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정원 확대 논란

2023년 10월 24일, explained

의사들에게 돈이 전부는 아니다. 지역 의료와 필수과를 살릴 방도가 여기에 있다.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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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국 의과대학의 입학 정원 확대 방침을 발표했다. 당장 찬반양론이 붙었다. 한쪽에서는 매년 1000명씩 증원해도 모자란다고 이야기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가 결국 환자들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주장한다. 3년 전, 의료계는 집단 파업으로 정원 확대를 막아냈다.

WHY NOW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단순히 의료계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소멸, 고령화, 의대 쏠림 현상 등 우리 사회가 끌어안고 있는 다양한 당면과제 전반과 맞닿아 있다. 즉, 이번 논의의 결과에 따라 향후 전반적인 정책 방향성이 방향을 잡게 된다는 얘기다.

공정한 경쟁

2021년 기준,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가 2.6명이다. 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적다. 의사가 부족한 곳이 있다면 의사를 늘려야 한다. 지난 정부는 실패했다. 의사 단체의 반발 때문이다. 특히 ‘전공의협회’와 ‘의협(대한의사협회)’의 반발이 거셌다. 이 중 전공의들이 전면휴업에 나섰던 주된 이유는 ‘공공의대’였다. ‘중립적인 시·도 추천위원회’를 통한 후보자 추천으로 선발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다. 의대 입학은 초등학생 시절부터 쉬지 않고 경쟁에서 이겨 획득한 계급 인증서다. 경쟁은 공정해야 하며, 공공의대의 선발 방식은 그 ‘공정’을 벗어났다. 전공의 파업의 여파는 컸다. 상급 종합병원을 움직이는 주요 동력이 바로 전공의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력과 체력을 갈아 넣어 비로소 수술방이 준비되고 환자의 회복 과정이 체크된다.

의사의 수를 정부가 정하는 이유

그런데 이미 의료 부문은 공정한 경쟁과는 거리가 멀다. 의과대학 정원을 정부가 정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이유가 있다. 의사가 권하면 환자는 따르게 되어있다. 건강과 목숨이 달린 일이다. 불필요한 비싼 치료나 검진이라 해도 환자는 알 도리가 없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돈을 쓴다. 경제학에서는 ‘공급자 유인 수요’라고 일컫는 현상이다. 의사가 많아지면 시장 원리에 따라 실력 없는 의사가 퇴출당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의료 소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의사의 숫자를 시장원리가 결정하도록 놔두는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 우리나라 의대 입학 정원은 3058명이다. 게다가 18년째 3058명이다.

승리자들의 집합소

이게 풀린다니 가장 먼저 들썩이는 것은 병원이 아니라 대치동이다. 지난 10일 발표한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과 맞물려 ‘3등급’도 의대에 갈 수 있다는 홍보 문구가 등장했다. 소위 SKY 학생들이, 이미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인들이 다시 한 번 수능에 도전한다. 상위 1퍼센트 학생을 전국의 의대가 무조건 흡수하는 의대 쏠림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인생을 건 레이스의 승리자들만이 의과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돈이 되는 의료

의과 대학 입학 이후 이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은 명확하다. 비급여 항목이 돈이 된다. 국가에서 건강보험을 통해 보장해 주는 의료 행위가 급여 항목이다. 생존과 건강에 필수적이라고 보는 치료들이다.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항목이 비급여 항목이다. 희귀병 신약과 같이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건강과는 관계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피부과 시술, 라식 수술, 미용 목적의 성형 수술 등이 대표적이다. 급여 항목은 국가 정책 안에 포섭되지만, 비급여 항목은 시장 논리에 의해 가격이 형성된다. 여기에 실손 보험까지 가세하면 돈이 벌릴 수밖에 없다.

강남 한복판의 ‘피안성’

그래서 일반의는 물론이고 전문의까지 상급 종합병원이나 중급 병원에 남아 중한 환자를 보기보다는 개인 병원을 여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개원의’가 되는 것이다. 선호되는 진료과목은 주로 비급여 진료를 하며 돈을 버는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이거나 워라밸이 보장된다는 ‘정재영(정신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이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 의사 공급이 많아지고 개원의의 숫자가 늘어난다면 의협 입장에서는 곤란하다. 경쟁이 심화하기 때문이다. 반면, 전공의가 없어 허덕이는 상급 종합병원이나 중급 병원의 입장은 조금 다를 수 있다. 지난 2020년,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을 내놓고 의료계가 파업 전선에 뛰어들었을 때도 병원 협회는 정부 안에 찬성한 바 있다. 물론, 병원 협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의료 단체 내에서도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다. 입장은 갈린다.

수술보다 MRI가 비싸진 결과

급여 항목 안에서도 빈부가 갈린다. 건강보험이 보장하는 의료 행위 중 진찰이나 입원, 수술과 처치 등에 지급되는 수가는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검체 검사, 영상 검사 등은 높다. 수술하면 돈을 덜 주고 MRI 찍으면 돈을 더 준다는 얘기다. 이 체계가 ‘내외산소흉신’, 전통적으로 필수과로 불려 온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에 흉부외과, 신경외과까지 합친 ‘바이탈과’에 불리하다. 예를 들어, 소아청소년과는 대부분 진찰을 하고 흉부외과는 주로 수술을 한다. 그래서 의협이 꾸준히 제기하는 문제가 바로 ‘수가 인상’이다. 수가를 올려야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되고, 필수과에 의사가 부족한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더 주던 곳에서 깎아서 덜 주던 곳에 채워줘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의협에서 나서서 하지 않는다. 지금의 수가 제도로 이익을 보는 진료과에서 반발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의협은 내부 갈등을 감당할 이유도, 능력도 없다.

수가는 마법의 단어가 아니다

수가를 올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09년, 정부는 흉부외과 수술 수가를 100퍼센트 인상했다. 그런데 이 돈이 의사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병원 운영비로 쓰였다. 병원이 흉부외과 의사를 더 뽑지도 않았다. 그 결과 큰 수술을 집도해야 할 흉부외과 전문의 10명 중 4명은 개원을 하거나 요양병원에서 일하고 있다. 흉부외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IT MATTERS

의사들에게 돈이 전부는 아니다. 돈이 전부였다면, 대학 병원에서 소아흉부외과는 아예 사라졌어야 맞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보람, 학문적 성취 등 필수과에서 의사로서의 삶을 지탱하는 것이 분명 있다. 그래서 의대 정원 확대를 논의하며 ‘낙수 효과’를 이야기하는 것은 폭력적이다. 보람과 긍지로 버티는 의료진에게 ‘낙수과 의사’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꼴이기 때문이다. 정책은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또, 우리 사회의 인식 자체에도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신분 상승을 꿈꾼다면 의대 입학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인식이다. 그게 문제다. 왜 의사가 되는가. 부의 대물림이나 경제적 보상이 이유라면 필수과에 갈 필요가 없다. 필수과에 가고 싶은 학생들이 의대에서 공부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의대 정원 3058명 최상위권 학생들의 성적 순서대로 채워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다면 분란을 피하기 위해 공공의대 논의를 아예 없던 일로 돌리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간편한 정책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의료에 대한 인식 차이가 너무 크다. 그 괴리의 폭이 점점 넓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정책의 목표를 의료 개선이 아닌 지지율 개선에 둔다. 그래서 2000년 의약분업 과정에서 의료계의 요청으로 감축된 의대 정원 3058명이 18년간 유지될 수 있었다. 분란 없이 의료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많은 것이 뒤틀렸다. 고령화가 진행되었으며 진료비도 증가했다. 지역에서는 환자가 떠나니 의사가 떠나고, 그래서 환자가 더욱 떠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정책이 크게 접근하면 의료계에 돈이든 사람이든 쏟아붓게 된다. 그래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책이 작게 접근해야 필수과에, 사람 살릴 수술에 리소스를 분배할 수 있다. 전문 분야라는 이유로 의료계 내부의 조정을 의료계에 맡겨서는 안 될 일이다.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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