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주 열풍과 밈 주식

2023년 8월 25일, explained

테마주 열풍이 국내 증시를 덮쳤다. 테마주 강세가 이어지면서 ‘빚투’ 규모는 20조 원을 넘겼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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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체 테마주 열풍이 맥신(MXene) 테마주로 옮겨 붙었다. 테마주 교체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맥신, 초전도체, 이전엔 이차전지 대표주 에코프로가 있었다. 증권가에서는 에코프로를 한국판 밈 주식으로 평가하고 분석을 포기했다.

WHY NOW

투자자들은 이제 증권가 리포트보다 주식 정보 채팅방인 ‘리딩방’의 정보를 더 신뢰한다. 검증이 끝나지 않은 과학 보고서가 투자 기준이 된다. 그러다 보니까 국내 증시는 약세를 보이는데 특정 테마주에만 돈이 몰리는 이례적인 현상이 일어난다. 테마주 강세가 이어지면서 ‘빚투’ 규모는 최근 20조 원을 넘겼다.

초전도체

발표된 건 과학 보고서인데, 우리나라 주식 시장이 들썩였다. 7월 22일, 한국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초전도체 ‘LK-99’를 개발했다는 논문을 공개하자 전 세계가 과학계가 들썩였다. 해외 연구진은 교차 검증에 나서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주식 시장에선 초전도체 테마주가 급등했다. 8월 16일, 국제과학저널 《네이처》가 LK-99는 초전도체가 아니라고 보도하며 관련 테마주의 주가가 급락했다. 하지만 아직 투자 열기는 식지 않았다. 한국초전도저온학회에서 LK-99 검증에 필요한 황산납을 확보했다는 소식만 들려도 주가가 흔들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초전도체 관련주 신성델타테크는 8월 수익률이 220퍼센트에 달했다.

맥신

초전도체 테마주 열풍은 맥신으로 옮겨 붙었다. 8월 17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맥신 대량 생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히면서다. 맥신은 금속층과 탄소층이 겹겹이 쌓인 2차원 나노 물질로, 반도체, 센서 등 다양한 산업에 활용될 수 있어 ‘꿈의 신소재’라고 불린다. 맥신 테마주가 급등하자, 관련 기업 일부는 해명에 나섰다. 휴비스는 사업 계획이 없다며 KIST 연구와의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비스의 주가는 23일 기준 전일 대비 18.76퍼센트 상승했다. 초전도체와 맥신은 기술을 둘러싸고 전문가 의견이 엇갈리고 일반인은 검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에코프로

초전도체, 맥신 테마주의 급등락을 이끄는 건 하나다. 막연한 기대감이다. 올해 테마주 열풍의 시작은 이차전지였다. 그 중심엔 에코프로가 있다. 전기차와 함께 이차전지가 성장할 것을 예상한 개인 투자자들이 몰렸고, 에코프로 그룹의 시가총액은 7월 기준 572조 9906억 원까지 460퍼센트 넘게 폭증하며 웬만한 대기업을 제쳤다. 과열된 투자 양상에 하나증권은 국내 증권사 최초로 매도 리포트를 낼 정도였다. 우리나라 증권사는 매도 의견을 내는 것에 특히 더 신중한 편이다. 향후 업무에서 기업의 협조를 받기 어려울 수 있고, 주주들의 민원이 거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에코프로는 상승했고, 증권가에서는 밈(meme) 주식이란 평가를 내리며 분석 불가를 선언했다.

밈 주식과 헤지 펀드

회사 실적과는 상관 없이 온라인에서 소문을 타면서 주가가 오르는 종목을 뜻하는 밈 주식은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레딧(Reddit)의 온라인 주식 토론방 월스트리트베츠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집중적으로 매수하는 종목이 나타났고, 이들을 밈 주식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주로 월스트리트 헤지펀드가 노리는 기업이 표적이 됐다. 헤지펀드는 공매도를 통해서 수익을 실현한다. 공매도란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식을 파는 것이다. 주가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 와서 미리 팔아 현금을 받고, 실제로 주가가 내려가면 이를 다시 사서 빌린 주식을 갚는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익을 수익으로 가져 가는 것이다.

개미들의 반란

미국 증시는 헤지펀드를 포함한 기관 투자자들의 힘이 세다. 기관 투자자들은 미국 증시에서 15~20퍼센트에 불과한 개인 투자자를 ‘덤 머니(dumb money)’라고 불렀다. 정보와 경험이 부족한 투자자라는 뜻으로, 언제든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개인 투자자들의 분노를 불렀다. 2021년, 헤지펀드는 사양 산업이라 여겨지는 비디오게임 판매 업체 ‘게임스톱’에 대규모 공매도를 걸었다. 그러자 레딧을 중심으로 모인 개인 투자자들은 게임스톱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헤지펀드도 별일 아니라 생각하며 공매도에 큰돈을 쏟아부었지만, 주가가 한때 2000퍼센트 가까이 오를 정도로 화력이 거세지며 헤지펀드들이 타격을 입었다. 

승리 그 후

결국 게임스톱 사태는 헤지펀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히며 개인 투자자의 승리로 끝났다. 이후 제2, 3의 밈 주식이 나오며 개인 투자자들이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밈 주식은 한결같이 불행한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실적이나 가치가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임스톱은 구체적인 사업 모델을 찾지 못하며 개인 투자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또 다른 밈 주식 AMC엔터테인먼트는 파산 위기에 몰렸고 베드배스앤비욘드(BB&B)는 파산을 신청했다. 열풍을 주도하는 개인 투자자 일부는 수익을 거뒀지만, 뒤늦게 올라 탄 사람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헤지펀드와의 전쟁에서 모든 개인 투자자가 승리를 거두지는 못한 것이다.

한국의 증권가

미국의 밈 주식 열풍은 한국에도 번졌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증권가에 대한 분노보다 불신으로 나타난다. 테마주를 둘러싸고 개인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는 정보는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내놓은 리포트가 아닌 주식 유튜브 채널이나  ‘리딩방’이다. 불신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건 매도 리포트 부재다. 증권사에게 기업은 평가 대상인 동시에 주요 고객이다. 그렇다보니 주가 하락을 포함해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없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나온 증권사 리포트 중 매도 의견은 0.04퍼센트에 그쳤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는 우리 증시 특성상 주가 하락으로 수익을 거두려는 투자자가 적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나라 주식 시장에서 팔라는 말은 애초에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IT MATTERS

우리나라 증시는 개인 투자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2021년 기준으로 73퍼센트를 차지한다. 미국의 밈 주식처럼 개인 투자자들이 뜻을 모으면 언제든 주가를 끌어 올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된 믿음이 만들어낸 테마주 열풍이 ‘빚투’로 이어지고 있다. 8월 17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0조 원을 넘었다. 신융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빌린 뒤 갚지 않은 돈을 뜻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국내 증시 전망은 좋지 않다. 미국 경제의 긴축은 장기화될 전망이고 중국의 부동산 위기는 아시아 증시를 끌어내리고 있다. 한국 증시는 침체 상황인데 테마주만 오르는 이례적인 상황, 금융당국은 지속해서 경고음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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