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평화상의 이유

2023년 10월 16일, explained

노벨 평화상 수상자 나르게스 모하마디의 표현은 사건이다. 표현은 언제 사건이 될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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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 평화상은 이란의 여성 억압과 맞선 작가 나르게스 모하마디가 수상했다. 모하마디는 이란의 여성에게 가해진 충격을 말하고, 쓰고, 펴냈다. 여성의 권리와 법적 개혁을 내세운 잡지 〈파얌 에 하자르(Payaam-e Haajar)〉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에 글을 기고해 온 그녀는 수십 년 동안 감옥 안팎을 오갔다. ‘표현’했기 때문이다.

WHY NOW

모하마디는 저서 《백색 고문(White Torture)》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은 나를 다시 감옥에 가둘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알리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하마디는 감옥에서 수상했지만, 그녀의 표현은 감옥 바깥의 사건이 됐다. 모하마디의 위험한 출판은 어떻게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표현을 가두려는 시도가 만연한 지금, 모하마디의 수상이 어떤 의미인지 짚어 본다.

억압 위에서 태어난 표현

이란은 가장 많은 작가가 구금된 나라 중 2위에 이름을 올렸다. 2022년에만 57명의 작가가 감옥에 갇혔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모하마디는 대학 학부생 시절, 논문에 여성의 권리에 관한 기사를 썼다가 30년 동안 이란 당국의 표적이 돼왔다. 모하마디는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잡지에 글을 기고하거나 정치 에세이 책을 출판하는 등 활발한 표현 활동을 이어 갔다. 이번 노벨 평화상은 억압 위에서 피어난 모하마디의 끝없는 표현에 주어진 상이다.

표현은 사건이다

모하마디의 《백색 고문》은 이란의 여성 수감자 12명의 독방 경험을 인터뷰한 책이다. 심리적 고문인 백색 고문은 신체적 상처와 달리 알려지기도, 기록하기도 쉽지 않다. 모하마디는 백색 고문의 망각을 막고자 표현했다. 이란은 모하마디의 표현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잊히게 만들어야 했다. 그 도구가 구금이었을 뿐이다. 반복된 구금은 모하마디가 사건으로 만들고자 했던 표현을 감추려 했고, 노벨 평화상은 그 표현을 다시 사건의 영역으로 내놨다. 미국 정부는 이번 노벨 평화상 수상 이후, 모하마디의 석방을 이란에 재차 요청했다. 이처럼 어떤 표현은 사건이 된다.

선언과 관점

사건이 되고자 하는 표현에는 관점이 있다. 호주의 잡지 〈오버랜드〉는 정치와 문화의 관계를 탐구해 “전통적 미디어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문제, 표현되지 못했던 관점을 출판하는 데 전념”한다. 〈오버랜드〉의 편집장을 지냈던 제프 스패로우는 작은 잡지는 작기 때문에 도발적인 질문을 공개적으로 다룰 수 있으며 “문화를 어디로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 논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버랜드〉의 근간은 에코 파시즘과 호주 원주민의 역사, 식민지 문학과 산불까지 폭넓게 다룬다. 주제는 넓지만, 지향은 뾰족하다. 초현실주의 예술 운동을 이끌었던 앙드레 브르통은 “사람들은 동료를 찾기 위해 출판한다”고 말했다. 관점의 생산과 확산을 정신으로 삼는 표현은 새로운 예술 운동으로도, 호주 정치 체제의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금서 요청

모두를 만족시키는 글은 매끈한 반면, 사건이 될 수 있는 출판은 뾰족하다. 이란은 이 뾰족함을 감옥에 가둔다. 다른 곳에서는 어떨까? 2022년과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이뤄진 금서 지정 요청은 3300권 이상이었다. 전년 대비 33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표적이 된 책은 LGBTQ와 유색인종을 다룬 책이다. 때로는 작가가 유색인종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서 지정이 요청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도서 금지 요청은 증가 추세다. 지난 7월, 일부 도서관들은 민간 단체가 금서 지정을 요청한 도서 117종에 대해 유해성 여부를 심의해 달라며 간행물윤리위원회에 의뢰한 바 있다. 《10대를 위한 성교육》, 《달라도 친구》 등 성과 다양성을 다루는 책들이 주를 이뤘다. 도서관은 민원에 취약하다. 미래의 도서관에는 모두가 싫어하지 않는, 안전한 책만 가득할 수 있다.

과대 대표

미국에는 학부모를 위한 금서 가이드 사이트가 존재한다. ‘Rated Books’는 0~5등급 사이로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과 그렇지 않은 책을 구분한다. 해당 사이트는 공공 및 공립 학교 도서관에서 어린이가 처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부모에게 경고하기 위한 목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명시한다. 아이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책 5점 만점을 받은 책에는 성 노예의 삶을 살게 된 네팔 소녀의 이야기를 그려낸 패트리샤 맥코믹의 청소년 소설 《내 이름은 라크슈미입니다》와 앨런 긴즈버그의 시 선집, 척 팔라닉의 퀴어 문학 《인비저블 몬스터》 등이 포함됐다. 문제는 이러한 금서 지정을 위한 움직임이 과대 대표됐다는 지점이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2021~2022년도 도서 이의 제기의 60퍼센트는 단 11명에게서 나왔다. 이 11명은 출판과 표현이 사건이 될 수 있는 여지를 막으려 했다.

잊힌 책

금서 요청은 소수에 의해 이뤄지지만 그 영향력은 모두에게 닿는다. 도서관에서 사라진 책은 다수의 기억에서도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책의 생산과 소비 경향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 도서관과 학교는 아동 문학 판매의 막대한 부분을 차지한다. 도서관이 특정 내용이 담긴 책을 구입하지 않기로 하면, 출판사 입장에서도 그러한 책은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 출판계 상황 전반이 어려워질수록 이 가혹한 우선순위는 강해진다. 노출도를 늘려 페이지 상위에 랭크되는 것이 유리한 온라인 플랫폼 위주의 출판 시장에서 금서 지정은 더욱 뼈아프다. 도서관에서 특정 표현을 접할 수 없으니 사람들은 그러한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를 잊어 간다. 잊힌 책은 아마존 서점의 스크롤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기 쉽다.

미래의 작가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이크 쿠라토(Mike Curato)는 자신의 책이 금서로 지정된 뒤 고정적인 수입원이었던 강연 초청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금지된 책을 쓴 많은 동료 작가들이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금서 지정은 작가에게 일종의 꼬리표다. 인지도가 없는 신인 작가의 경우, 다음 출판사를 구하기 어려워진다. 각종 행정적 처리로 인해 작업 활동에 집중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매끈하고 안전한 도서관이 서점으로, 출판사로, 작가의 작업실로 확대되는 셈이다. 표현을 감옥에 가두는 시대는 미래의 작가를 없앤다. 미래에는 유색 인종 작가가 사라질 수 있다. LGBTQ는 이야기로 쓰일 수 없고,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점차 잊어 간다. 담론은 쪼그라들고 상상력은 제한된다. 특정한 표현이 사라지는 것은 문화적 손실을 넘어 사회적 손실에 가깝다.

IT MATTERS

표현을 멈추지 않겠다는 모하마디의 선언을 다시 바라보자. 챗GPT 작가는 나르게스 모하마디를 대체할 수 있을까? 챗GPT는 논쟁하지 않는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논점을 제시할 뿐이다. 그런 표현은 누구도 거슬리게 하지 않는다. 관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챗GPT는 표현이 아닌, 종합과 반복을 수행한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강사 로라 하텐베르거는 좋은 글은 “오랜 시간 타인과 비판적으로 소통하는 데서 나오는 관점의 구체성”을 갖고 있다고 썼다. 수많은 표현의 감옥 밖에서 모두가 모난 곳 없는 종합과 되풀이만 반복한다면 챗GPT와 인간의 표현은 유사해질 수밖에 없다. 모하마디는 감옥 안에서도 표현할 수 있음을, 감옥 바깥에서도 감옥 안의 표현을 들여다볼 수 있음을 선언했다. 노벨 평화상이 표현에 주어진 건 그런 의미에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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