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죽이기
6화

새로운 KBS

공영방송이란 무엇인가


이제,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공영 방송이란 무엇인가. 기존의 논의에서 공통으로 제시되는 공영 방송의 요인들은 공적 소유, 공적 재원, 공적 서비스 등이다.[1]

공적 소유란 무엇인가? 국가의 것도 아니고 민간 사기업의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가 소유하는 방송, 즉 국영방송은 국가 정책을 널리 알리는 데는 효율적일 수 있지만, 정부와 정책을 비판하기는 어렵다. 대표적으로, 중국의 CCTV가 중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시진핑 주석을 비판하는 보도를 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진 않는다. 민간 사기업의 방송이라면, 그 소유주가 누구든 소유주에게 부정적인 보도를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공적 재원이란 무엇인가? 방송을 만들고 내보내는 데 들어가는 큰 비용을 시민에게서 충당하는 것이다. 방송사가 수입을 얻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광고다. 광고주가 광고를 하고 싶은 방송은 시청률이 잘 나오는 방송이고, 광고를 많이 판매하기 위해서는 시청률이 잘 나오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을 프로그램은 만들기 어렵다.

그런데 시청률이 낮아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 예를 들어 세대·지역·젠더 간 갈등처럼 의견이 나뉘는 문제에 대한 토론 프로그램은 누구도 선뜻 만들려고 나서지 않는다. 어느 쪽에서도 박수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음악 프로그램을 예를 들어 보자. 케이팝 외에도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음악, 인류의 뛰어난 문화적 성취물인 클래식 음악, 우리 고유의 국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잘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광고 없이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려면 광고가 아닌 다른 재원을 찾아야 한다. 드라마 장르를 떠올려 보자. 〈오징어 게임〉 같은 블록버스터급 K-드라마도 필요하지만, K-드라마의 토대로서 신진 작가, 연출자, 배우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장도 필요하다. 그런데 검증되지 않은 이야기는 시청률을 보장할 수 없다. 광고주들이 눈독을 들일 이유도 없을 것이고, 그러다 보니 광고가 아닌 다른 재원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공적 재원의 대표적 방식이 시민이 직접 납부하는 수신료다.

마지막으로 공적 서비스란 무엇인가? 앞서 제시한,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공적 서비스에 해당한다. 공적 서비스에 해당하는 영역은 매우 다양하다. 영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 제작부터, 재난·재해 관련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장애인이 보다 편리하게 방송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수어와 자막, 화면 해설 방송을 지원하는 것, 지역이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 해외에 우리 문화와 콘텐츠를 알리는 것, 혁신적인 방송 기술을 개발하고 전파하는 것, 한국의 영상 콘텐츠를 주도할 창의적 인력을 육성하는 것, 국가가 하지 못하고, 민간 기업도 할 수 없는, 혹은 할 생각이 없는 서비스들이지만 우리 사회의 영상 콘텐츠 문화 수준을 제고하는 데 필요한 일들이라면 모두 공적 서비스에 해당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를 종합해 보면 공영 방송이란 공적인 소유, 공적인 재원, 공적인 서비스를 토대로 삼는데, 이 세 가지 차원이 어떻게 마주하느냐에 따라 공영 방송의 모습은 달라진다. 공적 소유, 공적 재원, 공적 서비스의 양태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공적 소유는 공사의 형태일 수 있고, 공익 법인이 소유한 주식회사 형태일 수도 있다. 공적 재원은 세금일 수도 있고 수신료와 같이 국민이 내는 부담금일 수도 있다. 100퍼센트 공적 재원으로만 운영할 수도 있고, 공적 재원과 함께 광고 재원을 활용할 수도 있다. 공적 재원과 광고 재원의 비중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공적 서비스의 내용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회에서는 뉴스 보도만 공적 서비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어떤 사회에서는 각 지역 내 방송만 공적 서비스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다.

공영 방송이 어떠한 모습으로 구체화하는가 하는 것은 결국 공영 방송이 속한 그 사회의 합의에 기반한다. 태생적으로 사회적 기구인 공영 방송은 해당 사회가 수용 가능한 공적 소유의 형태, 공적 재원의 조달 방식, 공적 서비스의 범위로 구체화된다. 중요한 것은 ‘소유 구조는 이러해야 하고 재원은 저러해야 하며, 어떤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공영 방송이다’라는 개념적 정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영 방송은 왜 필요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며, 그 역할을 해야 할 방송사는 누구로 할 것인지, 공영 방송을 운영하는 데 재원은 얼마나 필요하며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를 논의하는 것이다.

이 모든 논의는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문화·역사적 특수성을 배경으로 할 수밖에 없다. 보편적인 공영 방송의 모습은 개념적으로만 정의할 수 있을 뿐이며, 현실의 공영 방송은 그 제도를 택한 나라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2]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과 우리나라의 공영 방송은 각기 다른 형태, 재원, 서비스 내용으로 구현되는 것이 당연하다. 무정형의 공영 방송은 그 사회의 합의를 기반으로 해당 사회에 부합하는 양태를 지니게 되며, 법 제도적 근거를 갖춤으로써 사회적 지원과 사회적 책무 부여의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한 번도 이런 논의를 해본 적이 없다. TV에서 볼 수 있는 채널이 KBS, MBC, SBS, EBS 4개 채널뿐이었을 때는 이러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1995년 케이블TV가 등장하고 채널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지만, 프로그램 수준이 지상파 방송사들과 현격한 차이가 났던 시기에도 이러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지금은 다르다. 시청자들은 지상파 방송 외에도 TV조선, JTBC, 채널A, MBN을 통해 뉴스를 볼 수 있고, tvN과 다수의 채널을 통해 지상파 방송보다 재미있는 예능과 드라마를 본다. TV뿐 아니라 핸드폰을 통해 수만, 수십만 편의 콘텐츠를 넷플릭스와 유튜브로 본다. 이런 미디어 환경에서도 공영 방송은 필요한가? 왜 필요한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그 역할을 하려면 얼마나 재원이 필요한가? 그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우리 사회에서 공영 방송은 막연히 KBS로 인식되어 왔다. 그리고 KBS에 대해 다분히 정치적인 비판과 문제가 제기되어 왔고, 이 비판은 당대의 집권자와 집권 세력의 주관적 인식을 반영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공영 방송에 대한 논의는 변화된 미디어 환경이라든지, 수신료를 납부하는 시청자의 목소리라든지, 그런 차원이 아니라 집권 세력과의 관계 속에서만 앞날을 예비하는 불안정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새로운 가치를 찾아서


이 불안한 공영 방송의 미래 가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앞서, KBS의 리빌딩을 위한 과제로 공영 방송 스스로의 혁신과 거버넌스를 포함한 법 제도 개선, 공영 방송 규제 체계의 전면적인 개편, 내외부 규제 기구의 변화, 재원 안정성 확보를 위한 논의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제시했다. 이를 보다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에서 풀어 보자.

KBS의 존재 이유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지금과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도 공영 방송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정치권력이나 집권층이 하는 것이 아니고,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영 방송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한 답은 공영 방송의 일차적 이해 당사자인 시민에게 물어야 한다. 즉, 공영 방송의 새로운 가치 정립은 우리 사회에서 KBS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공적 목적이다. 공영 방송만의 차별화된 공적 목적은 공영 방송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BBC의 2016년 칙허장은 검토 과정에서 19만 2564개의 의견이 공개적으로 수집되고 4000여 명의 영국 국민이 직접 설문에 참여했으며 300명 이상의 자문 위원과 단체가 참여한 대대적인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친 결과물이었다.[3] 이러한 논의를 거쳐 2016년 칙허장에 명시된 BBC의 공적 목적은 ① 편파적이지 않은 뉴스와 정보의 제공, ② 아동과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연령의 학습 지원(support learning), ③ 창의적이며 고품질의 차별적인 내용물과 서비스 제공, ④ 다양한 공동체의 반영
(reflect/represent), ⑤ 영국의 문화와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4]

우리 사회의 공적 목적을 찾기 위해서는 이러한 사회적 논의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시민의 관점이다. 시민은 공영 방송 재원의 일차적 담지자이며, 공영 방송 역무가 제공하는 내용과 편성 면에서도 최대 이해관계자이기 때문이다.[5] 시민의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공영 방송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즉 공영 방송의 공적 목적에 대한 공개적이고 기탄없는 논의다.

공영 방송 제도 자체가 그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적 배경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고, 따라서 각 사회가 요구하는 공영 방송의 공적 목적도 상이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BBC의 경우 아동과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연령의 학습 지원을 공적 목적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EBS의 존재를 생각하면 아동과 청소년의 학습 지원이 KBS의 공적 목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공영 방송의 새로운 가치로서 우리 사회 공영 방송의 공적 목적을 도출하기 위해, KBS는 독자적으로 그리고 필요하다면 규제 당국과 함께 공영 방송의 공적 목적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을 해야 한다. 대규모 국민 인식 조사부터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심층적 논의, 시장 내 사업자들과 전문가, 학계 및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포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KBS의 활동 범위

공영 방송의 공적 목적이 정해지면,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공영 방송 사업자가 수행하는 활동의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아래 표는 현재 KBS가 수행하고 있는 서비스 내용들이다.
공영 방송이 이와 같은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지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KBS는 이러한 사업 내역을 공적 목적에 비추어 재검토하고, 향후 확대해야 할 서비스와 축소해야 할 서비스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들어 조정해야 한다. 각 사업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 규모도 산출해야 한다.

사업의 목적과 재원 규모를 산정한 후에는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물론 현재의 재원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의 재원 상황이 매우 열악하고 수신료 분리 징수로 인해 더욱 불확실해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의 재원 규모에 맞춰 공적 책무를 재설정하게 되면, 공적 책무의 양과 질은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공영 방송의 미래 전망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현실적으로 현재의 재원 상황을 고려해 공적 책무의 범위를 재설정하는 작업과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공영 방송의 공적 책무에 필요한 재원을 산출하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즉,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공적 목적을 도출하고 이를 위한 사업 영역과 필요한 재원 규모를 산출하는 동시에 현재의 재원 규모를 고려하여 공적 책무의 범위를 조정해야 하는 것이다.

재원 마련 과정에서는 수신료, 세금, 상업적 수익 등 다양한 방법을 모두 고려하면서 각 재원 간의 비중과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앞서도 강조했지만, 이 논의 과정에서 시민의 의견은 필수적이며 최우선이다.

KBS의 의무와 책임

공영 방송의 공적 목적과 사업 영역을 정하고 나면, 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의 내용을 구체화해야 한다. 의무와 책임을 다했는지 평가를 수행하고 평가의 결과를 환류하는 절차도 필수적이다.

평가는 법적 의무 사항을 중심으로 한 자체 평가와 이에 대한 외부 규제 기구의 검토 및 평가, 자율적 책임하에 실시되는 설명 책임 노력을 포괄한다. 궁극적으로 공영 방송의 성과를 제고하기 위한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이때 법적 의무는 규제 기관과 KBS의 상호 의견 교환을 통해 설정된다. 규제 기관은 공영 방송사가 공적 목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을 중심으로 공영 방송사의 법적 의무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의무의 설정이 공영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해서는 안 되고, 공영 방송의 경영 자율성을 저해해서도 안 된다.

공영 방송 쪽에서는 규제 조건에 대한 의견과 더불어 공적 목적 달성을 위해 스스로 수행할 책임 사항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공영 방송이 자임하는 책임의 내용은 시민과의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마련되어야 하고, 그 과정과 성과를 통해 공영 방송의 설치와 재원 보장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공영 방송의 새로운 가치 정립에서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결국 누가,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설명 책임을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매년 연차 계획서와 연차 보고서, 회계 보고서를 제출하며 규제 기관의 검토를 받는 것은 최소한의 설명 책임 의무에 해당한다. 이외에도 공영 방송은 자임한 책임을 이행하기 위한 계획과 활동 내역을 시민과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비정기적·비정형적 형태로 공표하고 평가받아야 한다. 이러한 설명 책임의 주체는 이사회가 된다. 경영 전반에 대한 계획과 성과뿐 아니라 공영 방송에 제기되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보도의 공정성 문제나 콘텐츠의 내용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면, 제작진은 경영진에게, 경영진은 이사회에 설명하고 이사회가 그 설명의 내용을 검토한 후 외부 규제 기구와 국회, 전문가, 시민들에게 공개적으로 답변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공영 방송 이사회는 공영 방송 내부의 일차적 감독 기관이자 최고 의결 기관으로서 공영 방송을 대표하고 책임지는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KBS를 다시 시민의 품으로

시민과의 직접적인 소통과 지속적인 의견 수렴은 공영 방송 리빌딩에 있어 핵심 사안이다. 공영 방송이 시민과 직접 소통하지 않으면 국회, 정치인, 규제 기구, 언론이 자신의 틀로 해석하고 비판한 공영 방송의 모습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공영 방송의 편에서 공영 방송의 방패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은 시민의 지지뿐이다.

시민이 공영 방송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존재 가치를 긍정해야 공영 방송은 집권 세력을 포함한 정치권과 기업과 같은 자본의 영향력, 다수의 이해 세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다. 집권 여당이 공영 방송의 편을 들거나 혹은 억압하려 할 때, 특정 세력이 공영 방송을 옹호하거나 기업이 공영 방송의 돈줄이 될 때, 공영 방송은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지금 KBS에 가장 아픈 부분도 바로 이 부분이다. 정치권이 자신의 뜻에 맞는 이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임기가 남은 사장을 해임해도, 충분한 논의 없이 시행령 개정으로 수신료를 분리 징수한다고 해도 시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공영 방송은 지금까지 시청자를 대상으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공영 방송의 실태와 운영과 비판에 대한 답변은 거버넌스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권과 국회, 규제 기구만을 대상으로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시민에게 복무하는 공영 방송으로 지향점을 분명히 할 때 공영 방송은 다시 설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공영 방송은 정치권력의 향배에 따라 흔들리고 다수의 이익 집단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며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하면서 늘 모든 이로부터 존재 이유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공영 방송을 위해 촛불을 들 수 있는 시민은 공영 방송이 만들어 가야 할 미래다. 정치적 양극화와 빈부 격차가 심화하고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신뢰할 수 있는 보도, 취향이 달라도 품질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 나는 이용하지 않지만 누군가에겐 필요한 서비스, 그래서 이런 방송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할 때 가장 먼저 KBS가 언급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공영 방송의 오래된 미래, 낡았지만 새로운 가치일 것이다.
[1]
강형철, 《공영 방송론: 한국의 사회 변동과 공영 방송》, 나남, 2004.
이준웅, <공적인 것, 정치적인 것, 그리고 불편한 것>. 《한국방송학보》 23(2), 2009., 485~525쪽.
정준희, <한국 공영 방송 제도의 이상과 현실- 복수 해답으로서 공영 방송 제도와 한국적 경로에 대한 모색>, 미디어공공성포럼 2010년 제1차 정기워크숍 발제문, 2010.
[2]
강형철, 《공영 방송론: 한국의 사회 변동과 공영 방송》 나남, 2004.
이준웅, 〈공적인 것, 정치적인 것, 그리고 불편한 것〉, 《한국방송학보》 23(2), 2009., 485~525쪽.
정준희, 〈한국 공영 방송 제도의 이상과 현실- 복수 해답으로서 공영 방송 제와 한국적 경로에 대한 모색〉, 미디어공공포럼 2010년 제1차 정기워크숍 발제문, 2010.
공영 방송 제도는 특정 사회의 역사 속에서 당대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기술적 조건 아래 변화해 왔다.
영국은 1922년 라디오 수신기 제조업자들이 모여 설립한 사기업 컨소시엄 형태의 BBC가 공익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을 수렴하여 크로포드(Crawford) 위원회가 제안한 ‘공사(public corporation)형 국익의 수탁자(trustee for the national interest)’ 모델을 받아들여 영국 국왕이 부여하는 칙허장Royal Charter을 근거로 한 공영 BBC가 1927년 발족하였다.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아닌 국왕의 칙허장(Royal Charter)을 근거로 한 것은 구조적으로 정부로부터 독립적이기 위함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나치 시대 국영 방송에 대한 반성과 연합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해 방송을 국가로부터 독립한 주체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에서 새로운 방송 질서의 구축을 시도했다. 방송의 설립권을 연방에서 주(州)로 넘기고 방송의 지방 분권을 도입함으로써 다양성을 유지하도록 했으며, 공영 방송의 법적 형태를 공법상의 영조물(offentliche Anstalt)로 함으로써 방송법의 제정에 있어서 독일적 특성을 부여했다. 독일법에서의 ‘영조물’이란 공익 목적의 지속 실현을 위한 인적·묵적 종합 시설물로써, 영조물로써 공영 방송은 자치 행정권이 보장되기에 독립성 및 정치적 중립성 확보에 유리하다.
일본의 경우 2차 세계 대전 후 미군정이 일본의 방송을 공·민영 이원 체제로 재편하면서 사실상의 관영 방송이었던 NHK를 정부로부터 분리해 ‘공공법인체적 특수법인’으로 재구성했다. NHK의 위상은 일본 방송법 제2장에 규정되어 있으나 법적으로 공영 방송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내려진 것은 아니며 방송법 제7조에 NHK의 설립 목적으로 ‘공공의 복지를 위해서, 보편적으로 일본 전국에서 수신할 수 있도록 풍부하고 양질의 방송 프로그램에 의한 국내 방송을 하거나 또는 해당 방송 프로그램을 위탁해 방송하도록 함과 동시에, 방송 및 그 수신의 진보 발달에 필요한 업무를 하고, 아울러 국제 방송 및 위탁 협회 국제 방송 업무를 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3]
정은진, 〈영국 BBC 공영 방송의 칙허장 갱신: 공영 방송 지배구조와 규제체계 변화를 중심으로〉, 《정보통신방송정책》 29(4), 2017., 1~26쪽.
[4]
BBC 칙허장 참조. Broadcasting: copy of the Royal Charter for the continuance of the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2016.
[5]
이준웅, 〈변화하는 시대의 매체 공공성 규제체계〉. 한국방송학회 세미나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의 바람직한 정책방향 모색》 자료집, 한국방송회관, 2021. 3. 24.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