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공룡 엑손모빌이 리튬 산업에 뛰어든 까닭

2023년 11월 16일, explained

석유의 종말처럼 보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미국 네바다주 클래튼 밸리에 있는 실버 피크 리튬 광산으로 현재 미국에서 상용화된 유일한 리튬 채굴 시설이다. 엑손모빌은 원유 시추에 사용되는 기술을 응용하여 아칸소 지역의 리튬을 경제적으로 추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Marli Miller,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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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석유 기업인 엑손모빌이 리튬 사업에 뛰어들었다.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 및 첨단 전자 제품 제조 등에 반드시 필요한 핵심 금속이지만, 중국이 전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엑손모빌은 ‘모빌 리튬(Mobil Lithium)’이라는 브랜드명으로 2030년까지 전기차 100만 대분의 연간 생산량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WHY NOW

거대 석유 기업이 ‘친환경’ 광물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탈탄소의 바람이 확실히 불고 있다는, 덩치 큰 석유 공룡도 미래 에너지 기업으로 거듭나게끔 시대의 방향이 바뀌었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람은 아직 약하고 기업은 너무 크다. 이 회사의 궤적을 살피다 보면, 낙관은 이르다는 결론에 가 닿는다.

록펠러의 그 기업

태초에 스탠더드 오일이 있었다. ‘석유왕 록펠러’의 신화 속에 등장하는 그 기업이다. 한때 미국 석유 생산량의 90퍼센트를 점유했지만, 1890년 제정된 반독점법에 따라 결국 34개 회사로 해체된다. 본사 역할을 했던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은 ‘엑손’, 뉴욕 스탠더드 오일은 ‘모빌’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두 회사가 1999년 다시 합병한다. 이렇게 탄생한 엑손모빌은 현재 원유의 생산부터 정제 및 판매까지 아우르는 세계 1위 석유회사다.

기후 위기를 먼저 알았던 사람들

석유만 정제해 온 것이 아니다. 엑손모빌은 역사를 통틀어 많은 것을 정제해 왔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 위험 같은 것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화석연료 연소로 인해 지구 기온이 10년에 0.2℃씩 오를 것이라는 예측이다. 아직도 일각에서는 거짓이라는 정치적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엑손모빌의 사내 연구팀은 1970년대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정제’했다. 연구팀의 분석은 감추고 화석연료와 기후변화 간의 연관성은 꾸준히 부정해 왔다.

삶을 부서뜨렸던 실수

아직 다 정제하지 못한 것도 있다. 1989년 3월, 미국 알래스카에서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가 좌초한다. 원유 약 24만 배럴이 바다로 쏟아졌다. 수많은 동물이 죽었다. 주민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사고 해역 인근의 코르도바 지역은 1988년까지 미국의 8대 어업기지로 불렸지만, 지금은 100위에도 들지 못한다. 엑손모빌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은 지리하게 이어졌다. 사고 19년 만에 확정 선고된 배상금은 5억 달러였다. 엑손모빌의 넉 달 치 순이익에 불과한 금액이었다. 그 사이 지역사회는 이미 해체됐다.

판이 바뀐 것일까

석유는 권력이다. 적어도 20세기까지는 정치와 언론 외에 석유와 겨룰 힘은 없었다. 그런데 21세기, 역사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정확히는 석유 대기업의 역사적인 패배가 시작되었다. 지난 2021년, 엑손모빌의 주주들은 환경주의 정책을 촉구하는 이사진을 선임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 ‘엔진 넘버원’이 중심이 되어 변화를 이끌어냈다. 화석연료에 집중해서는 엑손모빌이 기후변화 시대에 대응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엑손모빌의 책임이다

이사회장 바깥에서도 패배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미국에서 ‘기후 살인’ 법 이론이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 기후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 엑손모빌과 같은 석유 기업들은 기후 위기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석유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왔다. 살인 혐의로 석유업계를 기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유죄 판결 전망은 흐릿하다. 인과관계 증명이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어의 힘은 명확하다. ‘기후 살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프레임을 바꿀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오리건주의 한 지역사회는 엑손모빌 등의 석유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수백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2021년 기록적인 폭염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석유 종말론

엑손모빌을 정확히 저격하는 공격에 더해 전기차, 재생 에너지 등 탈탄소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각국의 흐름까지 고려하면, 이번 리튬 사업 계획은 논리적이다. 석유를 그만 쓰려면 대안을 찾아야 한다. 전기다. 그것도 친환경 재생 에너지원을 통해 발전된 전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태양광이나 풍력 등은 일정치가 않다. 이를 이용한 전기 생산량도 일정할 수 없다. 이를 잘 모아뒀다가 필요한 곳에 쓰려면 배터리가 핵심이다. 그리고 배터리의 핵심은 리튬이다. 그래서 엑손모빌의 리튬 사업은 선언적이다. 화석연료의 20세기에서 미래 에너지의 21세기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다.

리튬 말고 엑손모빌이 사들인 것

정말 그럴까. 겉보기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정유업계의 사정을 상세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지난 10월 11일, 엑손모빌은 셰일가스 시추업체인 ‘파이오니어 내추럴 리소시스’를 595억 달러에 인수했다. 1998년에 있었던 엑손과 모빌의 재합병 이후 석유업계 사상 가장 큰 딜이다. 엑손모빌의 석유 및 가스 생산량은 20퍼센트 증가할 예정이다. 대놓고 몸집을 불렸다. 이유는 에너지 불확실성이다. 탈탄소의 길을 착실히 걸을 것 같았던 유럽연합부터 유턴을 시작했다. 예상치 못했던 전쟁이 두 곳에서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찾아온 고금리, 고물가 시대도 부담이다. 석유는 연료다. 지금 달리는 자동차를 계속 달리게 한다. 석유는 원료다. 값싼 플라스틱을 계속 만들게 한다. 갑작스럽게 닥친 가난 앞에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엑손모빌은 지난해 557억 달러의 사상 최대 이익을 달성했다.

IT MATTERS

역사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IEA(국제에너지기구)는 2030년을 기점으로 인류의 화석연료 사용이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피크 오일(Peak Oil)’이다. 그러나 OPEC(석유수출국기구)과 석유업계의 전망은 다르다. 2045년이 되어도 수요는 줄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망이 갈리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전쟁을 예상하지 못했다. 5년 전만 해도 팬데믹을 예상하지 못했다. 계획대로 해 나아가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그래서 엑손모빌의 리튬 사업은 불확실의 시대에도 여전히 거대 기업으로 남고자 하는 전략이다. 몸집은 키우되 계란은 나누어 담는다. 미래에 예상되는 시장이 있다면 과점할 준비를 한다. 즉, 시대가 기업을 탈탄소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순진한 낙관의 근거가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애써야 한다. 아직 바람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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