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1화

프롤로그 ; 성심당 갈 때 대전 한번 들를게

중앙로 지하상가에서 어제 산 옷이다. 매장 매니저가 ‘성수동 스타일’이라고 분명히 그랬다. ‘역시 이 구역 힙스터는 나뿐이군.’ 새 옷은 근거 있는 자신감을 줬다. 그런데, 이 서울 골목에서 이렇게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진짜 성수동의 힙’을 풍기며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끗 나를 보는 것 같다, 은은하게 비웃으면서. 누군가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면서 ‘너 대전에서 왔지?’라고 묻기 전에 카페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싶다.

친구가 데려온 서울 애들은 “울산에선 고래 타고 다닌다며?” “광주시 공공 자전거가 ‘타랑께’래!” 농담하며 깔깔댄다. 대전시 자전거 ‘타슈’는 모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같이 박장대소했다. 내 웃음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뜨끈해진 뒷덜미를 쓸어내린다. 서울 사람들에게 서울 아닌 지역의 삶은 고래 타고 다닐 만큼 원시적이고, 사투리의 독특함을 살린 공유 자전거 이름은 유머가 된다. 이 상황과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난 상관없는 척하고 싶다. 맘 편히 웃고 싶다. 하지만, 웃긴 데 씁쓸하고, 같이 웃으면서도 저 깊은 곳에선 화가 난다. 웃어도 되나 싶기도 하고, 안 웃고 있자니 잘 섞이지 못하는 사람 같다. ‘지방 무시하냐?’고 따지고 싶다. 그랬다가는 갑자기 분위기 싸해질 테고 누군가는 나더러 자격지심 있다고 하겠지.

서울은 ‘올라가’고 대전은 ‘내려간다.’ 대전보다 북쪽에 있으니까 올라가는 게 맞는데, 왠지 위에 있으니까 서울 사람들은 상전 같다. 20세기 초 표준어가 된 건 서울 중산층의 말[1]이고, 서울말을 곧 표준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서울 사투리’라는 말 자체에 발끈한다.[2] 서울 외 다른 곳은 ‘지역 혹은 지방’이라 구분해서 부르지만, 서울은 그냥 서울이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17개 시도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면, 서울 아닌 곳에서 온 사람들만이 ‘지역(지방)에선’이란 표현을 쓰고, 서울 사람들은 ‘지방은 어떠냐’고 묻는다. 서울과 지방으로 쪼개진 이분법의 세계에서 서울은 중앙이고 표준이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은 다른 지역을 대상으로 한 유머를 ‘순수하게’ 즐길 수 있는 걸까.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랬다. 그럼, 서울 아닌 곳에 사는 나 같은 사람은 뭐란 말인가. 서울로 가야만 했을 것 같은 나는 아니, 서울로 가지 못한 나는 마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주눅이 든다. 도달하지 못한 목적지를 멀리서 바라보는 이 기분은 뭘까.

서울이라는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달한 사람들은 어떤 마음인지 궁금하다. 공부를 잘하면, 취업이 잘되면 청년들은 부지런히 짐을 싸 서울로 갔다. 부러움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가 살고 있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울산에서 고래 타는 얘기’와 ‘타랑께’를 들으며 해맑게 웃고 있습니까?” 부러움은 서울에서의 삶을 버티는 원동력이지만 여전히 서울을 어색하게 견디고 있는 누군가는 ‘서울시민 자격 검정 시험’을 상상할지 모르겠다. ‘참 서울 시민증’이 있다면, 성수동 골목에서 ‘진짜 성수동의 힙’을 풍기지 못해 나만 부표처럼 동동 떠 있는 기분일 때 잠시 버틸 수도 있지 않을까.

동경하는 서울에 왔지만, 몇 년이 지나도 아직 ‘서울 사람’이 되지 못한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지방에 대한 농담을 들으며, 마치 ‘내 얘긴 아니니까 난 웃을 수 있지’ 식의 태도를 보이거나 ‘뭘 이런 걸 심각하게 여기나’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무시하고 싶지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나도 서울의 일부가 되었다고 증명하고 싶다. 어떤 억양도 없이 ‘서울 사람입니다’를 발음하고 싶다. 지방과 거리를 둬야 하는데 아니, 거리를 두고 싶은데, 왜 그렇지 못할까. 서울시민이지만 동시에 서울시민이 아닌 것 같은 이 기분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 책은 설명하기 어려운 그 기분에서 시작됐다. 목적지인 서울에 도착하지 못한 부러움과 그 부러움을 부정하고 싶은 분노, 그리고 서울 한복판에 있지만, 서울에 속하지 못한 ‘시골 쥐’의 부끄러움과 출신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 말이다. 설명하기 어렵고, 이상하며, 외면하고 싶지만 마치 옷에 물든 딸기물처럼 지워지지 않는 감정은 결코 사소하거나 사사롭지 않다. 사라 아메드(Sara Ahmed)[3]와 에바 일루즈(Eva Illouz)[4]는 내가 경험한 이 ‘느낌’이 우리 사회의 ‘생활 양식’과 나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고 했다. 이 감정의 실체를 잘 따라가 보면, 어느새 “피부밑으로 파고든 구조[5]”와 만나게 된다. 나와 내 친구, 동네와 도시 그리고 더 큰 사회를 움직이게 한 힘의 원리를 알게 된다.

노잼의 도시 대전에 사는 나는, 이 복잡하고 이상한 기분과 이 기분을 만들어 낸 실체를 스스로 찾아 설명해 보려고 ‘노잼도시[6]’를 연구하기로 했다. 노잼도시란 수식어를 대전만이 가진 개성이자 브랜드라고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세상 매력 없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걸 부끄러워해야 할지 갈피를 잡고 싶었다. 자랑스러움은 정신 승리 같고, 부끄러움은 과몰입 같다. 사람들이 대전을 노잼도시라고 부르는(놀리는!) 이유를 알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 감정에 대처할 방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 감정 뒤에 있는 생활 양식과 나의 사회적 위치를 알면, 이 감정을 만들어 낸 힘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노잼의 도시라 불리는 건 대전 사람들에겐 일종의 해결해야 할 문제 같았다. 대전시장 후보자들은 대전을 꿀잼도시로 만들 공략을 제시했고, 언론엔 ‘노잼도시 꼬리표 떼려면 월드컵경기장에서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게 하고, 오리배에 전기 충전기를 달아야 한다’는 기사[7]가 종종 등장했다. 대전이 ‘노잼도시’로 불리는 건 불명예스러운 일이었고, 대전이 재미없어서 청년들은 떠난다고 했다. 지방 도시의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의 위기가 팽배한 이 시국에 ‘노잼’이라는 별명은 재앙과도 같았다.

재미없는 도시여서 즐길 게 없다는데 궁금했다, 정말 대전은 노잼의 도시인가. ‘도대체 얼마나 재미가 없길래 노잼도시일까.’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면, 어떤 재미가 없길래 노잼도시일까 하는 질문이 생긴다. 대체 재미있는 도시란 뭘까? 사람들은 대전을 노잼도시라 놀리면서도 정작 ‘노잼도시’가 무엇인지는 곰곰이 생각해 본 적 없지 않나? 하여튼 재밌어야 한다고 부르짖지만, 그 재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우린 알고 있을까?

도시의 재미는 곧 쓸모와 쓰임새로 연결된다. 쓸모와 쓰임새를 부지런히 찾는 노력과 발견은 꾸준히 있었다. 이런 발견은 도시를 잘 포장해서 팔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과 발견은 도시를 하나의 소비재로 규정해 버린다. 사람들은 소비자가 되고 도시는 소비재가 된다. 소비자는 싸게 사서 비싼 값어치를 느끼고 싶다. 그래서 도시를 가성비로 평가하게 된다. 도시란 사람과 공간과 정서가 버무려진 복합체인데, 그 안에 사는 우리와 도시 사이엔 소비자와 소비재 관계만 남는다. 이건 괜찮지 않다. 이런 관계만 있다면, ‘꿀잼’ 대전이 되기 위해, 인구 유입을 견인하는 도시 경쟁력을 위해, 여의도에 있는 큰 쇼핑몰이나 랜드마크가 될 고층 빌딩만을 원하게 될 것이다. 이 역시도 괜찮지 않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노잼도시민’의 난감한 기분에서 시작한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자꾸만 쪼그라드는 게 고민이라 어떻게든 저 위 대도시처럼 되고 싶지만 고유한 정체성은 지키고 싶은, 대전을 포함한 지방 도시의 상황을 ‘지금은 지방 (소멸) 시대’에서 다룬다. 행정 구역이자 물리적으로 확정된 대상으로 존재하는 도시는 마치 팔고 사는 물건처럼 투자의 대상이 돼왔다. 박리다매와 비싸고 고급진 포장과 가성비 개념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정책들은 전문가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도 그런 태도에 꽤 익숙해졌다.

도시와 우리가 서 있는 공간을 생각하는 이런 태도는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가 한 말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인스타에서 유명하대서 갔더니 돈 주고 구경할 만한 데는 아니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잘 꾸며져 있어 가격 대비 굿 초이스였다”란 말에는 도시 방문 선택의 기준, 도시를 바라보고 생각하고, 즐기는 태도가 드러나 있다. ‘사람들은 검색창 앞에서 가장 솔직해진다’는 공간과 장소에 대한 태도 때문에 장소를 진짜 즐기고 느끼지 못하고 결국 잃어버리는 현실을 다룬다.

‘언제부터 대전은 ‘노잼도시’였나’와 ‘여기는 왜 힙하지 않은가’는 텍스트 마이닝을 활용해 사람들이 소셜 미디어에 쏟아 낸 대전 방문 이야기를 분석한다. 비정형의 말들을 수집하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이야기 속의 패턴과 숨겨진 주제를 찾고, 단어들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 담론의 구조를 파악했다. 텍스트 마이닝은 설문 조사처럼 독립 변수와 종속 변수 사이 인과 관계를 밝히진 않지만, ‘노잼도시’와 ‘대전의 힙하고 핫한 장소’가 어떤 단어와 이야기로 규정되고 구성돼 있는지를 보여 준다. 텍스트 마이닝을 통해 드러난 건 서울의 존재감이었다. 서울 없이는 대전을 노잼으로 만들어 버린 재미의 실체와 힙하고 핫한 대전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노잼이 되어 버린 대전이 힙해지려면 서울처럼 돼야 한다고 결론 맺을 수는 없다. ‘있습니까, 나만의 도시를 만드는 방법?’에서는 중앙과 지방, 서울과 서울 아닌 곳이라는 위계와 이분법으로 도시를 바라보지 않고, 장소와 나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고 이를 설명할 ‘언어’를 꾸준히 개발해 온 사람들을 소개한다. 이들은 이미 정해진 유명함과 재미, 아름다움을 거부하고 자신이 스스로 찾아가 재미와 아름다움, 이야기를 발견하고 만든다. 이름 없는 장소에 이름을 붙이고, 납작한 도시를 두껍고 풍성하게 한다. 그래서, ‘진짜로 도시를 가진다.’

이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스스로 찾아내, 자신의 언어로 이를 규정하고 변화시킬 힘을 보여 주는 사람들이다. 획일적인 기준으로 도시에 값을 매겨 온 지금까지의 공간 소비 방향성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더 강력해졌지만,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와 장소 간의 유착 관계를 이용한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맛집을 찾아내고, 힙한 골목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무너지는 동네에 남은 정서를 음악으로 공유하기도 하고, 해지는 기차역 뒤편의 은은한 하수구 냄새 사이에 숨은 성 착취와 폭력을 고발하기도 한다. 도시를 다루고 평가해 왔던 생각의 숨겨진 방향성을 ‘해킹’하고, 장소에 그들만의 언어를 붙이는 이들은 도시를 더 자유롭게 소유할 방법을 알려 줄 것이다.

이 책은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도 않은데, 서울에 가면 ‘멀리서 오셨네요’ 소리를 듣는 대전에 관한 얘기다. 대전 한번 오란 인사에, ‘성심당 말고 갈 데 있나요?’라고 농담을 건네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는 ‘노잼도시 대전’에 대한 얘기다. ‘멀리서 오셨네요’와 ‘성심당 말고 갈 데 있나요’, 그리고 대전 사이의 ‘진짜 거리’에 대한 얘기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대전이란 장소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얘기라 할 수 있겠다.

혹시 내가 출신지와의 연결 고리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서울 사는 ‘디나이얼(denial) 지방출신’[8]이 아닐까를 생각하며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디나이얼 지방출신’의 정체성 고민은 사실 비서울권 지역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 도시 공간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그리고 그 생각과 태도가 만들어 낸 결과물과 연루돼 있다. 당신도 때때로 그런 고민에 빠지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 든다면, 당신을 서울로 밀어낸 그 생각과 당신도 연루돼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건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당신 얘기이기도 하다.

아마 이 책은 ‘마계 인천’이라는 말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사람들과 질투를 섞어가며 슬슬 노잼도시 타이틀을 노리는 울산과 청주 사람들에게도 꽤 도움이 될 듯하다. 그들도 어두컴컴한 도시 뒷골목과 대전만큼이나 재미없는 도시가 되는 게 고유하고 독특한 정체성인지, 버려야 할 이미지인지 헷갈릴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략 난감과 분노, 거부감과 부정, 헷갈림과 부끄러움의 혼돈 한가운데에 노잼도시 대전이 있다.
[1]
이익섭, 〈국어 표준어의 역사〉, 《국어문화학교》 1, 국립국어연구원, 1992, 71~79쪽.
[2]
이정봉, 〈[카드뉴스] 이정섭 ‘챔기름 더~’ 알고보니 서울사투리라고?〉, 《중앙일보》 2017. 10. 18.
[3]
사라 아메드(성정혜·이경란 譯), 《행복의 약속-불행한 자들을 위한 문화비평》, 후마니타스, 2021.
[4]
에바 일루즈(김정아 譯), 《감정 자본주의-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돌베개, 2010.
[5]
사라 아메드(성정혜·이경란 譯), 《행복의 약속-불행한 자들을 위한 문화비평》, 후마니타스, 2021, 388쪽.
[6]
이 책에서는 ‘노잼’과 ‘도시’를 붙여 하나의 고유 명사처럼 사용한다. 용어 사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3장에서 찾을 수 있다.
[7]
박진석, 〈성심당 빼면 아무것도 없는 대전...노잼도시 꼬리표 떼려면〉, 《충남일보》, 2022. 11. 30.
[8]
시각 예술 비평가 이연숙(리타)은 블로그 일기에서 김해에서 서울로 이주해 사는 자신을 ‘디나이얼 지방출신’이라 불렀다. 그의 허락을 얻어 이 표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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