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해변을 지키려는 도시민들

8월 18일, explained

도시는 모두의 것이다. 그래야만 도시가 강해진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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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모나스티리 해변의 주민들이 “우리의 해변을 지키자”가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주민들은 이 현수막을 들고 모래사장을 거닐었다. 이유는 다름 아닌 선 베드였다. 해변 대부분을 뒤덮은 선 베드는 70~100유로, 우리 돈 10~15만 원을 지불해야만 이용할 수 있었다.

WHY NOW

도시의 핵심은 건물도, 자본도, 집값도 아니다. 도시를 만드는 건 결국 도시민이다. 지금의 도시는 일상화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도 도시민의 몫이다. 작품이 아닌 상품이 된 도시는 무너지기 쉽다.

그리스의 해변

해변은 모두의 것이다. 돈과 자격 없이도 누구나 해변을 누릴 수 있다. 현실은 조금 달랐다. 그리스 지방 당국은 해변 일부를 바와 레스토랑, 호텔에 임대해 왔다. 원칙상 해변의 50퍼센트 이상을 기업체가 점유할 수 없도록 정해져 있으나, 많은 사업체가 불법적으로 그 이상의 해변 공간을 점유해 왔다. 모래와 해변이 바와 레스토랑, 호텔의 것으로 대변되는 사유물이 됐다. 주민들은 “우리가 섬에서 밀려나고 있다”고 느낀다며 시위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그리스 판테이온대학교의 한 역사학 교수는 “무자비한 폭리 행위가 만연한 그리스에서 그리스인들은 공적 공간을 되찾기 위해 조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관광

그리스의 모나스티리 해변은 어쩌다 사유물이 됐을까? 큰 이유는 관광이다. 그리스는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관광업에 종사할 만큼 관광 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2021년 기준 그리스 GDP의 12퍼센트가 관광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산업에서 나왔다. 팬데믹은 나라 전체를 위협할 만큼 커다란 사건이었다. 엔데믹 이후에는 관광 의존 흐름이 더욱 가속화했다. 평균 1만 4000명의 사람이 여름에 그리스 파로스섬을 찾는데, 이는 기존 관광 인구의 열 배가 넘는 수치다. 해변가는 여름에 최대한 많은 이윤을 내야만 한다. 객실과 음식, 술은 한정돼 있다. 반면 바다는 무한히 넓어 보인다. 호텔과 바, 레스토랑은 바다를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주민의 자리는 점차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호텔이 가득한 도시

관광업은 그리스의 해변만 바꾼 게 아니었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일이 도시의 목적이 돼버리면서 도시 전체의 풍경이 바뀌었다. 파로스섬의 한 주민은 “1990년대에 가족들은 자녀를 위해 집을 지었다. 지금은 관광객을 위해 집을 짓고 있다”고 표현했다. 엔데믹 이후 그리스의 관광업이 다시 활기를 띠면서 도시는 고급 호텔과 수영장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도시 부지가 관광 명소가 되면서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도시의 선주민들은 점차 외곽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저소득층에게 이 흐름은 더욱 가혹하다. 저소득층의 경우, 가계 예산에서 주거비(임대료)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소득의 20퍼센트를 넘으면 살던 곳에서 계속 살기가 어려워진다. 결과적으로 파로스는 고급 호텔만이 가득한 도시가 됐다.

샌프란시스코

젠트리피케이션과 그로 인한 도시의 변화는 관광 도시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과거 실리콘밸리를 위시한 혁신 도시로 주목받았던 샌프란시스코는 최근 엑소더스에 시달리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2022년 한 해에만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65만 3000명이 다른 주로 이주했다. 전문가들은 샌프란시스코 도심 몰락의 주요 원인을 비싼 거주 비용으로 꼽았다. 2022년 10월 기준, 샌프란시스코의 월세는 뉴욕과 보스턴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기름값과 세율은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생존 비용이 치솟자 노숙자가 양산됐다. 노숙자는 치안을 위협했고 도시는 비어 갔다. 전국커뮤니티재투자연합(NCRC)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심한 도시였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악순환

젠트리피케이션은 다양한 구성을 갖췄던 도시가 젠트리(중산층)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을 이른다. 즉, 젠트리피케이션의 핵심은 도시민을 바꾸는 것이다. 도시민이 바뀌면 도시의 독특성은 사라진다. 도시는 천편일률적인 관광지의 풍경이나 고급 호텔과 같이, 균질화된 상품으로 가득 찬다. 《반란의 도시, 베를린》은 젠트리피케이션을 “지역이 간직했던 수없이 다양한 문화”가 동질적인 문화로 대체되는 과정이라 짚는다.  독특성이 사라진 도시는 상품 가치가 없다. 선주민은 이미 그곳에서 쫓겨난지 오래다. 관광이 끊기거나 주민이 사라지면 도시는 빠르게 황폐화한다. 사유화된 상품으로서의 도시는 모든 도시민이 지키고자 하는 공물(커먼즈)로서의 도시보다 약하다. 금방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짝퉁 도시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주택이 대량 공급된 1987년 이후 한국의 주거권, 도시 투쟁은 ‘집을 가져야만 한다’는 소유권 논쟁에 갇혔다. 모두 내 집 마련의 꿈에 사로잡힌 채 도시 전체가 교환 가치의 규칙 위에서 움직였다는 뜻이다. 그 교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건축가 유현준은 그 규칙의 원형을 강남에서 찾는다. 강남의 기적 이후 계획된 대부분의 도시는 모두 강남을 롤 모델로 삼았다. 분당, 판교, 일산, 세종, 송도 모두 하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유현준은 이를 “짝퉁 도시”라 부른다. ‘강남 같이 보이는’ 도시에 사는 이들은 이른바 ‘진퉁’인 강남을 더욱 욕망한다. 도시민이 만든 역사를 표현한, 일종의 작품이었던 도시는 이렇게 상품이 돼갔다.

도시 정치

건물만으로 도시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반란의 도시, 베를린》의 저자 이계수의 표현에 따르면 도시는 “역사의 작품”이다. 도시라는 작품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공물이기도 하다. 커먼즈는 ‘하나의 의사결정이 배타적인 자격을 행사할 수 없는 자원’이다. 공중 보건과 전자기 스펙트럼, 우주 공간과 폐기물, 고요와 소음까지 모두 커먼즈에 해당한다.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기에 의사결정에서 그 누구도 배제돼서는 안 된다. 따라서 도시는 언제나 민주적 정치의 결과물일 수밖에 없다. 거대한 목표와 이념을 가진 채 일방적으로 이뤄진 도시 개발은 포퓰리즘으로 흐르거나 도시를 황폐화한다. 잼버리가 열린 새만금을 둘러싼 갈등은 그 황폐화의 결과물이다. 참여하는 정치가 없을 때 도시는 무너진다.

IT MATTERS

필요한 건 도시민이 자신의 도시를 지킬 수 있게끔 하는 도구다. 거버넌스를 탄탄히 구축하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다. 거버넌스는 정부, 기업, 비정부기구 등 다양한 행위자가 네트워크를 구성해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국정 운영 방식을 말한다. 정치인에게만, 정부에게만 모든 결정을 맡기지 않는 게 핵심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협동조합 도시로, 공고한 양당제 사이에서 시민 거버넌스를 통해 도시를 운영해 왔다. 바르셀로나는 2008년 금융 위기로 인해 도시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플랫폼 PHA를 창립했고, 이 플랫폼은 새로운 정당인 ‘바르셀로나 엔 코무’로 발전했다. 다양한 욕구의 사람들이 숙의를 거쳐 도시의 시스템을 정립해 나갔다. 협동조합 도시의 시작은 작았다. 다양한 모습의 도시민이 모인 것, 그뿐이었다.

이처럼 도시는 작은 목소리만으로도 바뀐다. 꽁꽁 닫혀 있던 아파트 문을 여는 것에서부터 작은 도서관을 유지하자고 외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정치를 해나갈 수 있다. 그리스의 모나스티리 해변에서 주목할 것은 누가 해변을 소유했는가가 아니다. 도시를 지키기 위해 모래사장을 걸었던 주민들이 위기의 도시에는 더 소중한 레퍼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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