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관계의 리디파이닝

8월 21일, explained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이 새 시대를 열었다. 실익보다 중요한 것은 회담의 실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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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국·일본 정상이 현지 시간 18일 미국 메릴랜드주의 대통령 별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정상 회담을 가졌다. 세 개의 문서가 채택됐다. 3국 협력을 ‘협의체’ 수준으로 높이는 내용을 담은 ‘캠프 데이비드 원칙’, 이를 실행할 방안을 담은 ‘캠프 데이비드 정신’, 역내 공동의 위협과 도전이 발생할 때 상호 협의한다는 약속을 담은 ‘3자 협의 공약’이다. 3자 정상 및 실무진 회의 연례화,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서의 공급망 협력, 상호 안보 협력 등이 골자다. 세 정상은 각국의 언어로 통일되게 ‘새 시대’라는 표현을 썼다.

WHY NOW

한국은 이번 회담으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에 들어선다. 그간 국제 무대에서 한국이 지향해 온 정체성과 전략, 노선은 큰 틀에서 바뀐다. 기업의 전략과 안보 지형도 변한다. 한반도 주변국 국민들의 상호 인식도 달라진다. 정치권은 공방하고 미디어는 실익 따지기에 나섰다. 그런데 속 시원한 분석을 내놓는 곳은 없다. 시민 사회가 집중할 것은 그 이유에 있다. 손익에서 한발 물러서 회담을 다시 그리면 장광설 이면의 구조적 실체가 보인다.

1978 캠프 데이비드 협정

캠프 데이비드는 미국의 정상 외교를 상징하는 역사적 장소다.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은 이곳에서 외교적 개인기를 뽐내 왔다. 30년의 중동 전쟁을 끝낸 ‘캠프 데이비드 협정(1978 Camp David Accord)’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정상을 불러 화해시켰다. 이집트는 아랍 국가의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지배권은 인정됐다. 반쪽짜리 해법이었다. 가치와 힘을 앞세운 중재는 이번 회담에서도 빛을 발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일본과 한국의 긴밀한 협조를 필요로 한다. 과거사 문제가 산적한 한일 관계는 미국 대전략의 골칫거리였다. 중국이 부상할 때부터 두 나라를 화해시키는 것은 미국의 숙원이었다. 마침내 세 정상은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났다. 《뉴욕타임스》는 “미국의 외교적 꿈이 실현됐다”고 평했다.

방기의 우려

치밀한 전략의 승리다. 아베 정권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외교는 한결같았다. 자민당에 승리를 안겨준 극우 여론은 과거사 사죄를 허용치 않았다. 한국 역시 과거사와 미래를 투 트랙으로 하는 대일 외교를 지속했다. 한일 관계는 죄수의 딜레마였다. 양쪽은 서로의 양보를 담보할 수 없었고 반목을 지속했다. 미국은 한일 관계에서 반목보다 협력의 이점을 부각하고자 했다. 때마침 트럼프 정부 시절 미국은 보호 무역 주의와 방위금 분담 위협 등을 통해 동맹국들에 ‘방기의 우려(fear of abandonment)’를 불러일으켰다. 바이든 정부는 첨단 산업을 위시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와 ‘반도체특별법’을 통해 한일 양국을 슬쩍 배제하며 그 암시를 줬다. 과거 일본의 반도체를 무너뜨렸던 ‘미일 반도체 협정’의 데자뷔로 양국은 협력의 동인이 강해졌다.

윤과 기시다의 공통점

그동안 한일 양국은 과거사에 더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까지 이익이 충돌하는 의제가 오히려 늘었다. 워싱턴이 지켜본 한일 양국 정부는 지지율 부진을 겪고 있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장기 집권을 이어 온 아베를 넘어서야 했다. 오염수와 과거사, 두 의제는 신임 기시다 정부의 핵심 이익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내 정치의 잡음에 대해 외연 확장보다는 지지층 결집을 선호하는 성향이었다. 미국은 윤석열 정부의 양보에 베팅하기로 한다. 혼란한 국제 정세에서는 정상 외교를 펼치기 좋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중재해 국내 정치의 위기를 벗어나려는 프랑스, 튀르키예의 대통령처럼 미국은 윤석열 대통령을 외교의 대스타로 만든다. 캠프 데이비드라는 장소, 새 시대 등의 휘황찬란한 용어가 등장한 배경이다.

규칙 기반의 관계

한미, 미일은 이미 동맹 관계다. 이번 회담은 한일 관계를 재정의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화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문제는 한국 정부가 양보해야 할지도 모를 의제들이다. 회담에 앞서 한미일 3국은 ‘규칙(rule) 기반 국제 질서’라는 표현을 강조했다. 미 국방부는 동해상에서 열리는 한미일 군사 훈련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공식 표기하며 논란을 키웠다. 이는 한미일의 관계가 심화할수록 한일 관계에 국제법의 잣대가 강화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2021년 1월 서울중앙지법은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 배상 1차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었다.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을 수 없다는 국제 관습법 ‘주권 면제’를 적용해선 안 되는 문제라 판단한 것이다. 국제법을 강조할수록 과거사 문제에서 운신의 폭은 줄어든다.

모호한 표현

새로운 한일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구체적 협력 방안은 없고 단어는 모호하다. 모두가 실익 분석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다. 캠프 데이비드 원칙, 정신, 공약은 실질적으론 준동맹의 내용이면서 국제법상 통용되는 조약(treaty), 협정(agreement), 선언(declaration) 등의 표현을 비껴갔다. 조약은 국회 비준하에 국내법적 지위를 가진다. 동맹이 여기에 해당한다. 협정은 정치적 요소가 없는 기술적 주제를 합의하는 양자 조약이다. 자유 무역 협정(FTA)이 대표적이다. 안보에서도 쓰인다. 일본 자위대와 영국군은 양국을 사실상 ‘준동맹’으로 보고 ‘방문 부대 지위 협정(VFA)’을 맺었다. 트럼프 정부가 탈퇴한 ‘이란 핵 합의(JCPOA)’는 국제법적 강제력이 없는 신사협정(joint)이다. 단어가 모호한 이유는 비준을 회피하며 비공식적 제도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제도화의 역설

《뉴욕타임스》는 이번 회담 대해 “트럼프 정부가 등장해도 뒤집지 못하도록 제도화했다”라고 평했다. 지속 가능성을 강조한 말이지만 사실 미국의 이익은 제도화로 탄생하는 ‘협의체’ 그 자체다. 과거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개별적 동맹을 맺는 ‘허브 앤 스포크’ 방식을 취해 왔지만 점차 쿼드(Quad)나 오커스(AUKUS)처럼 이를 연결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 결과가 바로 제도화된 협의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원리인 집단 안보는 통상 적성국을 명시한다. 이 밖의 다자간 안보 협력 체제는 적성국을 따로 명시하지 않는다. 기후 위기든 식량 안보든 공동 대응을 한다는 취지가 강조된다. 3국은 집단 안보가 아니라며 선을 긋지만 캠프 데이비드 원칙과 정신에선 중국이 거론된다. 중국이 한미일 회담을 ‘미니 NATO’라 보는 이유다.

연루의 우려

미국 정치학자 글렌 스나이더(Glenn Snyder)는 ‘동맹의 안보 딜레마 이론’을 통해 강대국과 약소국의 비대칭 동맹에서 방기의 우려와 연루의 우려(fear of entrapment)가 나타난다고 했다. 약소국은 강대국이 동맹을 등한시할 우려와 강대국의 싸움에 연루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한다는 뜻이다. 한미 동맹에서의 방기의 우려는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비공식적으로 재정의하게 했다. 문제는 연루의 우려다. 안보 문제를 다룬 3자 협의 공약에서는 ‘유사시 협의 의무’가 논란이다. 의무화가 되면 한국은 미국과 일본의 전략에 의무적으로 발맞춰야 한다. 바이든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를 의무 사항으로 설명했고 정부는 선을 그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 파병을 요구하던 미국에 비전투 부대를 파견하며 타협점을 찾았다. 이때와 같은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IT MATTERS

동북아의 운전자는 사라졌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대원칙도 사실상 파기됐다. 그럼에도 아직 한미일 협의체가 지정학적으로 가져올 효과를 속단하긴 이르다. 국내 비준을 피해 우회적인 협의체를 만들었지만 여론의 판단이 남았기 때문이다. 만약 준동맹에 가까운 협의체가 맞다고 해도 실험해 볼 여지는 있다.

국익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주장은 다음과 같은 예측에 기반한다. 본 회담으로 한국은 일본을 얻고 중국과 러시아를 잃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와의 연대를 강화할 명분이 생겼다. 중국의 경제 보복이 있을 수 있고 북핵 도발 수위가 올라갈 수 있다. 그간 대북 제재에 대해 UN의 승인을 받으려면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가 꼭 필요한데, 앞으로는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그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무역 제재를 해 왔다. 미국·일본과의 교역도 아직 활발하다. 대북 제재 역시 UN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처음 시행된 2006년부터 2022년까지 이행 보고서를 전혀 제출하지 않은 나라가 3분의 1에 달한다.

새 방법론을 적용할 때 시민 사회가 집중할 것은 오히려 한일 관계다. 미국이 말하는 한일 관계의 평화와 한국이 말하는 한일 관계의 평화는 다르다. 흐린 눈으로 보고 넘긴 과거의 상처는 북핵에 준하는 위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쟁이 그랬고 대만과 중국이 그렇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그 모호성과 해석의 차이로 한일 관계의 오랜 과거사 분쟁을 만들었다. 한미일의 새 시대를 정의하는 건 가치와 규칙이 아닌 진정성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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