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더리와 스타트업 생태계

2023년 8월 10일, explained

구주를 거래하는 세컨더리 시장이 뜨고 있다. VC와 스타트업 모두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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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더리(secondary) 시장이 뜨고 있다. 투자와 회수 시장이 위축되면서 자금이 묶인 기존 투자사와 투자 시장에서 검증된 기업의 지분을 할인된 가격에 매입하기를 원하는 새로운 투자사 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초기 기업 투자 명가인 DSC인베스트먼트는 2000억 원 규모의 세컨더리 펀드를 조성하고 있다. 모태 펀드도 세컨더리에 5000억 원을 배정한다.

WHY NOW

세컨더리 시장의 호황은 신규 투자의 위축을 뜻한다. 금리 인상으로 투자 시장이 위축되면서 벤처캐피털(VC)의 투자 기조가 고위험 고수익에서 저위험 고수익으로 바뀌었다. 이는 단순히 VC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투자 환경이 변하면서 스타트업의 성장 전략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 스타트업은 유니콘이 아니라 물 없이도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낙타가 되어야 한다.

세컨더리 시장의 호황

투자조합, 즉 펀드의 운용 기간은 통상 7년이다. VC는 펀드 결성 후 보통 1~2년째 투자를 모두 집행하고 나머지 기간 동안 투자 기업을 관리한다. 7년 만기가 되면 기업 공개(IPO)나 M&A로 투자 지분을 청산하고 수익을 정산한다.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리가 오르면서 투자 시장이 위축되자 IPO를 연기하거나 철회하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VC가 IPO로 투자금에다 수익금을 더한 돈을 회수하고, 그 자금을 다시 스타트업에 투자하던 선순환 고리가 끊어진 것이다. 펀드 만기가 다가온 VC는 결국 엑시트(exit) 하지 못한 보유 지분을 할인된 가격으로 다른 투자사에 팔아 자금을 회수하게 된다. 이게 세컨더리 시장이다.

요즘 VC의 투자 트렌드

투자사끼리 구주를 거래하는 세컨더리 시장의 호황은 달리 말하면 신주를 거래하는 신규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 달라질 뿐 회사에 신규 자금은 흘러들지 않는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국내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2조 3000억 원을 기록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퍼센트 급감했다. 요즘 VC의 투자 트렌드는 한마디로 ‘투자하지 않는 것’이다.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후속 투자를 유치하지 못한 스타트업은 지분을 헐값에 팔아 혹한기를 버티고 있다.

기다릴수록 유리한

VC는 펀드 운용 기간 내에 투자금을 소진해야 한다. 돈을 가만히 들고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좀처럼 돈을 굴리지 않고 있다. 기업 가치가 빠르게 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투자 시장이 한창 좋았던 2022년 초만 해도 기업 가치가 1000억 원이던 회사가 지금은 500억 원이 됐다. VC 입장에서는 굳이 지금 투자할 이유가 없다. 시장의 불확실성은 여전하고, 협상력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지금이 아니라 6개월 후에 투자하면 지분을 더 싸게 취득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VC 업계의 양극화

모든 VC가 자금을 넉넉히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투자를 보류하는 것은 아니다. VC 업계에도 양극화가 감지된다. 곳간이 넉넉한데도 시장을 관망하는 VC가 있는가 하면 자금이 말라 투자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VC가 있다. 벤처캐피털협회 조사에서 국내 VC의 79퍼센트가 투자 여력이 없다고 답했다. 실제로 협회에서 발간한 2023년 자료집에 따르면 국내 VC 338곳 중 79곳이 운용 펀드가 없거나 투자 여력이 없는 상태다. 투자 가능 금액이 100억 원 이하인 곳까지 합하면 VC 중 절반이 신규 투자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매력적이지 않은 투자처

VC는 자기 돈으로 투자하지 않는다. 펀드를 조성할 때 LP에게 출자를 받는다. LP는 Limited Partner의 약자다. 개인과 기관 투자자를 포함한 유한 책임 투자자를 뜻한다. 그런데 이 LP로부터 출자를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준 금리는 1년 사이에 0.5에서 3.5퍼센트까지 뛰었다. 자금 조달 비용이 그만큼 늘어났다. 그런데 펀드 수익률은 10퍼센트로 떨어졌다. 기대 수익률과 조달 금리의 격차가 1년 사이에 급감했다. LP가 VC에 자금을 대는 목적은 창업 생태계 활성화가 아니다. 수익을 얻기 위해서다. LP 입장에서 이제 VC 투자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닌 셈이다. 차라리 부동산 투자가 수익 면에서 나을 수 있다.

성장성과 수익성

투자 환경의 변화는 스타트업의 성장 전략도 바꾸고 있다. 2022년 초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하는 공식은 간단했다. 성장성만 입증하면 됐다. 적자를 내고 있더라도 매출이든 사용자 수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면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고, 그 투자금을 마케팅비에 투입해 회사 외형을 더 키우고, 그 지표로 다시 투자를 받는 식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VC의 투자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성장성과 함께 수익성도 본다. 매출액 증가율과 영업이익률을 합쳐 40을 넘어야 한다는 ‘40의 법칙’까지 나왔다. 성장 가능성이 크면서 지금 이 순간 돈도 잘 벌고 있는 기업에만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IT MATTERS

VC와 스타트업 모두 도전에 직면했다.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오르면서 LP들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부동산 자산 위주로 투자처를 찾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VC가 LP를 모으지 못해 펀드 결성 기한을 연기하거나, 아예 펀드 결성에 실패하는 경우도 생긴다. 시장에 자금이 넘치던 시대에 투자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투자 분야를 특화하는 등 하우스의 자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스타트업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몇 년간은 투자 시장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외부 자본 없이도 버틸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 이제는 유니콘이 아니라 물 없이도 몇 달을 버틸 수 있는 낙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오아시스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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