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총기 규제에 실패할까

2023년 10월 30일, explained

총기 난사 사건이 빈발하는데, 미국은 왜 총기 규제에 번번이 실패할까?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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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저녁, 미국 메인주 루이스턴에서 총기 난사로 18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7명은 볼링장에서, 8명은 인근 식당에서 목숨을 잃었다. 3명은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용의자로 군에서 20년 이상 근무한 예비군 중사가 지목됐다. 부대 내에서 손꼽히는 사격수였다는 증언이 나왔다. 용의자는 경찰을 피해 도망다니다 27일 숨진 채 발견됐다. 총기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WHY NOW

총기 문제는 미국 사회의 오랜 논쟁 거리다. 진보는 총기 규제를, 보수는 총기 자유를 옹호한다. 최근 미국에서 총기 사건이 급증하면서 총기 규제 강화 목소리가 커졌지만, 여전히 의회 문턱을 넘기 힘들다. 지난해 6월 총기 구매자의 신원 조회를 강화하는 초당적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지만, 민주당과 공화당의 협의 과정에서 공화당의 반대로 규제가 대폭 축소됐다. 미국은 왜 총기 규제에 실패할까.

24세 이하의 사망 원인 1위

올해 1월부터 10월 현재까지 미국에서는 565건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총기 난사 사건은 총격범을 제외하고 최소 4명 이상이 다치거나 사망한 사건으로 정의된다. 이 추세라면 올해 총기 난사는 700건에 달할 전망이다. 미국에서 24세 이하 인구의 사망 원인 1위가 총기 관련 사건, 사고다. 교통사고를 제친 지 오래다. 한 해에 4만 명 넘는 사람이 총기 때문에 목숨을 잃지만, 미국의 총기 규제는 획기적으로 강화되지 못하고 있다.

10분이면 살 수 있는 총

주마다 규정이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인은 미국 전역의 총포상에서 총을 쉽게 살 수 있다. LA 기준으로는 18세 이상이면 간단한 신원 조회를 거치고 라이플을 살 수 있다. 총기 박람회도 열린다. 우리로 치면 코엑스 같은 행사장에 총기상들이 테이블을 깔고 온갖 총기를 판다. 소비자가 50만 원짜리 권총을 고르고, 한 장짜리 서류를 작성하고, 딜러가 신원 조회를 하고, 계산을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이 되지 않는다.

총기법의 내용

총기 규제 옹호론자도 총기 소유 자체를 금지하자는 건 아니다. 총기를 거래할 때 신원 조사를 강화하고, 분당 수십 발을 연사할 수 있는 반자동 소총과 대용량 탄창의 판매를 금지하자는 것이다. 반대 진영에서는 신원 조사를 강화해도 총기 사건이 줄어들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어차피 범죄자들은 신원 조회를 하는 정식 딜러가 아니라 뒷골목 같은 곳에서 총기를 사고판다는 주장이다. 반자동 소총도 밀매로 얼마든 구할 수 있다.

총기 정치학

국가가 마약을 금지하듯 민간의 총기 소유와 사용을 아예 금지하면 어떨까. 한국, 중국, 일본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의 총기 문제는 우리 생각보다 크고 오래되고 복잡하게 얽혀 있다. 총기 정치학(gun politics)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미국에서 총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총은 이념과 정파의 문제이고, 인종, 성별, 연령, 소득, 거주 지역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의 총기법은 크게 세 가지 이유로 개혁이 어렵다. 미국의 역사, 수정 헌법 제2조, 총기의 수 때문이다.

총이 만든 나라

미국의 역사는 총과 함께 시작했다. 17세기 초 미국 동부 해안에 상륙한 유럽 이주민들은 서쪽으로 이동하며 국경을 넓혔다. 서부 개척자들에게 총은 인디언과 야생 동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생존 도구였다. 독립도 총으로 이뤘다. 18세기 말 영국과 독립 전쟁을 치를 때 미국은 정규군이 없었다. 민병대가 집에 있던 총을 들고 나와 싸웠다. 독립 이후 민병대가 쇠퇴했지만, 총기 문화는 그대로 남았다.

수정 헌법 제2조

미국에서 총기 보유는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다. 1791년에 만들어진 수정 헌법 제2조는 “규율이 잘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州) 정부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국민의 무기 보유와 소지 권리는 침해되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캘리포니아주처럼 진보적인 주에서 총기 규제를 강화해도 결국 이 헌법 조항에 막혀 연방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이 난다. 헌법을 개정해 총기 보유를 금지하려면 상원과 하원에서 3분의 2 이상이 동의하고, 38개 주(50개 주 중 4분의 3 이상)에서 비준을 받아야 한다. 사실상 불가능하다.

총기의 수

미국은 인구보다 총이 많은 나라다. 미국 민간인은 3억 9300만 정의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 인구 100명당 총기 120정이 있다. 내전 중인 예맨보다 두 배 많은 수치다. 전체 가구의 3분의 1 이상이 최소 1정 이상의 총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몬태나주는 주민의 66퍼센트가 총기를 갖고 있다. 총기 소유자가 많으니 당연히 규제를 강화하기 어렵다. 미국총기협회(NRA) 같은 이익 단체의 정치권 로비도 총기 규제 정책을 억제하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IT MATTERS

헌법을 바꿀 수 없다면, 헌법 해석을 바꾸면 되지 않을까. 수정 헌법 2조의 해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민병대가 무기를 지니도록 보장하는 조항이라는 해석과 민병대와 상관없이 개인의 총기 소유권을 보장하는 조항이라는 해석이다. 1939년 연방 대법원은 전자의 취지로 판결했다. 그러다 2008년 종전 판례를 뒤집고 수정 헌법 2조가 개인의 총기 소유권을 보장한다고 판시했다. 즉 헌법 해석이 다시 뒤집힐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이마저도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임기 6년인 한국 대법관과 달리 미국 연방 대법관은 종신직이다. 죽거나 스스로 그만두지 않는 한 교체되지 않는다. 한번 임명되면 대략 30년은 판결을 내린다. 미국 연방 대법관은 9명이다. 현재 보수 6명, 진보 3명으로 구성돼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기 동안 3명이나 임명했다. 셋 다 보수 성향이다. 대법관들의 나이를 고려할 때 21세기 중반까지는 보수 중심의 대법원이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연대 에디터
#explained #미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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