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2024년 2월 28일, explained

기후 위기 시대의 대기 오염은 메이드 인 꼬리표를 넘어선다.

미세먼지로 뒤덮인 서울 시내의 모습. 사진: Chung Sung-Jun/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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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에 나사 항공기가 떴다. 대기질 측정 장비가 설치된 연구용 DC-8 항공기다. 항공기가 떴던 지난 2월 26일, 서울은 미세먼지로 뿌옇게 덮였다. 한국과 미국은 겨울철 대기 오염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아시아 대기질 공동 조사’를 시작했다. 대기 오염이 가장 심한 2월부터 3월까지, 동아시아의 국경을 넘나들며 대기질 조사가 실시될 예정이다.

WHY NOW

미세먼지는 중국만의, 인도와 파키스탄만의 탓일까. 전 세계를 뒤덮는 공기는 특정 국가에 대한 책임론으로 너무 쉽게 수렴됐다. 우리는 어쩌면 국경 없는 공기에 억지로 국가의 몫을 부여해 왔을지 모른다. 대기 오염이 불평등을 넘어 모두의 문제로 발화하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는 효과적이지 않은 접근법이다. 이제는 공기에서 국경의 꼬리표를 뗄 때다.

900만 명

미세먼지는 번거로운 존재만은 아니다. 뿌연 공기는 조용히 사람을 죽인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20년간 대기 오염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인구 10만 명당 43명이었다. OECD 평균은 28.9명이었다. 사망자가 적은 뉴질랜드, 핀란드보다는 여섯 배 많은 수치다. 특히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대기 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두드러진다. 인도와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사망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OECD는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대기 오염으로 인해 연간 600만 명에서 900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했다.

공중 보건

대기 오염은 공중 보건의 문제다. 미국신경학회 〈신경학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교통수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기 오염 농도가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일수록 알츠하이머 유발 원인으로 꼽히는 아밀로이드 단백질이 뇌에 더 많이 쌓였다. 초미세먼지는 자살률과도 연관됐다. 〈네이처 지속가능성〉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중국의 초미세먼지 농도와 자살률을 비교한 결과 중국이 대기 오염 예방, 통제 정책을 시작한 뒤 중국의 자살률이 10퍼센트 감소했다. 국가 단위의 대기 오염 저감 정책이 자살률을 낮춘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결론이다.

생산성

대기 오염은 생산성과 경제력에도 적잖은 영향을 준다. PM2.5의 초미세먼지가 1입방미터당 마이크로그램 증가할 때마다 미국 노동 시장의 급여가 123달러 손실된다. 환경 연구 그룹 ‘퍼스트 스트릿(First Street)’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에만 미국 인구의 4분의 1이 해로운 공기에 노출될 것으로, 2050년대에는 전체 미국인의 절반이 유해 공기에 노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토대로 분석하면 미국은 2054년에만 3341억 달러에 달하는 노동력을 잃게 된다. 이미 전 세계 기업은 대기 오염으로 인해 10억 일 이상의 근무일을 흘려 보내고 있다.

비어 갈 식탁

대기 오염은 식탁 위기로도 발전할 수 있다. 미세먼지가 130마이크로그램 이상으로 치솟은 날에는 꿀벌의 평균 먹이 탐색 시간이 기존 45분에서 77분으로 1.7배 늘었다. 뿌연 공기로 인해 꿀벌이 탐지하지 못하는 빛의 영역이 늘면서 길을 찾을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드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전 세계 산업이 성장할 경우 중국과 인도에서는 꿀벌이 영향받는 면적이 크게 늘면서 인류의 식량 수급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대기 중 오존은 페로몬의 화학적 구성을 바꾸면서 초파리의 짝짓기를 방해했다. 해당 연구는 대기 오염이 생물 다양성 감소와 같은, 잠재적인 생태학적 파급 효과를 부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꽃과 식물의 수정 확률이 낮아지면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모두의 식탁은 그렇게 비어 간다.

탄광의 카나리아

랜싯 플래닛 헬스가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의 99퍼센트가 초미세먼지(PM2.5)가 해로운 수준에 노출돼 있다. 세계 인구의 0.001퍼센트만이 WHO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오염 수준에 노출된 상황이다. 어두운 전망이지만 고무적인 지점도 있다. 대기 오염은 눈에 보인다. 모두가 즉각적인 불편함을 감지할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쉽게 책임을 묻고 행동을 촉구한다. 공기질 모니터링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 ‘클래리티 무브먼트(Clarity Movement)’의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루는 대기 오염을 “기후 변화를 알리는 탄광의 카나리아”라고 표현했다. “대기 오염은 기후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하는 데 훌륭한 방법”이다.

중국의 책임

이런 소중한 책임을 우리는 너무 손쉽게 국경에 물어 왔을지 모른다. 미세먼지와 대기 오염의 문제에서 우리는 쉽게 중국을, 인도를 비난한다. 그들의 대기 오염은 그들만의 책임일까. 중국의 제조업 부가가치 규모는 31조 4000억 위안으로 전체 GDP 비중의 27.4퍼센트를 점유한다. 중국이 세계 상품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4.7퍼센트다. 중국을 세계 최대의 대기 오염 배출국으로 만든 원인은 그들이 생산하는 저렴한 공산품을 소비하는 전 세계다. 전 세계는 중국에 공장 가동을 외주화했고, 대기 오염을 위탁했다. 그 몫을 이제는 모두가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무력한 손가락질

모두가 쉽게 중국을 비난하지만, 그만큼 중국이 만든 공산품을 쉽게 소비한다. 이 ‘손쉬움’이 대기 오염 문제의 핵심이다. 미국 일리노이공대의 매튜 샤피로 교수는 중국발 미세먼지 논란 관련 기고문에서 “단순히 중국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건 미세먼지 완화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썼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된 한국도 중국발 미세먼지에 일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대기 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에 일방적인 책임을 요구하기보다는 국경을 넘어선 모니터링과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저렴한 소비, 성장을 향한 열망에서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공기는 외교와 설득, 합의의 문제다.

IT MATTERS

대기 오염에 특정 국가의 욕심과 미비한 대처의 탓으로만 접근한다면 해결의 범위는 급격히 줄어든다. 전 지구적 기후 위기의 시대에서 ‘국경의 책임론’은 때때로 무력해진다. 현재 한국 도심에서 실시되는 아시아 대기질 공동 조사 역시 단순한 책임론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2016년 진행된 한미 대기질 국제 공동 조사는 서울 초미세먼지의 52퍼센트가 국내에서, 48퍼센트가 국외에서 온 것을 밝혀 냈다. 중국발 초미세먼지는 34퍼센트였다. 중국도, 우리나라도, 대기 오염의 주범으로부터 무관하지 않다. 국경을 넘어서는 대기 오염 태스크포스가 절실한 이유다.

대기 오염은 산업혁명 시기에만, 저개발 국가에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패러다임 아래서라면 생산성 문제도, 꿀벌의 헤맴도, 늘어날 알츠하이머와 자살률도 막을 수 없다. 이제는 공기에 붙은 ‘메이드 인’ 딱지를 떼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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