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죽이기
1화

프롤로그 ; 수신료에 쏟아진 스포트라이트

월 2500원. 짜장면값은커녕 짜장면 배달값도 안 되고 커피 한 잔값도 안 된다고 하지만, 누군가에겐 한 끼 식사값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없어도 그만인 돈. 2500원이 큰돈인가 작은 돈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므로 이 돈의 무게를 일률적으로 가늠하긴 어렵다.

우리나라 공영 방송 수신료가 월 2500원이다. 수신료가 월 2500원이라는 것을, 그리고 전기 요금 낼 때 수신료를 같이 납부해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2023년 7월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되고, 수신료를 전기 요금과 분리하여 징수한다는 정부 발표가 있기 전까지 공영 방송 수신료는 한 번도 제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이 없다.

공영 방송 수신료가 월 2500원으로 결정된 것은 1981년이다. 전기 요금과 함께 고지하여 합산 징수를 시작한 것은 1994년이다.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신료 액수에 대한 것이든, 징수 방식에 대한 것이든 수신료가 지금과 같은 관심사가 된 적은 없었다.

2023년의 수신료 분리 징수 결정은 최소한 수신료를 무대 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수신료가 얼마인지, 수신료를 어떻게 내고 있으며 안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안 내면 어떻게 되는지를 상세하게 소개하는 기사가 넘쳐난다. 문제는 수신료 분리 징수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안 수신료를 근간으로 운영되는 진짜 주인공, 공영 방송이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KBS는 편파적이고 방만하다.’ 강한 프레임 아래에서 역설적으로 한국 공영 방송의 민낯은 가려진다. 누가 공영 방송이고 공영 방송은 왜 필요한가. 이 사회가 공영 방송에 요구하는 역할은 무엇이고, 실제로 KBS는 그 역할을 잘 수행해 왔는가. 아쉬운 지점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누구도 묻지 않는 질문이다.

더 큰 문제는, 수신료를 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수신료가 월 2500원이었는지, 전기 요금에 합산해서 내고 있었는지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처럼 수신료가 분리 징수된다고 해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리 징수가 잘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관심이 없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그만큼 공영 방송의 존재감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청와대와 여권이 수신료 분리 징수를 추진할 수 있던 동력 역시 이 무관심과 냉소였다.

한때 인구에 회자됐던 칼럼이 있다. 사람들은 평상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별 관심이 없지만, 자신의 존재 규정을 위협할 만한 특이한 사태가 발생하면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칼럼을 쓴 서울대학교 김영민 교수는 추석 명절에 추석이라는 걸 핑계로 친척이 취직과 결혼, 출산 계획을 물으면 “추석이란 무엇인가”라고 답하고, “너 대체 결혼할 거니, 말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대답하라고 했다.[1] 수신료 분리 징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수신료 분리 징수가 옳은 것인가 옳지 않은 것인가. 이런 질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답해야 하지 않을까? “공영 방송이란 무엇인가.” 이제 그 답을 할 때다.
[1]
김영민, 〈추석이란 무엇인가〉, 《경향신문》, 2018.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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