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위기

2023년 11월 28일, explained

양양 땅값이 오른다. 멋진 로컬이 위기에 처했다.

2018년 2월 1일 강원도 양양군 해변의 철조망 옆에 문을 닫은 서핑 가게가 보인다. 사진: Woohae Cho, Getty Images
NOW THIS

서퍼들의 성지, 양양의 땅값이 심상치 않다. 국토부 발표에 따르면 양양군의 지가는 2022년 3.9퍼센트의 상승률을 보였다. 강원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비슷하게 오른 곳을 찾으면 서울 서초구 정도다. 관광객이 가장 많이 몰리는 인구해변 주변의 경우 평당 7000만 원이 넘는 매물도 있다는 것이 현지 공인중개사의 설명이다. 거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WHY NOW

양양은 지방 소멸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멋진 레퍼런스로 언급된다. 하지만 벌써 그 끝이 보인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상권이 무너지고 로컬의 매력이 바래는 장면을, 우리는 수도 없이 목격해 왔다. 양양은 정말 성공 사례일까. 양양의 매력은 누가 만든 것일까. 우리가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들여다보면, 로컬이 맞이한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보인다.

워너비, 양양

양양은 워너비다. 성장과 성공에 얽매이지 않는 삶, 서핑을 즐기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삶이 가능할 것 같은 몇 안 되는 곳이다. 2023년 여름, 양양은 가장 찾고 싶은 관광지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양은 전국 지자체의 워너비이기도 하다.

데드 크로스는 지났지만

지방 소멸 시대, 양양도 예외는 아니다. 양양의 인구는 2만 7000여 명이다. 이 중 60세 이상 인구 비율은 대략 45퍼센트, 20대와 30대를 합해도 15퍼센트가 채 되지 않는다. 2023년 10월, 양양에서 태어난 사람은 8명, 사망한 사람은 36명이었다. 통계대로라면 양양은 죽어가는 중이다. 이른바 ‘데드 크로스’를 진작에 넘긴 것이다. 그러나 ‘생활 인구’ 개념으로 따지면 그렇지 않다.

정주 인구, 체류 인구, 생활 인구

나는 경기도에 살지만, 주중에는 매일 서울로 출근한다. 주말에도 종종 서울에서 지인들과 만나 시간을 보낸다. 잠자는 곳, 즉 주민 등록이 되어 있는 곳을 기준으로 하자면 나는 경기도민이다. 그러나 시간을 보내는 곳을 기준으로 하자면 나는 서울시민이다. 여기서 생활 인구의 개념이 나온다. 통근자, 통학자, 관광객 등 특정 지역에 일정 시간 체류하는 ‘체류 인구’도 지역의 인구로 보는 새로운 개념이다. 일본의 ‘관계 인구’와 유사하다. 양양의 인구는 2만 7000여 명이지만, 한 지역 언론이 추산한 양양의 생활 인구는 2020년 기준으로 7만 7800여 명에 달했다.

2시간, 서울과의 거리

이쯤 되면 양양은 명실상부 지자체들의 워너비가 될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이 알아서 찾아오더니 부동산이 들썩이고 개발의 바람이 분다. 2022년, 서핑을 하러 양양을 찾은 인구가 47만 명에 육박했고 이들이 몰고 온 경제 효과는 657억 원으로 추산된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자연이 도와줬다. 양양은 서핑하기에 딱 좋은 수심이다. 1년 내내 파도가 치는 데다 파도 유형도 다양하다. 그리고 교통도 도와줬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2017년 개통된 것이다. 서울에서 양양까지 4시간 걸리던 거리가 2시간대로 줄었다.

로컬 개발의 공식

이처럼 지역 간의 거리가 극도로 가까워지는 시대에는 어디든 양양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양이 가지는 고유의 이미지는 지방 정부 주도의 대규모 개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시작한 작은 서핑 숍들이 들어서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지역과 서핑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드나들다 보니 ‘라온서피리조트’와 같은 지역 기반 스타트업도 생겨났다. 서울의 익선동, 창신동 등과 유사성이 보인다. 골목이 사람을 모으고, 사람이 도시 기획을 부르고 성공적인 기획이 지역 상권 전체를 끌어올리는 공식이다.

팝업의 성지 양양

그리고 그 공식에 따르면 지역의 호황에는 끝이 있다.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뜨는 지역에 자본이 몰리면서 임대료를 올린다. 지역이 가진 고유의 정체성에 기반한 수익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려 버린다. 그 시점이 몰개성이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하는 때다. 누구든 와서 쉽게 돈을 쓸 수 있는 대형 체인점이나 고급 브랜드의 팝업 등,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세입자들이 지역을 점유한다. 올여름, 양양의 해변이 그랬다. 이들은 지역이 품은 매력을 나누어 쓰는 대가로 기꺼이 임대료를 지불하지만, 그 결과 그 매력을 만들어 냈던 작은 상점들은 버틸 수 없게 된다. 밀려난다.

정책의 방향

지방 소멸의 대안이 과연 생활 인구인지도 질문해 볼 법하다. 양양에 오는 사람들은 놀러 온다. 다른 목적 없이 로컬의 자연과 문화를 ‘소비’하기 위해 방문하는 것이다. 양양을 덮치고 있는 개발이 목표로 하는 것은 바로 이들, ‘체류 인구’다. 체류 인구야말로 양양에 활기를 불어넣기 때문에, 돈을 쓰기 때문에, 개발 꾼들을 끌어들이고 땅값을 끌어올리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다. 그러나 이들은 말 그대로 ‘체류’할 뿐이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면 옮겨간다. 체류 인구의 소비에 기댄 지역 정책은 지속 가능할 수 없다.
IT MATTERS

워라밸은 시대정신이다. 고속철과 고속 도로가 전국을 엮어 낸다. 교통 앱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여행은 간편하고 실패 확률이 적은 여가가 되었다. 이 모든 현상이 얽히고 엮여 양양이라는 신화가 탄생했다. 전국 어디라도 새로운 양양이 될 수 있다. 로컬의 매력이 있다면 사람이 몰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21세기, 그 매력의 가능성을 탐지하고 시대에 맞게 기획하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라 ‘라온서피리조트’나 ‘글로우 서울’ 같은 민간의 도시 기획자들이다.

양양군도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자체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를테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나 양양 국제공항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케이블카도, 공항도 양양의 정체성이 될 수는 없다. 평화로운 해변에서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환경에 부담이 되는 기반 시설들이 달가울 리 없기 때문이다. 커피 브랜드도 양양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면 ‘친환경’을 덧입는 마당에 지극히 20세기스러운 전략이다. 사업 자체도 삐걱거린다. 케이블카는 착공식은 했으되 시공사도 없는 상황이고 공항은 문을 닫았다.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의 저자 주혜진은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은 이 도시의 주인이 되어 본 적 있었나? 혹시 주인이 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방해 온 것은 아닐까.” 젠트리피케이션이 몰고 오는 몰개성의 상권은, 로컬이 진짜 주인이 아닌 주체들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주민 등록이 양양에 있어야 진짜 주인은 아니다. 내 삶을, 내 믿음을 양양에 어느 정도 기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진짜 주인일 터이다. 그렇다면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케이블카나 공항 같은 공허한 SOC 개발보다 양양의 젠트리피케이션을 막는 일, 양양이 진짜 주인들의 도시로 남도록 애쓰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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