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 않은 한국의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2023년 10월 13일, explained

작은 책상의 소박한 공연, 타이니 데스크가 한국에 들어왔다. 오리지널과는 다르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NOW THIS
 
미국 공영 방송 NPR의 음악 프로그램 ‘타이니 데스크(tiny desk)’가 한국에 들어왔다. 김창완 밴드, 선우정아, 뷔 등 뮤지션들은 도서관 한쪽에 자리 잡고 15분간 노래한다. 날것의 모습을 그대로 담은 영상은 유튜브에 올라온다. 영상의 음질과 퀄리티는 ‘귀 호강’ 급이다. 상징성 있는 프로그램을 한국에 들여와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댓글이 많은 반면,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의 콘텐츠는 타이니 데스크가 아니라는 평가도 나온다.

WHY NOW

꽉 들어찬 책장과 복잡한 책상 사이에 끼어 노래하는 뮤지션의 모습, 음악 팬이라면 한 번쯤 봤을 법한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 화면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이 IP를 가져온 것은 한국의 LG유플러스다.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는 공연이 이뤄지는 LG유플러스 사옥 1층 도서관이 아시아 음악계의 새로운 거점이 되길 바란다. 음악 시장이 양극화된 지금, NPR도 LG유플러스도 변방에서 의미를 찾아 보려는 시도일 수 있다. 최초의 시도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사람들이 왜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에 열광했는지 알아 보며 분석한다.

작은 책상

작은 책상은 타이니 데스크라는 프로그램의 이름이자 정체성이다. 2008년 4월,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NPR 본사에서 프로듀서 밥 보일런의 책상에 싱어송라이터 로라 깁슨이 기타를 하나 들고 앉은 것이 콘서트의 시작이었다. 로라 깁슨의 콘서트가 있고 두 달 후인 6월, 빅 체스넛의 두 번째 콘서트가 열렸다. 한 달에 한두 번 열리던 콘서트는 몇 년 지나지 않아 한 주에 두세 번 열리는 콘서트로 진화했다. 사무실의 좁은 공간에서 열리던 콘서트는 코로나19 당시에는 뮤지션들의 집으로 옮겨가 비대면으로 이뤄졌고, 지금은 다시 오피스 책상 뒷공간에서 ‘이상하게(awkward)’ 열리고 있다.

화려한 스타가 아닌, 나와 호흡하는 뮤지션

무대도, 조명도, 음향 장치도 없다. 타이니 데스크는 그래서 특별한 콘서트가 됐다. 프로듀서 밥 보일런은 로라 깁슨의 첫 공연 후 “친밀감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콘서트에는 화려한 효과는 없지만 스튜디오 녹음에서 사라지는 미묘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일시 중지, 갑자기 나오는 딸꾹질의 어색한 순간, 머그잔과 키보드가 흩어져 있는 책상에서 뮤지션은 노래하고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사람들은 진정성을 보았고 위로를 느꼈다. 오토튠을 이용해 목소리를 변조하던 티페인(T-Pain)도 타이니 데스크에서만큼은 자신의 진짜 목소리로써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기술을 제한해 예술을 만든 순간이었다.

공영 방송 NPR의 캐스팅

NPR은 미국의 몇 안 되는 공영 방송이다. 민영 방송의 힘이 센 미국에서 타이니 데스크는 공영 방송인 NPR의 대표 콘텐츠이자 독자적인 수익 모델을 만드는 빛과 같은 프로그램이다. 공영 방송이기에 가질 수 있는 성격도 있다. 출연진이 다양한 것이다. 밥 보일런은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섭외 시 지명도나 비용 같은 건 이야기하지 않는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믿고 좋아하는 뮤지션이 타이니 데스크의 주인공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타이니 데스크에는 요요마와 랑랑 등 클래식 뮤지션부터 존 레전드, 아델 등 팝스타, 잘 알려지지 않은 얼터너티브 록 밴드와 힙합 뮤지션 등이 다양하게 출연한다. 한국의 전통 음악 밴드인 씽씽과 잠비나이도 한국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을 당시 타이니 데스크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NPR은 ‘들어본 적 없지만 항상 필요로 했던’ 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 주었다.

한국의 작은 책상
 
한국에서도 타이니 데스크가 열린다. 그런데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는 작은 책상과 기타 하나로 시작하지 않았다. LG유플러스가 사업 다각화 일환으로 꾸린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X+U가 NPR과 IP 사업권을 계약하고 사옥 도서관을 꾸며 콘서트장을 만들었다. 책장과 책상으로 꾸려진 세트장 한편에서, 가장 처음으로 김창완 밴드가 노래했다. ‘아리랑’과 ‘너의 의미’를 연주하고, “작은 것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밴드의 모습은 진정성 있고 아름다웠다. 음악의 퀄리티도 훌륭했다. 그러나 NPR의 타이니 콘서트와는 확실히 달랐다.
 
작지만 작지 않은(tiny but not so tiny)
 
일터에 불쑥 찾아와 어색하면서도 자유롭게 노래하는 것이 오리지널 타이니 데스크의 매력이라면, 코리아 버전은 세트장에서 연주가 이뤄진다. ‘타이니’하지 않은 공간에 타이니를 욱여 넣은 인상이다. 인이어도, 공연장용 스피커도 없고 무대용 마이크 대신 더빙에 사용하는 지향성 마이크를 사용하는 등 사운드 구현에 있어서는 오리지널을 따랐지만, 형식적 유사성을 넘은 ‘한끗’은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피어난 콘텐츠가 아니라 그것의 형식을 수입한 IP 콘텐츠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오리지널 팬들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김도헌 음악 평론가는 자신의 SNS에 “왜 타이니 데스크여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아쉬움이 있다”고 적었다.
 
왜 타이니 데스크여야 하는가
 
코리아 팀은 라이선스를 확보하기 위해 “철학과 제작 방식을 온전히 유지하겠다”고 NPR을 설득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딩고 라이브, 네이버 온스테이지 등 다른 유튜브 라이브 콘텐츠와 큰 차별점이 보이지 않는다. 김도헌 평론가는 앞선 SNS 게시물에, ‘현장감을 위해서라면 세트장 대신 기자실 라이브를 참고하고, 차별점을 찾으려면 개성 있는 편곡을 덧붙이고, 한국 음악을 알리려면 원 채널과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타이니 데스크를 이식해 온 목적을 명확히 하자는 뜻으로 읽힌다. 코리아 콘텐츠의 리스크이자 가능성은 섭외다. 코리아 팀은 아시아 음악의 거점이 되기 위해 다양한 장르와 국적의 뮤지션을 섭외하겠다고 밝혔다. 음악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 목적이라면 다양한 뮤지션과 함께함으로써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그런데 타이니 데스크는 LG유플러스가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공익적 목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사업 다각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한 콘텐츠다. 조회 수를 택하는 순간 개성은 더욱 지워질 우려가 있다.
 
산업 안에서 찾는 진정성

음악은 산업이다. 인디 레이블 붕가붕가 레코드의 슬로건처럼 음악은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이어야 한다. 뮤지션을 넘어 음악을 두고 사업하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그리고 사업적인 선택이기에 더욱 본질에 주목해야 한다. LG유플러스 측은 타이니 데스크가 “팬층이 있는 검증된 IP”라는 지점이 중요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검증된 IP의 핵심을 더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타이니 데스크는 우리가 어떤 음악에서 행복을 느끼는지를 보여줬다. 화려한 조명 아래가 아닌 일상의 공간 속에서, 사람들과 눈 마주치며 때로는 어색해 하거나 틀리고 땀 흘리는 뮤지션의 모습, 귀를 깨우는 새로운 음악, 그 음악을 함께 즐기는 사람들의 존재는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남아 행복의 기억을 만들었다. 이것이 타이니 콘서트 코리아가 우리에게 재현해 줘야 할 의미 있는 경험이다.

IT MATTERS

음악 시장이 양극화되면서 뮤지션과 눈을 맞추고 호흡할 수 있는 공간은 사라진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3년 음악 백서〉에 따르면, 오프라인 콘서트 수요는 이전에 비해 전반적으로 늘어났으나 그 비율은 해가 갈수록 대중음악 콘서트에 집중된다. 반면 라이브 클럽 등 인디 공연의 비중은 16.2퍼센트에서 13.3퍼센트로 2년 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공연장이 문을 닫았고, 공연 관련 가치 사슬도 타격을 입은 탓이다. 이로 인해 오프라인 콘서트의 가격도 상승했다.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연장과 복합 문화 공간은 서울 홍대권에는 남아 있을지 몰라도, 지방에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우리나라에서 음악의 공간은 K팝에겐 넓지만, 다른 나머지에겐 여전히 너무나 좁다. 음악 콘텐츠는 대다수의 아이돌 무대에 쏠려 있고 영미권의 BBC 뮤직, KEXP, 피치포크 등 라이브 무대를 제공하는 다양한 채널이 없다. 일상에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나의 헤드폰 속이 유일하다.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는 이렇게 쏠려 있는 음악 시장에 하나의 선택지를 더해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어렵게 가져온 특별한 IP가 빛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경험이 콘텐츠에 더해져야 한다. 우리가 일상의 순간에서 음악으로부터 받는 위로, 그 폭을 확장하는 경험이다. 음악 소리를 넘어, 뮤지션의 숨소리까지 영상에 담겨야만 콘텐츠 내적으로도, 사업적으로도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타이니 데스크에 대한 LG유플러스의 접근은 비즈니스였는가, 진정성이었는가. 질문에 대한 답은 콘텐츠가 보여줄 것이다.
백승민 에디터
#explained #컬처 #음악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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