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발루의 반격

2024년 1월 29일, explained

인구 1만 1200명 작은 섬나라의 총선을 중국, 대만, 미국, 호주가 주시하고 있다.

2021년 11월 8일 투발루 외교부 장관인 사이먼 코페가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에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연설하고 있다. 사진: 투발루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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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에서 1월 26일 총선이 열렸다. 투발루는 9개의 섬으로 이뤄진 작은 나라다. 면적은 서울 종로구와 비슷하고 인구는 1만 1200명이다. 유권자 6000명이 국회의원 16명을 뽑는다. 유권자 수만 보자면 우리나라 구의원 선거보다 작은 규모의 선거다. 그런데 이 작은 섬나라의 총선을 중국, 대만, 미국, 호주가 주시하고 있다.

WHY NOW

투발루는 가라앉는 섬이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땅이 물에 잠기고 있다. 기후 변화의 나비 효과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사례다. 그런데 이번에는 투발루가 세계에 역(逆)나비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국회의원 16명을 뽑는 투발루의 미니 총선 결과에 대만의 외교 정책, 중국과 미국의 남태평양 전략, 호주의 안보 전략, 글로벌 기후 이주 프레임워크가 달려 있다.

투발루

투발루는 호주와 하와이 중간쯤에 있다. 면적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작고 인구는 세 번째로 적다. 이렇게 작은 나라인데, 이름이 꽤 알려져 있다. 기후 위기 때문이다. 투발루는 평균 해발 고도가 약 2미터인데,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매년 0.5센티미터씩 상승해 50년 뒤면 나라 전체가 물에 잠길 위기다. 이미 바닷물이 지하수층까지 침투해 빗물을 받아 식수로 쓴다. 만조 때마다 땅 위로 바닷물이 올라와 농작물도 재배할 수 없다. 주로 통조림 식품을 수입해 먹는다.

선거

1978년까지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투발루는 지금도 영국 연방의 일원이다. 찰스 3세가 형식상 국가 수장이고, 실질적 통치권은 의회가 갖는다. 그 의회를 구성하는 선거가 1월 26일 치러졌다. 8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두 명씩, 총 16명의 의원을 뽑는다. 임기는 4년이다. 투발루에는 정당이 없다. 후보자들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 당선자들은 각 섬에서 배를 타고 수도 푸나푸티에 모인다. 그곳에서 의원들끼리 연합을 형성하고 다수파가 총리를 배출한다.

대만

작은 섬나라 총선이지만 대만에선 관심이 집중된다. 투발루는 대만과 수교를 맺은 세계 12개국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대만에 우호적인 현 총리 카우세아 나타노가 떨어졌다. 차기 총리 자리를 노리는 세베 파에니우 재무장관은 당선됐는데, 파에니우는 대만과의 관계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과 대만 중 어디와 가깝게 지내는 게 투발루에 더 유리할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총리 선출 등 정부 구성엔 며칠 더 걸릴 전망인데, 현재로선 투발루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 편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미국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는 1월 24일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 관계를 복원했다. 투발루까지 대만과 단교하면 남태평양에 대만의 수교국은 마셜 제도와 팔라우만 남는다. 이 두 나라는 미국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미국은 이들과 자유 연합 협약을 맺고 경제 지원을 대가로 미군 기지를 주둔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방어하는 ‘침몰하지 않는 항공 모함’이다. 솔로몬 제도에 이어 투발루까지 중국 편에 서게 되면 남태평양에서 미국 주도의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

호주

이번 선거는 호주에도 중요하다. 2023년 11월 호주와 투발루는 이주와 안보에 관한 협정을 맺었다. 기후 이주에 관한 세계 최초의 양자 협정이었다. 호주는 가라앉는 섬나라 투발루에서 매년 280명의 기후 난민을 받기로 했다. 인구 1만 1200명의 2.5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다. 조약은 양국 의회의 비준을 받아야 발효되는데, 투발루에선 논쟁이 한창이다. 야당 지도자 에넬레 소포아가는 자신이 총리가 되면 협정을 파기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이웃 나라에서 협정까지 맺어 가며 기후 이주를 받아 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일까. 또 중국이 얽혀 있다. 협정에는 안보 관련 조항도 있다. 호주와 투발루는 제3국과 안보 협정을 체결하려면 반드시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방, 치안, 국경 보호, 사이버 보안, 항만, 통신, 에너지 인프라가 여기에 포함된다. 호주가 남태평양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넣은 조항이다. 투발루의 일부 정치인들은 이 조항이 투발루의 주권을 호주에 예속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세계

중국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한 조항이 세계 최초의 기후 이동성 보장 협약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있다. 이 협약은 단순히 두 나라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발생할 기후 이주 문제에 대한 가이드가 될 수 있다. 해수면이 상승해 국가의 구성 요소인 영토가 사라져도 국가가 성립할 수 있을까. 주권도 함께 사라질까. 섬나라가 수몰하면 배타적 경제 수역은 어떻게 될까. 협약이 무효화하면 지금은 낯설지만 앞으론 일상이 될 기후 이주라는 문제를 선제적으로 고민할 기회도 함께 사라진다.

IT MATTERS

투발루 외교부 장관인 사이먼 코페는 2021년 11월 8일 COP26을 맞아 화상 연설을 했다.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에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렸다. 한때 육지였던 곳이었다. 코페 장관은 강대국의 ‘말뿐인 약속’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면서 기후 위기 대응에 당장 행동으로 나서 달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그의 연설을 해외 토픽이나 상징적인 제스처로 받아들였다. 북극곰이 살 곳을 잃고 있다는 가슴 아픈 동화처럼 소비했다. 그런 투발루에 세계 각국의 실질적인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중 갈등에도 좋은 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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