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를 잡기 위해 필요한 것

2023년 11월 14일, explained

살충제가 빈대를 완벽하게 이겼던 역사는 없다.

NOW THIS
 
지금 한국인의 관심사는 ‘빈대’다. 체감의 문제가 아니다. 구글 트랜드 기준이다. 빈대의 검색량은 전청조, 지드래곤, 이준석 등의 인물을 훌쩍 뛰어넘는다. 공포가 치솟을 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빈데믹’이라는 신조어까지 회자된다. 결국 정부는 지난 10일, 빈대 박멸을 위해 대체 살충제 8종의 사용을 승인했다.

WHY NOW
 
빈데믹을 일종의 소동이나 과잉 공포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빈대는 실존적인 고통을 안기는 존재다. 21세기의 인류는 이 빈대가 다시 침투하도록 길을 터주었다. 큰 틀에서는 인류의 실패다. 그리고 가깝게는 정책의 실패다. 그리고 지금 정부가 내놓은 살충제 정책은, 1940년대 미국에 존재했다고 하는, DDT를 한 꼬집 섞은 칵테일 ‘미키 슬림’과 다를 바 없다.

빈대는 있다
 
지난 6일 기준, 당국에 접수된 빈대 신고는 32건이었다. 이 중 13건이 실제 빈대였다. 지난 10년 누적 신고 건수가 9건에 불과했던 것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공식 집계를 벗어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 10월에만 서울 25개 자치구 중 18개 구에서 민간 방역업체가 빈대 퇴치에 나섰다. 처음엔 특별한 장소였다. 찜질방이나 열악한 고시원 등이다. 그런데 이제는 일반 가정집, 대중교통, 심지어는 택배 박스 등에서 빈대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급속히 확산 중이다. 빈대는 증가하고 있다. 빈대에 대한 공포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
 
“그러나 내 방에서는 겨울에도 몇 마리의 빈대가 끊이지 않고 나왔다. 내게 근심이 있었다면 오직 이 빈대를 미워하는 근심일 것이다. 나는 빈대에게 물려서 가려운 자리를 피가 나도록 긁었다.”

시인 이상이 1936년에 발표한 시, 〈날개〉의 한 구절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빈대가 꽤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23년의 한국인에게 빈대는 허구다. 한국 전쟁 시기, 미군과 함께 들어온 DDT 덕분이다. 빈대와 이 등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해충’들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결국 빈대는 1970년대 초반, 한국에서 거의 박멸되었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인식이었다. 마치 ‘해태’마냥, 문학과 역사 속에만 존재하는 멀고 먼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빈대에 대한 경험이 없다. 모르는 존재에 대한 불안감은 당연히 무한히 확장할 수밖에 없다.
 
문명과 위생과 빈대
 
그러나 21세기, 빈대가 다시 등장한다. 처음에는 뉴욕이었다. 다음에는 파리와 런던이었다. 허름한 여행객의 숙소에서 빈대가 발견되었다는, 그래서 엄청난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도시 전설처럼 여행자들 사이에서 돌고 있던 터다. 그러나 뉴욕의 빈대는 사무실로 침입했고 파리와 런던의 빈대는 대중교통으로 침입했다. 그다음 차례는 한국이다. 문명을 세우고 위생을 달성한 선진국에서 빈대가 퍼진다. 이것은 비위생의 문제가 아니다. 21세기의 문제다.
 
여행이 너무 싸다
 
21세기의 첫 번째 문제는 세계화와 그로 인한 풍요다. 21세기, 여행이 극단적으로 저렴해졌다. 특히 저비용 항공사(LCC)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경쟁 효과로 인해 비행기 티켓 가격이 하락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장거리 여행객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1990년 4억 5000만 명 수준이었던 국제 관광객 규모는 2019년 14억 6000만 명 수준으로 급증한다. 빈대는 날개가 없다. 국경을 넘으려면 사람이 옮겨야 한다. 정확히는 사람 냄새가 밴 여행객의 세탁물이 옮겨야 한다. 뉴욕과 파리처럼, 세계인의 버킷 리스트에 포함된 대도시에서 빈대가 번식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온이 너무 높다
 
비행기가 더 많이 뜰수록 늘어나는 것이 있다. 바로 탄소 발자국이다. 두 번째 문제다. 현재 퍼지고 있는 빈대는 토종 빈대가 아니다. ‘반날개 빈대’라는, 아열대 지역의 빈대다. 유럽 지역에서 퍼지고 있는 빈대도 바로 이 반날개 빈대다. 외래종이 들어올 수는 있다. 그러나 정착하여 생존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기후 변화와 빈대의 확산 사이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시각이 나오는 까닭이다. 빈대에게 최적의 온도는 대략 섭씨 20도로 알려져 있다. 흡혈 없이도 120일 정도 생존 가능하다.
 
양극화를 외면한다
 
빈대가 퍼지고, 생존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빈대가 한국에 다시 돌아온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마치 코로나19가 그랬듯,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기승을 부렸을 뿐이다. 서울시 동자동, 중림동 일대의 쪽방촌에서는 이미 지난 5월부터 빈대로 인한 고통을 호소해 왔다. 이야기가 돌기 시작한 것은 3~4년 전부터다. 그러나 구청 차원의 간헐적 방제만 있었을 뿐, 제대로 된 대책은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세 번째 문제다. 21세기 극심해진 양극화에서 눈을 돌렸다는 점. 지금 당장 드러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거 취약계층의 문제를 남 일 취급했다. 그곳을 보지 않는다고, 가지 않는다고 남 일이 되지 않는다. 전염병처럼 빈대는 빈자와 부자를 차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빈대 잡다 꿀벌 잡을까

빈데믹에 대한 정부의 대답은 새로운 살충제 허가다. 빈대 합동 대책본부를 꾸리고 권장 살충제를 내놨다. 우리가 흔히 쓰는 ‘에프킬라’ 등의 가정용 살충제에도 포함된 성분, ‘피레스로이드’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이 성분 원액에 빈대를 담가도 죽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빈대가 진화했기 때문이다. DDT와 살충제의 시대를 지나며 강력해진 것이다. 빈대의 외골격, 즉 겉껍질은 15퍼센트 두꺼워졌다. 유전자 자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그래서 이번에는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의 살충제를 승인했다. 유럽 등에서는 꿀벌을 절멸시키고 있다는 이유로 금지된 성분이다. 정작 빈대는 이 성분에 내성을 키우고 있다. 빈대는 늘, 살충제와의 싸움에서 승리해 왔다.

IT MATTERS
 
인류의 가장 큰 발명은 역사일지도 모른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끔 하는 힘. 과거의 오류와 지혜를 내 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힘 말이다. 레이철 카슨은 《침묵의 봄》에서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며 곤충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대규모 농지에 단일 작물 재배를 선호하게 되면서 특정 곤충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인간이 만든 부자연스러움으로 불편이 발생하자 인간은 DDT를 사용했다. 《침묵의 봄》이 1962년 고발한, 죽음의 화학물질이다. 역사를 통해 배우고도 우리는 화학물질에 의존하는 손쉬운 방법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다.

벌레는 개인이 해결할 문제라는 정부의 인식도 문제를 키웠다. 빈대는 법정 감염병을 옮기는 해충이 아니다. 관리의 대상도, 역학 조사의 대상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가 아예 없다. 민원이 들어오니 코로나19 당시처럼 일단 보건소가 떠맡았다. 그러나 보건소에는 빈대를 잘 아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빈대는 질병의 문제만은 아니다. 주거 복지와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다. 빈대 상황판을 만들기 전에 거버넌스 확립이 선행 과제였을 것이다.

2010년대 빈대로 홍역을 치렀던 뉴욕시에 흥미로운 사례가 있다. 빈대가 발생하면 집주인이 이를 신고하고 건물 내 모든 거주자에게 이를 알리도록 하는 법률을 도입한 것이다. 또, 30일 이내에 방역 조치도 하게 했다. 이후 빈대 민원 건수가 크게 감소했다. 물론, 이 효과는 부자 동네에서 더 두드러졌다는 한계가 있다. 다만, 빈대 문제에 임대차 계약의 범주에서 접근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을 따라다니는 벌레다. 사람의 정책과 정치가 살충제만큼이나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최근 미국 뉴욕에서도 빈대가 다시 확산 추세다. 중남미에서 온 이민자들 때문이라는, ‘일각의 주장’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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