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인간들을 예언하다
완결

혁신의 소설가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도파민에 중독된 21세기를 일찌감치 예언한 작가가 있었다. 그가 그려낸 디스토피아의 이름은 《멋진 신세계》다.

1959년 1월 26일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열린 ‘정신 연구에 대한 약리학적인 접근’ 콘퍼런스에서 연설하고 있다. 헉슬리는 고문, 매장, 죽음의 무기보다 인간의 기분을 변화시키는 약물이 미래의 독재자들이 지구를 노예로 만드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Bettmann, Getty Images

1. 인간은 양서류와 마찬가지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1932)의 작가로 잘 알려진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는 인간을 양서류에 빗대고는 했다. 물과 뭍, 수중과 육지 양쪽에서 서식하는 양서류처럼 인간 또한 “주어진 세계와 인공의 세계, 두 세계에 동시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Huxley 1956). 헉슬리가 평생 천착했던 문제는 바로 이 두 세계의 충돌, 주어진 자연과 가공된 사회 양쪽에 동시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조건이었다.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본성 안에 무수히 많은 잠재된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그런 ‘자연’을 인공적, 사회적 규범과 관습이 저지한다고 생각했다. 1957년에 형 줄리언에게 보낸 편지에서 올더스는 대부분의 인간이 “능력의 약 20퍼센트만 발휘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인간 잠재력(human potentialities)을 최대한 실현할 수 있도록 몸과 정신을 개조해야 한다고 말한다(Huxley 1969). 이처럼 그는 말년까지도 이 20퍼센트를 어떻게 100퍼센트로 끌어올릴 수 있을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헉슬리는 40년이 넘는 작품 활동 기간 동안 과학 기술, 도덕주의, 섹슈얼리티, 정신과 육체의 부조화와 합일, 종교와 신비주의 등의 주제를 광범위하게 탐구하며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면서 인간과 문명에 대해 비판적으로 사유했다. 그 사유의 기저에는 인간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런 삶을 지속 가능케 할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집요한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을 따라 그는 다양하고 논쟁적인 방향으로 관심을 뻗어나갔으며, 그 영향으로 그의 삶을 단편적으로 요약한 생애사만 본다면 그를 천재 혹은 괴짜로 오해하기 쉽다.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그를 끈질기게 괴롭힌 비난과 조롱, 비평적 무시에도 불구하고 인간 개선에 대한 끈질긴 집착이 그의 최대 업적이자 우리가 현재에 되새길 만한 삶에 대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헉슬리의 생애와 평판에서 앞서 언급한 ‘양서류성(amphibiousness)’ 의 여러 갈래를 발견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과학에 소질을 보인 헉슬리는 한동안 의사가 꿈이었으나, 결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1920년대 초에 본격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며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과학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박식함은 어쩌면 헉슬리 가문의 족보에서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는 근대 영국의 황금기였던 빅토리아조(1837-1901)가 저물어 가는 1894년, 런던 근교의 서리주에서 명망 있는 헉슬리 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다윈의 개’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진화론을 열렬히 옹호했던 저명한 과학자 T. H. 헉슬리가 할아버지였고,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역임한 형 줄리언 헉슬리는 과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생물학자였으며, 이복형제 앤드루 헉슬리는 노벨상을 받은 생리학자였다. 올더스는 또한 문학가의 피도 물려받았다. 아버지 레너드 헉슬리는 작가이자 교사였으며, 어머니 줄리아 아널드는 19세기의 유명한 시인, 비평가이자 옥스퍼드대학교의 시학 교수인 매슈 아널드의 조카딸이었다.

 

2. 21세기의 《멋진 신세계》


1930년대에 헉슬리의 명성과 인기는 정점을 찍었다. 《크롬 옐로(Crome Yellow)》(1921), 《어릿광대의 춤(Antic Hay)》(1923), 《그 황량한 나뭇잎(Those Barren Leaves)》(1925), 《연애대위법(Point Counter Point)》(1928)을 통해 1920년대에 사회 풍자 소설가로서 입지를 굳힌 상황이었다. 그리고 다섯 번째 장편 소설인 《멋진 신세계》를 1932년에 펴내면서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 당시는 물론 인기를 얻기 전과 평판이 서서히 하향 곡선을 탄 후에도 헉슬리에 대한 평가는 늘 극단적으로 나뉘었으며 출판한 작품의 거의 모든 내용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적 보수성을 재치 있게 타파한 신세대적 지성의 선도자이자 20세기 초 현대 시대정신의 해방자로 칭송받는 동시에, 비도덕적이고 퇴폐적인 자유사상가, 잘난 척하는 불손한 풍자가, 심지어는 무책임한 인간 혐오자라고까지 비난받았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기존 작품에서 형성된 자신의 풍자적 스타일을 활용하는 동시에, 작가 본인이 속한 현실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전 작품과는 달리 미래 시점의 가상 사회를 상상해 낸다. 이 미래 세계는 ‘공동체, 통일성, 안정성’이라는 세 가지 모토를 완벽하게 실현한 이상 사회 같지만 들여다보면 어딘가 섬뜩하다.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를 생산한 1908년을 기원으로 한 AF(After Ford) 632년, 또는 서기 2540년의 미래 사회인 세계국(World State)은 포드가 창안한 자동차 공장식 대량 생산의 공리주의적 원칙을 인간 삶에서 가능한 모든 영역에 적용했다. 자궁에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극강의 효율이라는 원칙 아래 생산되고 통제되는 것이다. 공장의 인공 자궁에서 태어나기도 전, 모든 인간은 사회에서 행할 역할에 따라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라는 등급에 맞는 특성을 갖추도록 유전자가 조작되고, 출생 후에는 계급에 맞도록 세뇌 교육을 받아 사회에 필요한 완벽한 부품이 된다. 오락·쾌락·행복은 촉감 영화·개방된 성 생활·소마(soma)라는 마약을 통해 충족되고, 불만이나 불안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일견 매끈한 유토피아인 이 미래 사회를 실상 하나도 멋지지 않은 신세계로, 유토피아를 디스토피아로 폭로하는 것은 외부자 야만인 존이다. 헉슬리는 우연히 런던을 방문한 존의 시선을 통해 기술문명과 인간성의 공존이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키지 않고 가능한지에 대해 신랄한 의문을 제기한다. 세계국 밖의 원주민 지역에서 나고 자란 존은 과학 기술의 이득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셰익스피어 전집을 통독하는 등 문학과 예술의 가치를 알고 인간성에 대한 깊은 탐구를 한 인물이다. 소설 말미에 존은 세계국의 총관리인 머스타파 몬드와의 대화에서 자유, 선과 악, 갖가지 복잡한 감정을 고도의 기술로 보장한 안락함과 맞바꾼 이 사회의 비인간성을 지적하며 안정을 포기하더라도 “불행할 권리를 주장”한다(Huxley 2004).

이 소설을 읽은 21세기의 독자라면 헉슬리가 상상한 세계에서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발견하며 소름이 돋을지도 모르겠다. 자본주의와 전체주의가 교묘하게 결합한 세계국 구석구석에서 이미 익숙한 현실이 되어버린 시험관 아기와 유전자 조작, 개성과 자율적 사고를 몰살하는 소비주의와 쾌락 추구 문화 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더 최근의 현상으로는 도파민 중독에 빠져 집중력을 도둑맞은 우리의 자화상과도 마주할 수 있다. 야만인 존의 울림 있는 항거는 우리가 기술과 과학의 발전 덕에 누리는 편리와 안락의 이면에 마모되어 가고 있는 인간성의 위기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3. 1930년대의 눈으로 읽어보면


그런데 《멋진 신세계》는 오늘날 현대 사회와의 접점을 예측할 뿐만 아니라 당대인 1930년대 중반 영국과 유럽 사회에 대한 비판에서도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 풍자가답게, 헉슬리는 자신이 몸담은 20세기 초 사회의 쾌락주의와 기술 과학 만능주의를 비꼬고 있다. 소설에 반영된 인간 복제에 대한 두려움은 미국의 포디즘으로 상징되는 대량 생산 기법과 혁명가 보카노프스키가 주창한 소련의 산업 합리화 운동이 전제했던, 생산성을 위한 노동의 효율화·기계화·비인간화 기획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이다. 이는 세기말부터 유럽에서 유행한 인종 타락(degeneration)에 대한 우생학적 담론과도 연결된다.

《멋진 신세계》를 당대 사회적 맥락뿐 아니라 문학적 전통 안에서도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유토피아 소설을 여러 권 썼던 공상과학작가 H. G. 웰스의 희망찬 미래에 반박하고자 헉슬리가 해당 작품 집필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나, 그가 친밀히 교류하던 모더니스트 작가 D. H. 로렌스의 문명 비관주의적 견해와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에 대한 조예의 흔적이 소설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헉슬리가 20세기 초 영국 문인들과의 촘촘한 문학적 네트워크 안에서 글을 썼다는 방증이다. 그의 소설은 16년 뒤에 나올 조지 오웰의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 《1984》와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는데, 오웰의 미래 시민과 달리 헉슬리의 세계국 시민들은 억압을 억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개인의 욕망과 비판적 의식이 거세된 상태에서 진심으로 행복을 느낀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지금은 필독서 목록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소설이 되었지만, 출판 당시 《멋진 신세계》는 헉슬리의 작품답게 수없이 많은 상반된 반응을 자아냈다. 출판 첫해에만 영국에서 1만 3000부, 미국에서 1만 5000부가 빠르게 팔렸고 곧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그렇지만 호주에서는 음란물이라는 이유로 4년간 출판 검열을 당할 만큼 일각에서는 섹스와 마약 재현을 문제 삼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대중과 문단의 가장 큰 관심과 호응을 얻은 작품인 만큼 《멋진 신세계》가 헉슬리의 업적을 평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저작인 것은 사실이나, 그 텍스트 하나로 길고 다채로운 그의 작품 활동과 사상을 압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그의 마지막 소설 《섬(Island)》(1962)과 비교해 보면 헉슬리의 생각이 30년에 걸쳐 얼마나 변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유토피아 팔라(Pala)섬은 그가 1932년에 상상했던 세계국보다 훨씬 진지한 이상적 사회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작은 자치 공동체인 팔라의 풍습과 문화는 그가 1930년대 이후 탐험한 불교 철학, 1950년대에 직접 복용하기 시작한 메스칼린이라는 마약을 비롯한 환각제가 가능케 하는 인식론적 확장, 세계와 합일이 되는 경험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멋진 신세계》에서 소마는 불안을 잠재우고 폭동을 진압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면, 《섬》의 목샤(moksha)는 개인적 득도, 그리고 타자와의 합일과 사회적 유대감을 북돋는 용도로 쓰인다. 이 하나의 차이만 보더라도, 헉슬리의 디스토피아 뒤의 비관주의적 세계관이 종교와 환각을 경험하면서 획득한 신비주의적이면서 낙관주의적 세계관으로 변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변화는 《멋진 신세계》 1946년 판에 붙인 서문에서 밝힌 원작의 결점에서도 드러난다. 헉슬리는 자신이 1932년 소설에서 야만인 존에게 “유토피아에서 미친 삶을 살거나 아메리카 원주민 마을에서 원시인의 삶을 사는 것” 두 가지 대안밖에 주지 않았다는 점을 후회하며, 그보다 더 나은 세 번째의 평화로운 해결책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다(Huxley 2004). 그것이 바로 “이 행성, 이 위도, 이 섬에서 다른 생명체와 조화를 이루며 온전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목표인 섬 사회를 그린 《섬》의 성취이기도 하다(Huxley 2002). 이는 다른 저작과 강연을 통해 그의 이론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던 ‘인간 잠재력’의 비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4. 올더스 헉슬리의 마지막 챕터


후기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를 썼던 영국인 공상과학 소설가’라고 단편적으로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놀랍도록 다채로운 관심사를 녹여낸 저작을 남겼다. 말년에 정착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지식인, 종교인, 의료인 등과 나누었던 교류는 그가 영국에서 이미 관심을 두고 있던 마약과 환각 경험, 성의 개방과 자유연애, 무정부주의와 대안 공동체, 평화주의, 대안 의료법, 인도 불교 철학 등을 더 폭넓게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헉슬리의 후기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잘 드러내 주는 책으로는 불교, 힌두교, 기독교 등의 여러 성전을 비교분석한 《불멸의 철학(The Perennial Philosophy)》(1945)과 마약 메스칼린이 신경계에 미치는 영향과 심리적, 인식론적 체험을 정리한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1954)이 있다. 또한, 그는 실명 위기에 처했던 유년기의 경험에서 이어진 몸 그리고 몸의 한계에 대한 인식을 기반으로 명상, 요가, 알렉산더 테크닉,[1] 베이츠 방법[2] 등 심신의 조화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단에서는 헉슬리의 이러한 행보를 두고 작가나 소설가의 본분을 망각한 채 삐딱한 반지성주의나 터무니없는 헛소리에 빠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Watt 1975).

인생 후반부에 소설가로서 헉슬리에 대한 평의 하락세는 《멋진 신세계》의 미학적 정점으로부터의 추락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서사나 개연성보다는 관념과 이상에 관심이 가 있었으며, 그것을 소설로 표현한 것뿐이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소재와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소설가로만 본다면 그것은 헉슬리에 대한 부당하게 단순한 요약일 것이다. 그보다는, 기술 발전과 자본주의가 낳은 여러 문화적 병폐, 그리고 복잡한 정치체제의 전환과정에서 대두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통찰력 있게 진단하고 그에 대응하는 방안을 20세기의 절반이 넘는 시간 동안 고민한 사상가로 보는 것이 더 적합할 것이다. 개인과 사회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여지가 있으며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한 선례로서 헉슬리를 이해한다면 그 방법과 역사적 맥락을 넘어, 현재에 우리에게도 귀감이 될 수 있다. 인간에게 잠재된 더 많은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헉슬리의 작품 세계와 사상을 관통하는 믿음은 우리가 21세기에도 그의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이다.
참고 문헌
Aldous Huxley, 〈Education of an Amphibian〉 in 《Adonis and the Alphabet, And Other Essays》, Chatto & Windus, 1956.
Aldous Huxley, 《Letters of Aldous Huxley》, Grover Smith (ed.), London: Chatto & Windus, 1969.
Aldous Huxley, 《Island》, New York: Perennial, 2002.
Aldous Huxley, 《Brave New World and Brave New World Revisited》, New York: Harper Perennial, 2004
Donald Watt (ed.), 《Aldous Huxley: The Critical Heritage》, Routledge, 1975.
[1]
알렉산더 테크닉(Alexander Technique)은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고 틀어진 자세를 교정하는 일종의 운동법이다. 무의식적 나쁜 습관을 의식적으로 통제하여, 몸과 마음의 총체적 조화를 추구한다는 특징이 있다. 헉슬리는 알렉산더 테크닉의 창시자인 F. M. 알렉산더에게 1930년대 중반부터 개인교습을 받았다.
[2]
베이츠 방법(Bates Method)은 윌리엄 H. 베이츠(William H. Bates) 박사가 시력 개선을 위해 개발한 대체요법으로, 잘못된 습관을 정신으로 바로잡는 것을 강조한다. 미국에 정착한 후 1930년대 말부터 베이츠 방법을 꾸준히 수행한 헉슬리는 이를 통해 시력이 나아진 경험을 정리해서 《보는 것의기술(The Art of Seeing)》(1942)로 출판하기도 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