통 적색, 녹색, 청색 이렇게 세 개의 원추 세포가 기능합니다. 이 세 개의 원추 세포 중에 기능이 불완전한 원추 세포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럼 색을 제대로 구분하기 어렵게 되는 겁니다. 이런 경우를 색약이라고 표현하죠. 세 원추 세포 중 한 개가 아예 없는 경우는 아예 해당 색깔을 인지할 수 없습니다. 이런 경우를 색맹이라고 표현하죠.
비색각 이상자와 색각 이상자의 원추세포 감지 파장 비교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우리 시신경에 있는 원추 세포가 감지하는 파장을 그래프로 나타냈습니다. 뒤에 나오는 그래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520나노미터 파장의 빛이 우리 눈에 들어온다고 가정합니다. 이 경우, 비색각 이상자는 해당 빛을 초록색으로 인지합니다. 그래프에서 녹 원추 세포의 활성도는 90퍼센트 정도, 적 원추 세포는 55퍼센트 정도입니다. 하지만 색각 이상자의 경우, 원추 세포가 감지하는 파장의 영역이 특정 원추 세포 쪽으로 쏠려 있어서 다르게 인식될 수 있습니다. 가령 적색약의 경우, 적 원추 세포가 감지하는 파장의 영역이 녹 원추 세포에 쏠려 있고, 녹색약은 녹색 그래프가 빨간 그래프에 치우쳐 있죠.

적색약의 경우, 520나노미터 파장의 빛을 인지할 때 적 원추 세포의 활성도가 75퍼센트까지 올라갑니다. 비색각 이상자와 비교하면 20퍼센트포인트나 차이가 납니다. 그렇게 되면 일반적인 초록색에 붉은 기가 더 섞인 갈색이나 호박색처럼 느껴질 겁니다. 반대로 녹색약의 경우, 녹 원추 세포의 활성도가 비색각 이상자보다 낮아서 초록색이 덜 느껴지는 노란색이나 올리브색에 가까운 색을 보게 됩니다. 색약이 발현되는 구조는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비슷한 색각 패턴이 나오는 탓에 적색약, 녹색약을 구분 없이 적녹색약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색각 이상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어느 정도 될까요?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색각 이상 유병률을 살펴본 2019년 논문 〈Prevalence of Color Vision Deficiency in an Adult Population in South Korea〉[10]이 있습니다. 논문을 보면 한국인의 색각 이상 유병률은 3.9퍼센트입니다. 남성이 6.5퍼센트, 여성이 1.1퍼센트로 남성이 더 많았습니다. 2023년 3월 기준 인구로 따져 보면, 142만 4000명 정도의 남성과 24만 5000명 정도의 여성이 색각 이상을 겪고 있는 셈입니다.

색각 이상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찰

비색각 이상자들이 손쉽게 색으로 구분하는 수많은 것이 색각 이상자들에겐 불편할 수 있습니다.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무언가를 구분 짓는 게 뭐가 있을까요?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운전할 때 보는 신호등이 있을 테고, 공사장이나 안전시설에서 위험과 안전을 표시하는 경우에도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구분 짓습니다.

그렇다면 색각 이상자들은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 짓지 못하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색을 구분 짓지 못하는 완전 색맹은 색각 이상자 중에서도 0.01퍼센트 정도입니다. 완전 색맹 유병률은 전 세계적으로 2만 8000명 중 한 명꼴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의 색각 이상자는 색 구분의 차이가 다르게 느껴질 뿐이죠. 원추 세포가 인지하는 영역에 차이가 있어서 색이 다르게 보일 뿐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실제 운전면허도 신호등 색을 구분할 수 있으면 문제없이 취득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가 색각 이상자들을 차별적으로 대한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경찰, 소방, 항공, 해운, 철도 등 분야에서 색각 이상자의 고용 기회를 원천 봉쇄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찰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끊임없이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죠. 2023년 기준 우리나라 경찰 공무원 채용 시험의 신체검사 기준표를 보면 색약과 색맹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처음 해당 법이 제정됐을 때는 신체검사 기준에 “색맹이 아니어야 한다”고 명시하면서 색맹의 경우에만 취업 제한을 뒀습니다. 그러다가 1999년 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색약도 취업 제한 대상에 포함했죠. 그래도 다행인 건 2006년에 정도가 약한 색약의 경우에는 취업 통로를 열어 줬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도, 강도 색각 이상자에 대한 채용 기회는 전면 배제하고 있습니다.

인권위는 경찰 업무별로 색각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채용 차별에 대한 개선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할 것을 2023년까지 네 번이나 권고했지만 경찰청은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경찰청은 해외 다른 나라도 색각 이상자를 경찰 채용에서 제외하거나 약도 색각 이상자만 채용하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대한민국, 일본, 영국의 경찰공무원 채용 기준표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정말 그럴까요? 영국의 사례를 살펴봅니다. 2016년 개정된 경찰법규를 보면, 영국은 강도 색약의 경우에도 채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색을 다르게 인지하는 만큼 대처 방법을 교육하고 있죠. 일본도 강도 색약은 취업에 제한을 두고 있지만 중도 색약의 경우엔 길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찰청의 이야기와 다르게 색각 이상이라고 취업을 원천적으로 막는 사회적 장애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가장 안 지켜지는 웹 접근성 원칙

스마트폰, 태블릿 PC, 컴퓨터 등 스마트, 디지털 기기가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오면서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양의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만큼 색각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입장에선 불편한 지점이 많을 겁니다. 이런 부분을 조금씩 없애기 위한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WCAG·Web Content Accessibility Guidelines)이 있습니다. 색각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 고령자 가릴 것 없이 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겁니다.
〈2022 웹 접근성 실태조사〉 인식의 용이성 조사 결과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은 색상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웹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대비가 강한 색상을 사용해 색약이나 색맹도 충분히 웹 정보를 인식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내용을 포함합니다. 제도를 갖춘 만큼 모니터링도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매년 전 세계 트래픽 상위 100만 개의 홈페이지를 대상으로 WCAG를 지키고 있는지 체크하고 어떤 부분이 가장 부족한지 보고서를 만들고 있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상황에 맞게 이른바 ‘한국형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KWCAG’을 만들어 배포합니다. 원칙은 크게 네 가지입니다. 웹 콘텐츠를 사용자가 인식할 수 있는지, 웹 콘텐츠 운용이 용이한지, 또 이해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오류 없이 견고한지.

네 가지 원칙을 잘 따르고 있는지 체크하기 위해 매년 조사도 이뤄집니다. 각 원칙을 준수하기 위한 세부 24가지 항목에 대한 실태 조사 보고서[11]가 나오는데, 이에 따르면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2022년 우리나라 웹 페이지의 웹 접근성 점수는 100점 만점에 60.9점. 2019년 53.7점이었던 점수가 2020년 7점이나 올라 60.7점이 되면서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나 했는데, 그 이후엔 매년 0.1점씩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콘텐츠 명도 대비 점수가 제일 낮습니다. 지침은 사용자가 웹 콘텐츠를 명료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다섯 가지 항목을 제시합니다. 저시력자와 색각 이상자를 위한 텍스트 콘텐츠와 배경 간의 명도 대비는 4.5대 1 이상이어야 한다는 지침이 있지만 준수율은 34.0퍼센트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항목들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운 준수율을 기록하고 있어서 그 차이가 더 크게 다가오죠.

색각 이상을 배려한 제도가 필요하다

웹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색각 이상자를 위한 제도와 법안은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국회에 발의된 법안을 살펴볼 수 있는 의안정보시스템에 2000년 이후를 기준으로 ‘색맹’, ‘색약’ 키워드를 넣었을 때 나오는 법안은 단 여덟 개뿐입니다. 그마저도 21대 국회에서 김민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들뿐이죠.

주요 법안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적색 계통과 녹색 계통이 섞여 있는 지도나 도면을 색각 이상자도 구별하기 편하게 하자는 법안. 색각 이상자를 고려한 안내판이나 안전표지, 재난 보호 시설 설치가 필요하다는 법안. 또 색각 이상자를 고려한 투표용지 색까지. 비색각 이상자들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생활 속 색상 정보에서 색각 이상자가 느끼는 불편함을 최소화하겠다는 겁니다.
지방 선거 투표 용지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지방 선거처럼 여러 장의 투표용지를 사용할 경우, 색으로 더 명확한 구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2022년 논문 중에 지방 선거 투표용지를 가지고 색각 이상자들에게 실험을 진행한 자료[12]가 있습니다. 현행 규정에 따라 일곱 가지 색깔의 투표용지를 한꺼번에 교부했을 때 실험 대상이었던 열 명의 색각 이상자들 모두가 계란색과 연미색을 구분하기 어려워했습니다. 청회색과 연분홍색의 구분도 어려워한 만큼 여러 표가 한꺼번에 배부되는 선거에서 색각 이상자들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서울시는 색각 이상자를 배려한 안전표지인 ‘서울 표준형 안전디자인’을 발표했습니다. 공사장 같은 산업 현장은 여러 위험 요인에 노출돼 있어 안전과 직결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제작되는 안전표지에 일관된 기준이 없는 상황이죠.

서울시는 비색각 이상자, 색각 이상자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안전 정보를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안전색을 선정했습니다. 기존에 법적으로 규정된 안전색이 있긴 하지만 색약자들이 구분하기 어려운 색상을 포함한지라 정보 전달에 혼선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색약자들의 테스트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완성한 안전색을 활용해서 조금 더 안전한 산업 현장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저 다르게 보는 것일 뿐

“적록색약 보유자로서 말하자면 사실 영상에 나온 신호등 같은 것보다는 사람들 인식이 더 짜증 나는 것 같습니다. 어딘가에서 ‘사실 적록색약입니다’라고 밝히면 별의별 질문이 다 날아옵니다. 색맹이랑 색약을 구분 못해서 아예 색맹인 줄 아는 경우도 허다하고, 둘의 차이점을 설명하면 적색, 녹색 계열 사진을 들고 와서 이게 어떤 색으로 보이는지, 혹은 두 개 사이에 차이가 느껴지냐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 입장에선 그게 뭘로 보이는지 말하고 싶어도 말 못 합니다. 애초에 색약이라는 말 자체가 특정 계열 색깔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건데, 구분하지 못하면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있겠어요.”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분이 적록색약이었는데 팀원들이 같이 쓰던 문서에 색깔로 구분된 부분을 잘 인지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이후로 스마트폰 앱에 색약 뷰어 카메라를 깔아서 구분 잘 되게 수시로 체크하면서 진행했었네요. 사람마다 보는 게 다른 겁니다. 조금씩 배려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색약을 다룬 유튜브 영상[13]에 올라온 댓글입니다. 색각 이상자와 비색각 이상자를 구분 짓는 건 다수냐 소수냐 문제인 거지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료계도 색각 이상을 질환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색을 보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어디까지나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다수의 기준에 색깔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일부 불편을 느끼는 상황이 생기는 거죠.

선천적으로 색각 이상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자신만의 색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겁니다. 서로 다르면 다른 대로,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으로 배려한다면 불편함이 조금씩 줄어들지 않을까요?
 

다양성이 사라진 미국 대법원


2023년 6월 29일, 미국 최고법원인 연방대법원에서 판결이 나왔습니다. 대입에서 소수 인종을 우대해 온 정책, 이름하여 적극적 우대 조치가 헌법에 맞지 않다는 판결입니다. 차별을 막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위헌이라고 하는 미국 대법원을 두고 시끌시끌했습니다. 바로 질문을 던집니다. 다양성이 사라진 대법원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뒤집힌 적극적 우대 조치

우선 적극적 우대 조치, 영어로 하면 Affirmative Action(AA)이라고 하는 소수 인종 우대 정책에 대해 살펴봅니다. AA가 등장한 건 1960년대입니다. 당시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차별이 미국 내에 있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 연설을 했던 게 1963년이니까요. 흑인뿐만 아니라 아시아인, 히스패닉 등 많은 소수 인종이 편견 속에서 자라 왔고, 사회에 나가서도 차별을 견디며 살아야 했습니다.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당시 미국 정부는 단순한 우대 정책만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상쇄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소수 인종에게 대학 입시 과정에서 특혜를 주는 정책이 탄생했죠. 이때 만들어진 게 바로 적극적 우대 조치 AA입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소수 인종을 우대할 필요가 있다고 설파했고, 그 노력으로 적극적 우대 조치가 미국에 만들어졌죠.

적극적 우대 조치 자체가 소수 인종에게 특혜를 주는 정책인 만큼 ‘역차별’ 논란은 과거부터 있었습니다. 관련 소송도 이어져 왔죠. 때마다 대법관들의 성향이 달라지고, 달라진 성향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은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대법원의 정치 성향을 수치화해서 그래프로 나타냈습니다. 
1937~2021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념 정치 성향 분석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여기서 사용한 수치는 MQ스코어(Martin-Quinn Score)로 대법원 판례를 분석해 대법관의 진보, 보수 이데올로기 성향을 점수화한 자료입니다. 오른쪽(+)으로 갈수록 보수 성향이 강하고, 왼쪽(-)으로 갈수록 진보 성향이 강합니다.

1978년 적극적 우대 조치가 역차별이라며 소송을 건 사람이 있습니다. 앨런 바키는 UC데이비스 의과 대학에 지원했지만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당시 데이비스 의대는 합격자 백 명 중 열여섯 명을 소수 인종에게 할당하는 특별 전형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특별 전형 합격자의 평균 점수는 2.88점으로 일반 전형 합격자 평점인 3.94보다 많이 낮았습니다. 평균 3.46의 성적을 갖고 있던 바키 입장에서 이 특별 전형이 역차별이라고 소송을 건 겁니다.

1978년 당시 대법원의 정치 성향을 MQ스코어로 살펴보면 0.156 정도입니다. 당시 대법관들의 정치 성향을 오른쪽의 그래프에 띠 형태로 넣었습니다. 왼쪽으로 갈수록 진보적 성향을 나타내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보수적 성향을 나타냅니다. 1978년 연방대법원의 수치는 중도보수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대법원은 소수 인종의 자리를 쿼터 운영하는 건 위헌이지만, 적극적 우대 조치 자체는 헌법을 위배하지 않는다고 판결했죠.

2003년에도 비슷한 소송이 있었습니다. 미시간대학교를 상대로 걸었던 소송인데, 중도보수 성향의 당시 대법원은 적극적 우대 조치 자체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죠. 물론 압도적으로 합헌 결과가 나온 건 아닙니다. 대부분 5 대 4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존립해 왔습니다. 2016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202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선택은 위헌이었습니다. 대법원은 ‘공정한 입학을 위한 학생들(SFA)’이라는 단체가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헌법 소원에 대해 각각 6 대 3, 6 대 2로 위헌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래프를 보면 연방대법원의 흐름은 오른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보수화

사실 전문가 대부분은 적극적 우대 조치가 위헌으로 나오는 판결은 시간 문제라고 봐 왔습니다. 과거에도 간당간당하게 위헌을 빗나가기도 했고, 트럼프 정부부터 우경화된 대법원의 흐름상 위헌이 나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가장 많은 대법관을 임명했고 그 영향으로 미국 대법원은 보수화됐죠.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입니다. 본인이 물러난다고 선언하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바뀌지 않죠. 그런데 트럼프 정부 동안에만 두 명의 대법관이 사망했고, 한 명이 은퇴했습니다. 전체 대법관 아홉 명 중 세 명, 3분의 1을 새로 앉힐 기회가 생긴 거죠. 트럼프는 새로운 자리에 전임자들보다 보수 성향이 상당히 짙은 대법관들을 앉혔습니다. 기존의 보수 대법관들도 나이가 들수록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판결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트럼프는 그들의 자리를 젊고 더 보수적인 대법관으로 교체했습니다. 2023년 7월 기준, 미국 연방대법관은 보수 성향 여섯 명, 진보 성향 세 명으로 보수가 앞서 있는 상황입니다.

아래 나오는 그래프를 통해 2023년 미국 대법관의 정치 성향을 봅니다. 앞서 자료와 마찬가지로 MQ스코어를 통해 대법관의 이데올로기 성향을 나타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2022년 임명한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데이터가 없어서 그래프에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잭슨 대법관은 상당히 진보색이 짙은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 적극적 우대 조치 판결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토머스 대법관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판결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죠.
미국 대법관의 정치 성향 ⓒ일러스트: 안준석/마부작침
대학 입시에서 인종 다양성을 보장했던 적극적 우대 조치는 이제 사라졌습니다. 그런 판결을 내린 건 정치적 다양성이 사라진 연방대법원이었고, 정치적으로 편향된 대법원은 과거의 판결들을 다 뒤집어엎고 있습니다. 임신중절권을 보장하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어졌고, 총기 규제, 범죄 용의자의 인권, 정교분리 등에 관해서도 모두 보수적 판결이 나왔습니다. 일부 안건에 대해서는 보수 대법관들도 이념이나 정파를 벗어나 개인 신념에 따라 판결을 내렸지만, 굵직한 이슈에 대해서는 기존 정파의 방향대로 판결하는 상황이죠.

연방대법원의 다양성 부족은 전부터 지적되던 부분입니다. 현재는 정치적 다양성이 부족한 모습이지만 그뿐만 아니라 출신의 다양성도 상당히 부족한 상황이죠. 대법관 대다수가 아이비리그 로스쿨 출신이고 전문 분야도 비형사법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첫 히스패닉계 대법관인 소토마요르는 일찍이 이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대법관이 있어야 동일한 사건을 두고 다른 관점을 가지며 서로 배우고 보완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경직되기 마련이죠. 대법관직 자체가 종신형인 만큼 다양성 부족은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입니다.

소수 인종 우대 조치가 사라진 이후

소수 인종 우대 조치가 사라진 후, 미국 대학은 어떻게 바뀔까요? 그 모습을 미리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캘리포니아입니다. 캘리포니아는 일찍이 주 단위에서 적극적 우대 조치 제도를 금지했습니다. 1996년 통과된 주민제안 209 법안은 주 정부 기관이 고용, 하청, 교육할 때 인종과 성별을 기준으로 차별 대우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 법안은 주민 55퍼센트의 찬성을 받아 통과됐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된 캘리포니아는 적극적 우대 조치를 할 수 없게 됐죠.

1996년 적극적 우대 조치가 금지되자 캘리포니아의 대표적인 대학교인 UC버클리와 UCLA에서는 흑인과 히스패닉 비율이 즉시 감소했습니다. 그 영향은 아직도 남아 있죠. 1996년 이전엔 7퍼센트 수준이었던 UC버클리의 흑인 입학생의 비율은 3퍼센트대 중반까지 하락했습니다. 2022년 가을 학기 기준으로 UC버클리의 흑인 입학생 비율은 3.6퍼센트입니다.
위의 그래프는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모든 캠퍼스 학생 중 소수 인종(흑인, 아메리카 원주민, 히스패닉)의 비율을 나타낸 겁니다. UC버클리와 UCLA에서 UC는 University of California를 의미합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중 버클리 캠퍼스, LA 캠퍼스 등으로 나뉘는 거죠.

1995년 UC 캠퍼스에 등록한 학생 중 20퍼센트가 소수 인종이었습니다. 하지만 1996년 주민제안 209의 영향으로 부침을 겪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캘리포니아대학교는 학내 다양성 유지를 위해 꾸준히 노력했습니다. 노력한 지 11년 만에야 20퍼센트 비율을 회복했죠. 특히 UCLA는 2004년부터 5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면서 인종 다양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2022년 UCLA는 적극적 우대 조치 없이 인종 다양성을 달성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문을 대법원에 제출하기도 했죠.

문제는 다양성 확보의 실패가 단순히 교육 문턱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죠. 대학교 졸업장이 영향을 줄 수 있는 대학원 진학부터 직업기회의 접근성까지 말입니다. 캘리포니아대학교 신입생 데이터와 캘리포니아 연간 연금 데이터를 분석한 2022년 논문에 따르면, 우대 조치 철폐 이후 히스패닉계 학생의 임금이 비슷한 학업 성적을 가진 비 소수 인종 그룹에 비해 감소했습니다. 즉, 계층 이동 사다리 역할을 하는 교육이 소수 인종 우대 제도가 사라진 이후에는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됐다는 겁니다.

우리나라 대법원 상황은?

우리나라 대법원 상황은 어떨까요? 2023년, 윤석열 정부는 특정 대법관의 임명 거부를 예고했습니다. 7월 18일 자로 임기가 만료되는 조재연, 박정화 대법관의 후임을 정하는 과정에서 특정 인물 두 명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후보자가 정해지기도 전에 임명 보류를 선언한 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입니다. 이유는 해당 판사들이 좌 편향됐다는 거였습니다. 참고로 두 후보 모두 여성 대법관이었습니다. 결국 두 판사가 아닌 다른 판사 두 명이 제청됐습니다.

정치 성향이 다른 판사는 배제하고 이념적 성향이 같은 판사로만 대법원을 꾸린다면 다양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공교롭게도 후보로 올라온 두 법조인 모두 서울대 출신의 50대 남성이었습니다. 성별 다양성도 부족하고 출신 배경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죠. 그리고 2023년 7월 두 후보가 대법관으로 취임하면서, 여성 대법관은 네 명에서 세 명으로 줄었습니다. 아이비리그 출신에, 비형사법 전문 법조인, 그리고 유대계로 가득한 미국 연방대법원을 향한 소토마요르 대법관의 지적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관리하는 성인지 통계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2988명의 판사 중 여성 판사는 964명입니다. 전체의 32.3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죠. 2006년 전체 2221명의 판사 중 375명으로 16.9퍼센트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성장입니다. 하지만 대법관은 어떨까요? 역대 대법관 가운데 여성 대법관은 단 여덟 명뿐입니다.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 들어서 여성, 유색 인종, 그리고 직업적 다양성을 고려해 종신 판사직을 지명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약 중 하나로 첫 흑인 여성 대법관 지명을 내세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미국 연방대법원 최초로 여성 흑인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 판사가 임명됐죠.

성별과 인종, 그리고 배경의 다양성보다 능력 중심의 인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능력주의와 역차별 이야기는 우리나라와도 무관하지 않죠. 하지만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라 온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시선이 모여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판단으로 바이든 정부는 잭슨 판사를 임명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건국 이래 역대 어느 대법관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경험을 잭슨 대법관은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Public Defender, 2년간의 국선 변호사 활동입니다. 잭슨 대법관의 능력이 부족하지도 않지만, 기존 대법관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경험을 높이 산 바이든 정부의 선택은 미국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다양성과 능력주의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다양성 확보로 인한 역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능력을 봐야 할까요? 아니면 조직 내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수자를 우대하는 정책이 필요할까요?
[1]
Ed Cumming et al., 〈The rewriting of Roald Dahl〉, 《Telegragh》, 2023.2.24.
[2]
Carmen Fought and Karen Eisenhauer, 〈A quantitative analysis of gendered compliments in Disney Princess films〉, 2016.
[3]
백정국, 〈언어적 유토피아의 불편함: 정치적으로 올바른 고전동화의 역설〉, 《아동청소년문학연구》 29, 2021, 177-209쪽.
[4]
얀 마텔(공경희 譯), 《파이 이야기》, 작가정신, 2020.
[5]
UN, 〈World Population Prospects 2022〉, 2022.
[6]
IPBES, 〈Global Assessment Report on Biodiversity and Ecosystem Services〉, 2019.
[7]
FAO, 〈Global Forest Resources Assessment 2020〉, 2020.
[8]
WWF, 〈Living Planet Report 2022〉, 2022.
[9]
Marlee A. Tucker et al., 〈Moving in the Anthropocene: Global reductions in terrestrial mammalian movements〉, 《Science》 359(6374), 2018.
[10]
Kim Hyojin and Ng Jason, 〈Prevalence of Color Vision Deficiency in an Adult Population in South Korea〉, 《Optometry and Vision Science》 96(11), 2019.
[11]
정보통신기획평가원, 〈2022년 웹 접근성 실태조사〉, 2023.
[12]
이은정 외 3인,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색도 개선 연구: 색각이상 유권자의 구분 가능성 향상과 한국표준색채정보를 따르는 개정안 제안〉, 《Archives of Design Research》 25(2), 2022.
[13]
크랩, 〈우리나라 남성 10명 중 1명은 갖고 있다는 이 ‘증상’〉, 2023.1.9. / 사물궁이 잡학지식, 〈색맹·색약이 보는 세상은 어떨까?〉, 2023.3.18.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