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전도체 대소동; LK-99

8월 1일, explained

인류는 과학으로 한계를 돌파해 왔다. 초전도체는 또 다른 과학혁명의 순간이 될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지난 7월 22일, 논문 한 편이 발표되었다. 우리나라 연구팀이 일반적인 온도와 압력 환경에서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을 구현했다는 내용이었다. LK-99라는 물질이다. 전 세계 과학자들은 뒤집어졌다. 지금도 한창 논문의 진위 여부를 두고 설왕설래가 진행 중이다. 세계 곳곳에서 논문을 검증하기 위한 초전도체 물질 재현에도 몰두하고 있다. 만약 논문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인류의 역사는 새로운 챕터로 접어들게 된다.

WHY NOW

지금 우리는 막다른 골목까지 몰렸다. 지구 온난화의 시대가 끝나고 끓는 지구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인류는 언제나 기술로 역사를 돌파해 왔다. 농경 사회로의 진입이 그러했고, 산업 사회로의 진입이 그러했다. 인류는 가진 줄도 몰랐던 능력을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증명하며 당연했던 과거를 뒤집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 왔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현재까지 전문가들의 반응은 ‘믿을 수 없다’는 쪽이다. 논문 발표 후 아직까지 LK-99의 재현에 성공했다는 보고는 없다. 하지만, 실낱같더라도, 인류의 미래를 바꿀 실마리는 현실 가까이 다가왔다.

슈퍼, ZERO

구리는 전기가 통한다. 플라스틱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구리는 전도체, 플라스틱은 부도체다. 그래서 전선은 전도체와 부도체로 만든다. 구리 선을 플라스틱(PVC)으로 감싸서 만들어야 전류는 흐르되 사람이 만져도 감전되지 않는다. 초전도체(superconductor)는 이름 그대로 ‘슈퍼 전도체’다. 특별한 성질이 있다. 전기 저항이 0이고 자석 위에 둥둥 뜬다.

초전도체의 정체

어떤 도체라도 전류가 흐를 때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뜨끈뜨끈 열이 올라오는데, 이 열에너지가 바로 저항으로 인해 발생한 손실이다. 초전도체는 이런 손실이 발생하지 않는다. 자석 위에 둥둥 뜨는 현상은 자기장을 바깥으로 밀어내는 성질 때문이다.  ‘마이스너 효과’라고 불린다.

혁신이 현실이 되지 못하는 이유

이런 초전도체를 일상생활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초전도 현상이 처음 발견된 것이 1911년이다. 그런데 왜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초전도체는 절대영도(섭씨 영하 273도)에 가까운 극저온, 몇 백만 기압에 해당하는 초고압 상황에서만 실현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예외적이며 실험적인 장소에만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나마 일상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초전도체가 MRI 기계다. 초전도체를 극저온으로 유지하기 위한 냉각 장치 때문에 비싸고, 엄청난 부피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것이 상온에서, 일반 대기압에서도 가능하다니 전 세계가 뒤집힐 만하다. ‘휴대폰 배터리 성능이 좋아진다’, ‘모든 전철이 자기 부상 방식으로 바뀐다’, ‘전기 요금이 낮아진다’ ‘2차전지 산업이 망할 것이다’, 이번 논문이 현실이 될 경우를 두고 갖가지 상상이 난무한다.

지구 온난화를 멈출 방법

하지만 상온 상압 초전도체의 진짜 혁신은 핵융합 발전에서 이루어진다. 현재의 원자력 발전은 핵분열 에너지로 만들어진다. 인간이 원할 때 바로 멈출 수 없고, 분열이 계속되는 동안 방사능이 방출되어 대형 참사의 위험을 안고 있다. 태양 에너지와 원리가 꼭 닮은 핵융합 에너지는 원할 때 바로 멈출 수 있다. 게다가 지구에 매장된 중수소의 양을 감안하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즉, 핵융합 발전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모든 리스크와 불안정성을 제거하고 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를 멈춰 세울 방법이다.

‘인공 태양’을 현실로

아직은 개발 중이다. 하지만 상온 상압 초전도체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핵융합 모델 중 섭씨 1억 도가 넘는 플라스마를 가두는 방식이 유력한 후보 중 하나다. 이 플라스마를 가두는 ‘토카막’을 초전도체로 만든다. 상온 상압 초전도체는 핵융합 발전을 실험실에서 현실 세계로 꺼내 올 열쇠가 될 것이다.

21세기의 핵 버튼

에너지 혁신뿐만 아니라 정보 처리 분야의 혁신도 일어난다. 양자컴퓨터의 대중화를 점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특정 계산이나 암호 및 보안 분야에서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지난 2019년 구글이 개발한 양자컴퓨터 ‘시커모어’가 슈퍼컴퓨터로 1만 년이 걸리는 문제를 불과 200초 만에 풀어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대중화한다면 가장 크게 영향을 받게 될 분야는 안보다. 암호화 및 해독에 특히 엄청난 성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정보화 전쟁 시대, 양자컴퓨터의 성능이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게 된다. 신약 개발 등 분자 단위의 복잡한 시뮬레이션과 계산이 필요한 분야에서도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코로나19와 같이 갑자기 발발한 대형 전염병에 더욱 빠르게 대응할 수 있고, 불치병 및 난치병의 치료에 혁신적인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승자의 조건, 양자컴퓨터

이런 양자컴퓨터의 몇 가지 모델 중 가장 성숙한 플랫폼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바로 ‘초전도 큐비트’다. 태초의 컴퓨터가 진공관으로 연산했고, 지금의 컴퓨터가 반도체에 새긴 회로로 연산한다면 양자 컴퓨터는 초전도체에 새긴 회로로 연산한다는 얘기다. 결국, 초전도체를 가진 국가가 안보에서, 바이오 분야에서, 그리고 연산 기반의 지식 정보 싸움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IT MATTERS

상온 상압 초전도체는 인류의 또 다른 연금술일까? 아직은 알 수 없다. 성공했다면 혁신이고 실패했다면 미신이다. 단, 지금까지 해당 논문이 발표된 과정과 연구자들의 인터뷰를 보면 제대로 완료되지 않은 연구 내용을 알력 다툼 때문에 서둘러 공개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과학계 분위기는 이번 논문도 실패한 연금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연금술을 향한 수많은 도전 속에서 과학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꿈꾸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이도 있었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도 있었다.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고전 역학을 만들어 세운 아이작 뉴턴도 그중 한 명이었다. 뉴턴이 연금술에 심취해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번 논문을 탄생시킨 첫 번째 몽상가는 고려대 최동식 교수다. 최 교수는 1980년대까지 학계의 대세였던 이론을 뒤집었다. 반론이 거셌지만, 자신만의 이론을 밀고 나갔다. 고인이 된 최 교수의 연구를 이어받아 지속해 온 결과가 지난달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상온 상압 초전도체 논문이다. 혁신적인 발전은, 특히 과학 기술의 혁신적 발전은 순간적인 아이디어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제 겨우 30여 년이 흘렀다. 좀 더 기다릴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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